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27
교랑의경 727화
방백종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경 공공은 재빨리 몸을 돌리고 문을 닫아서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차단했다.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밖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물러가거라.”
경 공공이 손짓했다.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은 또 우르르 문밖까지 몰려나갔다.
“그리고, 태의를 불러오너라.”
경 공공이 말하고는,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깨어나시긴 했나 보네. 이렇게 벌건 대낮부터 저러고 계시니 원.”
경 공공이 작게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몸이 자신을 꽉 껴안자, 두꺼운 옷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품에 안고 있어도, 이불로 꽁꽁 싸매도 늘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던 예전의 몸과는 달랐다.
방백종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그가 정방의 허리를 붙잡고 정방을 앞으로 살짝 밀어냈다.
“또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마요. 물어볼 게 있으니까, 똑바로 대답해 줘요.”
방백종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 밀쳐진 정방이 고개를 들고 방백종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게 웃던 정방이 입을 열었다.
“방백종.”
정방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를 향해 또 손을 내밀었다.
“이래도 소용없어요! 매번 이런 식으로 나를 달래고 넘어가려 하지 마요.”
방백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환한 미소와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면서 두 손을 내밀고 있는 정방을 바라보았다.
“방백종.”
정방이 다시 한번 방백종을 불렀다. 달처럼 휘어진 정방의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
방백종이 정방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방!
정방!
정방!
정방의 허리 위에 있던 방백종의 큰 손이 정방을 확 끌어당겼다. 그는 정방을 더욱 세게,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처럼 꽉 끌어안았다.
정방!
정방!
정방!
드디어 돌아왔군요.
드디어 돌아왔어요.
방 안이 조용해지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창가 가까이 선 두 사람의 몸에 노을빛이 드리워졌다.
“정방.”
방백종이 이름을 부르자, 정방이 대답했다.
정방은 새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한 몸으로 자신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물어볼 게 있어요.”
방백종이 말했다.
정방이 그를 놓아주고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갑자기 품 안이 허전해진 방백종은 뭔가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정방에 허리에 올려두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 덕분에 방백종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으려던 정방이 다시 그의 품으로 들어왔다.
“육가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거, 당신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거죠?”
방백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정방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일찍이라면, 얼마나 일찍이요?”
방백종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정방이 진지하게 물었다.
일찍이라면, 얼마나 일찍이냐고?
아냐. 육가아가 다치게 된 건 평왕 때문이고, 육가아가 입궐하게 된 건 태후 때문이고, 육가아가 죽은 건 고능준 때문이었어.
방백종이 심호흡을 하고는 손에서 힘을 살짝 뺐다.
“혹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거예요?”
방백종이 묻자, 정방이 웃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있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죠.”
정방은 방백종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게 묻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요. 하지만 육가아한테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나도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죠. 육가아 같은 사람이 남의 손에 도구처럼 쥐어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예요.”
방백종은 대꾸하지 않고 말없이 정방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경성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청원 역참에서 당신이 불꽃놀이를 보여 준 그날, 천상을 보았거든요.”
태백성이 하늘을 지나는 것을 보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던 것처럼, 정방은 하늘을 읽고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있다.
“육가아가 죽을 거라는 천상이었어요?”
방백종이 물었다. 정방이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젓자,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 방백종의 턱을 간지럽혔다.
“천상은 무언가를 예고할 뿐이에요. 그게 누구인지, 누가 어떻게 될지는 알려 주지 않아요. 오성이 모인다는 건 천자에 관한 일이 생긴다는 뜻인데, 어떤 일이 생길지, 누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사람의 힘으로 알 수 없죠.”
정방이 작게 탄식했다.
“우리는 예전에 이 이치를 잊고, 천도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천도는 멀고 인도는 가까우니 서로 상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天道遠, 人道邇, 非所及也) 걸 망각했죠.”
그때의 세상에서도 정씨 가문은 천상을 읽고, 왕조의 종말을 예감했죠. 그래서 우리가 인정한 황제를 자발적으로 택했어요.
“우리가 성문 밖에 발이 묶여 있을 때, 경성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지는 않았나요?”
정교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자세를 바로 하고 방백종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백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秦)씨 가문에서 연평 군왕을 데리고 먼저 경성으로 들어와 있더군요.”
“연평 군왕이요?”
살짝 놀란 듯한 정방이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복건(福建)의 연평 군왕이라······.”
“연평 군왕이 왜요?”
방백종이 물었다.
