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3)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3)화(1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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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헤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봐야겠어.’
누구의 사람인지.
그리고 날 왜 도와준 건지.
‘어? 베넷 부관님!’
아! 맞아, 목소리!
“헤일.”
“예, 아 예 아기씨. 송구합니다.”
헤일도 나처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걸 말하려던 게 아니었다.
“혹시 나 마주치기 전에 뭐 본 거 있어?”
“예?”
“아니, 혹시 그 전에 베넷 본 적 있었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듯 나를 빤히 보던 헤일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전 베넷 님은 어제 처음 뵈었는데요.”
“이름은?”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지만.”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챈들러의 괴롭힘에 저를 구해 준 이는 아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다 목소리가 남자 같기도 했고.
‘누굴까. 그 목소리.’
이 집안에서 내 편을 들어 줄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아, 맞다. 배가 고프지는 않으세요?”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뭐든 시켜 주세요.”
“저희가 다 해 드릴게요. 아무 걱정 마세요.”
아리나와 린지가 내 양손을 한쪽씩 잡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얼굴들 너머, 외눈안경을 삐져나온 셔츠로 닦으며 나와 그 두 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폴의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한 그의 시선을 보며 나 역시 동감했다.
일단 이용할 가치가 있어서 내버려 두기는 했는데.
‘이건 너무 과하게 성가신데?’
아무리 자기들의 목숨 줄이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주겠다니.
“나 고기.”
“고기요.”
“응, 소고기. 송아지. 야들야들.”
* * *
그 날 이후, 마고가 몸져누웠다는 소문이 봄바람처럼 수도를 가득 메웠다.
그 정정하던 노인네가 어쩌다 쓰러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게 나돌았으나, 황궁 감시단이 에시어의 수도 저택을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노인네 홧병이구만. 하고.
그도 그럴 것이 귀족 위의 대귀족.
그것도 5대 공작가를 대표하는 이가 황제에게 그런 모욕을 당했으니, 에시어의 가주로선 그럴 만도 하다는 의견이 만연했다.
황제로선 달갑지 않은 소문이었다.
“평민들까지도 이번만큼은 황제 폐하께서 너무 하셨다고 에시어의 역성을 든다더라구요?”
“그래?”
“예에. 황실에 대한 소문이 아주 좋지 않아요. 이제 사흘 뒤면 귀족 회의라고 하던데.”
요 근래 아주 극진해진 아리나가 전해 온 이야기를 들으며 속웃음을 삼켰다.
‘베넷이 확실히 일을 잘해.’
아무리 총명하다고는 하나 고작 베넷을 왜 곁에 두시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이번 일 처리를 보니 알 것도 같았다.
거기다 눈치도 매우 빠르고 하나를 알려 주면 둘 셋 정도는 더 보는 것도.
‘베넷을 내 편으로 만들면 편할 거 같은데.’
흐음, 느른히 콧소리를 내며 작게 주먹 쥔 손으로 턱을 괬다.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게 뭘까? 를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전생의 그를 떠올리면 내내 일하는 모습뿐이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긴 그랬으니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 안드레아를 모셨겠지.’
그 자리에 내가 없었으니, 가문의 끝이 어땠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최전선에서 가문의 몰락을 바라봐야만 했을 테고, 그 성정으로 보건대 가장 크게 괴로워했을 거다.
‘그걸 알려 줄 수도 없고.’
어찌 됐든 그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나나 아빠가 가주가 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보장해 줘야만 했다.
그래도 꾀어 낼 수 있는 걸 생각해 봐야겠어.
그가 저를 향해 호감을 갖게 된 건 사실인 듯하니까.
‘그리고 닥터 폴도.’
내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겠으나, 처음엔 폴이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당시 당직 의사였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한데 마차 사고 이후 그가 저를 치료 하는 과정에서 듣기엔 그 내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내가 고칠 수 있었어!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내가 가주님을……, 흑- 살려 드릴 수 있었다구.’
물론 그 말을 했을 당시에는 술에 취해 있어서 다음 날 내가 물어봤을 때는 딱 잡아떼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상황이 전부 다 이상하긴 했어.
‘그때 치료법을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나.’
