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90
교랑의경 90화
골목 어귀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사내가 등 뒤로 손을 흔들자, 사내 몇 명이 잽싸게 튀어나왔다.
“이 망할 경성은 웬 골목이 이리 많은지. 성문은 어느 쪽이오?”
“지금은 성문으로 못 나간다. 이미 병졸이 쫙 깔려 있을 거야.”
앞쪽에서 걷던 셋째가 대꾸했다.
“셋째 말이 맞다.”
뒤쪽에 걷던 첫째가 좌우를 살피며 말했다.
골목을 나가자 시끌벅적한 장터가 보였다. 새벽녘인데도 몹시 활기찬 모습이었다. 골목을 오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은 일곱 사내와 아이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사내들은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머리를 숙였다. 앞쪽에서 걸어가던 셋째가 돌연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사내들끼리 부딪치고 말았다.
“저기 있다!”
큰길가에서 뛰어오던 병졸 무리가 이쪽을 보며 소리쳤다.
“어서 가자”
셋째의 말에 사내들은 얼른 돌아섰다. 금가아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길을 잃었을 뿐인데 관부에 쫓기는 몸이 되다니.
“우리랑 같이 가면 금가아에게도 괜히 불똥이 튈 거다. 적당한 곳에서 떨구고 가자.”
첫째가 말했다.
“강림 형님.”
금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널 잃어버렸어도 너희 아씨께선 반드시 널 찾아내실 것이다. 네가 경성에 있기만 하면 분명 찾아내실 거야. 우리랑 같이 움직이다 너까지 감방에 들어가면 다시는 아씨를 못 볼 수도 있어.”
셋째가 걸음을 재촉하며 타이르자 금가아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조용히 따라갔다.
“저기 장작더미가 있으니 넌 저기 숨어라.”
첫째가 옆에 있던 금가아를 떠밀며 말했다. 금가아가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쪽에서도 병졸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있다, 찾았어!”
병졸들은 시끄럽게 소리치며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제 더는 금가아와 선을 그을 수 없게 되자 셋째가 금가아를 홱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이 집 담 넘어.”
일곱 사내가 각자 담을 오르기 시작했다. 셋째가 금가아를 들어 올리자 먼저 담을 넘은 사내가 붙잡아 주었다. 양쪽에서 달려든 병졸들이 집 바깥을 겹겹으로 에워쌌다.
“거긴 왜 가냐고!”
주육낭이 정교랑의 손을 홱 낚아채고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주육낭을 힐끔 쳐다봤다.
“보려고요.”
“보긴 뭘 봐. 그냥 여기서 기다려, 소란 피우지 말고.”
주육낭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정교랑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주육낭을 빤히 쳐다봤다. 싸리나무를 지고 죄를 청하러 왔던 그 소년의 나체를 볼 때처럼. 주육낭은 갑자기 손이 화끈거려 손을 뿌리쳤다.
“언제나, 이렇게 아둔해요?”
정교랑이 물었다.
“아둔한 건 너지!”
주육낭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요. 난 원래 바보죠.”
시선을 거둔 정교랑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다만 난, 아둔하지 않아요.”
담벼락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금가아는 겁나고 막막한 표정이었다. 앞쪽에서는 사내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옆쪽에서는 이 집 식구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울고 있었다. 밖에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겁내지 마시오. 우리가 숨을 곳이 없어 부득이하게 댁들을 인질로 삼은 거요. 잠시 시간을 끌려는 것일 뿐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셋째가 이 집 식구들을 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런 위로가 통할 리는 없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식구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며 애원했다.
“셋째야, 시답잖은 말 집어치워. 넌 금가아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첫째의 말에 셋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추한테 데려가라고 하십시오. 난 몸이 안 좋아 못 버텨요.”
“난 못 갑니다!”
한 사내가 바로 소리치며 단도를 움켜쥐었다. 바깥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는 놈들은 들어라. 사람을 내놓으면 죄를 추궁하지 않겠다.”
물론 그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네, 왜 자꾸 사람을 내놓으란 거야.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무슨 사람을 내놔? 우리가 우릴 내놓는 게 말이 돼?”
그 말에 셋째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문 밖엔 이미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물 샐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은 저마다 추측을 내놓았다.
“엄청난 대도(大盜)래요.”
“사람을 백 명도 넘게 죽인 산적이라지.”
“뭐라고요?”
정교랑이 물었다. 저쪽에서 주육낭에게 현재의 대치 상황을 설명하던 관리가 이쪽을 쳐다봤다. 저 여인이 여긴 뭐 하러 왔지? 주육낭을 따라온 것 같은데, 무슨 사이야? 주육낭이 여인을 말리거나 꾸짖는 대신 고개를 돌리자 관리는 얼른 눈치를 챘다.
