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19)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19)화(119/141)
쟈이든의 첫 번째 검술 수업은 리안의 집 뒷마당에서 이루어졌다.
“체력은 좋네.”
기초 체력을 확인할 작정인 듯, 쟈이든을 이리저리 굴리던 피어스가 나무 검 끝을 바닥에 꽂듯이 세웠다.
“체력은 아주 좋아.”
하지만 체력이 좋다는 피어스의 말과는 달리 쟈이든은 일할 때보다 더 열을 펄펄 내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흙먼지가 땀에 뒤엉켜 달라붙는 건 상관도 없다는 듯 가슴을 위로 들썩인 쟈이든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헉런 건 허, 못 들었는데허여.”
“나도 이렇게까지 체력만 좋다는 건 못 들었어.”
피어스가 자비라고는 없는 표정으로 쟈이든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쟈이든과는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피어스가 체격 때문인지 월등히 어른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피어스는 마검사이니, 그 능력 차이는 말해 뭐 할까.
“일어나.”
“저, 그냥…….”
“안 한다고?”
말을 가로챈 피어스의 물음에 쟈이든이 그를 빤히 올려다, 아니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살기가 넘실거리겠다 싶은 그의 시선에 피어스가 피식 웃었다.
“그만두겠다는 말, 아기씨한테 말씀드려도 되는 거야?”
“…….”
“훈련 하루, 그것도 몸풀기하다 때려치우겠다고 했다고?”
피어스의 나직한 협박에 그를 사납게 노려보던 쟈이든이 욕설을 짓씹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가요! 해요, 해. 다아 합시다.”
거칠게 소매를 걷어 올리는 쟈이든의 말에 시익 웃은 피어스가 가볍게 턱짓했다.
“100바퀴 더.”
“…….”
그 말에 눈으로 욕을 하듯 그를 빤히 보던 쟈이든이 알겠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래요, 어디 다 해 보십시다.”
그러곤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합시다!”
그러곤 몸을 돌렸다.
“죽어 보자.”
“전력으로 달려.”
“아오씨.”
슬렁슬렁 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뒤에서 날아드는 잔소리에 쟈이든이 성질을 팍 부리며 속도를 높였다.
좁은 뒷마당인데도 빠르게 100바퀴, 이미 100바퀴를 돌고 난 이후의 추가 훈련은 자비라고는 없었다. 속도가 아주 조금만 늦춰져도 피어스의 비아냥이 날아들었고, 그럴 때마다 쟈이든의 입에선 욕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피어스는 느긋했다.
‘나보다는 낫네.’
저는 샤리에에게 붙잡혀서 처음 연무장 서른 바퀴 돌았을 때, 그의 멱살을 잡았는데.
‘이렇게 괴롭힐 거면 차라리 죽여. 씨X.’
‘얼른 돌아.’
그때 샤리에 님이 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이랬을까.
그 어떤 타격도 없이, 그저 가소롭다는 생각만 드는데.
과거를 저를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온 피어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당을 도는 쟈이든의 움직임을 좇아 시선을 돌렸다.
그때, 유리창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쟈이든이 앞서 100바퀴를 돌았을 때도 비슷한 인기척이 나더니만.
‘혼자 하는 모양이지?’
그러면서도 여전히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안쪽의 기척에 피어스가 팔짱을 꼈다.
‘나오기만 하면, 내가 아주 자알- 가르쳐 줄 수 있는데.’
며칠 전 아기씨가 흘린 눈물의 수십 배를 쏙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잘, 아주 극진히 말이다.
피어스가 안쪽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개고생도 같이하면 한결 나은데. 아쉽겠다, 쟈이든.”
“꺼져!”
피어스의 말에 쟈이든이 팩 소리를 내질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피어스가 팔짱을 낀 채 몸을 돌렸다.
“웩.”
악으로 깡으로 100바퀴를 전력 질주하고 오리걸음까지 10바퀴를 돌고 돌아온 쟈이든이 피어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입에선 침이, 턱에선 땀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쟈이든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하, 더는 모 대. 씨X.”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은 근육의 경련을 느낀 쟈이든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주인님한테 이르려면 일러. 주인님도 나 이렇게까지 굴리는 건 아냐?”
“모르실걸?”
“와.”
‘개새X’라고 낮게 욕설을 짓씹은 쟈이든이 고개와 손을 동시에 내저었다.
“못 해, 못 해.”
하지만 그런 쟈이든의 말을 무시한 피어스가 누워 있는 그의 옆에 목검을 툭 하고 내려놓았다.
“체력 좋은 건 확인했으니까. 잡아 봐.”
