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yrinth Wild Dogs RAW novel - chapter 673
“파르 씨. 별로 궁수가 아니어도, 익스퍼트의 경지라면 활에 기운을 불어넣고 화살을 날리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계대로 위력이 나올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써먹지도 않을 물건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잖나. 사실은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네. 심지어는 이걸 만들어서 숲의 말라깽이들에게 팔아넘길까도 생각해 봤다니까. 하지만 그 깐깐한 녀석들이 자기 활을 놔두고 내 활을 쓸까? 괜히 스스로 비웃음만 살 뿐이지.”
“그렇긴 하죠.”
소마가 고개를 끄덕일 때, 바로 옆에서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던 그웬이 갑자기 그의 팔에 엉겨 붙었다.
“소마! 나 저거 만들어 줘!”
“우왁!”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소리치는 소마. 하지만 그웬은 남편의 낭패한 모습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저거 좀! 응? 앞으로는 밖으로 돌지도 않고, 원한다면 옷 만들어 파는 일도 그만 할 테니까.”
“잠깐만요, 언니. 좀 진정해요.”
“그대, 지금 뭐 하는 건가? 외간 남자도 있는 장소에서! 체면을 생각해라!”
당황한 표정으로 그웬을 뜯어말리기 시작하는 제니퍼와 엘레노어. 그웬도 만만찮게 저항했지만, 두 육체파 처자들의 합공에 그웬도 결국에는 소마의 팔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니, 차분하게 생각해 봐요. 미스릴로 만들어야 한다잖아요? 철궁 같은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요.”
“맞다. 더구나 저 쪽은 드워프다. 물론 가지고 내려오지도 않았지만, 황금이나 가문의 권위 같은 것이 통할 만한 상대도 아니란 말이다. 침착하게 생각해라.”
“뭐야, 다들! 나도 바보는 아니거든? 수장인 아저씨! 그거 만들어 줘요! 대가는… 그래, 오우거 가죽 갑옷 어때요? 지금 입고 있는 것이 이래봬도 오우거 가죽이거든요?”
“이런 바보 같으니! 무슨 어리석은 소리냐? 보물에 눈이 어두워 목숨을 지켜줄 갑옷을 팔 셈인가?”
“누구더러 바보라는 거야? 이 장면에서는 누가 봐도 방어력보다 공격력이겠지? 그저 짐처럼 얹혀 다니느니, 조금 위험해도 저걸 손에 넣는 쪽이 백배는 낫다고!”
“어이, 어이, 처자들. 미안하지만 소란은 그만둬주지 않겠나? 처자들이나, 나나, 소리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상당히 부끄러울 것 같은데?”
파르의 한 마디에 세 처자들의 말싸움은 한 순간에 멈췄다.
“그리고 말이야, 듣자하니 비용 문제 때문에 싸우는 것 같은데 그건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니퍼의 반문에 파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본래라면 재료비보다도 공임이 더 붙겠지만, 뭐 이 녀석의 완성은 나도 바라는 일이니 그건 제하도록 하지. 그러니 재료비만으로 어떤가?”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들에게는 미스릴이…”
“수장인 씨, 내 가죽 갑옷으로 계산할 게요. 대신 거스름은 확실히 챙겨주시죠? 오우거 가죽하면 미스릴에도 지지 않는 고급 재료라구요!”
“그웬! 그런 식으로 장비를 내돌리는 탐색자가 어디 있나?”
다시 발발하려던 옥신각신은 파르의 한 마디에 순간적으로 사그라들었다.
“오우거 가죽에는 제법 흥미가 있지만, 재료비는 따로 필요없네. 저기, 저 친구의 칼을 치고 남은 것으로 충분할 거야.”
“네?”
순간 세 여자들의 시선이 파르에게 모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르의 손가락을 따라 소마의 얼굴로 이동하는 시선들.
“아, 그게 말이지.”
소마는 결국 보관하고 있던 미스릴 무기들을 파르에게 넘긴 것을 설명해야 했다.
“숨기려는 것은 아니었어. 사실 이곳 일이 끝난 다음에, 남은 분량의 사용법을 의논하려 했는데…”
“가주. 사과 할 필요 없다. 어차피 모두 그대의 물건이 아닌가?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든, 그것은 그대의 자유다.”
“그래요. 아니, 오히려 잘 됐네요. 당신 정도 경지라면 미스릴 무기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것을 드워프 장인에게 맡길 수 있다면… 만나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해요.”
엘레노어와 제니퍼의 발언에 골방 안이 훈훈해진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그 때…
“저어, 역시 활은 그만 두는 것이 좋을까?”
“엥? 처자, 그게 무슨 소린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는 파르. 아니, 놀란 것은 파르 하나만이 아니다. 그웬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익스퍼트라고 하지만 별로 실감도 없고… 그저 힘만 조금 세졌을 뿐이지 기운을 느끼는 것도, 검기를 내는 것도 아니니까. 괜히 설레발치면서 활부터 만들었다가 묵히느니, 실력 분명한 너희들 두 명 무기를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소마의 몫을 빼면 검 두 자루 만들 분량의 미스릴이 남는다는 이야기에 파르의 도면을 앞에 두고 살짝 외출했던 그웬의 이성이 돌아온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엘레노어와 그웬의 검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온전한 익스퍼트가 아니라는 자격지심도 일정 부분 들어가 있었다.
