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1)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1)화(11/141)
“이능 부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작용?”
베넷을 향해 몸을 돌린 닥터 폴이 외눈안경을 벗어 안경닦이로 닦았다.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이능을 어린 나이에 발현하게 되면 피를 흘리고, 오랜 시간 가사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아버님께요.”
“아.”
돌아가신 폴의 아버지, 에멧도 오랜 시간 에시어의 가신이었던 걸 떠올린 베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예, 샤리에 님께서도 6살의 나이에 이렇게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걸로 봐서는 레티시아 님께서도 너무 많은 이능을 쓰신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
“몸에 축적된 피로가 터졌겠지요. 무슨 이능을 타고 태어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대책 없이 쓰시면 오래 못 버티실 겁니다.”
“다른 이능력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인가? 이능력에 부작용이 있다는 소리를 난 지금 처음 듣는데.”
외눈 안경을 올려 끼운 폴이 베넷을 돌아보았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능력자가 제국 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그리고 몸에 상처도 상당하더군요. 발육 상태도 6살이라고 전혀 보이질 않기도 하고요.”
무슨 일이 있었을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 하는 폴의 냉정한 말에 입을 벌린 베넷이 입매를 굳혔다.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건가.
‘아무리 그래도 가주님도 계시고, 샤리에 님도 계시는데.’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영애의 절박함에 베넷이 고개를 돌리자-
“부관님.”
밖에 나가 있던 코멧이 들어와 작게 속삭였다.
“페일런이 돌아왔습니다.”
“나가 보셔도 됩니다. 여긴 제가 있죠.”
폴이 외눈안경을 조정하듯 매만지며 베넷을 돌아보았다.
“하녀들만 새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아.”
하녀들.
잠시 잊고 있던 존재들에 베넷이 코멧을 돌아보았다.
“그 하녀들은 어디 있지?”
“1층 응접실에 모아 두었습니다.”
일단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베넷이 몸을 돌리자-
“아기씨, 정신이 드십니까.”
베넷을 지나쳐 침대 쪽으로 다가선 폴의 목소리와 함께 감겨 있던 레티시아의 눈꺼풀이 살짝 들려 올라갔다.
“……고파.”
“예?”
“배고파……요.”
작고 흐릿하게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 * *
헤일을 보고 쓰러졌는데, 일어나 보니 내 방이었다.
그리고 폴과 베넷, 그리고 할아버지의 부관 몇몇까지 내 작은 방에 꽉 차게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부담스러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일단 스프로 속을 좀 달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스프가 다섯 종류나 올라왔다.
여기 주방이 있긴 했구나.
거기다 음식 냄새를 맡고 나니 배가 조금 더 고파진 것도 사실이었다.
해서 수저를 들자, 그 수저가 토르 망치라도 되는 양 사람들의 시선이 흥미롭게 내 손과 수저를 번갈아 보았다.
“제가 먹여 드릴까요.”
“레샤 아기 아닌데요.”
“알고 있습니다만.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질 않아 그런지, 스프를 다 흘리고 계셔서요.”
흔들흔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수저가 자꾸 아래로 휘어졌다.
이대로라면 이불과 옷이 죄다 엉망이 될 게 뻔했다.
“알겠어.”
이런 일로 굳이 고집부릴 필요 없지, 싶어 쉽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베넷 쪽으로 밀어 넣자, 그가 웃으며 그릇과 수저를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정신을 잃으신 겁니까.”
“응.”
추룹 베넷이 한 술 떠서 입에 대 주는 스프를 한 입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한 크림 맛이 혀에 닿아 확 퍼지는 게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일은 없으셨구요.”
“없었어.”
“집무실에서 나와서 바로 별채로 오신 겁니까.”
베넷의 물음에 그를 빤히 보며 눈을 찡긋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의도는 윙크였는데, 양쪽 눈이 찡끗 다 감겼다 떠졌다.
그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사내들의 표정이 조금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나 좀 귀여운가?
나중에 할아버지 앞에서 써 먹어 볼까, 하는 마음을 담은 채 베넷이 주는 스프를 한 입 더 머금었다.
맛있다.
“다른 건 기억나는 거 없으십니까.”
뭔가 의도가 느껴지는 베넷의 물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혹시 내가 해 줘야 하는 말이 있어?”
“……아뇨.”
