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yrinth Wild Dogs RAW novel - chapter 672
“그래?”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서너 가지 정도 시험해 볼 만한 방법이 있다. 일단은 그런 것부터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으음. 그럼 맡길게. 우리 중에서는 아무래도 엘렌, 네가 이런 쪽으로는 가장 밝으니까.”
“어흠.”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는 그 순간,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
“아, 죄송합니다. 우리로서도 뜻밖의 일이라…”
소마의 사과에 헛기침 소리로 존재를 알렸던 파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닐세. 듣자하니 저 처자도 자신의 경지를 몰랐던 모양이고, 그런 걸 갑작스럽게 알게 된 거면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이해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소마의 인사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파르.
“그건 그렇고 말이야, 저 처자가 쓸 활 말인데…”
“아, 그거요. 만들어야지요. 그럼 마저 측정해서…”
소마의 대답에 파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야, 저 처자가 가디언의 경지에 오른 이상 권하고 싶은 물건이 생겼단 말이지.”
“엥? 권하고 싶은 물건이요?”
권하고 싶은 물건이라는 말에, 그웬의 반응이 소마보다 오히려 빨랐다.
파르를 향한 그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익스퍼트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권하고 싶다고 말한 물건이 아닌가? 대체 어떤 물건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그웬의 눈빛에 뒷머리를 벅벅 긁던 파르는 슬쩍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에 소마에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텐데, 자리를 옮길까? 자네들을 세워둔 채로 이야기하기도 조금 그렇고 말이지.”
파르와 소마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작업실에 딸린 골방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엘레노어, 그웬, 제니퍼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 전 작업실에서는 숲의 말라깽이들도 활 만드는 솜씨 자체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지만 말이야, 사실 그게 완전히 들어맞는 소리는 아니라네.”
“네?”
그웬의 반문을 양념삼아, 파르는 말을 이었다.
“말라깽이, 그러니까 엘프들은 자식이 태어나면 숲에 나무를 심는다네. 이걸 엘프들은 형제 나무라 부르지. 물론 엘프가 심은 나무는 자신이 아닌, 태어난 아기의 형제가 되는 거야. 태어난 아기가 어릴 때는 심은 나무를 부모가 돌보지만, 아기가 자라 걸어 다닐 정도가 되면 자신의 형제 나무는 스스로 돌본다네. 어떻게 돌보냐고? 그런 것 까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나무 키우는 거야 별 거 있겠나? 때 되면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뭐 그렇겠지.어쨌든 엘프들은 자신의 형제 나무를 진짜 자신의 친형제 대하듯 아끼며 키운다고 하더군. 그런 식으로 키운 나무는 어린 엘프가 다 클 즈음에는 커다란 고목으로 자라는 거야.그 다음이 문젠데… 드워프들의 도끼만큼 세상에 유명한 것이 엘프들의 활이잖나? 그럼 그 활은 어떻게 만들까?그렇지. 엘프들은 자신의 형제 나무의 가지로 자신이 사용할 활을 만든다네. 형제 나무의 가지는 활대가, 자신의 머리칼은 시위가 되는 거지.위력? 그거야 뭐 특별할 게 있겠나. 그래도 만드는 과정에서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특별한 처리는 하는 모양으로 그럭저럭 위력은 있는 모양이더군. 최소한 인간들이 만든 잡다한 활들에 밀릴 정도는 아닐 게야. 거기에 그럭저럭 쓸 만한 말라깽이들의 활솜씨 덕분에 세상에는 명궁으로 소문난 모양이지. 뭐, 그래봐야 단순 목궁이지만…하지만 걔들의 활이 진가를 발휘하는 건 활주인이 가디언, 걔들은 따로 부르는 말이 있지만, 어쨌든 경지에 오른 다음이라네. 아까 듣자하니 인간들 중에서는 궁술로 가디언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모양이지?
하지만 엘프들 중에서는 그런 경우가 꽤 많지. 검술을 닦은 애들에 머릿수로 지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야.”
“엘프 궁수라면, 유명하죠.”
파르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제니퍼가 중얼거렸다. 인간들의 도시에 엘프들이 나와 돌아다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엘프들의 아름다움과 위험함은 이야기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실 이것이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 외진 산 속에 사는 산골 사람들의 경우에는 엘프들과 마주쳐 도움을 받거나 반대로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돌아다니곤 했다.
“어쨌든 말이네, 이런 말라깽이 가디언 궁수들이 사용하는 활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거든.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웬만한 발리스타와 비교할 정도의 실력자도 드물지 않다지.”
