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8
교랑의경 708화
“이리 와서 보시오!”
태후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던 도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리 와서 보시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더니 태후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덮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진안 군왕이 태자의 침전 문밖에 서서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이리 와서 보시오.”
진안 군왕이 또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태후를 쳐다보았다. 횃불 아래, 진안 군왕의 표정은 더없이 냉랭했다. 태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무서울 게 뭐 있다고? 태자가 죽은 걸 볼 테면 보라지. 태자는 병으로 죽었으니까!
“다들 가서 보게나!”
태후가 소리치면서 진안 군왕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황후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장순이 황후를 뒤따라갔다. 머뭇거리던 대신들도 서둘러 몸을 일으켜 태자의 침전으로 향했다.
가장 앞장섰던 황후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뒤이어 무언가를 본 장순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곧이어 더 많은 사람이 태자의 침전 앞에서 무언가를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저러는 거야?
그나저나 진소가 아직 안에 있지 않나? 밖이 이리도 소란스러운데, 왜 나와보지도 않지?
진소가 내 편에 서서 도움이 되는 말을 늘어놓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나와서 자리는 지켜야지.
설마······.
고능준이 흠칫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든 그는 몸을 홱 돌리고 태자의 침전을 향해 달려갔다. 위수군이 재빨리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고능준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옥대를 풀어 높이 쳐들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는 천자께서 호국 대신으로 임명한 사람이다. 누가 감히 내 앞을 막는 게냐!”
위수군이 주저하는 사이, 고능준이 틈을 비집고 달려갔다. 그는 우악스럽게 대신들을 밀치고 태자의 침전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대청 안. 태자의 침전을 향하는 곳에 있던 월동문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새하얀 내의를 입은 진소가 문에 목을 매단 채로 죽어 있었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혀를 길게 내밀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을 매달아 죽었어?
이 괘씸한 놈! 이 괘씸한 놈!
그런데, 저놈이 목을 매달아 죽었으면 죽은 거지. 죽은 사람이 뭐 무섭다고. 죽은 사람은 침전 안에도 하나 더 있는걸.
하지만 고능준을 두려움에 떨게 한 건, 진소의 새하얀 내의 위로 적힌 혈서였다.
– 소인에게 죄가 있습니다. 소인의 부덕으로 결국 태자 전하를 해하였고, 폐하의 혈통을 끊었습니다. 통탄하고 후회스러운 일이나 되돌릴 길이 없기에 관복을 벗고 머리를 풀어 자결로 천하에 죄를 고합니다.
죄가 있어? 태자를 해했다고?
고능준의 손에 들려 있던 옥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끌어내라!”
진안 군왕이 말했다. 위수군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단번에 고능준을 제압했다.
“뭐 하는 것이냐? 지금 뭘 하는 것이야! 반역이야! 반역이야!”
태후가 소리를 지르면서 진안 군왕을 가리켰다.
“저놈을 잡아라! 저놈을!”
하지만 태후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회랑 아래 홀로 서 있었다.
“진소에게 죄가 있는 건, 진소 자신만의 일이오!”
고능준이 있는 힘껏 외치며 고개를 들고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저놈이 진안 군왕비를 끌어들여 태자를 음해한 거요! 감히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할 수 있소? 감히 누가 나를 끌어내! 내게는 폐하께서 하사하신······.”
고능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안 군왕이 바로 옆에 있던 장순의 관모를 낚아채 고능준에게로 힘껏 던졌다. 곧이어 진안 군왕의 손을 떠난 관모가 고능준의 얼굴을 명중했다.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는 관모였지만,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고능준은 악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표독하게 소리치던 고능준의 목소리가 없어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본왕이 감히 그러겠다는데, 어쩔 텐가?”
진안 군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자리에 있던 대신들을 훑어보자, 문 앞에 서 있던 대신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전하께서는 감히 그러실 수 있지요. 궁문도 포격하고, 태후를 끌어내라 명하기도 하고, 고능준의 얼굴을 박살 내기까지 하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요. 암요. 편하신 대로 하시지요.
관모에 얼굴이 찍힌 고능준은 쓰러지면서 혼절하였고, 진소는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 대세는 확정된 바나 다름없었다.
“역적이다! 역적이야! 어서 저 역적놈을 잡아라!”
태후는 아직도 뒤에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회랑 아래에 홀로 서 있는 태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적을 잡았으니, 태후마마께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어서 궁으로 모시고 가거라.”
황후가 말했다.
궁인들이 재빨리 태후에게 다가가 태후를 다짜고짜 양쪽에서 들어 올렸다. 황실에 오래 있었던 궁인들은 추태를 보이는 사람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성을 잃고 소리를 내지르던 태후는 갑작스럽게 입을 틀어막자,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태후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른 궁인들이 서둘러 태자의 침전으로 들어가 월동문에 걸려 있던 진소를 내려서 밖으로 들고 나왔다.
“장 대인께 결례를 보였습니다. 허락도 없이 장 대인의 관모를 빌렸네요.”
진안 군왕이 장순을 쳐다보며 말했다. 장순은 엄숙한 표정으로 진안 군왕을 향해 공수의 예를 올렸다.
