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31)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31)화(31/141)
그 날, 리리아나는 나와 노는 게 아주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랬겠지.
고아원에서 동생들이랑 놀아 주던 스킬을 여실히 발휘했으니까.
아무튼 리리아나는 그 다음 주에도 나를 백작가로 초대했고, 매우 기쁜 마음으로 그녀와 하루 내 놀아 주고 밤이 되기 전에 나왔는데, 소름 끼치게도 첫째 주와 똑같은 마차가 나타났다.
그래서 무서워서 경매장에 가지 못했다.
누누이 말했지만 아무리 회귀자여도 6살이었다.
베넷에게 호위를 붙여 달라 말을 해 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러면 내 동선이 너무 다 드러나 버려서 곤란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그 다음 주가 되었고, 그 세 번째는 리리아나의 도도한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 내가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경매장에 가지 못했다.
이번엔 마차가 따라와서가 아니라, 리리아나가 자고 가라고 내내 울어서였다.
그렇게 네 번째 주가 되었고, 난 이번에도 저녁이 다 되어서야 백작가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다음 주에 또 놀러오겠다는 약속을 백 번쯤 한 뒤였다.
‘하아.’
죽겠네.
기운이 쪽 빨린 것처럼 마차에 늘어져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오는 시간은 거의 비슷한데도 해가 지는 속도가 달랐다.
이제 정말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헤일에게 부탁을 하려 해도 그 물건에 대해서 아는 건 나뿐이었고,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라 내가 직접 가서 보고 사들이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경매장에 있는 모든 검을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 없단 말이지.’
고작해야 금화 10개. 보석을 팔아도 금화 10개가 더 생기는 정도였다.
남은 용돈을 긁어 보아도 금화 2개.
아무래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하아, 앞으로 돈 쓸 일 많은데.’
오네에 가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딴 주머니를 한번 제대로 차 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다시 되돌아온 경매장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이것 때문에 아리나를 쫓아내는 것도 잠시 뒤로 미뤄 둔 상태였다.
물론 그 사이에 아리나가 몸을 사리는 건지 내 눈앞에 잘 안 띄고 있는 것도 한몫했지만.
‘2급 하녀의 눈치란.’
거기다 할아버지의 병도 폴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폴도 요즘 얼굴 보기 어렵고.’
버드나무 껍질에 대한 연구를 하느라 그런 것이리라, 예상은 하지만 할아버지의 익투스는 어쨌든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움직이는 중이었다.
얼른 치료제를 만들어야 할 텐데.
요즘 평일에는 수업을 받고, 주말에는 리리아나와 놀아 주느라 다른 거 할 생각이 없었다.
할아버지 운동도 챙겨야 하는데.
저녁이면 이 작고 연약한 몸은 쓰러져 자기 바쁘니.
‘좀 건강했으면 좋겠어.’
며칠씩 밤새도 전혀 무리 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하아아.”
과장을 조금 섞어 마차 뚜껑이 날아가게끔 길게 내쉬는 한숨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던지 창밖을 살피던 헤일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속이 조금 답답해서.”
“무슨 고민 있으세요?”
“응?”
속이 답답해서라는 말에 헤일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요 몇 주 내내 고민이 있으신 거 같아서요.”
‘귀신이네.’
하긴 내내 붙어 있는 사람이 헤일이었으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내가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리를 맨날 그렇게 쥐어뜯고 있는데.
“그냥.”
뒷머리를 긁으며 그냥 넘어가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뭉개듯 하는 내 말에도 헤일은 작정한 듯 되물었다.
“어디 가고 싶으신 곳이 있는 거예요?”
헐.
진짜 귀신인가?
너무 정확하게 묻는 헤일의 말에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그리고 내내 주저하고,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니까 나 좀 도와줘, 헤일.”
다짜고짜 도와 달라는 내 말에 헤일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저만 믿으라는 듯, 믿음직하게 말이다.
* * *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걸.’
이게 헤일에게 설명을 마치고 난 뒤의 내 간략한 소감이었다.
4주 동안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말은 쉽게 술술 흘러나왔고, 헤일은 생각보다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들였다.
물론 조건은 붙었지만.
“대신 저 3급 하녀로 올려 주세요.”
