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25)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25)화(125/141)
“양도라니! 이 무슨 개 같은!”
전달받은 황제의 명령서를 바닥에 내팽개친 홀데 남작이 이내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책상 위에 올려 둔 것들을 죄다 쓸어버렸다.
순식간에 차오른 분노에 온몸이 들썩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홀데 남작의 말에 황명을 들고 온 궁내부 행정관, 투센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었다. 한데 지금 홀데 남작은 그 선을 넘었다.
“말씀, 삼가시죠.”
“뭐?”
“황명입니다.”
홀데 남작이 집어 던진 명령서를 집어 든 투센이 고개를 들었다.
“똑같이 죽더라도 방법이 달라질 걸 생각하셔야지요.”
협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책상 위에 명령서를 도로 올려놓은 투센이 홀데 남작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주눅이 들 정도로 고압적인 시선이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그 사나운 시선에 홀데 남작의 기세가 아주 잠시 주춤했으나, 그건 오래 가지 못했다.
“네가 감히, 나를 가르치려 하느냐.”
“남작!”
“닥쳐라! 고작 궁내부에서 시종질이나 하는 놈이.”
저도 저 자리에 서서 제가 뭐라도 되는 양 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것처럼 마치 제가 황제라도 되는 양 굴었었지만, 결과는 지금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까지 몰린 이상, 저 역시 이판사판이었다.
“내 것을 빼앗겠다는데, 너 같으면 가만 있을 수 있겠느냐!”
“…….”
“황제 폐하를 뵈어야겠다.”
노기를 주체할 수 없는 홀데 남작이 부들부들 온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투센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방문을 일체 받지 않고 계십니다.”
“허나!”
“폐하의 병세를 악화시킬 작정은 아니시겠지요.”
투센의 말에 할 말을 잃은 홀데 남작이 이를 바득 갈았다.
분명 황제의 눈을 가린 이가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폐하께서 내 생각을 아신 건가.’
설마.
순간, 떠오른 생각에 홀데 남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으나, 이내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이젠 안다 해도 상관없어.’
알고 있다면, 더더욱 복수를 해야만 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저지른 짓이었다.
잘 되면 좋은 일이었으나, 죽는다 해도 억울할 거 없었다.
지금 자신의 삶 자체가 억울한 일투성이였고, 지옥이었으니까.
비열한 웃음을 머금은 채, 온몸을 떠는 홀데 남작의 모습에 투센이 고개를 저었다.
명령서와 같이 건넨 황제의 서한은 바닥으로 떨어져 다른 종이들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서한이 있다는 것 자체를 잊은 듯한 태도였다.
‘서운해하겠지만, 이 글을 읽으면 진정하겠지.’
황제는 그리 말했으나, 홀데 남작의 꼴을 봐서는 황제가 베푸는 온정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굳이 제가 저 서한의 존재를 다시금 짚어 줄 필요는 없지 않겠나.
“오늘 일은 보고하지 않겠습니다만, 조심하지 않으시면 화를 입게 되실 겁니다.”
투센이 홀데 남작을 향해 짧게 묵례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광증을 부려 대던 홀데 남작은 투센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서를 갈가리 찢어 발밑에 뭉갰다.
* * *
밤이 지나고 새벽의 어스름한 빛이 검은 하늘을 물들일 무렵, 홀데 남작이 설렁줄을 당겼다.
“부르셨습니까.”
종소리에 즉각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남작의 수하가 그의 앞에 섰다.
그 모습에 남작이 고개를 들었다.
한쪽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나 있는 그의 수하는 여전히 충성스러워 보였다. 제가 그 어떤 말을 해도 다 알아듣고 수행할 수 있을 것처럼.
그 든든한 눈동자에 홀데 남작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당장, 용병 길드에 연락해 마법사들을 죄다 불러 모아. 그리고 디웨스 광산을 전부 파묻어, 아니 파괴시키라 해.”
“예?”
“그들이 고작 목장을 원하겠느냐. 디웨스를 갖고 싶은 것이겠지.”
홀데 남작이 미친 사람처럼 입꼬리를 양옆으로 쭉 올려 웃었다.
“그러니 없애 버려야지.”
“…….”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지지 못하도록 말이야.”
* * *
하지만 난 이런 홀데 남작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고민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고작 홀데 목장을 하사품으로 달라 하다니.
“하. 진짜.”
머리가 아팠다.
이 순진무구한 아버지를 어찌해야 할까.
아니, 다른 거 많지 않은가.
작게는 금은보화 같은 거.
