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52)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2)화(52/141)
이 상황에서 물에 빠질 사람은 앞서 달리던 제이슨뿐이라는 생각에 헬렌이 뛰어나가려 몸을 돌렸다.
“채, 채디?”
“사, 사, 살려- 살……컥!”
하지만 헬렌의 생각과 달리 순식간에 사라진 빛 사이, 모습을 드러낸 호수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제이슨이 아니라, 챈들러였다.
“챈들러!”
벨리아가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온실에서 뛰어나왔다.
왜 쟤가 저기 있는 거지?
분명, 제이슨이 앞서 달리고 있었는데?
그럼 제이슨은…….
빠르게 뛰는 심장에 숨을 몰아쉰 헬렌이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호수로 뛰어 들어가는 사용인들 너머로 뭍에 주저앉은 제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온몸을 덜덜덜 떨다 이내 울기를 반복하는 제이슨과 그런 제 아들을 보고 있는 레티시아까지.
한 시야에 다 들어오는 그 모습에 헬렌이 일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뜩이나 물을 무서워하는 제이슨이 물에 빠지지 않았다는 거에 일단 안도한 치맛자락을 움켜쥐자-
“빨리! 빨리 구해 내란 말이야!”
사용인들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벨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 호수로 뛰어 들어간 사용인들이 다급히 챈들러를 구해 내는 모습에 헬렌이 다급히 벨리아의 뒤를 쫓았다.
“형…….”
“왜 우리 챈들러만 물에 빠졌지? 그 빛은 또 뭐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내지르는 벨리아의 말에 괜히 제 아들에게 화살이 돌아갈까, 싶은 헬렌이 벨리아의 곁으로 바짝 붙어 섰다.
“설마. 레티시아가 이능으로…….”
그러곤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가 입을 막았고,
“뭐?”
그 말에 눈가를 붉게 물들인 벨리아가 싸늘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헬렌을 돌아보았다.
“…….”
그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는 헬렌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헬렌의 표정에 고개를 돌린 벨리아가 뭍으로 끌어당겨지는 챈들러의 옆으로 물러서 있는 레티시아의 모습에 이를 바득 갈았다.
“감히.”
‘샤리에의 딸이 내 자식을 건드려?’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 * *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앞에서 제이슨이 빠지는 장면을 보고 몸을 돌린 순간 일은 벌어졌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생각은 오직 그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상 올가가 눈을 가리고 있어서 눈앞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이제 숨, 내쉬어요. 공간 다 부시지 말고.”
“지금…….”
“지금은 숨 쉬는 데에만 집중해요.”
내 눈을 가리고는 천천히 다독이는 올가의 목소리를 따라 일단은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그의 목소리를 좇아 숨을 내쉬고, 마시기를 반복하자 온몸에 빠듯하게 차 있던 낯선 감각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서서히.
“잘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숨을 후 하고 내쉬고서야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워 주었다.
깜깜한 곳에 있다가 빛 사이로 나온 것처럼 시린 눈을 살짝 뜨자, 그제야 진공 상태였던 유리가 팡! 하고 깨진 것처럼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챈들러 도련님!”
“세상에!”
“도련님!”
“얼른 누가 도련님 좀!”
마치 시간이 멈췄다 다시 흐르는 것처럼.
눈앞에서 유유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말도 안 돼.’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시간을 멈추는 능력 같은 엄청난 게 나한테?
‘말도 안 돼.’
헛웃음을 하하, 하하 뱉으며 손을 보던 시선 그대로 올가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쉿.”
하지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려는 내 말을 막듯 그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조용히 검지로 입술을 톡톡 두드리는 그의 모습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그가 말을 해 준다고 해도 사방이 너무 시끄러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능 각성을 제이슨 때문에 하게 될 줄이야.’
진짜 세상일 모르는 거네.
날 그렇게 괴롭히는 두 사람 중 하나인데.
하지만 그 당시엔 다른 건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가득 했던 단 하나는 ‘제이슨은 물을 무서워해.’였으니까.
전생에서도 원래도 물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어릴 때 물에 빠졌다가 죽을 뻔했던 이후로 더욱 물에 대한 공포가 심해졌다고 했었다.
