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23)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23)화(123/141)
그 시각.
“뭐, 뭐라 하셨습니까?”
스벤 백작은 아주 ‘우연히’ 안드레아 에시어를 만난 참이었다. 그리고 아주 공교롭게도 ‘실수’를 해 버렸다.
“아, 혹시 몰랐소? 이런, 이런.”
스벤 백작이 들고 있던 잔을 다급히 내려놓고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난 당연히 가문의 일이라, 소공작도 알고 있는 줄 알았소.”
백작의 말에 안드레아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질 못하고 시근덕거렸다.
“그….”
숨을 헐떡이느라 제대로 뱉지 못하는 말을 주워 담듯 스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 디웨스가 발견됐다는 목장이지. 원래는 황제 페하의 시종이었던 브래드 홀데 남작이 관리하던 것이었소. 폐하께서 거기서 나온 우유만 드시거든.”
부드럽게 웃는 스벤 백작의 유한 목소리에도 안드레아의 굳어진 표정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 목장을.”
“그 딸에게 준다더군. 목장을 갖고 싶다 했다지? 그러니 이왕이면 가치가 높은 걸 주고 싶었겠지. 한데 아무리 그래도 가문 내에서 논의가 전혀 없었다니.”
살짝 흐려지는 스벤 백작의 말끝에 안드레아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생아 새끼가 가문의 명성을 땅에 짓밟아 뭉개고 있었다.
‘감히.’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틀어쥔 안드레아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흘끗 보며 잔에 입만 댔다 내려놓은 스벤 백작이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너무 상심 말게나. 그래도 가문의 장남이 아닌가. 달리 생각이 있겠지. 뭐 그 돈을 따로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안드레아가 술잔을 입에 대려다 내려놓았다.
“혹 리비스의 전쟁이 어찌 끝날지 들으셨습니까?”
“아아, 우리 군의 대승일세. 황제 폐하께서도 아주 크게 기뻐하셨지. 아마도 샤리에가 조만간 황도로 귀환하지 싶어.”
물론 이건 반은 맞고 반은 거짓이었다.
앞선 말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었지만, 리비스에 주둔하고 있는 샤리에는 펠루아나 왕까지 잡은 뒤에 귀환할 것 같다는 보고를 들었다.
‘고지식한 자야.’
어차피 펠루아나는 물러났고, 그 왕은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인 상황이었다. 아니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당연히 주어진 눈앞의 성공을 누려야 할 게 아닌가.
한데 샤리에는 기존의 공까지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를 무모한 짓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고지식함이 샤리에를 죽일지도.’
아니, ‘죽일지도’가 아니라 그 때문에 죽을 거다.
그건 제게 예지의 이능이 없다 해도 알 수 있는 바였다.
그리고 제 앞의 이자는 아마도 멍청해서 죽을 거다.
스벤 백작이 웃으며 술을 가볍게 머금었다.
“허면, 북부로는 돌아가지 않는답니까? 듣자 하니 타루스에 마물들이 날뛰고 있다던데, 그 사생아- 아니, 샤리에가 가지 않는답니까?”
“아, 그건 폐하께서 막으셨네.”
“…예?”
백작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턱을 뺀 안드레아가 입술을 씹었다.
“그게 무, 아니 폐하께서 막으셨다니요.”
“글쎄, 다른 뜻이 있으신 건지. 샤리에 단장은 무조건 황도로 불러들이시겠다더군. 그건 에시어의 가주님과 이야기가 다 된 거 같던데.”
스벤 백작의 말에 순간 얼굴이 벌겋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일그러진 안드레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스벤 백작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든 안드레아가 허겁지겁 클럽에서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스벤 백작이 소파에 깊게 몸을 묻었다.
‘굳이 내 손을 더럽힐 필요 없지.’
그저 저 멍청한 소공작이 실수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뭐, 뭐뭐?”
얼굴이 그야말로 벌겋게 달아올라 터질 것처럼 검붉어진 안드레아가 목을 조여 놓은 크라바트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허면, 정말 아버지께서 황도에 오셨다는 게냐.”
“네.”
“어, 언제!”
“몇 주 되셨습니다.”
케벨의 말에 안드레아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 몇 주 동안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황도에 오신 것도, 그 사생아 딸년이 목장을 바란 것도, 홀데 목장에서 디웨스가 나왔다는 것까지 전부!
“젠장.”
고개를 젖힌 안드레아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쥐어뜯었다.