“천상을 보는 사람이 나 하나뿐만은 아니에요. 다른 고수도, 두우 별자리가 나타나는 땅에서 새로운 천자가 나오리라 생각했겠죠.”
그때 정씨 가문이 양씨를 새로운 군주로 모시겠다고 결정했던 것처럼요.
사실 제성(帝星)이 나타나는 지역에 양씨 가문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 정씨 가문은 천도(天道)를 이겼으나 인도(人道)에 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연평 군왕과 마찬가지로 오월 지역에서 태어난 진안 군왕은 사실 기회를 선점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정방은 진안 군왕이 유리한 조건을 선점할 수 있도록 경성으로 달려간 게 아니라, 진심으로 육가아가 걱정되어서, 혹여나 그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급히 달려간 것뿐이었다. 하지만,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정방이 조용히 말하고는 방백종을 쳐다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육가아를 살리지 못했어요.”
방백종이 정방을 다시 품에 안았다.
“아니에요.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방백종이 정방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방, 당신이 미안해할 게 아니라, 내가 미안해요. 내가.”
“정방, 미안해요.”
“정방, 내가 당신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어요.”
정방이 웃었다.
“묻지 말아야 할 건 또 뭐예요. 알고 싶은 게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게 있다면, 나한테 꼭 물어봐 줘요.”
나한테 묻지 않고 혼자 생각하지 마요. 혼자 추측하지도 말고, 자문자답하지도 말고요.
양산, 당신은 내게 말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당신이 나를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지를.
정방이 방백종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방백종, 내게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내게 묻는 걸 겁내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요.
“또 묻고 싶은 게 있나요?”
정방이 물었다.
“없어요. 없어.”
방백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방이 고개를 들고 방백종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주 오라버니를 살릴 수 있었던 건, 아직 오라버니에게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태자 전하는 이미 생기와 혼이 없을 때여서, 난······.”
말하지 마요. 해명하지도 말고요. 알겠어요. 이젠 다 알겠어요.
방백종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방의 말을 끊고 싶었지만, 정방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하고 있는 정방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달콤하고 은은한 연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 때문에 방백종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나는, 나는 단지 그만 말하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러려던 게 아니라.
엉큼한 생각이 방백종의 뇌리를 스쳤다.
이러려던 게 아니라?
“폐하!”
갑자기 문밖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방백종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정방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를 붙잡았다. 귀까지 새빨개진 방백종은 곧장 문밖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이냐!”
문이 벌컥 열리면서 격노한 방백종의 호통이 들려오자, 경 공공은 깜짝 놀라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폐하.”
자신을 산 채로 잡아먹을 듯한 얼굴의 방백종을 보자, 경 공공은 말을 더듬었다.
“태, 태의를 불러왔습니다.”
혼수상태로 몇 달을 보내셨으니, 태의를 불러 마마의 봉체를 살피셔야지요.
방백종이 요동치는 민망함을 가라앉히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약상자를 들고 있던 태의는 방백종의 기세에 놀라 종아리에 경련이 일었다. 경 공공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낀 태의가 하는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이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됐어요. 난 괜찮으니까.”
정방이 문가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래도 한 번 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당신의 말도, 썩 미더운 건 아니던데.”
방백종이 정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거짓말쟁이.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면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방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방백종, 이리 와요.”
정방이 몸을 돌리고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보여 줄게요.”
정방의 말을 들은 방백종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정방을 따라갔다.
경 공공과 태의는 넋을 놓은 채 문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폐하의 존함을 저리 함부로 부르시다니!
경악한 태의의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목덜미를 확 붙잡았다.
“무얼 보았습니까?”
경 공공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태의는 두려움에 몸을 살짝 떨었다.
“아, 아, 아니요.”
“무얼 들었습니까?”
경 공공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또 물었다. 태의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 물러가십시오.”
경 공공은 그제야 태의를 놓아주었다. 태의는 재빨리 약상자를 고쳐 들고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뭘 보여 주시겠다는 거지?
경 공공이 속으로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목을 빼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욕실로 들어간 후였다.
보여 준다고? 굳이 욕실에서 뭘 보여주겠다는 거지?
그나저나, 조금 전에 문을 부수듯이 열어젖힌 폐하의 모습이 영 낯설지만은 않은데.
맞아. 지난번에도 그런 표정과 화난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어. 청원 역참으로 가던 길이었지. 꼭 마차 안에서 무언가를 하시다가 끊긴 것 같은.
경 공공이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그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했다고 여기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그리도 급하십니까.
마마께서 이제야 깨어나셨는데, 살살 좀 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