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2)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2)화(2/141)
솔직히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었다.
거기다 나 자신이 전생에서 읽은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은 더 황당해서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 사실들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죽었다 했더니 이번에는 회귀라니.
심지어 조연 2회 차.
‘아니지. 전생까지 치면 3회 차지.’
“젠쟝.”
“네?”
“아니야!”
저도 모르게 툭 하고 튀어나온 말을 무마하듯 작은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입조심, 말조심.
이 고구마 같은 조연에게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나 이 집에서는 더더욱.
수도 저택에 가끔 오시는 무심한 할아버지는 무섭게 몰아치는 호랑이였고,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들 그러니까 직계 숙부와 고모들은 나를 사생아 장남이 맡겨 놓은 짐짝 취급했다.
‘물론 짐짝이 맞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보니, 사용인들이 나를 대하는 것 또한 형편없었다.
물론 나중을 생각해 보면 지금이 천국이긴 했다.
그래도 가끔은 할아버지가 오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니 대놓고 차별하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이름 모를 병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는 사이, 작은아버지인 안드레아에게 공작가의 권한이 대부분 넘어간 그 순간부터 내겐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사용인들의 태도는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안드레아 숙부가 대놓고, 할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아빠랑 나부터 쫓아내겠다고 했으니, 당연한 거지.’
그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난 뒤, 가문을 물려받아 가주가 된 안드레아 에시어는 연이어 아버지의 부고장이 도착한 그 즉시 나부터 내쫓아 냈다.
‘너를 더 이상은 참아 줄 수가 없구나!’
뭐가 급하다고.
장례를 치를 새도 없었다.
나중에 혼자 도망쳐서 살게 되었을 때에 생각한 것이지만, 정작 상속자인 난 아버지의 부고장도 유언장도 보질 못했었다.
분명히 변호사가 찾아왔을 텐데.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에시어는 반역죄로 황제의 눈 밖에 나 모두가 몰살된 이후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최소한 반역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가문이 망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애당초 황제의 진노가 에시어를 몰살시키는 지경까지 갔을 리가 없었다.
‘물론 안드레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난 살 수 있었을 거다.
아버지는 제국을 지탱하는 검이었으니까.
두 가지 검기와 3개의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소드마스터가 샤리에 에시어.
제국 내에 그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훗날 남자 주인공, 칼리안이 아버지를 언급하며 ‘그분의 검을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어.’라며 회상하는 장면도 존재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제국을 지탱하던 한 축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이야기하던 남자 주인공의 말을 떠올려 보자면.
‘안드레아가 반역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아버지만 살아 계셨다면 그녀까지 몰살될 리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에시어도 지킬 수 있었을 거다.
숙부들이 사고를 친 것과 별개로 우린 살아남았을 테니까.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느리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살 수 있어.’
그것도 아주 잘.
‘아버지만 살릴 수 있다면.’
주먹을 작게 움켜쥔 레티시아가 녹색의 벽에 걸린 자신과 아버지의 초상화를 올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쟤 왜 저래?”
“시선 끌라고 쇼하는 거지 뭐.”
그런 그녀의 뒤에서 하녀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나와 린지.
내내 조용히 속삭이다 소리를 조금 높이는 하녀들의 대화에 슬쩍 귀를 기울였다.
“어제만 해도 봐 지 뺨을 왜 때려? 난 그때 쟤 완전 미친녀- 아니 정신 나간 줄 알았잖아.”
“맞아, 그러고는 또 쓰러져서는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툭하면 쓰러지는 쇼도 한두 번이지. 진짜 민폐라니까.”
‘쇼라니.’
이것들아 다 들린다.
자기들끼리 혀까지 차며 뒷담화도 앞담화도 아닌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두 마음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하루이틀이야? 그냥 내버려 둬. 하루이틀일이 아니니까 문제지. 뒤집어 버려!
그동안은 1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지금은 인생 3회 차가 아닌가.
해서 한마디 하려 몸을 돌리려는 그 때-
“가주님께서 오늘 수도에 도착하신다는 소식 듣고는 쇼한 거야, 뻔해.”
