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03)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03)화(103/141)
“일?”
“네. 아기씨의 말씀을 듣고 두 사람의 뒤를 밟아 보니, 디아브리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디아브리아라니.
다 큰 어른들이 대낮에 가도 부담스러운 곳이 디아브리아였다.
일반 제국민들이 생활하는 오네 지구와 달리, 부랑자들과 범죄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음습하게 살아가는 곳이었으니까.
한데 그곳에 그 어린 것들이 가서 뭘 한다는 거지?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들어 눈을 깜박이자, 피어스가 설명을 이었다.
“오네에서 가까운 디아브리아도 아니고, 디아브리아에서도 더 바깥쪽. 황도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외곽에 위치한 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집까지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이더군요.”
“목장?”
“네.”
믿어지지 않는 피어스의 말에 눈을 깜박였다.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는 말뿐이었다.
“리안이가 목장에서 일을 한다구?”
“네.”
“쟈이든도?”
“네, 두 사람이 같이.”
“…….”
피어스의 끄덕임에 입을 벌렸다.
두 사람 모두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는 사실에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시아가 읽었던 소설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 적은 없었다.
전생의 레티시아가 경험했던 기억에서도.
‘리안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는 기억은 없었어.’
어쩐지 전생에서는 알지 못했던 리안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본 느낌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잘 생각해 보면 안젤라가 쓰러진 이후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물론 초대 황제의 명으로 무료 치료소가 오네 곳곳에 있긴 했지만, 거긴 사람이 언제나 많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어려웠다.
진료를 받는다 해도, 약값이 말도 안 되게 비쌌으니까.
‘치료를 포기했던 거지.’
돈이 없었으니까.
황자인 리안을 품은 채 황실에서 도망친 신세였으니 당연히 황실에서 돈을 받아 쓸 수 있을 리는 없었고, 그렇다고 황제의 다른 정부들처럼 귀족이 뒤를 봐 주던 것도 아니었을 테니.
리안의 집에 돈이 없는 건 당연했다.
아니, 그럼 전생에서의 리안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어떻게 지냈던 거지?
“무슨 일을 하고…….”
입을 달싹이며 피어스를 향해 고개를 든 순간-
“수프, 아니 빵 한 덩이만 주시면 뭐든 할게요.”
“잘 할 수 있어요.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힘 세다니까요? 보세요! 이것도 들 수 있잖아요. 보기와는 달라요.”
“저기요, 이건 약속이랑 달라요. 이 빵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했잖아요!”
“아,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제발 일 좀 시켜 주세요.”
“일이요!”
기억이 떠올랐다.
스치듯 순식간에 흘러가는 전생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생생하게 귓가를 울렸다.
손발이 다 불어 터져라 일을 해도 그때의 내가 일한 값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빵 한 덩이, 개중에는 상해서 버리기 직전의 것들도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삯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내가 정당한 임금을 바라면 일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그저 그 날 하루의 배를 채울 음식이었다.
전생의 레티시아는 에시어에서 쫓겨난 이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다 죽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 세계에서 고아로 혼자 남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생존법이었다.
‘그러니 리안이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거구나.’
전생의 내가 그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던 그 순간에도-
“…….”
깜박깜박 느리게 움직이던 눈꺼풀 사이로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곧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 맺혔다. 그리고 그런 내 갑작스러운 울음에 놀란 듯 피어스가 다급히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아기씨, 왜-”
“돈은?”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던 피어스가 내 물음에 미간을 좁혔다.
“네?”
“두 사람 다 돈은 받고 있는, 아니 돈은 제대로 받고 있어?”
“아…….”
그제야 이해한 듯 곤란한 얼굴의 피어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지.
그때의 나는 이미 성인식을 치른 후였는데도 그렇게 호되게 당했는데, 어린 리안과 쟈이든은 더할 것이다. 어리고 힘이 없는 그들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을 테니까.
어쩜 그렇게 약자들만 골라서 괴롭히는 걸까.
‘나쁜 놈들.’
양손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돈 제대로 달라고 하면 당연히 그만두라고 했겠지?”
“……네, 그러더군요.”
쟈이든이 부당한 대우에 가만있었을 리 없었을 테니까.
“얼마 줬는데?”
“동화 1개요.”
“하!”
동화 1개 = 작은 빵 한 덩어리 = 감자 세 알.
