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08)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08)화(108/141)
“어떻게 됐어.”
“들어갈 사람을 아직 구하지 못…….”
탕!
뱀눈을 가진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왼쪽 얼굴 옆으로 날아간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아슬아슬하게 얼굴에는 닿지 않고 지나가 정통으로 맞는 건 피했으나, 그 파편까지는 아니었다.
목덜미부터 왼쪽 뺨까지.
그러잖아도 험상궂은 얼굴에 박힌 유리 조각 끝에서 핏물이 배어 나와 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브래드 홀데 남작의 표정에선 남자를 향한 죄책감이나 안쓰러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그거 하나를 처리 못 해서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
“송구합니다.”
“내가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어, 안 했어? 이러다 폐하께서 아시는 날엔 우리 모두 다 끝이야!”
책상을 거칠게 내려친 홀데 남작이 사납게 사내를 쏘아보았다.
살거죽만 남은 듯 바짝 말라 예민한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남작의 얼굴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듣기 싫어!”
남작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대체 뭐가 문제야? 디아브리아에 거지새끼들은 널리고 깔렸잖아! 대충 데려와 처넣으면 될 거 아니야!”
“동굴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구멍에 맞추면 너무 작고 어려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큰 아이를 욱여넣으면 지반이 흔들려서 무너질 수도 있어서…….”
“무너지면 다시 파내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야?”
흘러내린 눈꺼풀 탓에 눈동자를 제대로 볼 수 없는 홀데 남작의 얼굴과 마주한 사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얼굴을 보고 ‘그럼 아이들이 죽습니다.’라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남작님, 지금이라도 마법사를 불러 확인케 하심이…….”
“닥쳐. 누구 죽일 일 있어?”
홀데 남작이 사내를 쏘아보며 말했다.
“마법사 대부분이 황실 소속인데 내가 그들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겨.”
“허면 용병이라도.”
“그 사기꾼 새끼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저 안에 마력석이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괜히 용병과 마법사들을 끌어들였다간 뒤통수 맞을 게 뻔한 일이었다.
‘안 봐도 훤하지.’
작은 구멍 사이로 흘러나온 토사에 섞여 있던 손바닥만 한 마력석에 현재 통용되는 마력석인 엘리멘투의 다섯 배에 달하는 마력이 들어 있다는데.
그걸 그놈들이 알았다간 개떼처럼 달려들어 뜯어먹을 게 분명했다.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어떻게 온 기회인데.’
홀데 남작이 손톱 끝을 물어뜯었다.
한데 그 매장량을 확인하기 전부터 일이 이렇게 틀어지니.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짜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나 황제의 눈을 피해 진행하려니 초조해 미칠 지경이건만.
젠장.
“그래서 한 명도 못 했어?”
“두 명 정도 들어갔다… 나오며 토사에 깔려 죽었습니다.”
“마력석은.”
말끝을 살짝 뭉개는 사내의 목소리에 홀데 남작이 고개를 들었다.
“가지고 나온 건 전혀 없었어?”
“…….”
홀데 남작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그를 빤히 응시했다.
애들이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힌 홀데 남작의 물음에 사내가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돌덩이 몇 개를 마력석인 줄 알고 가지고 나왔더군요. 대신 흘러나온 토사에는 몇 개 섞여 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것들.”
“…….”
“마력석이랑 돌도 구분 못 하는 천치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혀를 끌끌 찬 홀데 남작이 짜증스러운 듯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휑한 정수리에 땀이 나는 듯 반질반질 윤이 났다. 손바닥으로 땀을 훔치듯 쓸어 넘긴 그가 길게 한숨을 몰아쉬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엘입니다, 남작님.”
“잠시 기다려.”
홀데 남작이 밖을 향해 답하며, 뱀눈을 가진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쓸데없는 감정놀음에 빠져 있지 말고, 애들이나 구해. 없으면 잡아라도 와. 일주일 줄 테니. 그 안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알아와.”
“예.”
“일주일 후에도 성과가 없으면.”
협박 같은 홀데 남작의 말에 사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눈꺼풀에 덮인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그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시선에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곤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이어 마른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왜.”
“오늘 목장을 팔라는 사내가 찾아왔었습니다.”
“목장을 팔아?”
“네.”
“누가?”
