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22)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22)화(122/141)
궁내부에서 확인한 서한의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그간 필요한 것이 없어서 사양했던 전공(戰功)에 대한 상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전공의 내용은 당연하게도-
“홀데 목장을 달라 청했다?”
홀데 목장이었다.
“예. 폐하께서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 말을 하라 하셨다더군요. 황좌만 제외하고 뭐든 주시겠다구요.”
‘하.’
농 섞인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황제가 이런 내용을 샤리에와 나누었을 줄은 상상도 하질 못했었다.
궁내부 장관인 저도 모르는 내용을.
어딘가 모를 열패감에 목덜미가 뜨끈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제가 취임하기 전의 일일 수도 있겠으나, 내용만 들어서는 그렇게 미뤄 둔 전공이 한두 개가 아닌 듯했다.
하긴 샤리에가 출병한 전쟁이 적지 않았으니.
거기다 북부의 타루스를 틀어막고 있는 공도 상당했다.
아마도 이번 전쟁에서 펠루아나의 왕까지 잡아 버리면, 그 전공은 또 어마어마하게 쌓일 터.
한데 홀데 목장이라.
“그래서 폐하께서는.”
“주겠다, 하셨답니다.”
“하.”
홀데 남작이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예까지 들리는 듯했다.
고작 어린 딸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전장에서 황제에게 전서구를 날리다니.
저도 딸이 있었다. 예쁘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어 샤리에의 감정을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안드레아에게 듣기론 샤리에는 딸과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는다 했다.
오랜 시간 딸과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인가 싶다가도 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황제에게 전공에 대한 상을 이런 식으로 받아 내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것도 켜켜이 쌓아 놓은 그 전공을.
‘멍청이가 아니고서는 더 좋은 게 많이 있을 텐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스벤 백작이 미간에 인상을 드리운 채 고개를 들었다.
“디웨스의 소유권은 그럼.”
마력석은 원래 처음 발견한 자의 몫이었다. 그자가 황실에 신고하면, 황실에서 적당히 값을 쳐 주거나 그 광산을 사 들이는 방향이었다.
‘그랬으니, 홀데 그 늙은 너구리 같은 영감이 디웨스의 존재를 밝히지 않으려 애를 썼던 것이지.’
그래야 팔아 버리기 수월할 테니까.
그저 ‘여기 엄청난 게 있긴 한 거 같소.’라고 언질을 주고는 돈만 두둑이 챙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홀데 목장에 디웨스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자자했다.
그럼-
이 디웨스는 어찌 될까.
애당초 황제의 것이고, 이제는 에시어의 것이 될 광산에서 발견된 디웨스의 향방을 생각하던 스벤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샤리에가 제 딸에 대한 정이 깊다 했지?”
“예.”
‘레티시아 에시어.’
황제가 샤리에의 북부행을 막았던 그 날을 곱씹던 스벤 백작이 입매를 문질렀다.
“허면 그자가 스스로 타루스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느냐.”
“황명의 떨어지면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딸아이에 대한 정도 정이지만 워낙 충의가 깊은 사람이라.”
“그렇지.”
샤리에 에시어는 제 가문 사람들과 달리 충의와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생아라는 게 문제가 되긴 했으나, 워낙 자체적인 능력이 출중했고 그가 검기를 두 개나 갖춘 소드마스터라는 점에서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가 리비스에서 전공을 세우고 펠루나아 왕까지 잡아 끝장을 보고 돌아오겠다는 샤리에의 북부행을 막았다.
이건, 솔직히 큰일이었다.
제 예민한 촉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에시어의 권력 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그리고 그 한복판에 샤리에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폐하께서 막으셨을 때, 예상했어야 했는데.’
스벤 백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에시어를 극렬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아무리 전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샤리에를 두둔했다면 분명 무언가 다른 사인을 받은 것이리라.
‘네투아가 너무 설칠 것을 염려하신 건가.’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라고.
에시어의 가주가 일선에서 물러난 순간, 네투아가 야금야금 황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걸 황제가 몰랐을 리 없었다.
거기다 황제가 쓰러졌다고는 하나 정신도 돌아왔고, 딱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토혈을 했으니 얼마 못 갈 것 같다고 다들 추측하고 있는 것뿐.