“하.”
쟈이든이 피어스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대충 다룰 줄 안다고.”
투니아에서는 어릴 때부터 전사로 기를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구분하기 위해 검을 가르쳤다. 그리고 쟈이든은 비록 이능이나 마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전사로 길러지는 쪽에 속한 자였다.
그러니 기본적인 체력과 검술은 배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 그러니까 잡으라고.”
들을 생각조차 없는 듯 목검 쪽으로 턱짓을 한 피어스가 몸을 돌렸다.
한쪽 울타리에 세워 놓은 다른 목검을 가지러 가는 듯한 뒷모습에 쟈이든이 한쪽 무릎을 세워 일어나 검을 집었다.
‘내가 보여 준다.’
투니아 전사들의 위대함을!
이를 바득 갈며 그의 등 뒤에서 목검을 휘둘렀다.
“!”
하지만 야비하게 뒤에서, 그것도 전력으로 달려든 것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가볍게 검을 피한 피어스가 집어 든 목검으로 쟈이든의 검을 날렸다.
같은 목검으로 내리쳤다고 하기엔 엄청난 힘의 차이에 쟈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와, 쩌네?”
방금 전까지 짜증을 내던 것이 무색하게 쟈이든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피어스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세잖아.”
“…….”
“아기씨 뒤나 졸졸 쫓아다니길래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금세 표정이 달라진 쟈이든의 눈동자에 피어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져와.”
“어, 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쟈이든이 즐거운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알 수 없는 감정 변화에 순간 미친놈인가 싶었으나-
“내가 곧 꺾어 줄게.”
무료한 일상에 새로이 생긴 목표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를 악물고 웃는 걸 보니.
“그래, 얼마든지.”
그걸로 일단은 피어스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어들인 쟈이든이 검을 잡았다. 여전히 집 안에서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쟈이든이 욕을 한 서른 번쯤 더 뱉고, 수업을 빙자한 체력 훈련이 다 끝날 때까지 말이다.
* * *
“아직두?”
“네.”
고집하고는.
벌써 쟈이든을 가르친 지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리안은 집 안에서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쟈이든은 뭐래?”
“수업 마치고 들어가면, 그 아이도 땀을 뻘뻘 흘리고는 있다더군요.”
“안에서 몰래 따라 하는 건가?”
“아마도요.”
“흠.”
그러면 잘못된 자세를 익힐 가능성이 많아지는데.
어릴 때 자리 잡은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처음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쟈이든 배우는 거 보고는 슬쩍 따라붙을 줄 알았더니만.
예상했던 것보다 굳건한 리안의 똥고집에 팔짱을 꼈다.
이 세계에 오고 난 뒤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리안이었다.
대체 그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팔짱을 낀 채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소설에서도 그는 매우 심각한 고구마 캐릭터였다.
지독한 원리원칙주의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미.
정의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던.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성격을 떠올려 보면, 지금 리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성격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질 않나.
‘쓸데없는 고집이지.’
혀를 끌끌 차며 일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해써, 피어스.”
“네.”
“오늘은 쉬는 거야?”
“아, 오늘은 다른 수업을 받는다더군요.”
“아아.”
베넷이 찾아본다더니,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네.
입 무겁고, 적당히 잘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긴 하지.
언뜻 그의 부관을 입에 올리긴 했는데.
페일런이려나? 코멧도 괜찮던데.
누가 왔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근 한 달간 쟈이든을 못 본 것도 신경 쓰이고.
벌목장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일하는 건 어렵지 않은지,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도.
흠.
가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그래!
“구, 구경 가야겠다.”
근데 말은 왜 더듬는가.
순간 삐끗한 목소리에 흘끗 피어스의 눈치를 살폈다만,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에 괜히 민망해져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곤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가쟈.”
그러곤 총총 걸어 내려가 옆집 문을 두드렸다.
저번에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 난리가 났으니, 오늘은 당당하게 앞문으로 들어가리라.
“쟈이든!”
수업은 1층에서 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못 들은 척하면 쟈이든도 가만두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다시 문을 콩콩 두드리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드디어 앞문으로 들어가 보는구나!
열릴 문을 생각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열린 문틈 사이로 손을 흔들 준비를 마친 내 시야에 보인 건 웬 남자의 배였다.
‘배?’
리안과 쟈이든의 키를 생각했을 때 내 시야에서 어깨 정도 보여야 적당한 높이인데 싶어 순간 고개를 확 치켜들자-
“아기씨.”
“베넷?”
익숙한 얼굴로 엷게 웃은 베넷이 문을 활짝 열며 나를 맞이했다.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