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yrinth Wild Dogs RAW novel - chapter 674
엘레노어의 지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모두는 멈칫했다. 인간과 드워프의 체형은 다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미리 만들어둔 부품은 그웬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그러나 엘레노어의 질문에도 파르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거라면 전혀 문제없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니 활이 완성되는 경우는 아무래도 둘 중 하나겠더군. 내가 가디언이 되든지, 아니면 엘븐 보우말고 다른 활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괴짜 엘프를 만나든지. 한데 아무리 봐도 내가 가디언이 되기보다는 엘프 궁수를 만날 확률이 조금은 더 높을 것 같더라고. 내 도끼 휘두르는 실력이야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니. 어쩔 수 있나? 그래서 부품을 만들 때, 엘프들의 체형에 맞춰 만들었네.”
“그건 조금, 결론이 이상한 것 같은데요? 부족 가디언 중에 활을 써보겠다는 드워프가 나타날 수도 있잖습니까? 굳이 확률을 따지자면, 오히려 제 생각 쪽이 훨씬 높을 것 같습니다만…”
소마의 질문에 파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이 있겠나? 하긴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이니. 하지만 그래도 문제 될 일은 하나도 없네. 물건이 작다면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필요한 것보다 크다면 적당히 잘라내면 끝나는 일이거든. 저 처자 같은 경우라면, 음… 조금만 잘라내면 되겠구만. 그래, 말이 나온 김에, 아예 치수를 재지. 처자. 잠깐 이쪽으로 나와 보게.”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든 파르는 불러낸 그웬의 치수를 재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의외로 복잡했다. 그웬의 팔 길이는 물론이고 키, 허리에서 어깨까지의 길이에 심지어는 손의 크기와 손가락 하나하나의 길이까지 재고 기록하는 것이다.
기껏해야 팔 길이 정도나 재고 말겠지 생각하던 소마와 아내들의 생각은 가볍게 빗나가고 말았다. 파르의 입은 그웬의 몸 이곳저곳을 재고 기록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활을 받게 되면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시위네. 물론 활에 걸릴 시위도 보통 물건은 아닐세. 철사 여러 겹을 꼬아 만든 와이어를 시위로 쓰게 될 거거든. 물론 철사를 뽑아낼 재료 자체도 특별한 녀석을 쓸 거네. 엄청나게 튼튼한, 특별한 와이어가 되겠지. 한데 말이야, 그렇게 만든 시위도 활대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다는 점이 문제야. 평범하게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활에 기운을 불어넣어 강화한 다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될 거네. 강화된 활대의 장력은 굉장하거든. 그리고 그 힘은 기운을 넣으면 넣을수록 강해질 거네. 철로 만든 와이어도 마찬가지로 질겨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약간은 부족할 거야. 아무리 계산해도 그렇게 나오더군.”
“그 말은…”
“그래. 활을 사용하는 도중에 끊어질 위험이 있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기운이 실린 화살에 얻어맞는 것보다 오히려 위험한 일이 벌어지게 될 거야. 겨냥당하는 쪽이 아니라, 겨냥하는 쪽에 말이지.”
기운이 실린 와이어는 검기가 실린 칼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것이 끊어져 요동을 친다면…자세한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 수장인 아저씨.”
“그런 눈으로 보지는 말라구. 한두 번 당겼는데 끊어지거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활을 점검하는데 평소부터 주의하란 소리야. 사용한 뒤에는 시간을 들여 살펴보라고. 전조 없이 끊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전조요? 그게 뭔데요?”
“사용하기 전보다 시위의 길이가 길어졌다거나, 아니면 시위를 이루는 현 중에 한 가닥이 끊어졌다거나… 여분은 충분히 줄게.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그냥 갈아버려. 이상한 거 아끼다가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활을 당기는 도중에 끊어진다면… 조금 다치는 정도로 끝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소마의 뇌리를 스쳤다.
“파르 씨, 뭔가 방법이 없어요? 위력이 아무리 강해봐야, 주인이 다쳐버리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소마의 질문에 파르는 고개를 저었다.