그런 상황에서 샤리에가 에시어의 가주 혹은 후계자가 된다면.
‘안 될 말이지.’
스벤 백작이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샤리에가 가주가 된다면, 에시어는 철저히 중립의 위치에 설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을 테지.
그러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안드레아가 가주가 되는 편이 저나 2황자 전하, 네투아 공작가까지 모두가 편안해지는 길이었다.
‘아니, 반드시 안드레아 에시어가 가주가 되어야만 해.’
제가 들인 공이 얼마인데.
여기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카일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제가 한 노력이 얼마인데.
이걸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절대 놓을 수 없는 권력의 끈에 스벤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궁내부에 일러 황제께서 승인하시면, 바로 넘길 수 있도록 준비하라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길게 늘인 스벤 백작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고개를 들었다.
“안드레아 에시어가 자주 들르는 클럽을 알아 와.”
스벤 백작의 지시에 그의 수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겠다는 듯한 수하의 표정에 스벤 백작이 손을 내저었다.
* * *
“뭐어?”
“예.”
놀라 뒤집어질 것 같은 내 표정에 베넷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샤리에 님이 목장을 달라고 하셨다는 군요.”
그 말은 사실이라는 소리였다.
아이구, 두야.
아이구, 아부지.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것보다 대체 누가 아빠한테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거야!
미치겠네.
제가 했던 말의 나비 효과가 너무 엄청났다.
그래, 목장을 갖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리안이나 쟈이든 때문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너무 쉽게 쓰고 버린, 그들의 무고한 죽음을 방관한 목장주 홀데 남작을 엿- 아니 골탕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절대로 이득을 보지 못할 방법으로 골탕을 먹일 작정이었다.
황제가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골탕 먹인 뒤에 황제에게 사실을 알려서 더욱 진흙탕으로 빠트리려 했다.
근데-
맥빠지네.
“하아.”
기운이 쪽 빠지는 것 같아 의자 위에 흐물흐물하게 늘어지듯 누웠다.
하지만 어쨌든 아빠가 준 거니까.
고맙다고 해야겠지?
딱히 기쁜 선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 나름대로는 노력한 거니까.
연락해 봐야겠다.
읏차, 소리를 내며 흐물거리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도로 힘을 풀었다.
이따가 하자.
지금은 목소리를 꾸며 낼 자신이 없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한정적이었다.
이시아로 살았던 시절에 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책 빙의나 회귀를 하면 막 엄청 똑똑해져서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알아서 다 헤쳐나가던데.
난 책 빙의에 회귀까지 했는데.
흠.
뭔가 슬퍼질 것만 같아 손을 들어 이능을 일으켰다.
“이젠 잘하시네요.”
손과 팔, 어깨까지 감싸고 도는 은빛의 이능을 보며 감탄하는 베넷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직도 내 이능이 뭔지 잘 모르겠어.”
기본적인 이능은 발현시킬 수 있었지만, 특성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검기를 잘 다루고, 어떤 이들은 하늘을 날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천 리 밖을 보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냥 여기 있었다.
“아기씨께서는 예지 능력이 있지 않으십니까.”
“음.”
그것도 솔직히 예지인지 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그냥 소설에서 본 내용이나 회귀 전에 겪었던 일들을 약간 극적으로 말해 주는 것뿐.
내가 본 건 제이슨 일, 아빠의 리비스 건 그리고 리안이네 불난 사건뿐인데.
그것도 리안이네 불난 사건은 다시 보려 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올가에게 열심히 수업을 받으면 좋아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인내심 싸움이에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올가는 태평한 소리만 했다.
나도 안 조급해하고 싶지.
하지만 이제 며칠 뒤면 새해였고, 생일이 지난다.
뭔가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이 발현되었으면 싶은…….
“…녀오고, ……이걸 발라 놓아라, 그럼 그 습관이 서서히 죽여 주겠지.”
생각을 마무리할 틈도 없이 눈앞에 떠오른 서랍장의 모습과 살기와 적의가 넘실거리는 목소리에-
“안드레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이름과 함께 왈칵 토혈이 쏟아졌다.
“아기씨!”
그리고 그 순간-
“이게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 또 걱정하시겠네.
해서 눈앞이 흐려지는 상황에서 겨우 입꼬리를 당겼다.
저는 괜찮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