‘2급 하녀로 올려 주려고 했는데.’
어쩐지 소박한 그녀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애당초 아리나랑 린지 쫓아내고 나면, 그 자리에 헤일 올리려고 했었던 거니까.
이 정도 부탁은 부담이 없었다.
다른 걸 요구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니, 어쩌면 헤일이 지인짜 똑똑한 걸 수도 있지.’
나 돈 없는 건 헤일이 더 잘 알 테고, 그럴 바엔 승진을 해서 봉급을 올리는 게 더 효율적인 일이었다.
신임은 나한테서 얻고, 돈은 가문에서 받고,
‘현명하네, 헤일.’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헤일이 저렇게 나와 줘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리한 부탁에 아무 조건 없이 돕겠다고 했다면, 더 의심스러웠을 텐데.
‘인간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는 내 마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구럼 오늘 나가?”
“아뇨, 오늘은 안 될 거 같은데요.”
“……왜?”
시무룩한 얼굴로 눈썹을 늘어트리는 내 물음에 대답 없이 손으로 마차 너머의 마부를 가리킨 헤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준비가 안 되어서요..”
“아.”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싶어 눈을 깜박이자, 헤일이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있구나.
어쨌든 오네는 나보다는 헤일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다음 주?”
“네.”
끄덕이는 헤일의 믿음직한 표정을 보며 나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 시작이었다.
아, 그 전에 잠깐.
“군데 헤일 어뜨케 알았어? 나 어디 갈 데 있다는 거?”
“치마 속에 돈주머니요.”
“아.”
잘그락잘그락 4주 내내 차고 나온 내 치마 속 돈주머니.
“하.”
나 살 거 있어요, 라고 온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닌 거네.
새삼 회귀자라고 다 똑똑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헤일이 알아채 줬으니까.
조금, 바보 같아 보여도 상관없었다.
* * *
“별다른 건.”
“어, 없으셨습니다.”
레티시아 귀가 이후 아리나를 불러들인 엘린이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빤히 보았다.
“…….”
그 아무 말 않고 빤히 바라만 보는 시선에 어쩐지 위장이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것이.”
숨을 버겁게 몰아쉬며 깍지 낀 양손을 꽉 움켜잡았다.
달달 떨리는 손끝을 보며, 못마땅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쉰 엘린이 고개를 들었다.
“아리나.”
“네, 네.”
“내 말이 너무 어려웠니?”
“아뇨, 그럴 리가요.”
아리나가 고개를 저었다만, 엘린은 여전히 못 미덥다는 얼굴이었다.
“근데 왜 오늘도 아가씨를 따라가지 못한 거지? 내가 분명,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리나.”
“그게.”
말끝을 뭉갠 아리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저도 미칠 노릇이었다.
‘대체 왜 효과가 안 나오는 건지.’
답답함에 가슴을 팡팡 두드리고 싶었다.
분명 조금만 사용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레티시아에게는 정말 씨알도 먹히지가 않았다.
“그것이 저도 노력을 하고는 있는데.”
“노력만 해서 되겠어?”
“…….”
“성과가 있어야지.”
평소의 엘린답지 않은 냉랭함에 아리나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러다 이 끈마저 떨어지면.
저는 갈 곳이 없어졌다.
레티시아에게까지 외면당하고 있는 마당이니.
조급함에 숨을 몰아쉬었다.
“더 노력을…….”
하지만 그런 아리나의 말을 끊은 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나 능력이 안 되는 거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어때?”
“엘린 님.”
“그 자리 노리고 있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엘린이 아리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벨리아 님께서 다른 아이로 교체하고 싶어 하는 거 내가 막고 있었는데, 이런 식이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차라리 장원으로 내려…….”
안 돼.
장원이라는 말에 아리나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제, 제가 이번에는 반드시 따라붙을게요. 장원은 싫어요. 거기는…….”
에시어의 장원이 작은 영지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래도 황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제가 레티시아 그 거지 같은 사생아의 딸을 모신 이유가 뭐였는데.
전부 수도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데, 그 한순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은 아리나가 엘린을 향개 고개를 내저었다.
“일주일, 아니 열흘만 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벨리아 님께서 원하시는 소식 가져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