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30)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30)화(30/141)
백작가는 수도 공작가보다는 작았지만, 중앙의 ㅁ자 형태로 지어진 본관과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일자 구조의 건물부터, 사이사이 놓인 작은 별채들이 제법 조화로워 보였다.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건물들 사이, 크고 작은 정원들까지 아기자기하게 자리해 보는 즐거움까지 있어서 리리아나가 자랑하고 싶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야!”
오전 내내 백작가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던 리리아나가 본관 뒤쪽의 작은 온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좋지?”
어쩐지 할아버지 방에서 보이던 풍광과 닮아 있는 그 작은 온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예쁘다.”
할아버지와 취향마저 닮은 미쉘 고모를 떠올리며 온실을 바라보자, 잔뜩 상기된 얼굴의 리리아나가 온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안에 엄청…….”
하지만 자랑할 생각에 잔뜩 부푼 리리아나의 계획을 방해하듯 하녀가 자연스레 길을 막았다.
“아가씨, 식사 시간 다 되었어요.”
“점심?”
“네.”
들고 있던 양산을 살짝 리리아나 쪽으로 기울여 주며 살갑게 그녀를 챙기는 하녀의 말에 그녀가 입을 오리처럼 내밀었다.
“더 놀구 싶은데.”
“부인께서 기다리시는걸요?”
불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콧숨을 훙! 하고 내쉬던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게써, 점심 먹고 또 놀면 되지. 가쟈!”
그러곤 내 손을 잡았다.
언제 이렇게 심정적으로 가까워졌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진짜 친구처럼 느껴졌으니까.
‘이번 생은 행복하려나 봐.’
행운이 따르는 것만 같은 순간들이 좋아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 * *
미쉘 고모와의 점심은 백작가의 메인 다이닝 룸이 아닌, 가족들만 이용하는 작은 룸에 차려져 있었다. 팔각형의 공간 중에 네 개의 면을 차지하고 있는 유리창에서는 햇살이 아주 기분 좋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리리아나의 자랑대로 음식들은 아주 맛있었다.
“맛있지?”
“응.”
“흥!”
내 순순한 대답에 기분 좋은 듯 콧대를 세운 리리아나가 포크로 고기를 작게 한 점 넣어 오물거렸다. 그 우쭐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가씨의 사랑스러움이 담뿍 묻어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미쉘 고모는 정략혼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셨다더니.
그 모습이 리리아나에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얼른 먹어.”
“응.”
냉랭한 얼굴의 리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로 고기를 집었다.
맛있겠다.
헤- 하고 벌린 입에 넣으려는 차, 미쉘고모가 나를 돌아보았다.
“듣자니. 이능력이 있다고.”
식사가 다 끝나고, 차를 마실 때쯤에나 물으시려나? 했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녜. 고대어를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제국어랑 수학도 잘해요.”
“그리고.”
“음.”
그동안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 다른 걸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뭐 다른 걸 말해야 하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다른 건…….”
말끝을 살짝 늘이며 고개를 들자, 서늘한 눈동자로 나를 빤히 보던 미쉘 고모의 시선이 내 손등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아.’
그제야 고모가 궁금해하는 것이, 혹시 내 이능이 아빠를 닮았는지였음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검기는 없어요. 그런 쪽은 아닌 거 같아요.”
“……그래.”
미쉘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가만 움켜쥐었다 놓았다.
평생을 귀족으로, 심지어는 에시어의 유일한 직계 공녀로 살아온 이의 손치고는 거칠고, 예쁘지 않았다. 되레 여기사들의 것과 닮아 있는 그 손 모양에 고개를 들었다.
‘전생에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모양이네.’
미쉘 고모가 어릴 때에 그녀에게 검기의 이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잠시, 돌았었다.
장남인 샤리에와 비슷한 이능이 직계인 미쉘에게도 발견되었다고 말이다.
하나같이 축복이라고 입을 모았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쉘 고모의 능력은 이능이 아니라 노력이었다.
손바닥이 다 상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검을 잡았고, 휘둘렀다.
매일 밤 말이다.
하지만 그런 고모의 노력은 자기들이 착각했던 그 이능이 없다는 그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모두가 이능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단한 노력이었는데.
그날 이후, 미쉘 고모가 검을 드는 걸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전생의 언젠가 아빠가, 고모를 보며 아까운 재능이라고 말을 했었는데.
