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138)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38)화(138/141)
아빠!
입구에서부터 걸어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날이 바짝 선 얼굴, 어금니를 깨물어 불어진 턱선, 주변을 둘러보는 그 서늘한 시선까지.
그 등장만으로도 일순간 연회장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아빠에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오늘의 모습만으로도 아빠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완벽하게 ‘선망’으로 바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 선 것이 너무 오랜만인데.
그 모습이 이렇게나 강렬하다면.
‘돈 괜히 들였네.’
어쩐지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아, 입매를 꾹 말아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표정은 단순히 지금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 거라기보다는 정말 화가 나 있었으니까.
그렇겠지.
아빠는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랬으니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는 내내 아빠의 시선이 쉴 틈 없이 온갖 색으로 뒤덮인 이들을 곱씹듯이 눈에 담아낸 것이겠지.
‘아빠가 올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아빠의 등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저 아빠가 많이 흥분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악어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내 시선 끝에 닿은 아빠의 신발 앞코에 고개를 든 그때-
“…….”
아빠의 서늘한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묻어 있는 푸른빛.
마치 푸른색 물감을 뒤집어쓴 것처럼 흠뻑 젖은 내 모습을 빤히 응시하던 아빠의 시선이 내가 끌어안고 있는 악어 인형으로 향했다.
꽉 끌어안아 손마디가 희게 불거진 내 손끝에 조여진 악어 인형에 아빠의 표정이 고통으로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슬픔과 분노, 애처로움과 죄책감이 뒤엉킨 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발끝을 살짝 떼어 냈다.
어쩐지 아빠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하지만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몸을 돌린 아빠가 안드레아 숙부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컥!”
그 무자비한 힘에 끌려 몸을 일으킨 그의 발끝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커걱!”
“까악! 여보!”
버둥거리는 안드레아의 얼굴이 벌겋게 변하자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벨리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
하지만 상황을 중재해야 할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것으로 할아버지가 안드레아에 대해 어떠한 처분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버리신 건 아니라는 거지.
만약에 할아버지가 그를 진짜 버리셨다면, 당장 방위대부터 불러들이라 명하셨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어.
흠, 할아버지는 어디까지 용서하고 용납하실 생각인 걸까.
베넷의 말로는 할아버지께서 안드레아의 개짓…. 아니, 수작을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했는데.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걸까?
차분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생각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 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그리고 할아버지가 인정 때문에 안드레아를 용서하고 싶으셔도 그럴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야 했다.
해서-
“아빠!”
내내 끌어안고 있던 악어 인형을 내팽개친 채 아빠의 허리에 매달렸다.
“이러면 안 돼요!”
“…….”
내 목소리에 시퍼렇게 가라앉아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던 아빠의 시선이 조금씩 풀어져 내가 알던 아빠의 얼굴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안드레아의 목덜미를 움켜쥔 손의 힘은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되레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하도록 조금 더 꽉 조여 잡는 손길에 고개를 저었다.
“레샤…….”
“아빠, 이건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해결하셔야 해요. 할아버지가 가주님이니까요.”
“…….”
할아버지에게 공을 넘겨 버리는 내 말에 따가운 시선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할아버지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와 안드레아 숙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아빠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드레아부터 처리해야 해.
독기가 잔뜩 오른 쥐는 고양이를 문다 했다.
독이 오른 안드레아를 이대로 놔두면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오명을 아빠가 뒤집어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정확히 밝혀진 건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안드레아를 죽이기라도 하면, 여론은 반전된다. 어찌 됐든 아빠는 사생아였고, 귀족들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부모의 혼외 자식을 싫어했으니까.
누누이 말한 것처럼 아빠의 앞엔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선 안 되었다.
“그러니까요. 얼른요.”
애절하게 아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네?”
”…….”
조르듯 어리광을 부리는 내 목소리에,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아빠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곧장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차마 손조차 댈 수 없다는 듯 내 몸을 살피던 그가 주먹을 틀어쥐었다.
그러곤 어깨너머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지켜 주시겠다더니, 이게 지키신 겁니까.”
“…….”
“푸른색은 극독은 사람을 서서히 죽어 가게 만들죠. 한데도 가주님께서는 이리 태평히 계시는군요.”
