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37)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37)화(37/141)
발을 동동거리며, 애타게 리안의 곁에 선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네 엄마 걱정하셔. 응? 리안아.”
그 순간, 피칠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끔, 아이의 검은 머리칼은 피인지 물인지 모를 걸로 젖어 있었고, 이마에 난 상처에선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희고 잘생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핏물에 나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정말 리안이야.’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을 타고 들어가 아무래도 따끔한 듯,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으나,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아주머니를 향해 고개를 젓는 아이의 얼굴과 그 아래 짓밟힌 손등에 눈을 부릅떴다.
우리 애 손을!
저 손이 어떤 손인데!
앞으로 소모멧 황가를 이끌고, 테파로아 제국을 지킬 그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손” 님을!
“야!”
이 미친놈들아! 라는 말을 생략한 채 앞뒤 안 가리고 소리를 내질렀다.
“방위대 어딨어! 경찰!”
아저씨들 얼른 오세요! 망나니들이 우리 애 잡아요!
하지만.
“…….”
내 비명에도 달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되레 가면을 쓴 귀족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더불어 리안의 시선도.
아,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흘끗거리던 사람들은 싹 사라진 뒤였다.
아마도 주변에서 몰래 보고 있겠지.
불똥 튀지 않기 위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 같아도 도망부터 쳤을 텐데 뭐.
그리고 리안만 아니었으면, 아마 펠의 말대로 그냥 모른 척 넘어갔을 거다.
근데 하필 리안이지 않은가.
내가 앞서 말했다시피, 이번 생에서는 내가 어디까지 잘해 줄 수 있을까, 싶게끔 잘해 줄 작정이었거든.
근데 아무도 안 올 줄은 몰랐네.
‘어쩌지.’
펠이 머리를 부여잡는 걸 보며 고개를 돌리자, 또 다른 먹잇감을 발견한 듯 귀족 영식들의 눈이 돌아가는 게 보였다.
“뭐?”
“야?”
“경찰? 방위대?”
하지만 빈정대며, 나를 향해 걸어오는 덕분에 리안의 손등이 자유로워졌다.
다행이다.
대체 뭘 지키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벗어나게 했으니 됐다 싶었다.
물론 눈앞의 세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조금 복잡했지만,
‘도망갈까.’
지금이라도 튈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땀을 닦으려 했던 건지, 가면을 살짝 벗은 남자의 얼굴에 문득 처리법이 떠올랐다.
“호오.”
‘쟤, 우리 가신 가문 아들인데?’
애드먼 자작가.
저 아버지도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에시아 망하기도 전에 내쳐질 위기의 가문이었다.
‘애드먼 자작가면 아마도 할아버지의 사촌 동생이었던 케이먼 에시어와 연관이 있었을 텐데.’
내 기억이 맞다면 전생의 케이먼이 무역업으로 돈을 벌어 보겠다고 이 사람 저사람한테 돈을 뜯어서는 말아먹었는데, 그 수법을 애드먼 자작가에서 고대로 베껴서 해 먹으려다 베넷한테 걸렸었다.
자작가의 이름 걸고 했으면 또 모르겠는데-
‘에시어 이름 팔다 걸려서 진짜 박살났었지.’
어쨌든 우리 집안에 한 발 걸쳐 놓고 있는 그 애드먼 자작가의 삼남의 얼굴에 시익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 애드먼 자작가의 삼남이지? 이름이 피에르였나?”
순간, 들린 이름에 피에르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말 한마디에 동공이 흔들리는 게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이게 잘하는 짓이 아닌 걸 아는 거지.’
그리고 부모님께 알려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뭐? 네가 어떻게…….”
“입 닥쳐!”
피에르가 거칠게 뒤쪽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지금 그 말은 자신이 애드먼 자작가의 삼남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너 누구야.”
하지만 그래도 겁박은 해야 했던지. 위협적으로 다가선 그의 걸음에 시익 웃으며, 덮어쓴 후드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
“나? 에시어.”
그러곤 아주 작게 속삭였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만…….
‘나중에 잡아떼야지 뭐.’
일단은 나나 리안이부터 살리고 보자 싶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어디서! 아!”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올려 들었던 그가 이내 소리를 내지르며 손을 부여잡았다.
퍽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하기가 무섭게 이어 들린 휙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이마를 움켜쥐었다.
“악! 누구야!”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던졌는지도 모를 뭔가에 얻어맞고는 주변을 홱홱 소리가 날 정도로 돌아보던 피에르가 뒤로 물러섰다.