“알겠다.”
냉랭하게 대꾸하며 물 잔을 드는 고모의 옆얼굴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내려놓았던 포크를 들어 고기를 입에 넣었다.
어린이는 모른 척해야지.
이럴 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6살인 게 좋았다.
아니면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다던가.
“다 먹었어?”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빤히 보고 있는 리리아나처럼.
얼른 놀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그녀의 눈동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으, 응.”
“그럼 가쟈!”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의자에서 내려온 리리아나가 미쉘을 올려다보았다.
“엄마?”
뒤늦게 허락을 구하는 리리아나의 시선에 나를 잠시 바라보던 미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은 방으로 올려 줄 테니, 올라가서 쉬고 있으렴.”
“네.”
“좋은 시간 보내거라, 레티시아.”
미쉘 고모에게서 처음 듣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 * *
그렇게 점심을 먹고 리리아나의 방으로 올라가, 간식도 먹었다. 그러고는 한참 리리아나의 옷으로 패션쇼를 하고, 그녀의 인형으로 인형놀이까지 마치고 나서야 겨우 백작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
하지만 모든 체력이 다 고갈된 것처럼,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또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다.
‘가야지.’
이걸 위해서 나온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헤일.”
“네.”
“그…….”
“그쵸, 저 뒤에 마차가 조금 이상하죠.”
말끝을 늘이는 내 말에 창밖을 흘끗 보던 헤일이 고개를 돌렸다.
“백작가 앞에서부터 천천히 저희 마차 뒤만 따라오고 있는데, 가문 문양도 없고 아무래도 조금 이상해요.”
아침에 아리나와의 실랑이가 떠올라서였을까, 등 쪽으로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헤일이 괜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거 같았으니까.
해서 그녀의 말에 뒤로 난 창문을 젖혀 보니, 정말 이상한 마차 하나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냥 우연히 길이 같겠지, 라기에는 백작가 앞에서부터 따라왔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할아버지가 붙인 사람이라면, 저렇게 몰래 따라올 리는 없고.’
과민 반응이라기에는 수상쩍은 마차의 움직임에 헤일을 돌아보았다.
“오네 쪽으로 가자 그래.”
“네?”
“저 마차 따라오나 보게.”
“네, 알겠어요.”
내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 헤일이 마부에게 오네로 가 달라고 말하고는 돌아앉았다.
그리고 공작가가 있는 실벵 지역과 오네의 주거 지역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그 마차는 주저함 없이 우리 마차를 쫓아 오네의 주거 지역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따라오네요.”
걱정스러운 듯 헤일이 입술을 말아 물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덩달아 불안해졌다.
저 마차를 떼어 놔야겠어.
“헤일, 마차 멈추라고 해. 저 마차부터 보내쟈. 우리가 착각한 걸 수도 있잖아.”
“네.”
내 차분한 말에 헤일이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 그대로 마부를 불렀다.
“아저씨, 멈춰 주세요. 아기씨가 속이 불편하시대요.”
“아이쿠, 알겠어요.”
작은 창문으로 흘끗 안쪽을 들여다본 마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곤 옆쪽으로 난 갓길에 마차를 멈추었고, 그 잦아드는 진동을 느끼며 마차의 창문을 가려 놓은 커튼을 젖혔다.
‘과연.’
지나갈까.
만약에 안 지나가면 어떻게 하지?
나는 6살이고, 헤일이랑 마부뿐인데. 만약에 해코지를 하려는 거려면 어쩌지?
이번 생은 설마 여기서 엔딩인가?
나 지금 좀 행복한데?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수백 가지 생각에 입술을 깨물자,
“속도를 줄이는데요.”
헤일이 불안한 듯 작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천천히 속도를 줄이던 마차가 느닷없이 속도를 높여 우리 마차를 지나쳤다. 가문의 문양도 없고, 그렇다고 대여 마차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검은 마차는 창문까지 검은 커튼으로 가려 놓아 안쪽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저런 마차는 처음이에요.”
“그러게.”
물론 제가 과민 반응한 걸 수도 있었다. 괜한 마차를 의심한 것일 수도.
하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경매장 가는 게 쉽지 않겠어.’
물건을 낙찰 받기 위해, 다른 궁리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헤일을 올려다보았다.
“얼른 돌아가자.”
피곤에 잔뜩 절여진 듯한 얼굴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