“모르겠습니다. 웬 중년의 남자였는데, 자신의 딸이 목장을 갖고 싶어 한다고 혹시 팔 의향이 있는지를 묻더군요.”
“별 미친.”
홀데 남작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걸 얼마에 팔 줄 알고.
코웃음을 친 그가 턱짓했다.
“그런 잡상인들 들이지 마.”
“알겠습니다. 근데…….”
“또 뭐?”
서류를 내려다보던 홀데 남작이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스벤 백작 쪽에서도 목장에 관심을 보이고…….”
“뭐어?”
순간 홀데 남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프레도 스벤?”
“네.”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발을 구른 남작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왜!”
“그게 모르겠습니다.”
“젠장! 젠장! 어떻게?”
아니, 어디서부터 냄새를 맡은 거지?
‘지반 조사를 맡겼던 일 때문인가.’
황실쪽에 요청을 했으니, 스벤 백작이 알게 되는 건 당연했다.
요즘 궁 내부의 실세는 스벤 백작이었고, 모든 정보가 그에게로 흘러 들어갈 테니까.
해서 중간에 취소하지 않았던가!
거기다 목장에서 발견된 동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은 대부분 내쫓은 상태였고, 깊이 아는 이들은 이미 돈으로 단단히 입막음해 두었다.
‘한데, 어디서 새어 나간 거지? 아니, 새어 나갔다 해도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없는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어야 하려나.
그러면 지금 제 앞에 놓인 건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제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그곳에 마력석 광산이 있었다고, 확실해지면 보고하려 미뤄 두었다고 말이다.
‘젠장.’
하지만 그러면 평생을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뒷방으로 밀려나 황제의 뒤나 닦아 주는 신세로.
‘오랫동안 고생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젠 좀 쉬시지요.’
‘폐하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저를 몰아내던 테무스를 떠올린 홀데 남작이 이를 바득 갈았다.
‘내가 황제를 모신 것이 몇 년인데. 고작 그 어린것에게 밀려나 예서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홀데 남작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생각을 해야 해. 이걸 빼앗기지 않을 방법을.’
하지만 스벤 백작 쪽에서 냄새를 맡았다면, 테무아나 황후 쪽에서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냥 넘어갈 방법이 있나.’
홀데 남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주먹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그래, 이걸 빼앗기지 않는 방법은 서둘러 털어 버리고 이 나라를 뜨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 목장을 은밀히 거래해 줄 상단을 찾던가.’
생각에 골몰한 홀데의 옆에서 마른침을 꼴깍 삼킨 엘이 용기를 내듯 입술을 달싹였다.
“한데 남작님.”
“또 뭐.”
거슬리는 엘의 목소리에 홀데 남작이 사납게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그.”
다시금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남작의 가까이로 다가와 그의 귀에 작게 무어라 속삭였다.
엘의 말이 이어질수록 잔뜩 굳어져 있던 표정이 풀리고, 이어 화색까지 돌았다.
“참이더냐.”
“예.”
* * *
밤새 고민에 고민을 더해 보아도 난 솔직히 홀데 목장을 살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애당초 목장이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쟈이든이랑 리안이 여기서 일을 한다니까 제대로 된 급여나 챙겨 주고, 조금은 편하게 돈을 벌게끔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꼭 홀데 목장일 이유는 없었기에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난 저게 필요 없다고 말을 하려고 했다.
차라리 다른 걸 사 달라고 말이다.
내가 사도 되고.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그 목장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한데 밤새 마음에 달라져 버렸다.
저 홀데 목장을 사야겠다고.
반드시.
꼭.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만에 하나 사지 못한다 해도, 그들에게 지옥문이라도 열어서 보여 주고 싶었다.
해서-
“베넷.”
아침 일찍 아니, 새벽같이 일어나 베넷부터 불러들였다.
“죽은 아이 있을 거야.”
“…….”
“한두 명 아닐 거야.”
“…….”
“아마도 고아나 디아브리아에 버려진 부랑아들일 거야. 나이는 10살 아래.”
“…….”
“그 아이들을 찾아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걸 황제가 알았든, 몰랐든 방관한 책임을 물어.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하십시오.”
“폐광 직전의 금광들을 좀 알아봐 줘.”
마그누스는 내가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