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06)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06)화(106/141)
그 시각.
할아버지와 올레의 손을 잡고 홀레 목장 앞에 도착한 난 열심히 리안과 쟈이든을 찾는 중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나 멀리서 보고 가야지 했는데-
‘넓네?’
목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평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산등성이 같은 언덕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황도 근처에 이런 산도 있었구나.
“여기가 다 목장이에요?”
“네.”
“아아.”
한 만 평 되려나?
“여기 얼마나 큰 거예요?”
“4000에이커 정도 될걸요?”
“아, 4000에이커.”
음. 4000에이커라.
학교에서 1에이커가 약 1200평 정도 된다고 배웠으니까.
‘4000에이커면.’
대략 500만 평.
“…….”
올가의 설명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솔직히 4000에이커도, 500만 평도 제대로 체감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너무 큰일을 벌렸구나. 망했구나.’라는 상황 판단이 확실히 되었을 뿐.
미쳤구나.
난 그냥 목장이라기에 뭐 몇 백 평 정도일 줄 알았다.
그랬으니까 그냥 목장에 가면 두 사람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500만 평이라니! 이 넓은 데서 꼬맹이 둘을 어떻게 찾아!’
망했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으나, 이것 역시 내 안일함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내 죄지.’
길게 한숨을 몰아쉬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렸다.
아니, 방법은 이미 나와 있지.
그래, 내가 얼른 여기를 사든, 베넷이 말한 옆 목장을 사든 해서 리안과 쟈이든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
“후.”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아.’
꼴깍.
여기서 말 잘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한겨울이라 푸르른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워낙 부지가 커서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광활하다고 느껴졌다.
이 분위기에 소, 말 그리고 양들이 뛰어놀고 풀도 뜯어 먹는 걸 상상하면.
‘좋긴 하겠네.’
그야말로 목가적인 분위기가 아닌가.
하지만 내 결론은 그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목장이 반드시 여기일 필요는 없었다.
“마음에 들기는 하…….”
“그럼 됐다. 마음에 들면 사자꾸나.”
내 대답에 할아버지는 바로 올가를 향해 손짓했다.
“베넷은.”
“목장주와 이야기 중이십니다.”
이미?
“음.”
‘제가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셨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옆 목장을 사 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물 투어네.
500만 평짜리 목장을 이렇게.
“뭐 이에로가 애지중지하는 목장이니, 그 가치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지. 홀데 남작이 이에로의 집사장이었으니, 목장 관리쯤이야.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했을 게다.”
볼 필요 없이 상급 매물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깨끗하게 잘 관리된 언덕과 축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에로가 예서 나오는 우유만 먹는 결벽증 환자거든.”
“아아.”
이에로, 황제의 이름.
하하.
황제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앞에 놓인 우유를 호록 마셨다.
우유는 맛있네.
고소하고.
황제가 여기서 나오는 우유만 마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호록-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목장치고는 조금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겉으로 보기엔 관리도 잘 되어 있고 깨끗하긴 한데.’
겨울이라 짐승들을 밖으로 풀어 놓지 않을 텐데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오랫동안 운영해 온 목장의 일꾼들답지 않게 부산스러웠다.
다들 이런 목장 일을 해 본 적 없는 사람들 같다고 해야 할까?
일꾼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부리는 관리자들 역시 책상에 앉아 펜대나 굴렸을 법하게 생긴 이들이 많아 보였다.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앞쪽으로 바로 보이는 언덕 너머 회색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뭔가 인위적으로 깎아 놓은 것 같은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만 땅이 이상한 거 같은데?”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에 곁에 있던 올가가 고개를 살짝 돌리다 이내 끄덕였다.
“아, 이곳에 얼마 전에 지진이 일어나서 지반이 내려앉았다더군요.”
“지진?”
“네, 자기들 말로는 그렇다고는 했는데…. 아, 제게 조사 의뢰가 들어왔었거든요.”
“무슨 조사?”
“이제 진짜 자연재해인지, 아니면 이능력자나 마력의 힘인지요.”
아아.
황제의 목장.
