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53)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3)화(53/141)
그 말에 순간,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 욱신거림이 마음에 난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몸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울렁거렸다.
애당초 기대는커녕, 감정도 없었던 사람들임에도 그들이 온몸으로 드러내는 미움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 감정 없었잖아.’
그럼에도 시큰한 코끝에 고개를 들었다.
“대체 왜 그런 거니, 레샤. 챈들러가 네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니?”
눈에 뻔히 보이는 내 상처 입은 표정은 전혀 아랑곳 않은 헬렌이 나를 조용히 다그쳤다.
차분히 내가 마치 의도를 가지고 챈들러를 빠트렸다고 확신하는 헬렌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전…….”
하지만-
“벨리아 숙모는 왜 레샤를 때리려고 해요? 헬렌 숙모는 왜 레샤한테 뭐라고 해요?”
그런 내 말을 막은 리리아나가 씩씩대며 내 앞을 막아섰다.
“리리아나.”
나를 두둔해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저보다 더 작은 나를 지키려는 듯 앞에 선 리리아나의 뒷모습에 코끝이 시큰거리는 것만 같았다.
“레샤가 무슨 잘못이 있는데요?”
희고 깨끗한 얼굴을 찌푸린 리리아나의 말에 헬렌과 벨리아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미쉘 고모의 영향력 때문에 리리아나에겐 나를 대하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무시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리리, 레티시아 때문에 말이 놀라 챈들러 오빠가 물에 빠졌잖니, 그러니…….”
이걸 자신이 왜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마를 짚은 헬렌이 고개를 젓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레샤, 이건 네가 사과해야 하는 거야. 그러니 오빠들이랑 둘째 숙모께 얼른 사과…….”
“만약 그런 거면 사과는 숙모들이 저한테 하셔야 해요.”
리리아나의 두둔에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뭐?”
그 말에 헬렌과 그 너머에 선 벨리아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빤히 보았다.
“너 미쳤니?”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따.
“숙모들은 못 보셨잖아요. 챈들러 오빠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요. 왜 빠졌는지도요.”
“…….”
“숙모들이 못 본 거 나는 다 봤어요. 리리도 봤고, 올가랑 하녀들이랑 저기 일하는 사용인들도 다 봤어요.”
또박또박 뱉는 내 말에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벨리아가 주변을 흘끗 돌아보았다.
이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벨리아를 슬쩍 돌아보는 헬렌의 모습까지.
두 숙모의 모습에 시큰대는 가슴을 꾹 누르듯 턱을 올려 들었다.
“챈들러 오빠가 저기 숲에서부터 제이슨 오빠를 겁주면서 쫓아내려 왔어요. 제이슨 오빠는 계속 하지 말라고 했는데, 챈들러 오빠가 계속 하니까. 제이슨 오빠가 급하게 말을 몰다가 넘어질 뻔했고요. 그나마 제가 고삐 잡아당기라고 안 했으면, 그대로 말이랑 같이 호수에 빠졌을 거예요.”
그러고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겠죠.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헬렌을 빤히 보다 이내 시선을 돌려 벨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챈들러 오빠가 물에 빠진 건 제이슨 오빠가 갑자기 고삐 잡아당겨서 방향을 바꾸니까, 그거에 놀라서 속도를 줄이질 못해서 빠진 거구요.”
“…….”
“그러니까 혼은 챈들러 오빠가 나야 하고, 헬렌 숙모는 제게 고마워하셔야 해요.”
“뭐, 뭐?”
또박또박 상황을 정리하는 내 말에 벨리아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빤히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듯, 애꿎은 입술을 잘근 씹다 몸을 돌려 버렸다.
“하!”
손부채로 붉어진 얼굴을 식힌 벨리아가 숨을 크게 몰아쉬는 게 보였다.
물론 벨리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에 이상한 빛이 나왔다 사라졌으니, 당황해서 이능이 있다는 나를 잡을 수는 있었다.
‘엄마니까.’
하지만 앞뒤 상황 설명 따위 없이, 나와 내 사람들에게 손부터 올리는 건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해와 용서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으니까.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걸 알아야지.
‘피어스 얼굴에 난 손자국 봐.’
남자인 피어스의 얼굴에 난 손자국이 저렇게 선명한데.
내가 저 힘을 고스란히 받았다고 상상해 보면-
‘어후.’
입 안이 다 터졌겠네.