“에에? 수장인 씨, 그건 아니겠죠. 사람이 당겨 쏘는 활을, 어떻게 발리스타하고 비교해요?”
그웬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에, 파르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게 정말이거든. 숲의 말라깽이들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확인할 정도의 교류는 있다네. 우리 가디언 수준의 엘프 궁수들은 얄팍한 활로 발리스타 급 위력의 화살들을 쏘아 보낸다네.”
“그런…”
소마를 비롯한 그의 세 부인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란 표정이다.
“그럼 그런 게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
“글쎄요…”
조금 궁리했지만, 소마로서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익스퍼트 경지의 궁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운을 사용하는 것만은 분명할 듯 싶지만…가장 쉬운 방법은 쏘아 보내는 화살에 기운을 담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문제가 있으니, 화살의 위력은 결국 날아가는 속도에 달린 것이 아닌가? 화살에 검기를 담는다고 화살의 속도 자체가 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화살에 담긴 검기가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담아놓은 기운이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유지될까도 문제가 될 것이고…
“답은 말라깽이들의 목궁이라네. 엘프들이 사용하는 엘븐 보우는 죽은 나무로 만든 활이 아니야. 말라깽이들이 잘라낸 형제 나무의 나뭇가지는 활로 가공된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있거든. 만들어진지 오래된 활의 경우에는 활대 전체가 잎으로 무성하거나, 심지어는 꽃을 피우는 경우까지 생기지.”
“네에?”
소마와 그 아내들 모두가 경악의 비명을 토한 상황에서 파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활이 살아있다고 위력이 특별히 강해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 실제로 애송이 말라깽이들 대부분은 형제 나무로 만든 활로도 고만고만한 위력 밖에 발휘하지 못 하니까. 하지만 주인의 경지가 올라가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지. 나무는 본래 기운을 통하기 어려운 소재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거야.”
“파르. 그건 틀린 이야기다.”
파르의 말을 끊고 들어온 것은 엘레노어였다.
“기운이란 것은 개인마다 성질이 다른 것이다. 때문에 다른 이의 기운을 몸에 들여 봐야 좋을 일은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나무라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나무에 기운이 쉽게 통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런 짓을 실제로 한다면 얼마 못 가 말라죽고 말 것이다.”
엘레노어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도 파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구먼. 틀린 말은 아니지. 한데 말라깽이들의 활은 특별하거든. 괜히 형제 나무가 아닌 거야. 형제 나무를 돌보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숲의 말라깽이들은 자신의 나무들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는군. 그리고 그런 교감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활을 마련할 시기까지 수십,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게야.들은 이야기로는 그 맘 때가 되면 자신과 자신의 나무를 거의 한 몸처럼 느끼게 된다는군. 그리고 그런 식으로 키워진 형제 나무는 자신의 파트너의 기운을 철검 이상으로 잘 받아들여준다. 본인의 머리칼로 만든 시위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자, 짐작이 가지? 주인의 기운을 흠뻑 받아들인 엘븐 보우는 강철보다도 질기고 단단해지지. 그런 활로 쏘아낸 일격은 어떤 것이 될까? 발리스타와 위력을 다툰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닌 게야.”
파르의 이야기를 듣는 그웬의 눈동자는 선망의 마음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파르의 목소리가 갑자기 튀어올랐다.
“그런 말라깽이들의 것에 버금가는 활을 만들고 싶단 말일세.”
카리스마 넘치는 선언과 함께 소마와 아내들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파르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골방 구석의 보관장에서 한 아름은 되어 보이는 종이뭉치들을 꺼내 모두가 둘러앉은 탁자의 위에 펼쳤다. 기하학적인 도면과 각종 수치가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것은, 바로 도면이었다.
“이것 좀 보게.”
“활, 인가요?”
도면의 각 부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물건이 완성되었을 때를 예상한 전체 조립도의 형태를 보고 소마는 대강이나마 도면의 정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맞네. 하지만 보통의 철궁들과는 조금 다르지. 여기, 이쪽을 보면 알겠지만, 이 판과 이 코일 그리고 이 판은 각각 재료가 다르네. 각각 활을 만들 때 쓰기 위해 내가 고안한 특수강과 서로 비율이 다른 두 종류의 미스릴 합금으로 되어 있지. 즉, 이 활은 서로 성질이 다른 세 종류의 금속을 엮어 만든 셈이네.”
거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그웬은 ‘아!’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래, 그렇지. 저 처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모양이구만. 맞네. 이건 결국 세 가지 쇠를 잇대어 만든 합성궁인 셈이지. 응?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인데?”