자연재해라면 다행이지만, 이능력자나 마력이 개입되었다면 황제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근데?”
“하루 전날에 의뢰가 취소되었습니다.”
올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말로는 자기들이 알아보니 단순 지진인 거 같다더군요.”
“뭐, 말도 안…….”
딱히 그들의 말을 믿지는 않는 듯한 반응에 입을 달싹이려다 곧 꾸욱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이 목장에 대해 관심을 더 표현했다간 할아버지의 열정에 기름을 끼얹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자제하자.’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만 나중에 사람을 써서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그래, 지금은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야.
전투력이 바짝 올라 황제와 싸워서라도 내게 이 홀레 목장을 사 줄 작정인 듯 보이는 할아버지를 자제시켜야 했다.
“할부…….”
“저기, 베넷 님이 오십니다.”
하지만 내 부름은 베넷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묻혀 버렸다.
중년의 남자로 변신한 베넷 말이다.
“뭐라?”
“들으신 대로입니다.”
“얼마를 줘도 팔 수 없어?”
“네, 그리 말을 하더군요.”
“왜?”
“팔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베넷의 말에 할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직접적으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황제의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팔고 싶은데, 팔 수 없는…….”
베넷이 엄지와 중지로 안경을 잡아 살짝 밀어 올렸다.
실랑이를 한 건지 조금은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베넷만 중간에서 고생이네.’
베넷이 린달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냥 별말 없이 받을 걸, 괜히 궁금해해서.
괜스레 베넷에게 미안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할아버지의 소매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할부지.”
“오냐.”
“레샤, 꼭 홀레 목장 아니어도 돼요. 구냥 목장에서 소랑, 말이랑, 양이랑 놀고 싶었던 거라. 베넷 말대루 린달 목장도 괜찮구, 아님 다른 데두…….”
“네가 바란 건 홀레가 아니더냐. 내가 에시어의 가주인데 이것 하나 못…….”
“하지만 팔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팔라고 강요하는 건 싫어요. 그건 폭력이잖아요.”
“뭐?”
내 말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타이밍을 놓칠까 싶어 얼른 베넷을 바라보았다.
“베넷! 나 린달 살래. 린달도 봤는데, 린달도 좋아.”
“아기씨가 언제 린달을…. 아!”
눈치 없이 구는 올가의 발을 툭 하고 치며 베넷을 향해 어색하게 웃자-
“알겠습니다.”
베넷 역시 내 뜻을 알아차린 듯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뭐어?”
“갑자기 린달 목장주가 매물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린달 목장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언제?”
“오늘요.”
“뭐?”
할아버지가 노성을 버럭 지르며 내 작고 소중한 테이블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할부지, 아빠 집 테이블은 그렇게 치면 부서져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노기를 숨길 수가 없으신 듯했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은 게냐.”
할아버지의 말에 베넷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그 앞에 종이 하나를 내려놓았다.
“홀레 목장을 중심으로 서쪽의 린달과 북쪽의 가오누 목장까지 모두. 오늘 매물을 거두었습니다.”
“동쪽의 보드오는.”
“그쪽은 홀레에서 매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이어진 베넷의 말에 순간, 눈빛이 달라진 할아버지가 그가 건넨 서류를 넘겨 보았다.
그리고 그 곁에서 언뜻 훔쳐본 서류에는 지진, 매장량, 광산, 동굴, 마력석, 금, 철 등등의 누구나 탐낼 법한 글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마력석의 종류는.”
“그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왜?”
“홀데 쪽에서 마법사들이 거부하고 있기도 한데. 그 날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있어 함부로 구멍을 뚫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
“또한 뚫려 있는 구멍들은 성인 남자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확인이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져 내릴 위기라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근데 마력석이 있다.”
“네.”
“그건 확실하고?”
“네, 새로운 마력석이 묻혀 있는 광산은 확실해 보입니다.”
‘마력석 광산.’
베넷의 말을 곱씹으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 시기에 발견되는 새로운 마력석이 뭐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내가 어릴 때 획기적인 마력석이 발견되긴 했었는데.
이름이.
아!
마그누스!
그게 지금 시기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