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95
교랑의경 95화
“뭐라고?”
술 주전자를 들고 있던 두칠이 놀라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네, 그렇다니까요. 그 낭자가 다짜고짜 칼과 토끼고기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점원이 말했다.
“무슨 뜻이지?”
영문을 모르는 눈치던 두칠이 곧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해 먹는 걸 좋아하는 자인가 보군. 그럼 집에서 먹지 뭘 나와서 난리야.”
옆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관리인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 낭자더냐?”
점원은 관리인이 내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시녀도 데려왔고요. 동행한…….”
점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리인이 손을 탁 치며 말을 끊었다.
“아이고, 그 낭자께서 오셨나 보네!”
관리인은 그 말만 남기고는 서둘러 뛰어나갔다. 두칠에게 잠시 실례하겠다는 말조차 안 하고 나간 터라 점원과 두칠은 흠칫 놀랐다. 어느 낭자가 왔기에?
관리인이 왔을 무렵 정교랑은 이미 양념장을 만들고 있었다. 여전히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노구솥에서 탕 끓는 소리만 보글보글 날 뿐이었다. 정교랑은 기름과 소금, 간장, 식초 등을 분량에 맞춰 조금씩 넣어 섞고는 손을 멈추고 앞을 쓱 훑었다.
“참깨가, 빠졌네요.”
행여 놓치기라도 할세라 정교랑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숙수는 그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참깨요, 참깨!”
숙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서 참깨를 가져오너라.”
그제야 점원이 안에 없는 걸 눈치챈 숙수가 멈칫하는 사이, 문가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냉큼 가져오너라!”
관리인이 옆에 있던 점원을 발로 차며 명하자 점원은 허둥지둥 참깨를 가지러 갔다. 안으로 들어온 관리인은 옷을 털고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아씨를 뵈옵니다.”
관리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따라온 두칠은 그 광경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아는 사이였나?
“대인, 이분이 바로 그 신선이십니다.”
관리인이 뒤를 돌아보며 소개했다. ‘과로신선’이라는 이름은 두칠이 지은 것이었다. 관리인 말로는 지나던 행인이 들렀다 가며 남긴 맛이라고 했는데, 행인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니 어쩐지 초라하게 들렸다. 그러다 번뜩 생각난 것이 이 속되면서도 호기로운 이름이었다.
그 행인이 여인이라는 건 두칠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무슨 연유로 온 거지? 돈을 달라는 건가? 두칠은 순간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가 재빨리 표정을 숨기고는 함께 꿇어앉아 예를 올렸다.
“신선 낭자셨군요.”
두칠은 웃음과 함께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교랑은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그때 참깨를 가지러 갔던 점원이 돌아오자 시녀가 손을 뻗어 받았다. 정교랑이 손으로 참깨를 집어 그릇에 넣었다. 숙수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로 점점 심하게 몸을 떨었고 눈빛마저 흔들렸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모습이었다.
“잘 봐요.”
정교랑의 단호한 말에 숙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딱 한 번만, 할 거예요.”
정교랑이 다시 강조했다. 숙수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아씨.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씨.”
어리둥절한 모습이던 관리인도 곧 크게 기뻐했다. 두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놀란 눈빛이 스치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옆에 있던 시종의 귀에 무어라 귓속말을 하자, 시종이 밖으로 나갔다.
저들이야 그러건 말건 정교랑은 양념장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들었다. 시녀는 벌써 노구솥 안에 채소를 넣고 있었다. 시녀는 채소가 탕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길 기다렸다가 토끼고기를 집어 노구솥 안에 넣었고, 정교랑도 똑같이 행동했다. 정교랑과 시녀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정교랑은 식성이 까다로웠지만, 일단 먹기 시작하면 남기는 일이 없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갔을 무렵 마지막 고기 한 접시까지 야무지게 비운 정교랑과 시녀는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자신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세 사람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 그 말을 깜빡했네요.”
정교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먹는 건, 안 봐도 되는데.”
뭔 소리야, 일찍도 말하네. 관리인은 한숨을 내쉬었고 두칠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사람은 시큰시큰한 눈을 비볐다. 숙수는 감격스러워 또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날은 솥 바닥에 남은 음식만 본 터라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실제로 보니 자신이 짐작한 방법과는 크게 달랐고, 훨씬 정교한 요리였다. 이젠 고기를 어떻게 써는지, 채소는 언제 넣는지 배웠을뿐더러 양념장에 참깨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요리의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숙수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알았으면 냉큼 나가서 해 봐라. 아씨의 호의를 저버리지 말고.”
두칠이 소리치자 숙수는 당황하여 고개를 조아리고는 물러났다. 관리인은 점원들을 데려와 식기를 정리하고 차를 직접 올렸다. 사람들을 물린 후 문을 닫으려는데도 주육낭은 여전히 문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점원이 머뭇거리자 주육낭은 안으로 들어왔다. 주육낭은 상석에 앉지 않고 정교랑 옆에 앉았다. 관리인과 암암리에 눈을 마주친 두칠이 손을 내젓자 문이 닫혔다.
“아씨, 이분이 저희 주인어른이십니다.”
관리인이 소개하자 두칠이 예를 표했다.
“소생 두칠이 아씨를 뵈옵니다.”
정교랑은 두칠을 보며 간단하게 답례한 후 잠자코 있었다.
