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23)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23)화(23/141)
에시어의 수도 저택의 건물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되었다.
가문의 행정관들이 사무를 보는 5층짜리 회색의 서쪽 별관과 레티시아가 지냈던 2층짜리 동쪽 별채.
그리고 중앙에 4층 높이의 일자 구조로 된 흰색 본관이 나란히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당연히 중앙 정원이 보이는 앞동은 가주인 마고가 사용하는 곳이었고, 넓게 펼쳐진 후원이 보이는 뒷동은 가주의 자식들이 지내고 있었다.
작은 오두막과 사용인들의 숙소, 그리고 직계들이 수업을 받은 작은 건물들이 있긴 했으나, 큰 건물들에 가리어져 건물의 숫자로 넣기에는 미미했다.
그리고 레티시아가 지내게 된 곳은 놀랍게도 가주가 머물고 있는 앞동이었다.
“앞동이라고?”
솔직히 사용인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별채의 미운 오리 새끼가 정말 백조가 되는 건가?
둘 셋만 모여서 서로 설왕설래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라 했고, 다들 자기들끼리 누구에게 붙어야 유리할지를 쑥덕거리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직계 도련님들이 계시는데. 어찌 샤리에 님께서 어찌 가문을 물려받으시겠나.”
“그래도 샤리에 님은 이능력자가 아닌가.”
“이능력자라 해도 사생아가 아니냔 말이야.”
흘끗 주변을 둘러보며 사생아라는 말을 조용히 언급한 사용인이 몸을 일으키자-
“자네 그걸 모르는구만.”
그런 사용인의 멱살을 잡듯 은근히 말을 흘린 사내가 혀를 찼다.
“내가 뭘 모른다는 겐가.”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발끈해 표정을 굳힌 사용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에 진정하라는 듯 손을 내저은 사내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사용인의 귀를 잡아당겼다.
“레티시아 아기씨도 이능력자라는구만.”
“……뭐어?”
사내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용인이 눈을 그야말로 화등잔만 하게 떴다. 하지만 사내는 믿을라면 믿고, 말라면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난 들은 걸 이야기해 주는 것뿐이네, 결정은 자네 몫이지.”
“…….”
“뉘게 줄을 설 것인가.”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용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 생각하게.”
그러곤 유유히 사라지는 사내의 뒷모습에 사용인이 숨을 훅 하고 들이마시곤 주변을 살피며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엿들은 귀가 그림자 속에 있다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한 중심에 있는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었다.
‘아우우.’
그래, 아빠도 입성 못 해 본 본관 앞동! 할아버지와 같은 건물에 단숨에 입성한 사실이 엄청난 거라는 거 안다.
근데 왜!
하필 지금이냐구우.
딱 일주일만 지나서 오게 됐으면 좀 좋아?
별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벽지와 커다란 창.
그리고 커튼에 침대는 뭐 이렇게 폭신하고 좋은건지.
이불도 보들보들 너무 좋고, 베개는 뭔 깃털을 넣었다고 그러던데. 그래서인가 폭신하다 못해 얼굴이 파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여길 빠져나갈 생각으로 가득 차 이 좋은 걸 제대로 누리질 못하고 있었다.
‘하.’
나 진짜 이번 주 토요일에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나가지?
전에도 이 나이에 혼자 하녀 하나 데리고 밖을 나가는 건 그야말로 택도 없는 소리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더더욱 ‘밖에 나갔다 올게요.’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게 분명했다.
아니면 사람들이 줄줄줄 따라붙든가.
근데 그러면 그쪽에서는 날 들여보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 같아도 나 안 들여보내지.’
어쨌든 공식적인 경매장이 아닌, 오네의 뒷골목에서 거래되는 경매였다.
당연히 불법적인 것도 많이 거래될 텐데, 대놓고 내가 귀족입니다, 하고 들어가겠다고 하면 누가 날 받아 주겠나.
‘안 받아 주지.’
하아 어쩌지.
손끝으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야 하나.
하며, 고개를 돌리자 각자 할 일에 몰두해 있는 하녀 세 명이 보였다.
아리나는 일단 탈락이고, 린지도 도찐개찐, 아리나와 도토리 키 재기고.
남은 건-
“아기씨 필요한 거 있으세요?”
역시 헤일뿐인가.
“필요하신 거……. 아! 수업 가시기 전에 간식이라도 드릴까요?”
“책 읽어 드릴까요?”
“아니면 머리 빗어 드릴게요.”
“옷 다시 입으실래요?”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
헤일 한 번, 아리나에게 두 번, 린지에게 두 번 아니라고 대꾸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골이 흔들리네.
작은 손으로 관자놀이 양쪽을 꽉 눌렀다.