“너,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던데.
‘챈들러도 그렇고.’
“내가 누군지 알고?”
해서 후드 아래에 숨겨 놓았던 고개를 살짝 들자, 내 푸른 눈동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알아챈 듯, 입을 벌리고 있던 피에르가 지익 소리가 나게끔 뒷걸음질 쳤다.
놀랐겠지.
내 눈동자는 할아버지가 똑 닮았으니까.
에시어의 상징과도 같은 사파이어 눈동자에 뒤로 물러선 피에르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곤 다급히 몸을 돌렸다.
“가, 가자.”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봤는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최소한 이 자리에서 오래 있어 봐야, 제 정체만 더 들통날 뿐이라는 걸 깨달은 듯 다급한 뒷모습이었다.
그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 뒷모습에 펠을 돌아보았다.
혹시 그녀가 뭘 던졌나 했으나-
“왜 저러는 거예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놀라 눈을 끔벅이는 펠의 반응이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 해 주었다.
뭐지?
피에르가 서 있던 자리 아래에 떨어진 돌멩이 2개에 고개를 갸웃했다.
뒤쪽에서 누가 도와줬나.
해서 시선을 돌리다 문득 시야 끝에 걸리는 리안의 모습에 고개를 멈추었다.
기듯이 엎드린 채, 고통을 이기지 못한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움켜쥔 손을 가슴팍으로 당겨 손안에 든 것을 숨긴 아이가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듯한 리안의 모습에 몸을 돌렸다.
“펠, 물이랑 집에 상처 싸맬 천 있으면 천 좀. 약도 있으면 좋구.”
펠에게 부탁을 하곤 도도도 뛰어가 리안의 가까이에 멈춰 섰다.
너무 가깝게 다가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 조금 거리를 벌리고 선 채 리안을 살피듯 고개를 옆으로 바짝 기울였다.
그러자 내 기척을 느낀 건지, 아이가 바르작거리듯 몸을 움직였다.
“괜찮아?”
“…….”
물음이 잘못됐네.
당연히 안 괜찮은 것을.
물으나 마나 한 것을 물었던 혀를 깨물며,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프겠다.”
이것도 물으나 마나겠구나.
‘바보.’
그토록 바란 리안과의 만남이었는데.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늪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잘해 주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시아 시절에 원장한테 맞고 왔을 때, 그때 어땠었지.’
‘괜찮아?’
‘아프겠다.’
그래, 그때의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괜찮냐고 묻지 않기를 바랬다.
괜찮냐고 물어도 안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아프냐고 물으면 아프다고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그냥 나 혼자 털고 일어날 때까지 누군가 지켜봐 주었으면 했는데-
“…….”
리안이도 그러려나. 하고 그를 살피듯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세상에!”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확인하는 리안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있는 건 안 될 것 같았다.
“의사 불러 주께, 가만…….”
“됐어.”
하지만 내 호들갑을 거절하듯 고개를 저은 리안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 탓에 손에 쥐고 있던 동화 한 닢이 바닥에 떨어져 빙글 구르다, 넘어졌다.
동화 한 닢이었구나.
그리고 보니.
‘네 엄마 걱정하셔. 응? 리안아.’
그 발을 동동 구르던 아주머니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직 리안이 엄마 살아 있을 때구나.
내가 6살이었던 그 해의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그 때에 리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약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리안은 평생 그리워했고, 그런 그를 비슷하게 엄마를 잃은 여주가 위로하며 서로 가까워졌었지.
‘그게 이즘이었구나.’
그리고 그래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거고.
동화 한 닢이면, 리안이 엄마 이삼일 치 약값이었으니까.
‘그래도 살리지는 못할 텐데.’
이미 내가 나서서 손을 쓰기에 그의 엄마의 병세가 너무 짙었으니까.
그리고 나야 소설 내 변방에 붙어 있는 조연이었으니 이리저리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였지만, 리안이는 주인공이 아닌가.
그의 서사를 뒤집어 놓는 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음이었다.
‘내 계획이 다 어그러진다든지.’
내가 기억하는 게 모두 사라질 수도 있음이었다.
‘미안해, 리안아.’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마주하며 고개를 들자, 때마침 펠이 깨끗한 물과 붕대, 그리고 약초 가루를 가져왔다.
“지혈에 좋대요. 언니가 그랬어요.”
헉헉대는 펠에게서 물건을 건네받고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뭘 하려는 거냐고 묻는 듯한 얼굴에-
“손 이리 내.”
손을 내밀었다.
“상처부터 치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