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5
교랑의경 735화
사과를 먼저 하긴 했지만, 진단랑은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기만 했다. 예전에 어떤 호색한이 여인을 몰래 훔쳐봤다는 이유로 관아에 보내져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여인이 호색녀라는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노들도 이 상황이 우스웠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며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예, 예, 관아로 보내야지요.”
가노들이 일부러 목청을 높이면서 진단랑을 향해 어서 가라고 눈짓하자, 가노들의 의중을 알아차린 진단랑이 서둘러 예를 표하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도망갔다.
“어, 어? 도망간다!”
소년이 외쳤다. 가노들이 진단랑의 뒤를 몇 걸음 따라가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멈춰 섰다.
“쫓아가야지! 왜 안 쫓는 거야!”
소년이 답답한 듯 소리를 질렀다.
“공자님, 일단 길을 재촉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가노들이 되돌아와서 말했다. 소년이 뭐라고 더 대꾸하려던 찰나, 한쪽에서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십구낭!”
사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년을 불렀다. 소년이 잽싸게 사내를 향해 달려가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십칠 형님! 십칠 형님! 어서 이리 좀 와 보세요! 어떤 호색녀가 나를 몰래 훔쳐봤다니까요!”
마차에 앉은 젊은 사내가 언덕 아래에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비단옷을 입고 있는, 새하얀 피부에 호리호리하고 곱상하게 생긴 사내였다.
소년의 외침을 들은 사내가 코웃음을 치면서 손에 쥔 부채를 촤락 하고 펼쳤다. 부채 위에는 커다랗게 ‘왕(王)’자가 쓰여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지극히 정상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래 어딜 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거든. 이십구, 넌 이제야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됐으니 아직 적응이 덜 돼서 그래.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차차 익숙해질 거야.”
사내가 부채를 다시 접고 몸을 기울이면서 장난스럽게 눈썹을 꿈틀댔다.
“생긴 건 어떻디?”
소년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조금 전에 본 애가 어떻게 생겼더라.
“다른 건 모르겠는데, 눈이 참 예쁘긴 했어요.”
소년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씩 웃었다.
“그럼 예쁘다는 거네. 사람은 자고로 눈이 예뻐야 전체가 예뻐 보이는 법이야. 생각해 봐. 이십구 네 눈도 태생부터 예뻤잖아.”
소년이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아, 하고 대꾸했다.
“그런데 진짜 사나운 애였어요. 손에 활을 들고 있다가, 화살로 나를 쐈다니까요?”
소년이 조금 전에 주운 화살촉이 없는 화살을 손에 쥐면서 말했다.
한껏 여유롭게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활을 쏠 줄 안다고?”
사내가 목청을 높이고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치던 풍류 공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어딘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의 사내만 남았다.
사내가 소년을 마차 위로 끌어 올렸다.
“어서 가자, 어서!”
소년이 의아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십칠 형님, 아직 그 호색녀를 못 잡았어요! 어서 가서 잡아야 해요!”
“뭐라고? 제 발로 그 여인을 찾아가겠다고? 어휴, 안 돼, 안 돼. 그런 여인은 아무리 예뻐도 근처에 얼씬도 하면 안 돼. 이십구, 너는 모르겠지만, 왕년에 이 십칠 형님이 그런 여인을 떨쳐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내 몸이 상하는 일까지 하고서야, 그 여인이 날 놔줬어. 그때 내가 그 여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왕십칠이 두려움에 떨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야기를 늘어놓던 때, 옆에 있던 가노가 마른기침을 했다.
“십칠공자님, 노야와 부인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잊으신 건 아니지요?”
그 여인과의 일은 다시는 입에 올리면 안 될 금기가 되었다.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렸다가는, 또 무슨 끔찍할 화를 당하게 될지 몰랐다.
왕십칠이 몸을 살짝 떨고는 정신을 차렸다.
“어, 어서 가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마차를 호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소년이 마차 휘장을 걷고는 언덕 위를 내다보며, 화살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씩씩댔다.