“하휴.”
요즘 저 두 사람의 충성 경쟁에 머리가 닥닥 아팠다.
거기다 둘이 괜히 견제하며 신경전까지 하는 통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너 때문에 아기씨 머리 아프시다잖아.”
“네가 끼어들지를 말면 되는 일 아니야?”
“너.”
“지짜! 구만 좀 해!”
“아기씨.”
“에휴.”
불쌍한 척 울상을 짓는 아리나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등을 돌렸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들어올까 봐 그냥 내버려 둔 건데,
저 둘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오네로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데리고 있어야지 했는데.
두 사람 하는 꼴을 보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좀 필요해 보였다.
입을 다물고 있게 하든가 아니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끔 만들든가.
여전히 뒤에서 투닥거리고 있는 두 사람의 기척을 모른 척 턱을 괴자, 조용히 의자에 앉아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는 헤일이 보였다.
‘헤일.’
어차피 오네로는 하녀 한 명만 데려갈 수 있었고, 그때가 되면 선택지는 역시나 헤일뿐일까?
‘믿어도 되겠지?’
며칠 지켜보았으나 몰래 뒷동을 오가는 아리나나 린지와 다르게 헤일은 내 곁에 거의 있는 편이었다.
2주에 한 번 정도 저택 밖의 식구들을 보고 오는 게 전부였고, 대충 보니 버는 돈의 대부분을 집에 주고 오는 듯했다.
다른 가문 하녀였는데, 돈 때문에 온 건가? 라는 생각도 잠시 하긴 했는데. 돈 때문이라면 더더욱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다.
하우스키퍼와 경력 하녀의 봉급 차이는 거의 두 배였으니까.
그럼 남은 건 하녀 경험이 있긴 하나, 이 전에 있었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가정과 태어나길 살림꾼으로 태어난 거. 두 개뿐이었다.
‘살림꾼.’
솔직히 살림꾼 핑계는 내가 생각해도 약간 옹색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 솔직한 마음은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길, 믿을 만한 사람이길 솔직히 그만 의심하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성격도 급하지.’
성격 급한 사람은 의심도 충분히 하기 어렵다니까.
“헤일.”
“예, 아기씨.”
“오늘도 수업 데려다줘.”
“아기씨!”
“저희는요?”
“너희는 시끄러워서 싫어.”
“하지만.”
“헤일 가자.”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리며 아리나의 말을 막자, 헤일을 노려보는 시선이 심상치가 않았다.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난 아리나와 린지에게 정을 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은커녕 전생에서 내게 했던 짓을 난 잊지 않아.
매일 얼음장 같은 물로 세수를 시키고, 어린 몸을 이리저리 막 잡아 온몸에 멍 가실 날이 없었던 것과 내 몫으로 올라온 음식을 자기들끼리 먹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내게 먹였던 것. 그리고 교묘하게 숙모와 숙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스라이팅 하던 것까지.
‘다 기억해.’
그러니 눈앞의 두 사람에게 정이 생길 리가 없었고, 그 때문에 더더욱 헤일을 쉽게 믿기 힘들었다.
전생에서의 난, 그래도 아리나와 린지를 믿었으니까.
그 날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아기씨께서 가져오라고 하셨잖아요. 아기씨 이걸 대체.’
‘내가 언제!’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 전생의 기억을 떨쳐 내듯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가기가 무섭게 전생의 악몽을 떨쳐 내듯 깍듯히 고개를 숙이는 사용인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 * *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문밖에 들리는 사용인들의 목소리에 아리나가 이로 손톱 끝을 씹었다.
“헤일 저게 언제 저렇게 아기씨를 꼬셨지?”
“…….”
가슴께에서 팔짱을 낀 채 불쾌하다는 듯 툭 내뱉는 린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요 몇 주 사이, 제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레티시아가 움켜쥔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왜지?’
분명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못했던 아이였다.
엉망진창인 너를 맡아 주는 건 그녀뿐이라는 말을 아이는 철썩같이 믿었고,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었다.
어릴 때 처음 몇 달간 잘해 주었던 기억 때문인지, 이후 조금씩 등한시하고 귀찮아 짜증을 부렸어도 헤헤 아리나, 하고는 다시 품에 안기던 아이가 레티시아였건만.
‘지짜! 구만 좀 해!’
짜증까지 부려 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굶기는 걸로 버릇을 고쳐 놓았을 테지만, 본관. 그것도 본관 앞동으로 온 이상 더 이상 그럴 수도 없었다.
거기다 호시탐탐 제 자리를 노려 대는 하이에나 같은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질 않은가.
‘젠장.’
엄지손톱을 다 물어뜯고, 손끝의 살을 질겅질겅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