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9
교랑의경 739화
“공자······.”
지나가던 행인이 머뭇거리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진 지팡이를 진호에게 건넸다.
진호가 지팡이를 건네받고는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넣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진호의 모습을 보고 더욱 놀랐다.
지금 저건 뭐 하는 거래?
절름발이 행세를 하는 거야? 사지가 멀쩡해 보이는데 절름발이 행세는 왜 해?
사기를 치는 놈인가? 저 젊은이의 생김새와 행동을 보면, 사기로 돈을 벌어먹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행인들의 표정을 읽은 진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다니면 자유로워요. 아주 천천히 갈 수 있고,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보듯이 눈을 크게 뜨고 진호를 쳐다보았다.
진호는 더는 말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팡이를 짚고 두어 걸음 내디뎠다. 주위의 시선과 더불어 자신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는 등 뒤의 시선이 느껴진 진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에 있던 주복이 시종일관 진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진호가 소리 없이 입술로 말하고는 빙긋 웃었다. 그는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주복을 향해 긴 작별 인사를 한 뒤, 다시 고개를 들고 성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늙은 나무꾼이 장작을 패러 가누나. 푸른 소나무 가지를 묶고, 회화나무를 짊어졌다네. 망망한 들판 위, 늦가을의 붉은 산 너머, 위대한 비석은 황량한 무덤이 되고, 드높고 화려했던 과거의 것들은 모두 이끼와 함께 누워 있다네.”
진호의 노랫소리가 거리 위에 울려 퍼졌다. 그의 어깨에 있는 장궁이 지팡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박자감 있게 들려오면서 낭랑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절뚝거리면서 걷는 진호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사람들의 눈초리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공자님.”
사환이 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복을 불렀다. 주복이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웃음을 짓고 몸을 돌렸다.
“가자.”
“공자님, 진 공자님을 따라가지 않으시고요? 그럼 다시 관아로 돌아가시나요?”
사환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주복이 말 위로 몸을 날리고는 성 밖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떠날 것이다.”
경성 성문에 가까워질 때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에서 어린 초록빛이 싹트는 것이 보였다.
주복이 말을 멈춰 세웠다.
“공자님, 잠시 쉬다 가시려고요?”
사환이 재빨리 물었다. 이곳은 성 동쪽으로, 성문 앞에 당도하려면 조금 더 가야 했다. 주복은 말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응시했다.
거기에는 초시(草市:도성 밖에 열리던 시장)가 있었다. 다만 다른 초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점상들이 목청을 높이며 파는 물건이 붓, 먹, 종이, 벼루 등이라는 사실이었다.
주복과 사환이 가까이 다가가자, 상인들이 분주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관인, 여기 무원산 글씨의 새로운 탁본이 있습니다.”
“관인, 질 좋은 먹과 붓을 팔고 있고, 물건을 사면 작은 의자도 하나 증정해 드립니다.”
주복은 상인들을 제치고 무덤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는 무덤 가까이 가지 못하고, 울타리 앞에 멈춰 서야 했다.
새로 지어진 듯한 울타리 근처에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물론 무덤을 지키는 사람은 관부의 병사들이 아니라, 늙은 가노들이었다.
“잠시 길 좀······.”
사환이 앞을 막는 사람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부탁하려던 찰나, 주복이 그를 제지했다. 주복은 더는 앞으로 다가서지 않고, 무덤 앞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의 어깨너머를 쳐다보았다.
“글씨가 더해졌네.”
주복이 작게 읊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관인, 저쪽 정문유(程文兪) 공자의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작년 연말에 새겨진 것입니다. 힘찬 예서체로 쓰여 있지요!”
옆에 있던 사람이 주복의 혼잣말을 듣고는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경성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황후가 되고서도 이렇게 자유로이 성을 드나들어도 되는 거야?
