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55)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5)화(55/141)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빠!”
“레티시아!”
이불을 들추고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빠, 아빠는?”
“레티시아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저 사방이 막힌 것만 같았다.
아빠가 거기 있으면 안 되는데?
숨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거칠게 내뱉어졌다.
호흡이 몸과 엇박을 내며 들썩이는 것만 같았다.
“아, 아빠는요? 아빠, 흑- 아빠요.”
정신 나간 것처럼 아빠를 찾으며 차오르는 울음을 눌러 삼키자-
“레샤야.”
몸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흔들리는 내 양쪽 팔을 움켜쥔 단단한 손이 나를 다독이듯 불렀다.
“레샤야.”
“……할아버지?”
흔들리지 않게끔 단단하게 붙들어 주는 나무처럼.
다정히 불러 주는 목소리에 그제야 시야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 있게 만드는 목소리.
그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자, 눈꺼풀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할아버지, 아빠는요?”
“……아비가 보고 싶은 게냐? 곧 네 생일이니, 네 생일까지만 기다…….”
“아, 아빠가 리비스에 있었어요.”
“리비스?”
느닷없이 아빠가 리비스에 있다는 말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렇겠지. 북부의 마물들을 토벌하고 있을 아빠가 리비스라니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능이 있다는 걸 모르셨다면 그냥 무시하고 치워 버리셨을 거다.
하지만-
“네 아비는 북부의 타루스에…….”
“전쟁이 리비스에서 시작해요. 아니, 시작했어요.”
내겐 이능이 있었다.
“펠루아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네 아비가 거기에 있다는 소리냐. 왜…….”
“지금 있으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머지않아 그곳에 계실 거예요. 제가 봤어요.”
내 기억에 아빠가 테-펠 전쟁에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도 아빠의 이름은 전쟁이 언급되는 장면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내용이 튄 거야.’
서서히 돌아오는 이성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물론 아빠가 그곳에 있는 게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
아니, 아주 높은 확률로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소설의 내용이라는 게 있질 않은가.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내용이 튄 거라면, 내 기억에도 소설에도 없는 일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빠를 막아야 해.
“할아버지, 아빠 불러 줘요.”
어린 딸의 어리광이든, 땡깡이든 투정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난생처음 아빠를 찾고 울어서라도 그가 리비스로 가는 걸 막아야 했다.
‘아빠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어.’
내 회귀도, 환생도.
아빠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가 소름 끼치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번 생은 살아야겠어.’
그래 행복의 맛을, 삶의 의미를 찾기 전에도 살기 위해 집착했던 생이었다.
그랬으니 에시어가 망하고, 가문 사람들이 전부 몰살된다는 걸 알자마자 살기 위해 그렇게 도망을 쳤겠지. 그렇기에 남들에겐 하찮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난 이번 생에서 맛본 이 행복을, 삶의 의미를 조금 더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가문도 지켜 내고 싶었다.
‘그건 아빠 없이는 안 돼.’
아빠가 가주가 되어야 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내가 내내 속으로 감추듯 눌러 놓았던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간 안드레아가 가주가 되면 적당히 물러나서 가문 재산이나 받아 띵까띵까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던 나 스스로의 기만을 지우고-
“할아버지, 아빠 불러 주세요.”
난 가문을 살리고 싶었다.
“가주님.”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드는 내 부름과 동시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한 베넷의 목소리에 나를 빤히 보던 할아버지가 그를 방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이냐.”
“펠루아나의 공격입니다. 지금 막 포털을 통해 도착한 급보입니다.”
할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쉬며 함께 눈을 감았다.
“황궁엔.”
“아직 전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리비에 백작이 보낸 것이냐.”
“예.”
베넷의 보고에 천천히 눈을 뜬 할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딜 넘은 게냐.”
“리비스입니다.”
“…….”
지체 없이 이어지는 베넷의 보고에 할아버지의 표정이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실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아빠를 보고 싶다는 내 말을 그냥 무시할 수 없음이었다.
“지금 당장, 샤리에 불러들여.”
“가주님, 갑자기 샤리에 님을…….”
왜? 라고 말을 하려다 나를 발견한 베넷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신조차 버린 땅이라 불린 북부의 타루스.
테파로아 제국의 끝이자, 황도에서 가장 먼 지역이 타루스였다.