“지혜로운 아씨께서 이런 요리법을 알려 주시다니, 저희가 전생에 복을 쌓았나 봅니다.”
두칠은 웃으며 손을 뻗어 방금 시종이 들고 온 작은 함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성의입니다. 부끄럽지만 받아주십시오.”
정교랑은 힐끔 쳐다본 후 손에 든 찻잔을 시녀에게 건넸다. 시녀는 찻잔을 받은 다음 물을 올렸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런 동작이 착착 오갔다.
“그리고 저희 신선거에는 어제든 편히 찾아주십시오. 내 집이다, 여기시고요. 어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두칠은 웃으며 관리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심하게. 점원들한테도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고 전하고. 새로 여는 곳도 마찬가지일세.”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두칠을 쳐다보며 물었다.
“새로 여는 곳이요?”
두칠이 눈빛을 빛냈다.
“네, 비각 유 교리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가게가 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번 먹으러 오려 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요. 마침 괜찮은 술집에 자리가 났기에 양도를 받았습니다. 저희 신선거는 이제 경성으로 옮겨갈 겁니다. 아씨도 경성에 계시니 찾아오기 편하실 거예요.”
두칠은 옆에 있는 주육낭을 무심결에 흘끗 보며 은근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시종이 은밀히 고한 바에 따르면 이 공자와 여인이 타고 온 마차는 귀덕낭장 주씨 가문의 것이었다. 경성에서 일개 하급 무관 따위가 대수던가. 더구나 비각 교리 대인 앞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아니에요. 이 맛의 즐거움은 직접 해 먹는 데 있거든요.”
정교랑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대로 일어나려고? 아직 본론도 안 꺼냈으면서? 두칠과 관리인은 멈칫했다. 예상대로 정교랑은 시녀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아씨.”
두칠이 얼른 따라 일어서며 바닥에 있는 함을 가리켰다.
“너무 적어서 그러십니까?”
두칠이 웃으며 손짓을 했다.
“여봐라, 가서 더…….”
“필요 없어요.”
정교랑이 말을 끊었다.
“이건 내가 만든 요리가 아니에요. 나도 배운 건데,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
두칠이 멈칫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닙니다. 성의예요, 성의.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두칠은 웃음을 지으며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방금 직접 가르쳐 주셨잖습니까.”
“방금 전 일은, 더더욱 돈 때문이 아니에요.”
두칠과 관리인은 멈칫했다.
“그럼 왜 그러셨는데요?”
관리인이 물었다. 이미 그릇을 싹 치운 탁자를 바라보며 정교랑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 만드는 건,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형편없거든요.”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라 숙수에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두칠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자신의 예상을 빗나갔다. 이 아씨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온 자신을 말도 몇 마디 안 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게 정말, 그저 좋기만 한 일일까? 길 가던 신선을 만났다? 두칠이 27년을 살면서 돈을 보고도 눈이 확 뜨이지 않는 선인을 본 건 처음이었다. 두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선인? 이 세상에 선인과 악인 따위는 없다. 아둔한 사람과 영리한 사람만이 있을 뿐!
시종들이 호위하는 마차와 함께 소년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칠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싹 걷혔다. 석양빛이 두칠의 얼굴을 비췄다. 귀밑머리에 꽂은 죽도화는 어느덧 시들어 있었다. 두칠은 꽃을 뽑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대인, 저 두 사람이 정말 이대로 가는 걸까요? 돈도 안 가져갔잖습니까.”
“안 가면 어쩔 건데?”
두칠이 냉소를 지었다.
“내가 내 양조부까지 들먹인 마당에 감히 돈을 가져가? 돈을 가져갔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저 애송이들뿐 아니라 저들 뒤에 있는 주 노야가 오더라도 경솔하게 굴진 못할 게야.”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때 그 신선이 주씨 가문 사람이라니 뜻밖이네요. 어쨌거나 예전의 우리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경성의 그 욕심 많은 관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돈 정도가 아니라 이 식당을 통째로 빼앗으려 들걸요.”
“그러니 할아버지처럼 고리타분하게 굴어선 안 돼. 권세가처럼 욕심 많고 몰인정한 사람이 또 없어. 건드렸다간 경을 치지. 하지만 이 세상일이라는 게 가만히 있는다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는 건 아냐. 걱정만 많아서 이것저것 다 따지면 평생 가난하게 사는 거야. 그럼 무슨 발전이 있어? 지금 우릴 봐. 신선에 이어 유 교리의 뒷배까지 있으니 우리 두씨 가문이 천하에 이름날 일만 남았잖나.”
거기까지 말한 두칠은 어두워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유 교리도 속이 너무 시꺼메서…….”
두칠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화려한 등불이 내걸렸고, 신선거는 낮보다 더욱 분주해졌다. 밝은 등불과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소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점원들. 등불은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이제 막 도착하는 손님들과 못내 아쉬워하며 걸음을 옮기는 손님들의 모습이었다. 별처럼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이 두씨 가문의 곳간을 밝게 비춰줄 것이다.
“이건 신선이 주신 기회야, 절대 놓치면 안 돼!”
두칠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려 더욱 차가워진 표정으로 관리인을 바라봤다.
“어서 지분 배당 문서를 양조부께 전해라. 이번엔 주씨 가문이지만 경성에 들어가면 또 얼마나 많은 놈이 호시탐탐 노릴지 몰라. 주씨 가문에서 또 다른 꿍꿍이를 품었다간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