“!”
아리나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입에 올렸다.
과거에도 할아버지가 수도에 오셨던 시기가 이쯤이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오늘이었구나.’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6살인 레티시아는 반년 후 7살이 된다.
공작가의 독특한 가풍.
‘그게 코앞이었어.’
전생의 기억을 정리하며 시익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단 할아버지의 눈에 드는 게 우선이었고, 그 시작은 할아버지의 귀환이었다.
“아리나?”
“……왜요?”
“할부지 와? 할부지 언제 와?”
눈빛을 반짝이며, 최대한 순진무구하게 물었다.
에시어 공작가에는 사실 아주 특이한 가풍이 있다.
바로 어린 공작가의 후계들을 아무도 모르게 평민들 사이에서 자라게 하는 게 그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커다란 저택과 온갖 사용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오냐오냐 지내는 후계자들.
한마디로 부족함과 결핍을 모른 채 자라는 이들은 아무리 공작가의 핏줄이라 해도 위대한 가문을 상속받기에는 부족하다는 초대 가주의 뜻이었다.
해서 공작가의 후계들은 6살 겨울이 지나 늦어도 7살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공작가를 떠나 평민 주거 지역인 오네의 하우스에 살아야만 했다.
그것이 대를 이어 여전히 위대한 에시어를 상속받기 위한 관문이었고, 의무였다.
하지만 이런 가풍을 정한 초대 가주께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 갈수록 빠르게, 그리고 많이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직계뿐만 아니라, 방계까지.
그 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에시어의 성을 단 이들은 많아졌고, 그 사실을 악용해 에시어와 상관없는 이들까지도 자신에게 후계의 자격이 있다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지경이 되자 더 이상 방계에게 가문의 후계 자격을 줄 수 없다는 이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주의 직계 후손이 아닌, 방계까지 모두 후계로 인정하는 건 위대한 에시어를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무겁게 받아들인 5대 가주는 그가 죽기 전 가법을 바꾸어 후계의 범위를 가주의 직계로 제한했다.
그 같은 결정에 방계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반발을 예상한 듯 새로 가주직에 오른 6대 가주 콘셀로는 방계에서도 일부, 아주 뛰어난 이들이 나온다면 후계의 자격을 주겠다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 그들의 불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현 에시어의 10대 가주에 이르기까지 그 예외 조항이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 애매했다.
현 가주인 마고의 핏줄이라 직계이긴 했으나, 아버지는 가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생아였으니까.
물론 그녀의 아버지 샤리에는 6살 때에 이미 발현된 오러를 2개 이상 다룰 수 있는 뛰어난 소드마스터였기에 사생아임에도 불구하고 후계자의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아버지의 경우처럼 예외 조항을 적용하기에 나는 조금 많이 무능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생의 나는 무식했고, 무지했다.
그랬으니, 이런 상황들은 전혀 이랑곳하지 않은 채, 제게도 후계의 자격이 있으니 오네에 가겠다고 떼를 썼겠지.
사람들은 염치를 모른다고 수군거리는 것도 모르고.
‘저도 오네로 보내 주세요! 저도 갈 거예요!’
‘저도 에시어잖아요!’
생떼를 부리고, 억지를 쓰다 끝내 제멋대로 오네로 나갔다가 잡혀 들어오기를 여러 번. 그렇게 나는 에시어의 짐짝에서 골칫덩이로까지 진화했다.
물론 당시에는 저 나름의 이유가 있는 생떼였다.
내가 후계의 자격을 갖춰야지만, 에시어에서 쫓겨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때였으니까.
생각해 보시라.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당장에 쫓아내겠다는 말을 평생 듣고 자란 어린애가 달리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어떻게든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지.
그리고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이 후계의 자격을 갖추어 오네에서 잘 지내고 돌아오면 무뚝뚝한 아버지와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에게 칭찬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그렇기에 후계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오네에 가는 건 내겐 절대 물러설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이전 생,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장원에서 수도 공작가로 돌아오셨던 날인 바로 오늘 완전히 부서져 버렸었다.
바로-
‘후계자 적격 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