“일가족 네 명을 인질로 잡고 있어 강공을 펼치긴 힘듭니다.”
관리가 공손한 말투로 고했다.
“사람만 내놓으면 아무 죄도 추궁하지 않겠다고 해요. 돈도 줄 수 있고요.”
시녀가 말했다.
중요한 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안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믿겠느냔 말이다. 여인들이 이런 일을 어찌 알겠나. 하지만 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처음에, 그자들을 알아본 사람이, 뭐라고 했죠? 내가, 그 사람을 만나 봐야겠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금전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곧 유곽 여주인이 불려 왔다.
“저희도 몰라요, 저희는 장사하는 처지니 사람 가리지 않고 손님이면 다 받죠. 유괴범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유곽 여주인은 울고불고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죠?”
정교랑이 말을 끊으며 물었다.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요.”
시녀가 유곽 여주인을 다그치며 정교랑의 말을 받아 물었다. 앙칼지긴. 유곽 여주인이 입을 삐죽거렸다.
“별다른 건 없었고 외지 사람인데 험상궂게 생겼어요. 키가 크고 수염이 났더라고요. 애가 막 우니까 그 사람들이 협박했어요. 뭐라더라. 울지 말라면서, 울면 다신 너희 아씨를 못 볼 거라고…….”
유곽 여주인은 과장을 섞어 말했다. 그놈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흉악했는지 말해야 협박을 당한 자신들이 면죄부를 받을 테니까.
“몇 사람이었죠?”
정교랑이 말을 끊으며 물었다.
“일곱 명쯤이었나…….”
유곽 여주인이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정교랑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곽 여주인을 밀어제치고 곧장 골목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시녀는 놀라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갔다. 주육낭이 정교랑의 팔을 확 붙잡았다.
“적당히 해.”
주육낭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둔하네요.”
“그래, 너 잘났다!”
정교랑의 말에 주육낭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꾸했다.
“그건 납치가 아니에요. 도움이죠.”
주육낭은 정교랑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당 안에 있던 셋째가 갑자기 허벅지를 탁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런! 오해였어!”
사내들이 고개를 돌렸다.
“오해라니?”
첫째가 물었다.
“문 열어요.”
셋째가 대답도 없이 대뜸 소리치자 다들 놀라 얼어붙었다.
“셋째 형님,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잔 겁니까!”
사내들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셋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패배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야. 이건 그냥 웃어넘길 오해라고!”
셋째가 다시 소리쳤다.
“문 열어!”
이번에는 셋째의 목소리가 아니라 밖에서 들리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집 안팎이 일순 조용해졌다.
“문 열어.”
대문 안팎에서 동시에 소리쳤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금가아가 벌떡 일어섰다.
“아씨!”
금가아가 소리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셋째가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두봉으로 몸을 감싼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사내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자 정교랑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뒤따라왔던 주육낭은 그 광경에 표정이 굳어졌다.
정교랑은 문을 열고 모두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 집이긴 한데, 실은 저도 처음 와 봐요.”
그러면서 손을 들어 금가아를 두어 번 때렸다.
“너 이 녀석, 왜 멋대로 돌아다녀! 깜짝 놀랐잖아!”
이제 마음을 놓게 된 금가아는 우는 대신 헤헤 웃었다. 정교랑이 한 번 더 들어오라고 권하자 사내들은 얼른 예를 표했다.
“저희가 어찌 감히요. 아씨,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세요.”
정교랑이 이번에는 주육낭과 진 공자를 쳐다봤다.
“마음이 안 놓이면, 들어와서 기다려도 돼요.”
그 말에 사내들이 놀란 눈빛으로 주육낭과 진 공자를 바라봤다. 마음이 안 놓여? 남녀가 한 방에 있어서? 보아하니 두 소년은 준수하고 귀티가 흐르는 게 이 아씨와 비슷한 분 같네. 친척이거나 아니면……. 사내들은 어쩐지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는 안 들어가도 돼요.”
첫째가 말했다. 주육낭은 냉소를 던진 후 옷소매를 뿌리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들어가요.”
정교랑이 손짓을 하며 재차 권했다. 사내들은 영문을 모르겠는 눈빛으로 주육낭과 진 공자의 뒷모습을 본 후, 안으로 들어갔다. 정교랑과 사내들이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 익숙한 금가아가 시녀를 도와 모두에게 물을 올렸다.
“준비를 못 했네요. 차도 없어요.”
시녀가 웃으며 말하자 사내들은 얼른 답례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내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머물기 좋은 곳입니다, 좋은 곳이에요.”
한 사내가 칭찬했다.
“그러게요. 이제 좀 경성답네요. 어젯밤 그 유곽은…….”
맞장구를 치던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내가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이 끊겼다. 다른 사내들의 노기 어린 눈빛에 사내는 목을 움츠리고, 얼른 물을 마시며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