그래, 제 아비가 은퇴 후 요양을 위해 영지로 내려간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저에게도 눈과 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라도 사람을 시켜 아버지의 동향을 예민하게 파악하려 했다.
한데-
“그 개새끼들 모두 다 죽여 버려.”
제 돈을 받아먹고 제대로 일하지 않은 이들은 죽어 마땅했다.
“……알겠습니다.”
시근덕거리는 숨을 몰아쉰 안드레아가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손을 풀었다.
“다른 일 때문은 아니고?”
혹시라도 겸사겸사 온 것일까 싶은 마음에 안드레아가 케벨을 돌아보았다.
“예.”
하지만 그럴 여지는 없었다.
“내가 며칠 전 레오의 일로 잠시 뵙기를 청했을 때는 바쁘다고 거절하신 분께서 황도에 오셨다. 고작 그 어린 것이 목장을 갖고 싶다 했다고.”
안드레아가 광기 어린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벨리아의 말도 있고, 레오도 이제 슬슬 가문 내에서 일을 맡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가문 내 제 입지가 위험했으니까.
해서 레오가 콘돌의 루시아 리비에에게 은행업을 배우게끔 자리를 내어 주십사 부탁하려 연락을 취했을 때는-
‘시간 없다.’
단칼에 거절했던 사람이 제 아버지였다.
한데 고작 그 천것의 어리광 한 번에 이리 쉽게 황도에 오실 줄은 몰랐다.
“젠장.”
‘이능력,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샤리에 그 사생아 새끼도 그렇고, 그 딸년도 이능력 하나로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얻어 내는 것이 불공평했다.
저와 제 자식들은 아등바등해야 겨우 한 번 눈에 들까 말까 한 것을 이능 한 번 내세우고는 너무 쉽게 받아 가질 않는가.
‘불공평해.’
아니, 처음부터 그랬다.
샤리에 그 자식이 느닷없이 제 형이라며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저는 언제나 부당함 속에서 살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욕설이 입술을 뒤집고 흘러나올 것만 같아, 안드레아가 입매에 힘을 주었다.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기분에 발을 거칠게 굴렀다. 윈드런에게 이런 제 기분을 드러낼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발을 쾅쾅 구르며 광인처럼 숨을 몰아쉰 안드레아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지금부터였다.
안드레아의 앞에 선 케벨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저 불똥이 모두 내게 튈 텐데.’
그냥 이대로 넘어갈까 싶다가도 며칠 전 만났던 베넷 님의 당부가 떠올랐다.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야. 되레 전부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는 거지. 물으시는 모든 것에 사실대로 말씀드려.’
“저.”
“뭐!”
“가주님께서 오늘, 황도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
“목적지는 오네의 샤리에 님 댁이었습……니다.”
“또.”
안드레아의 살벌한 표정에 케벨이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하, 그래.”
고개를 꾸벅 숙이는 케벨의 정수리를 보며 몸을 돌린 안드레아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래, 그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레티시아였다.
그 천것이 이능을 발현하고 난 이후, 샤리에도 제 아비도 묘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가주직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박차고 나간 놈이 은근슬쩍 황도로 돌아와 황명을 받아 출병했다. 그러고는 승전기를 뽐내며 황도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제가 먼저 타루스로 돌아가겠다 청했을 놈이.’
마물이 날뛰고 있다는데, 황도로 돌아올 놈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황도로 돌아와 전공까지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가주인 제 아비는 샤리에의 딸을 싸고돌았다. 굳이 그 계집을 오네로 보낸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샤리에는 죽어도 재혼은 하지 않을 테니까.
‘후계.’
그 단어가 떠오르자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들 부녀는 제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 아비도 그 사이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제정신들이 아니구만.’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그들의 생각에 안드레아가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정상은 저뿐인 듯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자신뿐인 듯 보였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바로 세울 때가 되었어.’
‘아비라 해도 네 앞길을 방해하면 과감히 치워 버려야 한다.’
그리고-
‘여린 싹은 밟으면 쉽게 뿌리가 뽑혀 죽지만, 이미 깊게 뿌리를 내린 상태라면 쉽게 죽지 않는다.’
그때는 밟아 죽이려면 처음보다 품을 더 들여야 한다던 가르침.
‘모든 게 내 탓이다. 샤리에, 그 가증스러운 것을 어릴 때 죽여 버렸어야 했어.’
어머니가 실패하셨던 일을 제 손으로 바로잡을 때가 된 것이다. 안드레아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제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러곤 그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음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