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40)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40)화(40/141)
후.
폭풍 같았던 지난 몇 시간을 떠올리자 등짝에 땀이 배어 나오고, 온몸이 다시 추욱 하고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난 솔직히 아기씨가 마지막으로 금화 100개! 외치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라니까? 내가 분명 단검을 금화 두 개를 주고 사 왔으니까. 아가씨 주머니에 든 건 금화 28개뿐인데 냅다 100개! 이래 버리니까. 눈앞이 진짜 캄캄하더라니까.”
펠이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이마를 짚었다.
“와 이 아기씨 진짜 꼴…… 아니, 음.”
“펠!”
순간 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듯 입을 꾹 다문 채 내 눈치를 살피는 펠과 헤일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꼴통.
맞는 말이지. 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인데 머.”
대책 없이 질렀던 건 맞으니까.
그 미친 돼지가 눈에 보이지만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내가 올려놓은 금액을 자꾸 가로채는 사람이 딱 소설 속 묘사처럼 뚱뚱하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걸 어떻게 해.
‘이왕 시작했으니 질러야지.’
“난 고작해야 금화 30개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금화 100개.”
펠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마 노예 거래로는 그 경매장 최고 금액일걸? 난 솔직히 그 흰 피부에 은발 아이가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
그 아이는 누가 사갔더라.
그래도 쟈이든보다 앞쪽에 이루어진 경매라 그를 얻어 내지 못했던 그 돼지가 보상처럼 낙찰 받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돈만 있었어도.’
걔네 다 구해 줬을 텐데.
금화, 금화. 돈. 돈. 돈!
그래, 이제 슬슬 돈 벌 구석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오네로 가자마자 할 만한 것들을 정리해 봐야겠어.’
뭐든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오네에서는 저택에 있는 것보다는 자유롭고, 할아버지도 그런 식으로 내가 뭔가를 움직이는 걸 좋아하실 수도 있을 테니까.
애당초 오네로 가서 평민들 사이에서 어우러지라는 게 그런 의미였으니.
‘할아버지도 오네에서 장사를 했었고.’
그러니 내가 돈을 버는 건 아마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거다.
물론 앞으로 움직이는 거 따로, 뒤로 뒷주머니 차는 거 따로로 할 거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위해서 비자금, 아니 비상금 정도는 있어야지 않겠나.
“근데 그 남은 금액은 어떻게 하셨어요?”
“아. 그거. 빌렸어.”
“누구에게…….”
여기 나온 것 자체가 비밀이었는데, 대체 누구한테 그 큰돈을 빌렸나 싶어 헤일이 눈을 깜박였다. 그 의아해하는 시선에 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그냥 웃어 주었다.
‘아기씨.’
나도 몰랐거든.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날 줄은.
하하. 하!
* * *
“금화 100개.”
“으악!”
안절부절못하는 펠을 대신해 금액을 내질렀다.
물론 나도 일단은 지르고 본 것이 맞았다.
저 돼지한테 쟈이든을 빼앗길 수는 없었으니까.
용돈과 기타 내 몫인 땅을 떠올렸다.
그걸 담보로 하면 일단 은행에서 금화 100개 정도는 빌릴 수 있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을 전부 다 써 버렸으나, 후회는 없었다.
쟈이든이었으니까.
전생의 한 자락,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던 아이.
‘그래, 쟈이든이 나한테 잘해 준 것만 생각하쟈.’
아까워하믄 안대.
가슴이 어쩐지 휑한 느낌이었으나, 일단은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단검을 품에 넣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쟈이든을 데리러 움직인 그때-
“아기씨.”
‘음?’
여기서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했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어서는 도망칠까? 였고. 하지만 펠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기엔 헤일과 너무 똑 닮았고, 나를 불렀을 때는 베넷 나름의 확신도 있었을 거다.
고로.
“안녕 베넷.”
도망쳐 봤자. 라는 의미였다.
시익 웃으며, 그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후드는 여전히 뒤집어쓴 채라 그를 올려다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조금 더 올려 들었어야 했지만 그가 입은 옷차림만으로도 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은 나가실까요?”
“일단 쟈이…… 아님 저 애 데리고 와야 하는데?”
“제가 하죠.”
그러곤 뒤쪽에 선 페일런에게 고개를 돌려 아이를 데려오라 이르고는 내 등을 살포시 밀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여, 뭐 좀 샀…….”