“날 엿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울화가 치밀어 오른 소년이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냐! 그 호색녀가 어디로 도망쳤냐고! 어디 사람이더냐!”
가노들이 고개를 돌려보고는 대답했다.
“도련님, 여기는 구주의 국유지입니다. 저쪽도 마을도 모두 둔보와 둔전(屯田)뿐이니, 아마 둔전의 농사를 짓는 사람일 겁니다.”
둔전의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훨씬 찾기 쉽겠네.
죄를 지었던 집안의 사람이거나, 이주민이겠지. 관부에 명단이 있을 테니, 금방 찾아낼 수 있겠어.
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시 언덕 위를 내다보았다.
네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지 보자! 감히 이 몸을 몰래 훔쳐봐? 내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구주부 성 밖, 진십육낭 부부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아버님, 살펴 가세요.”
유규가 어색한 기색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오신 줄 몰랐다면 몰라도, 왔다 가시는 걸 알면서 배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십육낭이 말하면서 다시 한번 예를 표했다.
“괜히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아라.”
유규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사돈댁 코앞까지 따라오는 아비가 어디 있누.
“사근 숙부가 고향에 간다기에 바래다주러 왔다가, 온 김에 이 아이도 데려다준 것뿐이야.”
유규가 한마디 덧붙였다. 옆에 있던 서사근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유규가 그를 흘겨보았다.
“맞잖아?”
서사근이 웃으면서 유규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눈빛으로 유규를 바라보는 유 낭자를 바라보았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새해가 밝고, 봄이 될 때쯤이면 네 낭군과 함께 서북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서사근의 말에 유 낭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님, 우리 아버지 잘 감시해 주세요. 술 좀 그만 마시도록요. 걸핏하면 상관한테 맞서며 소란 피우지도 마시고요.”
딸에게 한 소리 듣자, 유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이놈의 계집애가 뭘 안다고.”
유규가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 서사근이 웃으면서 유규의 팔을 붙잡고 유 낭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마. 날이 추우니 너희도 어서 들어가 보아라.”
서사근의 시선이 진십육낭에게로 옮겨갔다.
조금 전부터 계속 서사근을 몰래 쳐다보고 있던 진십육낭의 시선이 서사근의 시선과 마주쳤다. 당황한 진십육낭은 재빨리 시선을 내리깔고 예를 표했다.
“어서 가자. 아직 갈 길이 멀어. 새해 전에는 집에 도착해야지.”
말에 올라탄 유규가 서사근을 재촉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자, 유 낭자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쳤다.
“색시,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새해만 지나면 뵐 수 있을 테니까.”
진십육낭이 위로의 말을 건네자, 유 낭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울음을 그쳤다.
“이제 우리도 돌아가요. 날씨가 꽤 춥네요.”
진십육낭이 말하면서 유 낭자의 손을 잡았다.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요.”
성 밖에 오가는 행인이 있어서 그런지, 유 낭자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홱 빼고 마차에 올라탔다. 진십육낭도 멋쩍어하며 마차에 올라 유규와 다른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가 저도 모르게 흘끔 고개를 돌렸다.
얼핏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숨길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저 사람이, 바로 그분의 의형제로구나. 서북로 목사(牧司)의 제거(提擧: 관직명)에 봉해졌다는 그 국구(國舅: 황후나 귀비의 형제)시고.
“전에 황후마마를 뵌 적 있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진십육낭의 몸이 살짝 굳었다.
“듣기로는 당초 황후마마께서 경성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들이 바로 진씨 가문이라던데요?”
유 낭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맞아요. 마마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은인이셨죠.”
진십육낭이 대답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진십육낭이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뱉었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비추면서 얼굴에 얼룩덜룩 그늘이 진 여인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 세 명이어서가 아니라, 이 공자가 대단한 거예요.
– 차정사에 있는 비석에 관한 얘기 잘 들었어요.
여인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하던 모습.
본 적 있을 뿐만 아니라, 혼담을 넣으려 했었지요. 그 여인의 원칙 때문에 혼담을 넣을 엄두도 못 내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데요.