오네 남자의 하루 평균 임금 수준이 동화 서른 개임을 감안한다 해도, 어이가 없는 금액이었다.
“나쁜 놈들 가트니라구. 아무리 그래도 동화 2개로 뭘 사 먹으라고.”
“그…… 동화 1개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
“그리고 거기서 세금도 떼어 가더군요.”
“하!”
그 적은 돈에서 세금까지 떼어 가는 치졸함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나쁜 놈들이네.
전생의 내가 겪었던 수준을 아주 가볍게 뛰어넘는 착취에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리안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른 체력을 키워 기사나 용병으로 들어갈 작정인 모양이구나.
그냥 체력 단련을 하려는 것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평민 기사는 승진할 가능성은 낮지만 안정적인 직업이었고, 용병은 위험해도 돈은 많이 벌 테니까.
‘후.’
소설 서사고 나발이고 당장에 리안이를 황실로 데려가서 마도구로 황제의 친자인 거 확인시킨 후에 황자 궁에 앉혀 놓고 싶다는 충동이 훅 치밀었다.
그러면 최소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은 안 해도 될 테고, 굶어 죽지도 않을 거 아닌가!
‘진짜 남자 주인공 서사 거지 같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황태자가 된 후,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는 거.
한 줄 요약으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의 무게와 의미에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서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안젤라가 임신했다는 걸 안 순간, 황실에서 도망을 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고.’
그 이유가 뭘까 잠시 고민하다 이내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뭘 생각해.
당연히 황후 때문이겠지.
자신의 시녀가 황제의 아이를 품었다는 걸 알게 되면 황후가 어떻게 나올지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리안을 도와줄 그 어떤 세력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그가 황자 궁을 차지한다 해도 앞길이 캄캄했다. 아니, 황궁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가 여기보다 편히 지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독살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거기다 황자 칼리안의 기반이 되는 게 안젤라가 죽고, 황자 궁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오네에서 보낸 시간 아닌가.
그러니 남자 주인공 서사가 아무리 거지 같아도 악착같이 버텨야 했다.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에시어인 아빠를 등에 업고 황실로 들어가는 게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는 리안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일 테고, 그게 아빠를 위해서도 좋았다.
에시어의 이름을 차치하고서라도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기사 단장이자 북부의 타루스를 지키는 소드마스터인 아빠가 리안을 지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두 형을 견제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리안이 역시 아빠를 지켜 주겠지.
설혹 에시어가 망한다고 해도.
“후.”
들썩이는 감정을 가라앉히듯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내야 했다.
‘돈을 줄까.’
나 돈 많은데.
아빠가 집에 두고 간 것뿐만 아니라, 계좌에 쌓인 돈도 상당했다.
거기다 매달 에시어에서 나오는 용돈까지…….
객관적으로 봐도 난 엄청난 부자였다.
이거면 리안이랑 쟈이든 둘 다 삼시 세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도 문제없다 못해 차고 넘쳤지만 문제는-
‘걔가 에시어라면 더더욱.’
이 ‘더더욱’이 문제였다.
문 앞에 돈을 버리고 가면 내가 준 걸 알아챌 것이다.
그럼 저 성격상 다시 되돌려 주는 건 당연할 테고, 질색하며 이사를 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도 내가 준 은화 2개를 안 받는다고 난리를 쳤었으니.
아마 그보다 더 큰 돈은 당연히 거절할 것이고.
그럼 어쩌나.
쟤네 너무 힘들게 지내는 거 같은데.
뭐 고생하는 사이에 두 사람이 배우는 바도 크긴 하겠지만.
아니면.
폴한테 돈을 보내 주라고 할까? 아니면 쟈이든을 꼬셔 봐야 하려나?
하지만 오만 가지 방법을 궁리해 보아도 소설 속 리안의 서사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가 자신에게 건네진 도움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어쩌지.
“흠.”
손가락으로 턱 끝을 톡톡 두드리며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걔들한테 돈 자랑을 직접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그렇지.’
그 생각과 동시에 자세를 바로 한 채 피어스를 바라보았다.
“피어스, 베넷한테 얼른 집에 좀 오라구 해 줘. 아니다!”
순간 떠오른 마도구에 박수를 짝, 하고 치며 폴짝 뛰어올라 서랍장을 열었다.
그러곤 빠르게 마도구에 마력석을 연결했다.
“베넷! 베넷! 베넷!”
얼른, 얼른, 얼른 전화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