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4
교랑의경 734화
유 낭자가 진씨 가문에 시집을 간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워하는 한편 유 낭자를 측은하게 여겼다. 역모의 대죄를 지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도 모자라 머나먼 구주까지 가는 것이니, 얼핏 보면 유 낭자가 죄를 짓고 유배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놈들이 알긴 뭘 안다고! 황후마마께서 언제 사람을 잘못 보신 적이 있느냐. 진씨 가문이 원래부터 보통 집안이 아니긴 하지만, 설령 보통 집안이라고 해도 마마의 손을 거치면 돌멩이도 금덩이가 되는 법이야.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사근 숙부를 봐라. 원래는 별 볼 일 없는 탈영병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느냐? 그저 말을 키우는 사람일 뿐인데, 네 아비는 얼굴 한번 보려면 큰절까지 올려야 해.”
유규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유규, 말 좀 가려서 하게. 탈영병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서사근이 유규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는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유 낭자에게 말했다.
“얘야, 너무 섭섭히 여기지는 마라. 네 아버지가 마땅한 신랑감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너를 그 집안에 시집 보내려는 게 아니다. 황후마마께서 절대로 사람을 잘못 보실 리가 없어. 네 부군이 될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기억을 떠올리던 유 낭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젯밤에 처음으로 자신의 낭군을 보게 된 유 낭자는, 자기보다 몇 살 많은 낭군이 준수한 외모에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사내라고 생각했다. 유 낭자는 십육낭이 교양 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긴, 진씨 가문이 역모의 대죄를 짓긴 했지만, 그런 집안에서 자라난 자식들이라면 결코 평범하지는 않겠지. 지금 같은 처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빼어난 신랑감을 구할 수 있었겠어.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 내가 진씨 가문으로 시집왔으니, 이 집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 줄지는 눈 감고도 상상할 수 있지. 혼수를 바리바리 챙겨오기도 했고, 살림살이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혼사가 아니면 뭐겠어.
“좋아.”
유 낭자가 진단랑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진십육낭이 혼사를 치른 뒤, 진씨 가문은 마치 액막이라도 한 듯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진씨 가문에 찾아온 변화는 바로 혼담을 넣으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혼기가 찬 진씨 가문 낭자들에게 혼담을 넣으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심지어는 진아리의 자녀들에게도 혼담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혼담을 넣으러 온 사람들이 더는 예전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관리 집안이거나 거상, 부호의 집안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혼담을 넣으러 오니, 진씨 가문 사람들은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게 다 십육낭의 복 덕분이야.”
사람들은 진 사노야 집안의 사람들을 더욱 살뜰하게 챙겼다.
사실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혼담을 넣은 곳 중에 괜찮은 집안이 몇 군데 있더라고요.”
진아리와 진 사부인이 같이 앉아서 자녀의 혼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무 먼 곳으로 시집가지 않았으면 해. 대낭과 이낭이 집에 없기도 하고, 형제들도 없이 이런 으리으리한 집안에 시집 보내는 건 너무 마음이 안 놓여.”
진 사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까운 데로 하죠. 십육낭은 사돈댁에서 챙겨 주고 있으니까, 십육낭을 서북으로 보내죠. 대낭과 이낭은 병영 일을 관두고 이리 돌아와 십육낭 대신 농사를 지으라고 하고요.”
진 사부인이 진아리에게 말했듯, 사람들은 진십육낭의 혼사에 관해 말을 아꼈지만, 이 일의 내막을 거울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씨 가문 사람들은 지금 처지에 아들들의 앞길을 챙기기보다는, 집안 자녀들이 혼사를 치를 수 있다는 희망에 기뻐했다.
진아리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만, 진단랑은······.
역모의 대죄를 지은 대신의 딸인 데다가, 태자비가 될 뻔했던 신분인지라 진단랑은 과부나 다름없게 됐다. 아니, 과부보다도 못한 신세였다. 과부라면 적어도 개가는 뜻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진아리가 방 안에 앉아서 마당을 내다보았다. 곧 열세 살이 되는 진단랑이 마침 마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단랑.”
진아리가 저도 모르게 단랑을 불렀다. 고개를 돌린 진단랑은 진아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시킬 일이라도 있으세요? 방은 다 청소해 놨어요. 책도 한 권 읽었고, 글씨 연습도 좀 하다가 지금은 활쏘기 연습하러 나가려고요”
단랑이 한 손에는 장궁을, 다른 한 손에는 화살통을 들고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진아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진단랑을 바라보던 진아리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오늘도 네 새언니와 같이 가는 거니?”
“새언니는 십육 오라버니랑 같이 출타했어요. 새언니가 얼추 다 가르쳐 주어서, 이젠 저 혼자 연습할 일만 남았어요.”
진단랑이 대답하자, 진아리가 몸을 일으켰다.
“네 숙모네 가려던 참인데, 잠깐 같이 걸을까?”
두 모녀가 나란히 대문을 나섰다.
연말이 다가오는지라 주위에서는 이따금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지나다니는 이들의 얼굴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우중충하기만 했던 둔보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잘 지낼 수 있어요. 어머니, 그때 우리가 목숨을 끊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단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진아리는 마음이 먹먹해져 진단랑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단랑, 속상한데 굳이 꾹 참고 있을 것 없어.”
진아리가 울먹였다.
이 아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울지 않았어. 차라리 울면 모를까, 울지도 않으니 마음이 더 쓰이네.
“어머니, 속상하긴 해도, 참아야 하는 그런 속상함은 아니에요.”
참아야 하는 그런 속상함이 아니라고?
