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16)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16)화(116/141)
“단장님.”
멀찍이 보이는 코루누의 좁은 협곡을 바라보던 샤리에가 부관 켈런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전투복에는 흙먼지와 어디서 묻어 왔는지 모를 핏물이 덕지덕지 발려 있었지만, 샤리에의 외모는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검기를 휘두를 때의 모습은 더더욱.
“켈런.”
그런 샤리에의 모습을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던 켈런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샤리에가 용건을 말하라는 듯한 눈빛으로 켈런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황도로 보낸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늦었군.”
“네.”
누군가는 황도에서 리비스까지인데 보름이면 빨리 돌아온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샤리에의 기준에서는 아니었다.
황도로 사람을 보낸 것과 펠루아나의 공격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전쟁은 그의 손에서 이미 끝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서 확인하는 편이 더 빨랐겠어.”
“아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샤리에의 나직한 질책에 어색하게 웃은 켈런이 막사 안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래도 알아 온 정보는 그만큼 빈틈이 없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켈런의 대답에 샤리에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브렌입니다.”
“시작해.”
가벼운 인사말조차 걷어 내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지시에 브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에 1급 마물인 익룡 와스투스가 날뛴다.”
브렌의 설명 끝에 눈썹 위쪽을 긁은 샤리에가 고개를 들었다.
“네, 그걸 이유로 단장님의 황도 진입을 막으려는 것 같습니다.”
“흠.”
에시어의 가주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게 하면서도 가문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저를 끌어들였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 수작들을 다 알면서도 출병한 것은 저는 기사였고, 제국에 충성하는 자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 사명감이라 부르는 고집 때문에 제 아이의 눈에서 얼만큼의 눈물을 흘리게 했는데.
“황도로 들어오지 말라….”
이대로 제가 귀환하지 않고 북부로 가 버리면.
‘레티시아는 또 혼자 남게 된다.’
그래, 이전에 이런 명이 떨어졌다면, 그대로 따랐을 거다.
하지만 제 아이의 상태를 보고 난 지금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항명을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그리며 고개를 들자, 켈런이 브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가 언급한 거지?”
“아, 그게.”
“2황자 카일과 네투아 공작가겠지.”
샤리에가 브렌 대신 대꾸하며 주먹으로 책상을 툭툭 내리쳤다.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스벤 백작이 먼저 언급하고, 카일 전하께서 말을 받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에시어를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하는 자들.
신흥 세력인 스벤 백작은 에시어를 견제하고 있었고, 이는 네투아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 에시어와 에시어의 가주인 제 아비는 그들을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샤리에가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이내 생각을 털어 내듯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제 몫이 아니었으니.
“근데 내가 알아 오라고 한 것은 그것이 아닐 텐데.”
일단은 레티시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
샤리에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수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들었다.
“아기씨께서는 오네에서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4번씩 리리아나 아기씨와 수업을 받고 계시고, 선생은 올가와 키에…….”
“그리고?”
“식사도 잘…….”
“그리고.”
“건강…….”
“…….”
자신감 없이 기어 들어가는 말끝에 샤리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무엇을 묻는 건지 그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니 할 수가 없는 브렌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렀다.
어린 영애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오라 하셔서 며칠 내내 살펴보았지만 딱히 별다른 것이 없었던…….
“아!”
그 순간, 떠오른 레티시아의 최근 관심사에 브렌이 고개를 들었다.
“옆집에 아기씨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과의 사이가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아기씨께서는 친해지고 싶어서 자주 찾아가시는데, 그 리안이라는 아이가 특히나 아기씨께 쌀쌀맞게 굴더군요. 그 때문에 아기씨께서 옆집에 놀러 가셨다가 울고 돌아…….”
“울어?”
그 순간, 튀어나온 샤리에의 낮은 목소리에 켈런이 이마를 짚었다.
‘저 멍청이.’
하지만 그 멍청이는 지금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하. 저도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툭하면 옆집 아이랑 티격태격하고, 잘 놀다가도 울고, 다시 화해하고 그럽니다. 아마도 아기씨께서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 아니라, 그 리안이라는 새끼가 나쁜 새끼네요. 예.”