세상의 끝인 코풀루스 해역을 끼고 있는 그곳은 아무리 움직여도 살갗을 에이는 듯한 추위와 마물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주인 없는 땅, 아니 주인조차 죽어 버리는 그 북부의 척박한 땅에 샤리에가 있었다.
“대장.”
짧게 자른 밀밭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흰 얼음이 뒤덮인 그 땅 위에 유일한 존재를 부르는 부관의 목소리에 샤리에가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검사 특유의 바짝 날이 선 기운을 풍기는 샤리에의 옆 얼굴에 부관, 앤드류가 미간을 문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도 못 주무셨습니까?”
“어.”
평소에도 하루에 고작 2, 3시간의 수면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한데 요즘은 그 시간조차 설치는 바람에 몸 상태가 바닥이었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과 머리를 꽉 조여 누르는 통증에 눈두덩이와 관자놀이를 번갈아 누른 샤리에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
그제야 제가 왜 왔는지를 떠올린 듯 앤드류가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공작가에서 온 편집니다.”
단단히 봉해진 편지 봉투에 눌린 음각의 문양에 흘끗 시선을 둔 그가 이내 한 손으로 받쳐 들던 것을 고쳐 양손으로 공손히 들어 건넸다.
“포털을 통해 다급히 도착한 겁니다. 아주 급한 내용인 거 같은데요. 포털까지. 전 편지를 포털로 보낸 건 또 처…….”
설명을 주절주절 덧붙이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샤리에가 말없이 편지를 집어 들었다.
에시어를 상징하는 가문 문양에 그나마 잦아들었던 두통이 다시 스믈스믈 머릿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편지를 보자마자 딱딱하게 굳어진 샤리에의 표정에 곁에 서 있던 앤드류가 턱을 긁었다.
“그, 설마 피어스가 사고를 친 건 아니겠죠?”
“…….”
피어스를 에시어로 보낸 지 고작 석 달.
그 사이에 사고를 쳤을까, 싶어 봉투에 레터 나이프를 댄 그가 한 번에 북 찢어 편지를 꺼내 들었다.
포털의 그 비싼 비용을 들여 보낸 편지치고는 그 두께가 심히 얇았다.
하지만 그 얇은 편지를 펼쳐 읽는 샤리에의 시선이 글을 좇아 내려가며 점점 차갑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 표정을 좇으며 앤드류의 심장도 따라 빠르게 뛰었다.
‘뭐야. 무슨 내용이기에.’
심상찮은 표정에 앤드류가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진짜 피어스 이 녀석이 사고를 거하게 친 건가.’
감정 변화가 정말 거의 없는 샤리에의 표정이 저 정도로 일그러진다면 이건 예사 사고는 아닐 게 분명했다.
솔직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 그가 고개를 들었다.
“대장, 피어스가 또 사고를 친 겁니까? 그러니 제가 피어는 안 된다…….”
“황도에 잠시 다녀오마.”
“……예? 황도요?”
마치 옆 동네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듯한 샤리에의 말에 앤드류가 눈을 깜박였다.
피어스 이 새끼 대체 무슨 사고를 어떻게 친 거야!
황도에는 레티시아 아기씨 생일이 아니면 발도 들여놓지 않는 분인데. 그런 분을 움직이게 만들 정도면 대체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도 안 되고,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앤드류가 이마를 짚었다.
“피어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죽이지만 말아 주십…….”
“피어스 때문이 아니야.”
샤리에가 앤드류를 돌아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며칠 전부터 꿈에 보이던 레티시아의 얼굴.
‘아빠?’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그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정도로.
한데 [레티시아가 너를 찾는다.]라니.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낼 내용이었다.
며칠 뒤면 레티시아의 생일이었으니까.
그때 가서 보면 되겠지. 하고 넘겨 버렸겠으나, 이번은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그러니 잠시 오너라.]꾹 눌러쓴 자국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편지를 접었다.
이제 곧 타루스에도 겨울이 찾아올 테니 마물의 활동도 뜸하겠지.
누군가는 지옥처럼 추운 타루스에 겨울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겠지만, 이곳에도 엄연히 사계절이 존재했다.
다만 추운 건 변하지 않을 뿐.
“금방 돌아오마.”
“…….”
“겨울날 준비를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