“나라고 고민이 없었던 줄 아나? 하지만 어쩔 수 없더군. 재료가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라. 활대하고 시위 간의 반응성이 너무 다르단 말일세. 뭐, 사용할 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야. 조금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주인이 조심하면 막을 수 있는 정도고.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쪽은 아내가 위험한 상황이다. 쉽게 납득할 리가 없는 얘기다.
“벌써 문제점도 아시는 거 아닙니까? 그럼 시위에 미스릴을 섞으면…”
“그게 가능하면 벌써 했지. 미스릴하고 철은 달라. 미스릴로는 실을 뽑을 수가 없단 말이네!”
조금 언성을 높였던 파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좀 더 차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말라깽이들뿐이야.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쇠를 다루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우리 드워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미스릴에서 실을 뽑아내는 말라깽이들의 재주만은… 불도 못 쓰는 녀석들에게는 아까운 재주지. 맞아. 말라깽이들의 실이 있으면 내 활은 더욱 완전해질 거야. 하지만 어쩌겠나? 없는 걸 조른다고 물건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 봐야지.”
“… 엘프들의 미스릴 실을 구해오면 그웬이 다칠 염려는 사라지는 겁니까?”
“맞네. 확실한 것은 실제로 만들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계산상으로는 충분히 버틸 거야.”
소마의 입장에서는 아직 부족한 대답이었다.
“사실은 잘 모른다는 소리 같은데요?”
“최소한, 철사로 된 시위처럼 갑작스럽게 끊어질 일은 없을 거네. 쓰다보면 끊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분명히 미리 알게 될 걸? 확연하게 늘어질 테니까. 평범한 활들의 보통 활줄보다 오히려 안전할 거야.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당장 구할 방법이 없는데. 말라깽이들은 미스릴 실은 사고 팔지 않는다네. 미스릴 실하고 마찬가지지.”
실제는 조금 달랐다. 엘프가 자신들의 활을 팔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미스릴 실의 경우는 드워프들이 요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가 되지 않는 측면이 훨씬 컸다.
금속에 대해서만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존심 때문에 엘프들에게 미스릴 실을 요구하지 못 하는 것이다.사실, 그런 것은 지금의 소마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였다.
“이거라면 어떻습니까?”
슬쩍 겉옷을 들춰 보이는 소마.
“응? 어? 그, 그건…”
들춰진 옷의 안쪽으로, 은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치수를 재던 작업을 마무리하던 파르는, 순간 소마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맞군. 그러고 보면, 그 무기들도 말라깽이들의 것이었지.”
“실은 아니지만, 올을 푸는 정도는 가능하겠죠? 시위를 만드는데 쓸 수 있을까요?”
“소마 씨!”
갑작스러운 행동에 제니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를 쳤지만, 소마의 시선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이네. 내 활이 조금 더 완전해지겠구만.”
그날 파르는 약 10미터 정도의 미스릴 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탓에 소마의 미스릴 셔츠는 조금 짧아지고 말았지만, 소마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드워프 마을에서의 3주는 길고, 지루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파란 모루 부족의 마을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니, 공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매우 훌륭했다.
모든 시설들이 드워프들의 체형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인간들의 도시와 구별되는 드워프 도시만의 개성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드워프 예술가들의 흔적들은 분명 보기 힘든 구경거리라 할 만 했다. 아마 평소였다면 교양이 다소 부족한 병사 출신의 단원마저도 3주 정도는 도시를 구경하며 물 흘려보내듯 보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문제였다. 드워프 장인들이 약속한 새로운 무구들은 소마 일행 대부분을 축제 직전의 아이들처럼 들뜨게 만들었고, 덕분에 도시 구경 같은 것은 전혀 눈에 들지도 않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위대했다.
다 큰 어른들이 하루가 지나기를 바라며 멍한 눈빛으로 허공만 바라보거나 말거나 시간은 꾸준히 흘렀고, 결국 3주라는 시간이 전부 흘러가고 말았다.
즈즈즈-
“좀 더 조일까요?”
“아니, 지금이 딱 좋아. 이제는 거의 도사가 다 됐구만.”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별로 이상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니퍼는 단지 소마가 무장을 갖추는 것을 돕기 위해 갑옷의 조임끈을 묶어주고 있을 뿐이다.