파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레노어가 입을 열었다.
“전문가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 때문에 ‘활대의 탄성이 활의 위력을 좌우한다.’는 그대의 말도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이고… 하지만 이는 그대가 했던 말과 조금 앞뒤가 안 맞지 않나? 밖에서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면 한 종류의 철판만으로도 탄성이 강한 활대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합성궁을 만드는 의미를 모르겠다.”
“오, 예리하구먼.”
엘레노어의 지적에 파르는 오히려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키 큰 처자가 말한 그대로, 철궁은 굳이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지. 재료를 잘 골라서 열처리만 제대로 해 줘도 위력은 충분히 나오거든. 하지만 그런 식의 철궁에는 한계가 있으니, 바로 기운을 사용하는 상황을 생각지 않았다는 점이야. 어디까지나 완력만으로 다루는 활이라 이거지. 그에 비해…”
그 대목에서 파르는 도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놈은 조금 다르거든. 애초에 기운을 사용하는 궁술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네. 조금 전에는 단순하게 엮어 만들었다고 표현했지만, 이곳과 이곳을 보게. 모양이 희한하지? A형 미스릴 합금을 뼈대로 B형 미스릴 합금과 특수 합금강이 서로 입체적인 형태로 들러붙게 되어 있네.
단순히 멋있으라고 이렇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네. 이게 다 의미가 있는 거거든. 무기에 기운을 불어넣으면 보통 어떤 효과가 일어나던가?
그렇지. 기운의 성격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보통 더욱 질겨지고, 단단해지고, 예리해지는 것이 보통이지. 한데 그런 차이는 단순하게 기운의 정도와 성격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네. 무기의 재질도 그런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소리야.
즉 칼날을 이루는 쇳덩이의 성질에 따라서도 기운을 머금은 칼날의 단단함과 예리함, 질김 심지어는 부피의 늘고 줄어드는 정도까지 달라진다 이 말이네. 우리는 그걸 기운에 대한 반응성이라고 부르지.
그런데 말이야, 이 활대에 쓰인 세 가지 종류의 재료들은 바로 그 반응성이 서로 다르다네. 사실은 일부러 그런 재료들을 고른, 아니 만든 게지.
자, 보게. 이 세 녀석들은 모두 기운을 머금으면 보다 질기고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네. 뭐, 쇳덩이라면 대부분 기운에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한데 이 녀석은 기운을 머금으면 쪼그라들고, 이 녀석은 오히려 늘어나는 성질을 가졌거든. 그것들을 이런 식으로 꼬아놨으니 어떻게 되겠나?
그렇지. 바깥쪽으로 튀기려는 힘 때문에 활대의 탄성과 복원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네. 파열? 아니, 그런 일은 없지. 불어넣는 기운의 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각 재료들끼리 끌어안는 힘과 전체적인 내구력도 함께 늘어나게 되거든. 문제는 활대보다 오히려 시위 쪽이네. 활대에 실릴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시위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경험 많은 궁수라면 그런 정도는 충분히 조절하겠지.어떤가? 그럴듯하지?
비록 처음에는 취미 식으로 가볍게 시작한 작업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새 작업이라고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공을 들인 물건이 되어버렸지. 이 녀석이라면 아마 가디언급 엘프들의 일격에도 밀리지 않을, 괜찮은 수준의 한 방을 쏘아낼 수 있을 거야. 계산이 정확하다면 말이지.”
“헤에…”
도면을 들여다보는 그웬의 눈은 마치 꿈을 꾸는 소녀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근래 느끼던 자신의 화력에 대한 불만을 한 방에 해결해 줄 보물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성을 잃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에 비해 소마는 아직 침착했다.
“훌륭하네요. 설명만 들은 거지만, 엄청난 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물건을 저희들에게 권하셔도 괜찮은 건가요?”
이 정도 위력의 무기라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뒤에 숨겨서 비밀무기 취급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데 그런 무기를 굳이 드워프도 아닌 자신들에게 권한다는 점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소마의 질문에 파르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지… 그래, 조금 그렇긴 하지만 억지로 숨길 일은 아니지. 설명을 들어서 알겠지만 이 활은 가디언 전용일세. 기운을 불어넣지 않고 그냥 사용해도 다른 철궁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만, 그래서야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 한데 말이야, 우리 부족 가디언 중에는 활에 관심이 있는 드워프가 없거든. 굳이 만들어도 쓸 사람이 없단 말일세.”
파르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마와 그 아내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다들 도끼나 철퇴 정도가 아니면 무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종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