그웬이 느끼는 자격지심은 젖혀두더라도, 일정 부분 일리는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제니퍼는 눈에 띄게 풀이 죽은 그웬의 앞에서, 그녀의 말을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언니. 그렇게 갖고 싶어 했는데… 재료가 없다면 몰라도, 만들 수 있다면 언니 활부터 만들어야죠.”
“아냐. 미궁 탐색이 장난도 아니고, 이런 장면에서는 역시 효율성을 생각해야지. 활을 바꾼다고 내가 제대로 쓸 수 있을지도 애매한 상황이고… 아무래도 너하고 엘렌이 무기를 장만하는 게 옳을 것 같아. 아까 보니까, 철궁들도 상당히 괜찮더라. 묵직하고…”
뭔가 따뜻하면서도 씁쓰레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데 그런 분위기를 단칼에 자르는 여걸이 있었으니…
“그대. 가주의 검과 함께 그웬의 활을 만든다면 미스릴은 어느 정도 남게 될까?”
“… 그대?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말투 희한한 처자로구먼. 뭐,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을 게야. 저 친구의 검은 상당히 무지막지하더군. 적당히 군살을 빼면…”
“가주가 사용할 검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충실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래? 그렇다면… 많이 남기는 건 어렵겠는데? 활도 미스릴은 제법 잡아먹어서 말이냐. 단검 정도라면 몰라도, 장검을 만드는 건 무리겠어.”
“그런가? 그럼 가주의 검과 활을 부탁한다.”
“엘렌!”
그웬의 항의 섞인 목소리에도 엘레노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파티에서의 역할을 생각할 때, 나와 제니가 미스릴 검을 들어도 전력이 극단적으로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활을 바꾸는 쪽이 낫다. 그웬의 실력이라면 오발의 위험도 거의 없을 것이고, 위력만 예상대로 나와 준다면 전투가 획기적으로 편해질 확률이 높다.
가주. 마음대로 결정한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어떤가?”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겠지.”
소마에게도 불만은 없었다. 이런 때의 엘레노어의 판단력은 믿을 만 할 뿐 아니라, 사실은 그도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그웬은 감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마… 엘렌…”
“그런데 수장인.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
그웬의 감격에 아랑곳없이, 엘레노어는 파르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구조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던데, 완성될 때까지 어느 정도나 걸릴까? 출발하기 전까지 맞출 수가 있는 건가?”
그녀의 말에 그웬의 얼굴색이 순간 파래졌다. 비록 금속 세공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도 상식 정도는 있는 것이다.
파르가 설계한 미스릴 활은 금속 세공의 극한이다. 이런 물건이 고작 며칠 사이에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적어도 네다섯 달 이상은 필요할 것이다.일행의 일정에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그거 말이지?”
하지만 파르의 표정에는 오히려 장난기가 맺혀 있었다.
“적어도 2, 3주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데? 아! 자네, 미안하게 됐네. 미안하지만, 자네 검은 다른 친구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아. 활에 검까지 전부 내가 하려면 자네들 일정에 맞춰주는 건 도저히 무리거든. 그렇다고 걱정 할 필요는 없네. 확실한 친구에게 맡길 테니까. 검에만 집중하는 녀석이 있거든. 어쩌면 내가 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지. 나라고 쉽게 질 생각은 없지만, 한 길에만 매달리는 녀석들에게는 아무래도 뭔가 특별한 점이 생기게 마련이더라고.”
2주나 3주 정도라는 대답에 놀란 탓으로 뒤에 이어진 말에는 반응할 만한 여력이 별로 없었다.
“어, 음… 3주라고요? 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빠르네요?”
간신히 반응한 제니퍼에게 파르는 장난에 성공한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하긴, 본래라면 적어도 반 년 정도는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니 말이지. 뭐, 만족스러울 정도로 공을 들이게 된다면 년 단위의 시간은 들여야겠지만…”
“역시 그렇죠? 그런데 그게 3주라니… 어떻게 된 거죠?”
“그게 말이지.”
바로 대답할 것처럼 입을 열었던 파르는 앉은 자세를 고치며 슬쩍 뜸을 들인 이후에야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필요한 부품은 사실 거의 만들어 둔 상태거든. 허험! 본래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야, 도면을 그린 뒤로 도무지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미스릴이 손에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한데 그게 벌써 한 대 분량을 넘어갔거든. 덕분에 지금은 조립만 하면 되겠다, 이거지.”
조립할 날이 올지도 애매한 물건에 귀한 미스릴과 시간을 밀어 넣은 것이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 재료와 시간으로 작품 활동에 공을 들였다면, 어쩌면 지금쯤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을 두엇 정도 더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활에 들어갈 부품을 주물럭거리며 스스로도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던가?하지만 덕분에 소마 일행을 만나고, 평생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물건을 늦지 않게 완성해 넘겨주게 생겼으니… 세상일이란 정말 기묘한 것이다.
“한데 그걸 그웬이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드워프들에 비하면 그웬은 상당히 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