근데 그런 기회를 내가 목장을 갖고 싶다 했다는 말 때문에 날려 버린 아빠를 떠올리자, 크게 한숨이 나왔다.
물론 아빠의 마음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홀데 목장을 갖고 싶어 했고, 그걸 사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갖게 해 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아빠의 그 부정(父情) 때문에 일이 조금 커져 버렸다.
아빠는 디웨스와 상관없이 그냥 내가 목장을 갖고 싶어 하니, 황제께 말을 했겠으나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디웨스가 나온 목장이었으니.
‘아빠가 디웨스를 탐내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물론 향후 몇 년 안에 내가 디웨스를 싹쓸이할 작정이었기에 조금 빨리 갖게 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로 인해 사람들이 우리 부녀를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전쟁 영웅인 아빠의 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에시어의 사생아인 아빠가 딸을 이용해서 디웨스 광산에 눈독을 들이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흠,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다른 쪽 폐광들은 이미 올가와 베넷이 디웨스를 추적하고 있었고, 아주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상황이었다.
고로 난 디웨스가 궁하지 않았고, 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건 아빠의 성의를 봐서 갖고 버리는 걸로 하자.
어떻게?
“할부지.”
“오냐.”
“아빠가 받아 온 목장에 다른 게 있다면서요.”
“그렇지?”
“레샤 그거 마법부 줄래요. 그래도 되죠?”
“레, 레티시아야, 그게.”
“아기씨! 정말, 아기씨께서는 천사십니다!”
오네의 아빠 집에 찾아온 몇몇의 입 싼 가신들과 비누를 핑계로 아주 우연히 집에 있던 마법사 케온 앞에서 터트리는 걸로 말이다.
“잘 생각하셨습…….”
“아, 아기씨,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디웨스가 그렇게 헐값에 넘길 만한 게 아니랍니다.”
가신 중 한 사람이 반색하는 케온의 말을 막고 나서자, 할아버지가 동의한다는 듯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데는 분명 무슨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나 역시 안심하시라는 듯 할아버지를 향해 방싯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마법석. 군데 레샤는 처음부터 그냥 목장에서 소랑 양이랑 놀고 싶었던 건데. 다른 거 때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그런 건 성가시단 말이에요.”
“뭐, 뭐?”
“마법석이 성가셔?”
지금 자신들이 들은 말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가신들의 표정을 보며 레티시아가 해맑게 웃었다.
“레샤는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금두 아니구, 은두 아니구, 보석도 아니잖아요. 그냥 돌멩이인데. 레샤가 뭐 마법사두 아니구,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큼.”
“하지만 아기씨, 그 마법석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그걸…. 아, 그냥 주신다는 게 아니라 정당한 금액을 받고 팔겠다는 거지요? 예? 하하.”
가신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할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빤히 보며 나는 되레 더욱 해맑게 웃었다.
“아닌데여? 그냥 줄 건데여?”
“왜!”
욱, 하고 치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팍을 쿵쿵 두드린 가신과 그 옆의 사내가 이마를 짚었다.
둘 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을 밀어 넣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건지 이해하는 듯한 얼굴이셨다.
그리고 왜 굳이, 저 입 싼 가신들이 따라온 건지도.
‘베넷이 일을 참 잘한단 말이지.’
하나를 말하면, 열을 깨닫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떠올리며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할부지, 그래도 되죠?”
눈을 깜박이며 묻는 내 말에 뒤쪽에 죽은 듯이 물러 서 있던 케온이 애절한 시선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그러려무나.”
팽팽한 긴장을 누그러트리듯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어 케온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양 주먹을 움켜쥔 채 아래위로 힘주어 내렸다.
“가주님!”
하지만 지금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신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만 물러들 가 보게.”
“가주니임!”
“…….”
그런 그들을 한 번의 시선으로 단숨에 제압하는 할아버지의 축객령에 이내 방 안이 조용해졌다.
‘역시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들을 이렇게 서둘러 내보낸 건, 소란을 제압하는 것보다 얼른 나가서 소문을 내라는 의미가 클 거다.
“큭.”
그런 할아버지의 의중을 떠올리며, 작게 웃자-
“단.”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내 손녀딸이 제공하는 디웨스로 연구를 하는 것이니만큼, 마법부에서 만들어 내는 디웨스 관련 마도구들의 최우선 판매권은 우리 에시어 상단에 넘기는 걸로 하지.”
역시 할아버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공으로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훅 들어온 제안에 케온이 조금 난감한 듯 얼굴을 굳혔다.
“예? 그건…….”
그러곤 내게 도움을 청하듯 고개를 돌렸으나.
“움? 그건 좋은 생각인 거 가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