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8
교랑의경 8화
천둥번개가 지나가고 콩알처럼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대로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더니 곧 자욱한 물안개가 꼈다.
길가의 삼신 사당(娘娘庙)에는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가뜩이나 비좁던 건물이 한층 소란스러워졌다. 사람은 많고 건물은 좁다 보니 처마 아래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방으로 튀는 빗방울이 머리와 몸을 적시자 거친 말을 하며 밀고 밀치다가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편이었다.
화로에 불을 피우는 이도 있었다. 사방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술을 데울 때 쓰는 작은 벽돌 화로였다. 무명 적삼과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조심스레 술을 데웠다. 술 냄새가 퍼지자 사람들이 쳐다봤다.
“좋은 술이로군.”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술을 데우는 소녀는 이런 행동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녀는 술 주전자를 들더니, 이번에는 작은 철 쟁반 화로 위에 올려놨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함에서 간식을 4개 꺼내 쟁반 위에 올려 둔 다음 술 주전자를 들고 불상 근처로 갔다.
사람들은 그곳에 나귀 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는 걸 그제야 발견했다. 역시 여기 들어온 사람은 복이 많다니까. 나귀마저도 비를 피하고 있다니.
“아씨, 황주를 데워 왔어요.”
소녀가 말하면서 술을 한 잔 따랐다.
마차의 휘장이 살짝 들리더니 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넓은 소매 아래로 손가락 끝이 어렴풋이 보이는가 싶더니 술잔을 받아 들고 휘장을 내렸다.
소녀가 몸을 돌렸다. 이쪽의 화로 위에 올려놓은 간식에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지?”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못 참고 입을 열면서 철 쟁반 위에 있는 약간 누르스름하면서도 속이 붉은 춘권을 바라봤다. 모양새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
불탁 근처에 앉아 있던 4~5살쯤 된 여자아이가 못 참고 소리쳤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고 있는 아이는 그 작은 철 쟁반에서 초롱초롱한 눈을 잠시도 떼지 못했다.
여자아이가 기대고 있는 사람은 일흔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갈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가 칭얼대자 노인은 그 마음을 알겠는 듯 난처해하면서 아이를 안아 주었다.
“단랑, 집에 가서 네 아버지를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하고 싶으냐?”
노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으며 여자아이의 주의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음식을 앞에 둔 꼬마를 유혹할 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기대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소녀는 이미 춘권 4개를 작은 접시에 담아 나귀 마차에 탄 사람에게 건네고 있었다. 이번엔 마차 안에 있던 사람이 손을 뻗어 하나만 집었다.
“반근, 저 꼬마 먹게 갖다 줘.”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뻣뻣한 목소리였다. 반근이라고 불린 소녀는 알았다고 대답한 후 몸을 돌리더니 접시를 여자아이 앞으로 가져왔다.
방금 여인의 말소리에 노인은 이미 일어서 있었다.
“아니, 미안해서 어쩌죠.”
노인이 미안하고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반근은 이미 접시를 여자아이에게 넘긴 후였다. 소녀는 먹고 싶으면서도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듯 보였다.
“어르신, 어려워하지 마세요. 같이 길을 떠나는 길동무니 이것도 인연이죠.”
반근이 웃으며 손을 뻗어 여자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노인이 감사 인사를 하려는데, 그 여인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반근, 어르신께 황주 한 잔 올려.”
“미안해서 안 돼요.”
노인이 얼른 말했다. 반근은 자신의 윗전 말만 듣는 듯 직접 술을 따라 건넸다.
가벼운 대접을 거듭 사양하면 오히려 옹색해 보이는 법이다. 노인은 웃으며 술잔을 받아 단숨에 털어 넣었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긴 해도 황주를 마시는 일은 드물었다. 한입에 들이켜니 온몸의 혈이 확 통하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등 부위의 은근한 통증도 한결 줄어든 것 같았다.
노인은 술잔을 돌려주며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 여자아이도 할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후 접시에 있던 춘권을 냠냠 먹기 시작했다.
“언니, 정말 맛있어요. 이거 이름이 뭐예요?”