진아리가 단랑을 바라보았다. 진소가 죽은 뒤로, 모녀가 이 일을 입에 올린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버지께서 잘못하셨고, 그 잘못을 인정하셨어요. 저는 아버지의 딸이니까 아버지를 대신해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이 속상함은 내가 원해서 속상한 거니까, 참아야 하는 속상함이 아니에요.”
진단랑이 앳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진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었다.
“착한 우리 딸.”
진단랑이 또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다 알아요.”
진단랑이 고개를 돌리고 티끌 없이 맑은 눈빛으로 진아리를 쳐다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 이건 아버지께서 저지르신 잘못이고, 우리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잖아요. 저도, 어머니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남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남을 보기에 창피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일이이에요. 우리 스스로 양심에 떳떳하게 살면 그만이에요.”
진아리가 놀란 기색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된다고?
하긴, 맞는 말이긴 하지. 그 여인도 그랬었잖아?
“활쏘기 연습을 하더니 꼭 그분을 닮아가네.”
진아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진아리는 그분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진단랑은 다 안다는 듯 잠자코 웃었다.
“단랑, 그분이 너를 이렇게나 잘 챙겨 주시는데, 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진아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진소가 저지른 죄는 황실에서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중죄였다. 하지만 황후는 두 사람을 내치긴커녕, 예전보다 더욱 잘 챙겨 주었다. 진아리는 이토록 부친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진단랑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무고하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그 여인이 위선적으로 호의를 베풀고, 불쌍히 여겨 동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나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죠.”
진단랑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편히 대답하자 진아리가 멈칫했다.
“나도 그분을 좋아하고, 그분도 나를 좋아하고, 내가 그분에게 잘 대해 줬으니까, 그분도 나를 잘 대해 주는 게 뭐 이상한가요? 당연한 일이잖아요.”
진단랑이 어깨에 둘러멘 장궁을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구나.
진아리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그렇지. 그게 다지.
진아리가 힘없이 피식 웃었다.
“나는 그분을 좋아하니까, 그분 같은 사람이 될래요.”
이어지는 진단랑의 말에, 진아리는 웃음이 어색하게 굳으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 낭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비단 진단랑뿐만이 아니야. 저 산 아래 도관에 갇혀 있는 정신 나간 아이도 정 낭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었어.
“단랑, 정 낭자 같은 사람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정 낭자는 우연히 아주 고명한 스승님을 만나서 신기한 기술들과 신의의 비술을 얻은 거야. 그건 평범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비할 바가 못······.”
진단랑이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진지하게 말하던 진아리의 말을 끊었다. 진단랑이 진아리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어머니, 잘못 생각하셨어요. 저는 정 낭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진단랑이 ‘사람’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그런 명성이나 기술을 얻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정 언니처럼 무서울 것도 없이 담담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래요. 남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속에 세상을 품은 사람이 될래요.”
진단랑이 이어서 말했다.
진아리가 발걸음을 멈추고 진단랑을 쳐다보았다. 진단랑은 그런 진아리를 보고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 숙모네 다 왔구나.”
진아리가 진단랑을 바라보면서 따뜻하게 웃고는 진단랑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가서 활쏘기 연습하려무나.”
진단랑이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고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진아리는 씩씩한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걱정으로 어둡기만 하던 진아리의 눈빛은 차츰 구름이 걷히는 듯 평온해졌다.
이래서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고, 저마다 하는 선택 또한 다르다는 거겠지.
활시위가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화살이 과녁의 중앙을 맞히고, 화살 끝에 달린 깃털이 미세하게 떨렸다.
진단랑이 고개를 들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슥슥 닦았다.
진단랑이 활을 내리던 사이, 길가의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단랑은 재빨리 화살촉이 없는 화살을 꺼내 들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진단랑의 귓가에는 개가 내는 깨갱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진단랑이 깜짝 놀라서 길가로 달려갔다. 나무 밑, 작은 언덕 아래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단랑과 비슷한 나이대의 열두세 살쯤 된 소년이었다. 비단옷을 두르고, 겨울용 방한모를 쓴 소년은 백옥같이 뽀얀 피부와 봉황을 닮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바지를 붙잡고 있는 소년을 보아하니, 나무 아래에서······.
허공에서 두 시선이 마주치고, 동시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단랑이 몸을 홱 돌리고 달아났다.
“여봐라! 저기 호색한······이 아니라 호색녀가 있다!”
언덕 아래의 소년이 당황한 목소리로 힘껏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진단랑은 귀가 웅웅 울릴 정도였다.
“마을 어귀에 사는 커다란 누렁이인 줄 알았어요. 늘 거기 숨어 있다가 내가 활쏘기 연습하는 틈을 타서 나를 물려고 튀어나온단 말이에요.”
달아난 줄 알았던 진단랑은 넓은 공터에 서서, 소년의 외침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오는 가노들을 향해 얼굴을 붉히며 설명했다.
“그리고 화살촉도 안 달려 있는 화살이라, 사람이 다칠 염려는 없어요.”
진단랑이 소리쳤다.
“헛소리, 다 헛소리야! 호색녀! 네가 나를 몰래 훔쳐봤잖아!”
가노의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소년이 자신의 두봉을 꽁꽁 싸매면서 외쳤다.
진단랑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아니거든요?”
진단랑은 억울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세를 낮추고 먼저 사과했다.
“공자님께 실례했습니다.”
가노는 진단랑을 잠시 훑어보았다. 낡은 솜옷을 입고, 새하얀 치마를 입은 진단랑은 누가 봐도 가난한 집 아이 같았지만, 영리한 눈빛과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귀한 집 자제였다.
“당장 저걸 잡아서 관아로 보내 버려!”
소년이 소리를 빽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