주복이 입술을 삐쭉이고는 몸을 돌렸다. 주복에게 일장 연설을 놓으려던 옆 사람이 풀이 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성문에 가까워지자, 말을 타고 달려온 젊은 사내들과 가노가 주복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행인들은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는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진 않았어?”
“더 튼튼해졌네.”
젊은 사내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면서 반가움을 표현했다.
“어서 가자. 부모님께서 보름 내내 네 생각만 하셨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을 시켜 재촉하시더라고.”
주복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서둘러 말에 올라타서 갈 길을 재촉했다. 큰길 위로 먼지가 휘날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자, 행인들이 눈을 흘기며 손가락질을 하려고 했다.
무리를 이끌고 가던 사람이 손을 들고 눈썹을 치켜뜬 채 조용히 말했다.
“다들 점잖게 가자.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체면 떨구는 일은 하지 말자고.”
그의 뒤를 따르던 사내들이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한껏 신이 났던 가노들도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시끄럽던 일행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주복이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앞장선 사내를 쳐다보았다.
“형님, 이건 형님답지 않은데요.”
주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주씨 가문의 사람들은 원래 집을 나설 때마다 온 경성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을 쳐다봐 주길 내심 바랐다. 아무 일이 없더라도, 그들은 소란 따위를 피워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욕하든 비웃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뿐이니까.
앞장선 사내가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이젠 옛날 같지 않잖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주씨 가문은 이제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이미 온 경성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또 기억하고 있다고 하셨다.”
황후를 배출한 집안이니, 황량한 산골짜기에 숨어 지낸다 해도 누군가는 주씨 가문의 사람들을 기억하리라.
주씨 저택 안에 들어서자, 부모 자식, 형제자매가 모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시끌벅적한 연회를 열고 한창 회포를 풀던 그때, 사환이 누군가가 인사를 하러 왔다고 고했다.
“아버지, 저는 잠시 가족들을 보러 온 것뿐이니,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주복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자 주 노야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남이 아니라, 네 고모부인 정씨 가문의 사람이다.”
고모부? 정씨 가문?
주복이 경악했다. 정씨 가문을 정겹게 부르는 말이 부친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복이 놀라는 사이, 문밖에 있던 사람이 대청을 향해 걸어왔다. 질 좋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던 열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사내가 회랑 아래에 멈춰 서서 큰절을 올렸다.
“소인 금가아가 육공자를 뵈옵니다.”
금가아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금가아구나.
주복이 웃었다.
“다시 돌아온 게냐? 너희 집 대노야께서 너 혼자 경성에 오는 걸 걱정하지는 않으셨고?”
금가아가 고개를 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소인은 벌써 혼례를 올려서 아이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대노야께서도 이제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하셨고요. 그리고 소인이 능력이 없다 해도, 경성에 계신 사돈댁에서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고 계시잖습니까.”
금가아의 능청스러운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이제는 사람 구실을 하나 보네. 경성에서 길을 잃고 엉엉 울던 예전의 그놈이 아니야.”
주복이 말했다. 금가아가 헤헤 웃으면서 큰절을 올렸다.
“소인이 아직 육공자님께 감사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을 데리고 소인을 찾아주셨잖아요.”
감사 인사? 그때는 나를 아주 원수 보듯이 봤으면서, 오육 년이 지난 뒤에야 감사 인사가 생각난 거야?
정말로 사람이 됐나 보네. 능구렁이같이 능청을 떠는 모습이라니. 꽤 대단해졌어.
주복이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주 노야는 금가아가 준비한 선물을 받고는 주복이 가져온 선물 중 몇 개를 골라 정 대노야에게 보내라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언제부터 정씨 가문과 저렇게 사이가 좋아지셨대?”
주복이 옆에 있던 형제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예전에는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싫어하는 사이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나 같은 손아랫사람이 집에 돌아왔는데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하네?
“아버지께서는 애초에 두 집안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없다고 하시던데?”
형제가 작게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황후마마를 낳아 키운 집안이니, 둘 다 평범한 집안은 아니잖아.”