“전하, 관모로 간악한 역적을 때려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관모의 영광이지요.”
간악한 역적. 이제 고능준은 간악한 역적이 된 거로군.
하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고능준이 제아무리 세 치 혀로 연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해도 아무 소용 없어. 병사들을 이끌고 돌포탄으로 성문을 부수고 들어올 배짱이 진안 군왕에게 있으니, 기세는 완전히 진안 군왕 쪽으로 기울었고.
진안 군왕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관모로 고능준을 기절시켜 입을 막은 거겠지.
“태자.”
황후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면서 태자의 침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신들도 울먹이거나 흐느끼면서 황후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태자의 침전은 몹시 협소했다. 단출한 데다 장식도 간소하고, 침상과 의자, 그리고 탁자 외에는 어떠한 가구도 놓여있지 않았다.
조금 전의 어수선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내는 전혀 정돈되어 있지 않고 어지러웠다. 바닥에는 무언가 더러운 것이 묻은 흔적이 있었고,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는 분명 오물의 냄새였다.
어엿한 태자 전하의 거처에서 이런 악취가 풍기다니. 이자들이 도대체 태자 전하의 시중을 어떻게 든 거야?
태자 전하께서 바보라 지각도 없고 말도 못 하신다고, 이렇게 막 대할 수가 있나?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바보는 아무리 태자라 해도 저리 비천한 노비들에게까지 홀대를 받는구나.
대신들이 고개를 들고 침상을 쳐다보았다. 침상 위에는 뚱뚱한 태자가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사실 대신들은 평소 태자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태자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에 없었다. 대신들이 기억하는 태자의 모습은, 바보가 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영리하고 활발했던 이황자는 궁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대신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공손하게 예를 표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였다. 대신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자신의 간식을 가져와서 기다리는 대신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었다. 대신들의 기억 속 어린 이황자는 집안의 어른을 대하는 손아랫사람처럼 언제나 공손하고 다정했다.
태자께서 생전 얼마나 선량하고 영리한 아이셨는지.
“전하께서는 매일 최음제를 복용하셔야만 했습니다.”
“전하께서 몸에 열이 많아 짜증을 내며 침수에 들지 못하시자, 그자들은 또 전하께 심신을 안정시키는 탕약을 먹였습니다. 시끄럽게 하지 못하게, 말썽도 피우지 못하게, 그저 조용히 잠들게 만들기 위해서요.”
바닥에 엎드린 두 내시가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나. 최음제라니, 저리 어린아이에게 어찌······.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던 대신들이 정말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태자를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가엾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제왕가에서 태어난 아이인 게 가엾고, 다친 것도 모자라 끝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이인 게 가엾어서.
대신들의 울음소리가 침전 안을 가득 메웠다.
진안 군왕은 침전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진소가 목을 매달았던 월동문 앞에 서서 침상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육가아, 이 형이 너를 보러 왔어.
육가아, 이 형은, 후회되는구나.
참으로 후회돼.
“마마, 슬픔을 거두시옵소서.”
태자의 침전 안.
한바탕 울고 난 대신들이 하나둘씩 황후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궁인들도 황후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위로를 전했다.
황후가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훔치자, 대신들도 모두 눈물을 닦았다. 한바탕 울고 나니, 모두가 후련한 기분이 들면서 침전 안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태자의 장례는 황실의 법도대로 진행하시오.”
황후가 말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대신들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황후가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대신들은 더는 황후를 따라 울지 않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침전 안에 오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마마, 곧 해가 뜰 시간입니다. 오늘 밤의 일을 어찌 처리할지에 대해 논하시지요.”
장순이 먼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마마, 부디 자리를 옮기시지요.”
대신들이 서둘러 장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태자의 침전은 정사를 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긴 했다.
“자리를 어디로 옮기지?”
황후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폐하께서 아직 계십니다.”
누군가가 천천히 말했다.
대신들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월동문 앞에서 여전히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서 있는 진안 군왕이 보였다.
“폐하께서 아직 혼수상태이긴 하나, 궁에 이렇게 큰일이 났으니 응당 폐하께 알려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진안 군왕이 말을 이으며 침상 위의 태자를 바라보았다.
황후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대신들은 반대하지 않고 서둘러 몸을 일으켜서 황후를 에워싸고 걸음을 옮겼다.
대신들을 따라 문을 나서던 황후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진안 군왕이 황후를 따라가지 않고, 태자의 침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진안 군왕, 같이 가자.”
황후가 말했다.
고능준과 진소, 태후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둘째 문제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다음 태자 자리를 채울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럴 때, 진안 군왕이 자리에 없으면 좀 곤란한데.
진안 군왕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집안일이기도, 나랏일이기도 합니다. 집안일은 황후마마께서 장관하실 테고, 나랏일은 조정 대신들이 결정할 일이니,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진안 군왕이 침상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저는, 육가아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습니다.”
태자라고 하지 않고, 육가아라고 했다.
우리가 태자를 위해 눈물을 흘렸으니, 이제부터 저 아이는 육가아다. 황자도, 태자도 아닌, 진안 군왕의 형제 육가아.
황후가 잠시 주춤하다가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