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23
교랑의경 723화
“폐하!”
방백종이 침상에 바짝 다가가서 목청을 높이고 소리쳤다. 하지만 황제의 눈은 다시 감겼다.
“등불을 조금 치우거라.”
방백종이 다급하게 말했다. 두 내시가 서둘러 휘장 밖으로 물러나자, 침상 앞이 다소 어두워졌다.
황제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방백종에게 시선을 두었다.
“폐하.”
방백종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눈을 뜬 황제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쉰 소리를 냈다.
“폐하, 위낭입니다.”
방백종이 황제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폐하, 위낭이라고요.”
흐리멍덩했던 황제의 눈이 서서히 초점을 잡고 방백종을 쳐다보았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것은 여전히 의미 없는 신음뿐이었다.
“폐하!”
놀란 방백종이 소리치면서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팔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황제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황제의 손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마르고 주름져 보였다.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아 힘없이 떨리는 주름진 손이 방백종의 손을 꼭 쥐었다.
“아!”
황제가 드디어 토해내듯 소리를 냈다. 방백종이 두 손으로 황제의 손을 감싸고, 그의 손을 뺨에 가져다 대며 울먹였다.
“여봐라.”
방백종이 고개를 홱 돌리고 소리쳤다.
“어서 태의를 불러라!”
휘장 밖에 서 있던 황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고 방백종을 쳐다보았다.
“당장 태의를 부르고, 중서문하성의 장순, 엄소(嚴昭), 임택(林澤), 그리고 당직을 서는 한림들을 부르거라.”
방백종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실내가 갑자기 환해지는 듯했다. 침상 앞에 내려져 있던 휘장을 모두 걷자, 그 앞에 서 있는 방백종의 그림자가 더욱 길게 늘어졌다.
황후가 나지막이 한숨을 토하고 서둘러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폐하.”
무릎을 꿇은 황후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장 노태야의 방 안에 등불이 밝혀졌다.
잰걸음으로 들어온 노복이 옷을 걸치고 있는 장 노태야를 향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노태야, 궁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 꼭두새벽에 장씨 저택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궁에서 나온 사람들뿐이었다. 장 노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나긴 했으니.”
장 노태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 노태야와 노복이 깜짝 놀라서 문가를 쳐다보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허둥지둥 옷을 주워 입은 듯한 몸종이 서 있었다. 문 위에 달린 등불 때문인지, 몸종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노태야.”
몸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근, 네 아씨의 일이 아니니 걱정 말거라.”
노복이 서둘러 말했다. 몸종은 그제야 문틀을 붙잡고 온몸에 힘이 빠진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장 노태야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러나 폐하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네 아씨한테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몸종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몸종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무릎걸음으로 장 노태야 앞으로 기어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닙니다. 노태야, 폐하께서 깨어나셨답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다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장 노태야가 노복을 쳐다보았다.
“정말입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노복이 재차 말했다. 표정이 다시 평온해진 장 노태야가 몸종을 향해 말했다.
“그럼, 네 아씨는 한동안 무사하겠구나.”
장 노태야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밖을 내다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자에게는 썩 좋은 일이 못 되겠지.”
첫마디는 아씨를 뜻하는 거고, 뒤에 말씀하신 ‘그자’는 누구를 뜻하시는 거지?
몸종이 눈물을 쓱쓱 훔치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장 노태야를 바라보았다.
동이 틀 무렵, 황궁을 지키는 금군 병사들은 조회에 참석하는 관리들이 평소보다 훨씬 일찍 궁문 앞에 당도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젯밤엔 궁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내시 몇 명이 드나들었고, 오늘은 새벽부터 조정 중신들이 입궐했으니, 황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어떠신가?”
한 관리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붕어하신 게 아닐까 싶소만.”
다른 관리가 작게 대답했다.
“붕어하셨다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소. 벌써 북과 징을 울렸을 텐데.”
또 다른 관리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왜 꼭두새벽부터 그리 어수선했던 거요? 대신 일고여덟 명이 새벽부터 불려 갔다던데.”
“설마 황후마마나 태자 전하께서?”
“웃기는 소리. 그럴 리가 있겠나?”
“내가 보기에는 분명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폐하의 병세가 급하게 위독해지신 거지. 밤에 알리기가 좀 그러니, 낮에 공포하려는 게 아닐까 싶군.”
한밤중에 이미 붕어하셨어도, 해가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포하는 게 낫긴 하지.
대신들과 관리들이 수군거리며 갖가지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며 궁문이 열렸다.
오늘은 대조회가 열리는 날인지라, 문무백관이 대전에 모였다.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어사대 관리들이 대전 안을 거닐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태자가 나타나야 할 시간이 지나자,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같은 시각, 장순 등의 조정 중신들은 천자의 침궁 안에 있었다. 그들은 피곤한 기색으로 방백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겠습니까?”
한 대신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방백종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을 기다렸소.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고.”
방백종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가마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가마 위에 힘없이 누워 있는 황제는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폐하께 조당에 나가시기를 청하옵니다.”