물론 피어스가 남자라고 멀쩡할 거라는 건 아니다.
그도 엉망이겠네.
한 번도 아니고, 그 강도로 세 번을 연달아 맞았으니.
기사단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마검사가 괜히 제 호위가 되어 고생하는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런 내 염려와는 달리 그에게서 아픈 내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시근덕거리는 게 화가 잔뜩 난 듯 보였다.
누구에게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난 건 아니길, 바라며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 피어스.”
“…….”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진짜 기대도 안 했다.’
그의 무뚝뚝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개를 돌리자, 방방 뛰는 벨리아보다 더 얄밉게 은근히 나를 압박하던 헬렌이 뒤로 슬쩍 물러나는 게 보였다.
‘역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척하는 시누이가 더 미워.’
한국 속담 틀린 게 없다니까.
하지만 오늘은 때리던 시어머니도 말리는 척하는 시누이에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자네.”
슬쩍 뒤로 물러나는 헬렌의 모습에 눈을 올려 뜬 벨리아가 홱 하고 돌아보았다.
“자네는 잘 알지도 못하고는 왜 애를 모함해?”
“네? 그게 무슨.”
“아니 자네가 그랬잖아. 레티시아가 이능을 써서 챈들러를 물에 빠트린 거 같다고!”
“형님, 제가 언제.”
“언제? 언제에?”
벨리아가 타깃을 바꾸어 헬렌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전 레티시아가 이능을 쓴 게 놀라워서 한 말이었는데, 형님께서 그렇게 오해하실 줄은 몰랐어요.”
“헬렌!”
헬렌의 말에 눈을 부릅뜬 벨리아가 몸을 돌렸다.
“자네가 분명, 챈들러를 보면서 레티시아가 이능으로, 라고 말했잖아. 그걸 당연히 이능을 써서 빠트렸다고 생각하지, 이능을 썼구나, 놀랍구나? 하고 누가 생각해?”
따져 묻는 벨리아의 말에 스윽 주변을 둘러보던 헬렌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형님. 제가 말을 오해하게 한 모양이에요.”
“하.”
“용서해 주세요.”
진심인 듯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이는 헬렌의 말에 벨리아가 입을 벌렸다.
지금 상황에선 두 사람 모두 같은 실수를 했으나, 벨리아만 아주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헬렌은 그저, 말실수를 한 것뿐…… 아니, 더 정확히는 말을 오해하게 한 것뿐이고, 벨리아는 그런 말을 잘못 알아듣고는 이 소란을 일으킨 게 되어 버렸다.
거기다 오해를 해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던 벨리아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동이었다.
‘헬렌 숙모 대단하시네.’
겉으로는 벨리아 숙모의 사람처럼 보이던 린지부터, 집안 곳곳에 벨리아 숙모가 심어 놓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가 엄청난 수완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숙모는 윈드런 숙부를 만난 게 아쉬우시겠어.
헬렌 숙모가 지금 벨리아 숙모의 위치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녀를 상대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
‘숙모가 윈드런 숙부를 잘못 만난 거지.’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마냥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건, 윈드런 숙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몰락한 남작가 출신인 헬렌 숙모가 에시어에 시집오는 일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서로 잘 만난 거지.
한데 위드런을 남편으로 둔 헬렌 숙모가 왜 저렇게 벨리아 숙모와 각을 세우고 있느냐는 걸 생각해 보자면, 그녀의 뜻은 그 너머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드레아 숙부를 실각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가주에 올리겠다.
물론 실패한 계획이지만, 헬렌 숙모는 충분히 꾸어 볼 만한 꿈이지 않은가.
해서 의미 없는 기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난 내가 오네로 가기 전까지 그 기 싸움을 아주 대등하게 만들어 놓고 갈 필요가 있었다.
현재로선 공작 부인이 없는 빈 호랑이 굴을 차지하고 앉은 벨리아 숙모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있었고, 그건 추후에 내가 가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유리하지 않았다.
특히나 벨리아 숙모가 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 상황이라면 더더욱.
해서 권력을 좀 재편할 필요가 있었는데, 헬렌 숙모가 이렇게 발톱을 드러내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할아버지만 오시면 완벽한데.’
안 오시나?
괜히 슬쩍 고개를 쭉 빼 들자-
“저는 솔직히, 챈들러가 우리 제이슨을 괴롭혔다는 말을 믿기가 어렵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