나를 안내했던 사내가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했으나, 옆에 선 베넷의 얼굴이 살벌했던지 이내 입을 다물고는 못 본 척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숨겼다.
저 덩치가 저렇게 나올 정도면.
‘베넷 진짜 화났나 부네.’
솔직히 그의 화난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지라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위기만 보면, 할아버지 뺨치는 모양이었다.
‘흠.’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며 등에 닿은 그의 손을 밀어내듯 몸을 돌렸다.
“베넷 이짜…….”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으로 떼워 볼 생각 따윈 하지 말라는 듯한 베넷의 단호함에 살짝 벌어졌던 입술을 꾸욱 말아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잘 넘어갈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눈을 데굴 굴리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야기하셔야 할 겁니다.”
그가 또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거르는 건 제가 할 테니.”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물러날 생각도 그냥 넘어가 줄 마음도 없어 보이는 그의 눈빛에 하는 수 없이 베넷의 소매 끝을 잡아 끌며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품에서 검집을 꺼내 들었다.
“이고 아빠 꺼.”
“…….”
하지만 베넷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나와 내 품 안에서 나온 단검을 번갈아 보았다.
“이고 웨르시펠이야.”
“……네?”
베넷도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이게 왜.”
손을 뻗어 웨르시펠을 건네 받은 베넷이 검집과 검자루를 살폈다.
실물로는 한 번도 본 적 없어 이게 진짜 웨르시펠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는 눈치였다.
“거기 칼자루에 고대어 바바. 웨르시펠이라고 써져 있지?”
내 말에 칼자루를 돌린 그가 글자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우연히 전해 들었어.”
이 뻔뻔한 거짓말이라니.
우연히 이런 뒷골목 경매장에 단검이 있다는 걸 대저택에 살고 있는 6살짜리 영애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아주아주 뻔뻔스럽게 그 주장을 반복했다.
“누가 말한 걸 들었어.”
“웨르시펠에 대해서요.”
“아니 웨르시펠이라구는 안 했고, 그냥 설명만 들었는데 그거인 거 같아서, 확인하려고 왔는데. 진짜 웨르시펠인 거야! 그래서 사써.”
“…….”
베넷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래, 나도 안다.
이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지를.
하지만 어쩌겠나.
‘회귀자라고 전부 천재가 아닌 것을.’
나도 엄청 똑똑하게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임기응변으로 우기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베넷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레샤 잘못한 거야?”
“네.”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베넷의 말에 입을 오리처럼 내밀었다.
“이런 건 다른 사람을 시키시면 될 일이지요. 여기 헤일도 있고요.”
“아빠 거 라는 건 나만 아는걸? 다른 걸 사 오면 어떻게 해.”
“그래도요. 저택에 사용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렇게 혼자서, 고작 하녀 하나 데리고 나오시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레샤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베넷의 말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베넷이 아랫입술을 살짝 씹었다.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그도 알고 있었던 바를 내가 언급해서 받은 충격이겠거니 싶었다.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러니까 레샤 혼내지 마.”
“혼이라뇨.”
“할부지한테 이르지도 말구.”
“……알겠습니다.”
“그리구 빌려준 돈은 내가 곧 갚으께.”
“……네?”
이런 걸 두고 눈 뜨고 코 베이는 거라고 하는 건가.
그냥 나를 막기 위해서 대신 움직여 값을 치른 것뿐일 텐데.
선수 치듯 건넨 내 말에 조금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내 “알겠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빚은 톡톡히 달아 놓겠습니다.”
어쩐지 쪽쪽 빨아 먹힐 것만 같은 말이었다. 그냥 땅을 팔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다만.”
“……웅?”
턱 끝을 톡톡 두드리는 내 행동에 베넷이 나와 시선을 맞추듯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러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모야, 무섭게.’
차라리 뭐라고 하면 좋겠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더 무서워 보이는 그의 갈색 눈동자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어깨가 쭉 올라갔다가 내려올 정도로 크게 몸을 들썩이는 내 모습에 베넷이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제게 말씀하세요.”
“…….”
“가주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어 보였다.
전과는 조금 다른데.
그 시선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모셔다드…….”
“그럼 지금 나 부탁 하나 해도 돼?”
베넷 자유 이용권을 얻었으니, 바로 당장에 이용해 줘야지 않겠는가.
해서 눈을 반짝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