내 물음에 고개를 저은 베넷이 그릇에 수저를 넣은 채,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무릎과 몸에 난 상처가 최근에 생긴 것이라 하셔서요. 손목의 자국은 좀 된 것이고요.”
아아.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었겠으나, 폴이 몸을 살피는 바람에 들통이 난 모양이었다.
‘어찌한다.’
지금 베넷에게 이른다면 챈들러는 아마도 할아버지께 불려 가 혼이 날 거다.
하지만 아마도 동생과 장난을 치다 조금 다치게 한 것.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챈들러와 제이슨은 할아버지가 귀애해 마지않는 직계였고.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넘어졌어.”
“그러셨습니까.”
“응, 책이 너무 무거웠어.”
“아, 그러잖아도 하녀들은 왜 데려오지 않으셨습니까.”
내 손목을 흘끗 본 베넷이 함정을 판 채 나를 빤히 보았다.
아리나랑 린지의 잘못을 말해 달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것도 지금 아리나와 린지를 내보낸다 한들 둘째 숙모는 또 비슷한 아이를 뽑아 별채로 보낼 거다.
그나마 아리나와 린지는 내가 어느 정도 알고나 있지.
전혀 모르는 애가 오면 피곤해진다.
“레샤, 아기 아니니까.”
해서 귀여움으로 그냥 넘기는 편이 나았다.
그 둘에 대한 처분도 내 몫이었으니까.
“그리고 데려다는 줬어. 돌아갈 때는 내가 혼자 간다고 그랬어. 별채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일할 사람이 없어. 그래서 아리나랑 린지 바빠.”
“……그러셨군요.”
베넷이 웃으며 스프 그릇을 들었다.
웃는 표정이 뭔가 납득하지 못한 듯한 얼굴이었으나, 더는 파고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뜻을 알아들었을 테니까.
“근데 나 왜 아파?”
“아, 이능력이 갑자기 발현된 것 때문인 듯합니다.”
“응?”
나한테 이능이 진짜 있다고?
그냥 챈들러한테 당한 게 억울한데 어떻게 풀 수가 없으니까 복장이 터져 코피가 나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이능력이 있어?”
“그러신 듯합니다.”
전생에 없었던 게 갑자기 생길 수가 있나?
이능이라는 건 원래 타고 태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설마, 그 전생에서 마차에 부딪혀 머리를 다쳤던 순간 떠오른 것이 이능이었나?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래, 만약에 그렇다면 말이 되지.
이능 발현이 된 상태로 회귀했으니까.
그 이능이 이어진 것일 터.
어쨌든 이능이라는 것도 정신적인 거 아니겠는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니까.
‘흠.’
이런 이능력이 있는지,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회귀에 대한 부분도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눈앞에 수저가 보였다.
“아기씨.”
“아아.”
오물오물.
베넷이 웃으며 건네는 스프가 유달리 맛이 있었다.
* * *
하암-.
“레샤 졸린데.”
배가 부르니 잠이 솔솔 왔다.
“하녀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리나랑 린지?”
“아니요.”
베넷이 레티시아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레티시아가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베넷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착해.”
“…….”
“너무 많이 혼내지는 말아.”
“……알겠습니다.”
침대에 레티시아의 뒷머리를 받쳐 누인 베넷이 폴을 돌아보았다.
“제가 있죠.”
고롱고롱 숨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베넷이 작은 방을 빠져나가자, 문앞에 대기하고 있던 페일런이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걸으면서 듣지.”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은행법 개정 논의가 꽤 많이 진척되어 있더군요. 특히나 에시어의, 소유주 수익 배분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문제 될 부분은.”
“그것이.”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베넷의 뒤에 있던 페일런이 말끝을 흐렸다. 그 뭉개는 기척에 베넷이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돌리자, 페일런이 길게 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안드레아 님과 윈드런 님의 계좌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며 개정을 요구하면 빠져나갈 논리가 없어 보입니다.”
“…….”
“특히 안드레아 님께서 이번 대행 직함을 달고 난 이후 문제가 될 거래가 잦았던지라…….”
페일런의 조심스러운 말에 베넷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부산스럽게 움직인다는 보고를 듣긴 했으나.
‘멍청한 것들.’
“은행법 개정 논의까지 남은 시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보름입니다.”
“꼬투리 잡힐 만한 내역 다 뽑아 와.”
“예, 부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