몇 년인지 뒤의 일이긴 하나, 어쨌든 미리 알고 있으면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 할아버지 병명이…….’
눈동자를 굴리듯 머릿속의 기억들을 떼굴떼굴 굴려 보았다만, 병명이 딱 떠오르질 않았다.
천천히 생각하자.
어찌 됐든 시간은 내 편이야.
그러니 일단 이번 가택 연금을 해결하고 나서,
‘할아버지의 몸 상태를 좀 캐봐야겠어.’
가택 연금만 풀리면 할아버지의 홧병도 좀 나을 테고, 그러면 그렇게 빨리 병세가 악화되진 않으실 테니까.
폴이 전생에서 말한 그 치료제도 타이밍 맞게 완성될지도.
그렇게만 되면…….
똑똑.
“아기씨.”
끝없이 풀려 가는 상념을 깨트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본성의 시종이 안으로 들어섰다.
꾸벅 고개를 숙인 작은 아이가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무슨 일이야?”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아이쿠 우리 할아버지, 오래 참으셨네.
* * *
똑똑.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워 있던 마고가 노크와 함께 침실로 총총히 들어오는 레티시아의 모습을 보며 안경을 벗었다.
“할부지, 부르셨어요?”
양갈래로 묶은 보드라운 밀밭색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며 안으로 들어선 레티시아가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그럴싸하게 무릎을 굽혔다 들었다.
그 귀여운 몸짓에 침대맡에서 마고의 시중을 들던 집사장이 헛기침을 하듯 작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마고의 시선이 질책하듯 그를 향했다. 하지만 그 시선에 주눅이 들어 물리기는커녕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머금은 집사장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요즘 뵈올 때면 샤리에 님 어릴 때와 참, 많이 닮으셨습니다.”
“감샵니다.”
집사장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든 레티시아의 미소에 눈을 살짝 올려 뜬 마고가 고개를 돌렸다.
‘흐음.’
그래 집사장의 말이 맞다.
불과 반년 전, 제가 수도 저택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레티시아는 샤리에의 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아이였다.
나이보다 더 투정이 심했고, 어리석어 샤리에의 딸답지 않았건만.
‘고작 반년 사이에 제 아비와 풍기는 분위기마저 닮아졌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닌 레티시아의 모습에 마고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수도로 올라오기 직전에 보고를 받기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울기 바쁘다 하질 않았던가. 만약 그 보고가 사실이라면 불과 며칠 사이 천지개벽 수준의 태세 전환을 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가 수도로 돌아오는 날에 맞춰서.
‘누군가 약은 수를 쓴 거라면 저 조그마한 머리통에서 나온 생각은 아닐 터.’
제 손녀딸이지만, 레티시아는 결코 똑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녀를 조정하고 있거나,
‘정말 이능력 때문인가.’
제 은퇴와 전쟁을 이야기하던 그 확신에 찬 목소리.
한데, 이능력이 발현된 것만으로도 사람이 저렇게 달라진다?
마고로서는 쉬이 납득되지 않는 손녀딸의 변화에 시선을 거둔 마고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의자를 내어 주고, 다들 나가 봐.”
“예.”
벽에 붙어 있던 시종이 레티시아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그 움직임을 좇던 레티시아의 옆얼굴에 마고가 작게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마치 제가 뭘 물을 걸 알고 있다는 듯 저를 빤히 보는 시선에 안경다리를 매만지던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내일 새로운 선생들이 올 게다.”
“아, 녜!”
레티시아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마고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이젠 정말 샤리에를 꼭 빼다 박은 듯 보였다.
‘어쩌면 그 어미의 눈동자일지도.’
문득 스치는 그리운 얼굴에 질끈 눈을 감은 채 눈두덩이를 누르자, 손끝에서 작게 경련이 느껴졌다.
늘상 있는 그 떨림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은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오네에 가고 싶은 게냐.”
“녜.”
“후계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말이지.”
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당황한 건지, 잠시 말을 삼킨 아이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
느리게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아이의 작은 머리통에 짧게 한숨을 내쉰 마고가 “알겠다.”라며 안경을 도로 올려 쓰며, 말을 덧붙였다.
“자격이 없다 여기면 바로 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