씻는 것도 거부할 정도로. 뭐 그렇다고 해도 챈들러와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내내 나를 괴롭히기만 했던 제이슨을 뭐가 예뻐서,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만-
‘기질 특성이 이타성이라 그런 건가?’
그가 위험에 빠진 걸 본 순간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거 이능은 맞는 거겠지?
괜히 덜컥 드는 두려움에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맞겠지?
시간도 멈췄는데, 동그라미를 못 그리면 자괴감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지 않았던가.
해서 손끝을 들어 허공중에 크게 원을 그리듯 내젓자-
“어?”
마치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밝은 빛의 동그라미가 허공중에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그 옆에 세모, 네모, 별 모양까지 신나게 휘두르며 고개를 들었다.
올가에게 자랑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내 몸은 의지와 다르게 콧대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진짜 뭐, 딱히 자랑하려는 건 아닌데.’
하지만 그런 내 표정을 읽은 듯, 피식 웃은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칭찬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흥!”
어쨌든 칭찬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자제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올가, 제이슨은?”
“괜찮을 겁니다. 조금 놀란 모양입니다.”
“다행이다.”
“아기씨가 구하신 겁니다.”
올가의 담담한 말에 또다시 배시시 말려 올라갈 것 같은 입술 끝에 힘을 주었다.
그 모습에 올가가 피식 하고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나도…….”
“아기씨는 여기 계시죠.”
돌아서는 올가를 쫓아 움직이려는 나를 막아 세운 피어스가 잔뜩 표정을 굳혔다.
“괜히 위험하게 움직이지 마시구요.”
시비를 걸고 싶어 잔뜩 뿔을 올린 망아지처럼 나를 보는 피어스의 시선에 슬쩍 올가를 돌아보았으나, 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 멀찍이 챈들러를 끄집어 올리는 사용인들 가까이로 다가서는 올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게써.”
괜히 내가 가면 도움도 안 되고, 성가시기만 하지.
차라리 리리아나와 같이 있다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어, 몸을 돌렸다.
“리리.”
하지만 그 순간-
“너!”
채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왼쪽 팔을 당기는 힘과 동시에 몸이 옆으로 돌아갔고, 이내 사정없이 날아드는 손에 질끈 눈을 감을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짝!
“세상에 형님!”
“비켜.”
“그럴 수 없겠는데요.”
손으로 입을 막는 헬렌을 뒤로한 벨리아가 내 앞을 막고 있는 피어스에게 다시 손을 올렸다.
짝-.
“비켜.”
“그럴 순 없겠습니다.”
짝-.
“안 비켜?”
내 앞을 단단히 지킨 채 벨리아 숙모에게 연신 뺨을 맞는 피어스의 모습에 고개를 들자, 이미 이성을 잃은 벨리아가 다시 손을 올리고 있었다.
“구만요!”
그 모습에 빽 소리를 내지르며 피어스를 밀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엔 내가 피어스를 지키는 모양새에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었고, 리리아나까지 놀라 곁으로 다가섰다.
“숙모, 왜 그러세요.”
“몰라서 묻니?”
몰라서 묻는데요.
대체 챈들러가 물에 빠졌는데, 나를 왜 잡는 건지.
“모르겠어요.”
고개를 젓자, 벨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보며 소리를 높였다.
“얘 좀 봐? 레샤, 숙모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아주 나쁜 아이구나?”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뭘 잘못한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벨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그 잘못한 기색이라고는, 아니 애당초 잘못을 안 했으니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저를 빤히 보는 내 눈빛이 기분이 나빴던지, 벨리아가 고압적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으렴.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 별채로 쫓아내 버릴 테니까!”
미친 사람처럼 내지르는 벨리아의 비명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그 말에 벨리아는 그야말로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이에 헬렌이 나를 나무라듯 앞으로 나왔다.
“대체 왜 이능을 쓴 거야. 그 때문에 챈들러가 물에 빠졌잖니. 제이슨도 빠질 뻔했고.”
“…….”
다독이는 것 같은 말투였으나, 헬렌 역시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네가 쓴 이능 때문에 내 자식들이 다칠 뻔하였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