방백종이 허리를 숙이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 조당에 나가시기를 청하옵니다.”
다른 중신들도 허리를 숙이고 방백종을 따라 외쳤다.
궁중 악단의 연주와 함께 가마에 실린 황제가 조당에 모습을 드러내자, 깜짝 놀라는 관리들도 있었고,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 관리들도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닌가 보네.
관리들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대조회에 모습을 보인 이유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기 위해 잠시 얼굴만 비추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태자가 예전처럼 조당 위로 올라가지 않고 대신들의 대열 앞쪽에 멈춰 서자, 관리들은 그제야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태자가 황제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자가 황제에게 상소문을 한 장 한 장 읽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이 혼미한 황제를 존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태자가 허리를 숙이고 대신들과 함께 황제를 향해 예를 올리자, 궁중 악단의 연주 소리가 그쳤다. 황제의 건강을 축원하며 예를 올린 후, 대신들은 몸을 일으키라는 내시의 말을 기다렸다. 그때, 대신들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시오.”
입속으로 웅얼거리는 듯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든 약한 목소리였지만, 대신들은 정적이 흐르던 대전에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는 헉 소리를 내기도, 누군가는 결례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의 이목은 조당의 가장 높은 곳, 가마 위에서 눈을 뜬 채 반쯤 누워 있는 황제에게 집중되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어! 폐하께서 깨어나셨어!
대전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어사대 관리들이 호통을 치며 정숙하라고 호통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던 사람들이 종국에는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대전 안을 가득 메우자, 사람들은 온몸이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천자의 권력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천자의 권력.
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절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 맛을 봤다면, 저 자리를 어찌 쉬이 포기할 수 있을까.
무릎을 꿇고 있던 대신들은 흥분을 가라앉힌 뒤 흐릿한 시선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모든 대신이 무릎을 꿇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우뚝 서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리는 태자의 모습과 높은 조당 중앙에 있는 황제의 모습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황제가 천천히 손짓하자, 옆에 있던 내시가 서둘러 허리를 숙이고 다가갔다.
“말.”
황제가 한 글자를 내뱉었다.
대신들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황제를 바라보았다. 깨어나긴 했지만, 온몸이 뻣뻣하여 간신히 손을 까딱이고, 힘겹게 눈을 깜박이고, 토해내듯이 한 글자씩 내뱉는 황제의 모습을, 대신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폐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내시가 목청을 높이며 황제의 뜻을 전했다. 대신들이 다시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짐(朕)은······.”
“병(病)······.”
대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황제가 뱉은 두 글자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두 글자일 뿐이지만, 대신들은 황제가 무얼 말하려는 건지 잘 알 수 있었다.
술에 진탕 취한 사람은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모르고, 미치거나 바보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미치거나 바보가 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병자이긴 하나 정신이 또렷한 병자였다.
정신이 또렷하다면,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 걸까? 하늘과 땅을 뒤엎는 일련의 일들을.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복잡한 표정으로 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직접 책봉하지 않은 태자.
정신이 맑은 황제는 저 태자를 어떻게 대할까?
어수선하던 조당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천자의 침궁 안, 황후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전각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안비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일이 있든 없든, 어차피 한 번 죽는 목숨이다. 다만, 본궁은 이런 기분을 썩 좋아하지 않아.”
“무슨 기분이요?”
안비가 물었다.
“기다리는 기분.”
황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문밖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내시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황후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폐하께서 옥새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황제가 혼수상태라 태자가 정사를 돌보는 동안에도, 옥새는 여전히 황후의 손에 있었다.
이제 황제가 깨어났으니, 이 옥새는 진정한 주인에게 돌아가야 하겠구나.
황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천천히 뜬 뒤, 옆에 있던 내시에게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간 내시가 옥새를 두 손으로 받치며 나왔다.
옥새를 가지러 온 내시가 두 손으로 옥새를 건네받은 뒤, 예를 표하고 즉시 자리를 떠났다.
안비는 저도 모르게 내시를 두어 걸음 쫓아가다가, 결국 문틀을 붙잡고 멀어져가는 내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높이 들어 올려진 옥새가 대신들의 주시 하에 천천히 황제의 앞에 놓였다. 황제가 옥새를 바라보았다.
“짐은······.”
황제가 또 입을 열었다.
“병······.”
“폐하의 옥체는 필시 완쾌될 것입니다.”
황제가 힘겹게 두 글자를 내뱉자, 대신 하나가 큰소리로 외치며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조용하던 조당 곳곳에서 또 한 번 황제의 건강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신들의 목소리가 차츰 줄어들자, 황제가 손을 올렸다.
내시가 재빨리 옥새를 황제의 손에 가져다주자, 황제가 옥새를 꼭 쥐었다.
드디어 천자가 자신의 권력을 되찾았군.
대전 안에 정적이 흘렀다.
자신의 권력을 되찾은 천자가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
모두의 시선이 황제의 손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