집에 있을 때라면 매무새 같은 것은 하인이나 하녀들에게 맡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런 식으로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제니퍼가 소마의 준비를 돕게 마련이었다. 사실 탐색자로서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소마에게 시중꾼 같은 것은 별로 절실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돕겠다며 다가서는 데야 그로서도 달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제니퍼의 정성스러운 태도가 은근히 기분좋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
“바깥도 준비를 하느라 바쁠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아까 전에 이미 확인했으니.”
“그런가? 그러고 보면 내가 늦은 편인 모양인데…”
“그런 건 아니에요. 평소보다 오히려 이른 편인 걸요.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잖아요. 다들, 적당히 긴장했다는 뜻이겠죠.”
드워프들에게 장비를 받은 것이 이틀 전이다. 자신만만하게 장담을 하기는 했어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드워프들은 정확하게 약속을 지킨 것이다.일행 전부가 아침부터 소란을 떠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이 약속을 지킬 차례인 것이다.
“요코라라고… 아무래도 입에 붙지 않는단 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사냥이라면 실패했던 적이 없었잖아요. 이번에도 잘 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 아니, 그렇게 되야지.”
“자, 다 됐어요. 시험해 보세요.”
제니퍼의 말에 소마는 침대에서 일어서 팔을 휘두르거나 허리를 돌려보며 이상한 곳이 없는지 시험했다.
“걸리는 곳도 없고, 너무 죄지도 않고… 딱 좋아.”
“잘 됐네요. 나는 그럼 엘렌 언니에게 가볼게요. 아직 도중일 거예요.”
엘레노어도 이번에 드워프들에게 새로운 판금갑옷을 받았다. 한데 그 판금갑옷이 보통이 아니었다.
역시 드워프는 드워프라는 것인지, 성능 같은 것을 따지기 이전에 입을 때의 편리함이나 입고 나서의 활동성이 애용하던 실버와는 비교도 어려울 경지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별로 불편함 없이 입고 벗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으니 드워프들의 기술은 정말 굉장했다.
그래도 판금갑옷은 잠옷이 아니다. 혼자 입는 것이 가능한 갑옷이라고는 하지만,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일은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제니퍼가 소마의 곁을 서둘러 떠나는 이유였다.
“당신은요?”
“… 잠시 앉아 있다가 나갈게.”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모두 일어나 준비를 하는 도중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일어나 돌아다니면 안 봐도 될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나올 것이다.때로는 늦장을 부리는 것이 배려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세요. 그럼, 잠시 뒤에 봐요.”
문을 나서는 제니퍼를 눈짓으로 배웅한 소마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누우면 다리가 튀어나오는, 이 아담한 침대와도 오늘로 작별이다.그렇게 잠깐 감회에 젖어있던 소마는 문득 허리 쪽이 당기는 기분에 아래를 내려 보았다.
칼 때문이다. 자리에 주저앉을 때, 허리에 걸어둔 칼집이 시트에 곧추서며 허리를 찌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틀 전 드워프들에게 받은 물건이다. 드워프 장인들은 단 3주 만에 소마가 내준 미스릴 무기들을 녹이고 두드려 새로운 칼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자세를 제대로 정리하던 소마는 무심코 칼을 칼집에서 잡아 뽑았다.
칭-
맑은 울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칼은 본래 가지고 있던 정글도와 굉장히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모양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게는 거의 반이나 될까 싶다. 더욱이 예전의 조금은 투박하던 칼날이 지금은 면도에 쓰기도 겁이 날 정도로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거기에 면도칼을 오히려 도려낼 듯한 칼날이 은색의 얼어붙은 것 같은 예기마저 뽑아내고 있으니,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지경인 것이다.하지만 이 아가씨의 진정한 특별함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후웅-
“흐음…”
새로운 애검에 기운을 불어넣은 소마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칼을 받은 이틀 전부터 어제까지, 벌써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느껴지는 놀라움은 전혀 몸집을 줄이지 않았다.소마의 기운을 들이마신 미스릴 펄션은, 검기가 아닌 빛의 칼날을 토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