여자아이가 물었다.
“팥 춘권이야.”
반근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린 낭자가 솜씨도 좋구려.”
노인이 칭찬을 했다. 꼬마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든 자신마저도 먹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아씨께서 가르쳐 주신 거예요.”
반근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규방의 여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도 여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기에 간식을 만들 줄 아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소녀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이 간식을 가르쳐 준 낭자가 석 달 전만 해도 말조차 할 줄 모를 정도의 장애를 안고 있었다는 걸 노인이 안다면,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마 더 놀라워하겠지.
“역시 똑똑한 낭자로군.”
노인은 자연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나귀 마차를 힐끔 쳐다봤다.
“아까 전에도 낭자가 큰비가 쏟아질 거라며 묘당에서 쉬어 가라고 말해 주지 않았으면, 우리 손녀와 난 길을 재촉하다가 비를 쫄딱 맞았을 거요. 정말 고맙소.”
반근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답례하고, 남은 간식거리를 전부 여자아이에게 준 다음 몸을 돌려 식기들을 정리하러 갔다.
대화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큰비가 내릴 걸 저 낭자가 먼저 알아서 미리 이곳으로 와 비를 피했다고? 언제 비가 내릴지 아는 사람도 있나? 더구나 방금 비가 내리기 전엔 날씨가 맑아 비가 올 기미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의론이 분분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이쪽 나귀 마차에 있는 주인과 몸종을 흘끔거리는 눈길에도 놀라움이 더해졌다.
듣자니 별자리의 모양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아는 사람도 있다던데, 저 작은 나귀 마차에 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낭자가 바로 그런 사람인가?
거친 사내 하나가 궁금증을 못 참고 까치발을 든 채 고개를 길게 빼며 이쪽을 쳐다봤다.
“거 낭자는 비가 내릴지 어떻게 아셨소? 신선이 알려 주기라도 했소이까?”
묘당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밖으로 전해지면서 밖에 있던 사람들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금세 번져나갔다.
반근은 부아가 치밀었다. 모두가 낭자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웃음소리가 그치고 다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을 무렵, 마차 안에서 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선이 아니라 하늘이 가르쳐 준 겁니다.”
그 말에 조용해졌던 묘당 안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여인의 목소리는 뻣뻣했지만 몹시 엄숙하게 들렸다. 말투가 전혀 농담 같지는 않았는데, 이 여인은 혹시 농담을 이런 식으로 하나?
거친 사내가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어이, 낭자. 하늘이 언제 비가 그칠지도 알려 줍디까?”
묘당 안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자들의 언사가 무례하긴 하지만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니, 낭자도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오.”
노인이 여자아이를 안고 나귀 마차 옆에서 말했다.
윗전과 몸종의 말투부터 먹고 앉는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평민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런 귀한 분들이 놀림거리가 되다니 필시 불쾌한 마음이 들 터, 더구나 여인 둘뿐이니 분을 못 참을 것 같았다.
노인은 좋은 뜻에서 따스한 말을 건넸다. 반근은 열이 받았지만 대꾸할 수 없었다. 아씨가 말을 삼가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가 또다시 잦아들었다.
“하늘이 말하기를 곧 그친답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또다시 전해졌다.
이 낭자가 정말 작정하고 농담을 하는 건가. 웃음소리가 그치자마자 또다시 사람을 웃기려 들다니. 다들 웃고 있을 때 말했으면 이 정도의 파급 효과는 없었을 텐데.
묘당은 또다시 전에 없이 소란스러워졌다. 비를 피하는 일로 아웅다웅하던 사람들도 마음이 누그러져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러더니 웃음소리가 갑자기 밖에서부터 뚝 그쳤다.
“앗, 비가 그쳤어!”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소리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곧 묘당 안의 웃고 떠드는 소리를 눌러 버렸다. 모두가 일제히 밖을 바라봤다.
억수 같이 내리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바뀌어 있었다.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때, 날이 활짝 갰다.
기이할 정도의 적막이 지나가고, 묘당 안은 또다시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