물론 어디 가서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당신, 그리고 당신 집안의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유 낭자가 말했다. 진십육낭이 고개를 돌리고 유 낭자를 쳐다보았다. 이제 막 혼례를 올린 자신의 신부가 웃음꽃이 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땐 황후마마께서 아직 바보의 병이 완치되지 않아 챙겨 주는 가족도 없을 때인데, 그래도 당신 집안의 사람들은 황후마마를 잘 대해 줬잖아요.”
유 낭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신분과 지위의 차는 엄연한 것이었다.
“마마께서 좋은 분이시니 그랬지요. 그리고 우리는 항상 마마께 신세만 지고 살았는걸요.”
진십육낭이 대답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가 유 낭자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유 낭자는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
“마차 안이잖아요.”
진십육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유 낭자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세게 잡았다.
유규는 한참을 달리다가 꽤 멀리 왔다고 생각할 때쯤 고개를 돌렸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가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말이 끄는 마차를 사지 않고 당나귀를 쓰는 거야? 저 삐쩍 곯은 당나귀로 퍽이나 잘 다니겠다.”
유규가 씩씩대며 말하자, 서사근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괜한 데 신경을 쓰고 그러네. 지금 같은 시기에 진씨 가문이 값비싼 말과 마차를 끌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는 없잖나. 저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규가 눈을 부릅뜨며 말대꾸를 하려고 했지만, 서사근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마마께서 자네에게 물어보신 거지. 생각해 보라고. 남들이 만든 유언비어를 무서워하지 않는 자네 같은 자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나?”
그건 맞는 말이지.
“나 유규는 두려울 게 없으니까!”
유규가 곧바로 득의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당초 네놈들은 태평거의 주인장이고, 돈도 많았고, 그리고 네놈들의 누이는 진 상공과도 교류하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네놈들이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야? 내 눈에는, 네놈들도 한낱 탈영병으로밖에 안 보였는데. 탈영병은 당연히 감옥에 잡아 처넣어야지!”
서사근이 유규의 말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거, 몇 번을 말하나? 탈영병이 아니라, 모함에 빠진 거였다니까.”
유규가 눈을 부라리면서 대꾸했다.
“모함이든 뭐든, 어쨌든 네놈들은 도망쳤잖아!”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듯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사근이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꼭 어제 일 같은데, 벌써 사오 년이나 지났네.”
모든 게 여전한데, 눈 깜빡하는 사이에 사람만 달라졌어.
“사근.”
서사근의 말 한마디에 김이 빠지고 풀이 죽은 듯한 유규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너희들, 나를 원망하나?”
서사근이 고개를 돌리고 조금 놀란 눈치로 유규에게 되물었다.
“무슨 원망?”
“그때 내가 네놈들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유규가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았다. 말을 탄 무원산 형제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황량한 겨울 벌판 위를 가로질러 달려오는 듯했다.
– 위주(渭州) 개석보 수비군 소속 갑대(甲隊) 감용 범강림, 서무수, 범석두, 서봉추, 기병 서사근, 서납월, 교용 범삼축은 명을 받들라!
– 못난 놈들아! 탈영할 배짱도 있고, 형제를 방패로 삼을 배짱도 있다면, 이리 나와서 나와 한판 붙자!
– 감용이란 무엇이더냐? 용맹하고 싸움에 능하여 장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자 아니더냐! 너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아라.
유규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는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목이 멨다.
만약 그때 내가 아니었다면, 무원산 일곱 형제는 경성에서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걸 하고 살며, 관직을 얻어서 가정을 꾸리고, 자기들을 쏙 빼닮은 자식들이 자라나는 걸 지켜봤겠지.
만약 내가 그놈들을 잡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경성 밖 황무지에 쓸쓸히 묻혀 있진 않았을 텐데.
유규는 같은 꿈을 무수히 많이 꾸곤 했다. 서무수 등 다섯 형제들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맨발로 끌고 또 끌면서 하염없이 걷는 꿈이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해가 뜰 때까지 멍하니 휘장만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유규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후회스러웠다. 정말 가슴이 사무칠 정도로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