“샤리에.”
“됐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을 끊어 낸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당겨 안았다.
“이 일을 어찌 처리하시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
그리고 아빠의 시선이 할아버지의 지팡이에 묻은 푸른색으로 향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끝과 입술에 묻은 것까지.
그 모습에 꽉 틀어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몸이 떨리는 것도 같은 아빠의 분노에.
“할아버지.”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채 할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레샤는 괜찮았어요. 레샤는 이능이 있으니까요.”
“…….”
순간 내 목소리에 연회장 내에 모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일부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이능이 있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을 원했어.’
아빠에 이어 딸까지 이능력자라는 소문.
그게 필요했으니까.
해서,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니에요.”
“…….”
“앞으로도 레샤는 괜찮을 거예요. 아빠가 있으니까.”
내 말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깊어졌다.
“그것이 네 대답이냐.”
“네.”
며칠 전 물음에 대한 답임을 알고 있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 얼굴과 자신의 지팡이로 향했다.
흐릿했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가 지팡이에 독을 묻혀 두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듯 푸른색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할아버지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와 아빠를 잡고 싶다면, 안드레아와는 공존할 수 없음을.’
그러니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 * *
“그래서.”
“방위대를 불렀다더군요. 그 용병들을 사들인 자도 에시어의 차남이었고요.”
“쯧.”
황제의 친위 부대 대장인 오르벳의 말에 황제가 나직이 혀를 찼다.
“자식 농사를 그따위로 지어 놓고 잘난 척은.”
쿨럭 기침을 토해 내던 황제가 천으로 입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어찌 될 것 같더냐.”
“에시어의 가주는 법정에 세우려는 모양입니다.”
“가문에서 내쫓겼더냐.”
“아뇨, 그건 아니었습니다.”
“한데, 직계 차남을 그대로 죽이겠다?”
눈꺼풀 아래로 황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 내에서 독을 사용해 사람을 해하려 한 건 중범죄였다. 그것만도 벌을 면치 못할 상황인데, 다른 이를 해하기 위해 용병을 사용했다는 정황까지 밝혀지지 않았나.
그건 그냥 그를 죽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에시어에서는 내려지는 벌을 그대로 감내할 것이라 하더군요.”
“허! 사형이 내려질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손을 쓰지 않겠다?”
“너무 많은 이들이 보고 있었던 터라 숨기는 게 어려운 상황이니, 차라리 잘라 내고 가문을 지키겠다는 것이겠지요. 마고 에시어니까요.”
“그렇지.”
그게 마고 에시어지.
다만 그 마고 에시어이기에 더욱 이상한 것이었다.
‘죽은 제 부인과의 약속을 잊은 겐가.’
황제가 턱 끝을 매만지다 이내 손을 내저었다.
제 자식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법관에게 전해라. 그 공명정대하게 판결하라고.”
“알겠습니다.”
오르벳이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허면 샤리에는.”
“아아.”
마침 잘 이야기했다는 듯 황제가 오르벳을 돌아보았다.
“영지를 내릴 것이다.”
“허면, 에시어는 후계를 잃게 됩니다. 마고 에시어의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던데. 네투아에게 너무 유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많이 설치고 다니더냐.”
황제의 물음에 차마 황후의 친정을 욕할 수 없었던 오르벳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굳은 표정에 껄껄 웃던 황제가 손으로 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해서 영지를 내리는 것이다.”
“…….”
“작위가 아니라, ‘영지만’ 내릴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든 오르벳이 그 뜻을 알아들은 듯 눈을 빛냈다.
“허면.”
“마고 에시어도 복귀할 게다. 뭐, 원로회 의장 자리면 되겠지.”
“적당할 듯합니다. 귀족 회의에 앉혀 놓기엔 너무 고령이니, 원로회 의장 정도라면.”
“적당히 네투아를 찍어 누를 수 있지.”
끌끌 웃은 황제가 이만 나가 보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설렁줄을 당겼다.
그 종소리에 안으로 들어온 테무스가 즉각 고개를 숙였다.
“내일 아침, 샤리에 에시어를 들라 하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