껄껄 웃던 브렌이 이내 저를 빤히 보는 샤리에의 살벌한 눈동자에 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리안이라는 아이를 두둔해서는 안 된다는 촉이 온 탓이었다.
하지만 샤리에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고, 앞에 선 브렌은 어쩐지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어서 지금 이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야 했다.
‘아기씨가 좋아했던 거, 아기씨가 갖고 싶어 하신 거…….’
“아!”
머릿속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다 마침내 떠오른 정보 하나.
“아기씨께서 목장을 갖고 싶어 하십니다!”
“목장?”
“네! 양이랑 말이랑 소랑 놀고 싶다고, 에시어 공작님께 목장을 사 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샀나?”
샤리에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살짝 불거지는 걸 발견한 켈런이 다급히 브렌을 돌아보았다.
‘아직이라고 해, 아직 못 샀다고 해.’
그래야 지금 상황에서 순조롭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켈런이 양손을 꼭 모아 잡자-
“아직이었습니다. 아기씨께서 갖고 싶다고 한 곳이 홀데 목장인가 그런데, 거기가 황제 폐하의 측근이었던 시종장의 소유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팔지 않겠다고 했다더군요. 소문에는 그 목장이 황제 폐하의 것이라 못 파는 것이라는…….”
“켈런.”
“예, 단장.”
“황궁으로 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전서구 준비해.”
샤리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시하자 켈런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삼켜 누른 것이었다.
아무래도 물으나 마나인 이유 때문일 것이 뻔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바로 책상에 앉아 서한을 작성하는 샤리에의 옆모습에 고개를 푹 숙였다 든 켈런이 브렌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제대로 된 포상은 또 물 건너가겠구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밖으로 나온 켈런이 문 앞의 병사에게 전서구를 가져오라 이르곤 브렌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찌 됐든 고생했다.”
“예, 근데 단장도 어지간히 딸바보이신 모양입니다.”
히죽 웃으며 건네는 브렌의 말에 켈런이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 유일한 따님이시니.”
“부관님께서는 단장님 오래 모시셨죠?”
수하의 물음에 켈런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한 사이였으니까.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자, 브렌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단장님 부인도 보셨습니까? 엄청난 미인이시겠죠? 이번에 제가 아기씨를 직접 뵙고 나니, 세상 사람들이 전부 오징어처럼 보이더라고요. 워낙 사랑스러우셔서요.”
레티시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듯 브렌이 꿈속을 거니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켈런에게 물었다.
“처음 딱 보자마자 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았다니까요. 단장님과는 많이 닮지 않으셨으니, 아마도 그 부인을 닮으셨겠지요?”
“그럴 거다.”
그 샤리에의 마음을 녹이고, 시선을 빼앗아 간 유일한 여인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언제나 아름다웠고, 모두가 그 아름다움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도 모르고.’
지금도 생생한 아리엘 님의 모습에 길게 숨을 몰아쉰 켈런이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우셨지, 아주.”
쓰게 웃은 켈런이 브렌의 어깨를 움켜쥔 채 숨을 후, 하고 뱉으며 마음속에 들어찬 답답함과 심란함을 털어 냈다.
“고생했으니 오늘은 이만 가서…….”
하지만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 * *
그 시각.
“황제 폐하가 쓰러져써?”
아빠의 승전보에 이어 황제의 병환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네. 다들 쉬쉬하고는 있으나, 황궁의들이 죄다 불려 갔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베넷의 정보는 그 어떤 것보다 정확했으니, 황제가 쓰러진 건 아마 사실일 거다.
‘이쯤이었구나.’
전생에서 황자들의 난이 일어난 시점이.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훗날 사람들이 그 황자의 난을 두고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황제가 병환으로 쓰러진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이미 장성한 1, 2황자들은 피를 토하고 쓰러진 황제 폐하가 당연히 죽을 거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황제는 죽지 않고 제 자리를 노리는 황자들의 개싸움을 모두 지켜보았고, 그 결과는….
‘황제로 하여금 칼리안이라는 대안을 찾게 만들었지.’
그리고 그 칼리안이라는 존재는 끝내 황제 이에로가 마지막 끈처럼 붙들고 있던 아들들을 버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