그 여인 덕분이로구나.
두 집안이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다며 난리를 친 계기도 그 여인이었고, 가족보다도 더 친한 사이가 된 계기도 그 여인이라니.
“정말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주복이 말했다.
연회가 끝나고, 밤이 찾아왔다. 씻고 잘 준비를 마친 주복이 자신의 방 안에 앉아서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공자님, 공자님, 알아보고 왔습니다.”
사환이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복이 음, 하고 대꾸하고는 사환을 쳐다보았다.
“진 공자께서 얼마 전에 다리를 정말 다치긴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다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냥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걸 좋아하신대요.”
좋아한다고?
주복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옛날부터 그러고 다니는 걸 좋아했던 건가? 그렇게 지팡이가 좋으면, 뭐하러 누이한테 다리를 고쳐 달라고 한 거야? 차라리 쭉 절름발이로 살지.
이 생각이 주복의 뇌리를 스치던 찰나, 주복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라리 쭉 절름발이로 살지, 예전 그때처럼.
주복이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손으로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진 대인과 진 부인께서는 일가를 이끌고 천중 지역으로 돌아가셨고, 진 공자께서는 외지에서 배움의 길을 찾고 싶다며 천중으로 같이 가시지 않았대요.”
사환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그때 그놈을 마주친 거로구나.
배움의 길이라. 썩 제대로 배운 거 같긴 하던데? 지팡이를 짚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달라 보였어.
자유롭고, 무언가에 얽매여 있지 않은 분위기는 겉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뼛속부터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공자님, 내일 입궐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시녀 한 명이 잰걸음으로 들어와 말했다. 주복이 음, 하고 대꾸하고는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그래. 넌 가서 내일 필요한 물건을 챙기거라.”
주복이 사환에게 말했다. 사환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무언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듣기로는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화가 나셨다고 하던데요.”
화가 나?
주복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놈이 감히 그 여인한테 화가 났다고?
황궁 안.
등불이 바람에 일렁이고, 발걸음 소리가 황후궁의 정적을 깨트렸다.
“황제 폐하 납시오.”
내시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고했다.
내시의 말과 함께 황후궁 안의 궁녀들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전각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초봄의 쌀쌀한 바람과 함께 궁녀들의 앞을 지나갔다.
“폐하.”
소심이 궁녀들을 데리고 방백종을 맞이했다. 아직 조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방백종을 보고, 소심은 궁녀들에게 그의 옷을 갈아입히라고 명령했다.
“물러가거라.”
방백종이 말하자, 소심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경 공공이 손을 뻗어서 전각의 문을 닫고, 회랑 아래에 당직을 서는 금위군과 궁녀들을 훑어보았다.
“저러신 지 얼마나 됐느냐?”
경 공공이 묻자, 소심이 웃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루요.”
경 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 이번엔 꽤 오래 가시는군.”
경 공공이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번에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화나셨을 때가 청원 역참에 있을 때였지?”
말도 없이 사라져서는, 혼자서 비바람을 뚫고 고십사를 죽이러 갔을 때, 낡은 사찰에 남아서 멀뚱히 정방을 기다려야만 했던 방백종은 몹시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때는 차 한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두 사람이 화해했다.
“이번엔 달라.”
경 공공이 목소리를 낮추고 원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사실 매번 다 황후마마께서 잘못하시는 거지, 폐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으시다. 지난번은 황후마마께서 말도 없이 홀로 위험을 무릅쓰러 가셨고, 이번에는 이 태의가 폐하께 보내온 서신을 마마께서 가로채셨으니.”
경 공공이 고개를 들고 소심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되는 것이냐?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신단 말이냐.”
소심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헤헤 웃었다.
“마마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쯧쯧쯧. 경 공공이 혀를 차면서 소심을 흘겨보았다.
불쌍한 우리 폐하. 이곳 황후궁에서는 천자의 위엄을 전혀 떨치지 못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