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57)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7)화(57/141)
하지만 황제의 생각과는 달리 펠루아나는 쉬이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펠루아나의 군대는 매일같이 황도 쪽으로 서진했고, 이에 대응하는 제국군과 리비스의 기사들은 그들의 용맹함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폐하.”
“또 졌더냐.”
“송구하옵니다.”
국방장관인 라우스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리비스와 가까운 영지 귀족들의 협조를 받아, 제국군을 포털로 이동시켜 최대한을 막고는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 제국의 정규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펠루아나 전사들의 사기가 하늘까지 올라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 리비스를 수복하고, 기피르까지 밀고 올라와 황도에 닿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더는 지체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에시어 공작가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심이…….”
“하지만 폐하 그렇게 되면…….”
라우스 백작의 말을 막듯 고개를 쳐들었던 스벤 백작이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하려는 말의 끝을 알고 있는 듯한 황제의 노쇠한 시선이 그를 향한 까닭이었다.
색소를 잃은 듯 흐릿한 녹안.
제 속을 훑어보는 듯한 황제의 눈동자에 스벤 백작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의뭉스러운, 그 속을 절대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솔직히 다른 생각을, 아니 다른 공작질을 할 수가 없었다.
황제의 얼굴은 대개 자신들이 바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과는 달랐으니까.
괜히 간을 본답시고,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그 자리에서 바로 내쳐질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황제에게 버려진 이들이 수십, 수백에 달했다.
그러니 자작에 지나지 않았던 제게까지 이 궁내부 장관 자리가 올 수 있었음이라.
‘물론 이렇게 살얼음판인 줄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텐데.’
눈앞의 욕심이 무엇인지.
권력에 이어 돈까지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그랬기에 백작 위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황제와의 대화에 이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송구할 것까지야. 내 장관의 걱정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노인네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은 이에로가 그를 응시했다.
“그러니, 자네가 에시어의 가주를 보고 오게나.”
“……예?”
제가요? 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꼴깍 삼키곤 고개를 들었다.
여기 에시어와 가까운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제가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딴생각을 먹고 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이는 그대뿐이질 않은가.”
“…….”
“에시어에게 호감이 전혀 없는. 궁내부를 대표해 갈 만한 귀족이.”
황제의 말에 그제야 그 뜻을 알아챈 듯 스벤 백작이 곁의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시종들이 다녀왔사온데.”
“……아.”
시종장의 목소리에 황제가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미소가 정말 그가 진심으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에 그가 드러내 짓는 웃음이라는 걸.
그러니 저 웃음이 나왔다는 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가야 하고, 황제가 바라는 바를 이루고 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실패한다면.
“마고 에시어의 팔다리를 묶어 데려와 뜻대로 움직이게만 한다면.”
“…….”
“남부의 폰테산을 주마.”
“!”
폰테산이라면 마법사들이 새로이 발굴해 낸 마력석 광산이었다.
그 매장량은 미미하지만, 매우 순도가 높은 마력석이 매장되어 있어 돈은 조금 만질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인데.
‘그곳을?’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너무나도 솔직한 욕망에 황제의 녹안에 만족스러운 빛이 스쳤다.
황제, 제가 바라는 눈동자였으니까.
“하겠느냐.”
애당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나, 이 엄청난 포상에 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제국을 위해 반드시 에시어의 협조를 구해 오겠습니다.”
욕심에 다시 한번 눈이 먼 결정이었다.
* * *
“오늘도 왔대?”
“네.”
일주일 째 궁내부 장관이 저택에 출석표를 찍고 있다.
황제의 전언이 매일같이 바뀔 리는 없으니, 목적을 이루기 위함일 것이다.
바로-
‘할아버지 등판.’
하지만 일주일째 방문하고 있는 건, 할아버지가 황제의 의중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일거다.
할아버지는 굽히지 않으실 테니.
포기하려면 황제가 하는 편이 쉬울 거다.
전생에서는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의 손바닥 위에서 황제와 네투아 공작가가 같이 놀아나고 있었다.
‘바람직해.’
“숨 쉬기 불편한 건 어떠십니까?”
린지와의 대화 끝에 폴이 약을 건넸다.
“괜찮아, 근데 이건 안 괜찮아.”
보기만 해도 쓰고, 먹기 싫은 가루약에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폴과 헤일, 심지어는 린지까지도 약을 먹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었다. 타협도 안 해 줬다.
그나마 하녀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약을 먹고 바로 다디단 사탕을 입에 물려 주는 것 정도였다.
폴은 그나마도 먹지 말라고 했지만.
‘독한 인간.’
차마 ‘악독한’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를 보며 입을 악 하고 열어 가루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으아아!”
그러곤 금세 설탕물로 약을 삼키고, 사탕을 입에 머금어 이리저리 요리조리 입 안에서 굴렸다.
하지만 여전히 입에 쓴맛이 남아 있었다.
“진짜 맛없어.”
“이렇게 쓴 약 드시고 싶지 않으시면, 앞으로는 조금만 불편해도 말씀을 해 주세요. 이능력 부작용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능이 그렇게 터질 줄 알았나.
“이제 발현해쓰니까. 곧 괜찮아질 거햐.”
“부디요.”
폴이 외눈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몇 개월 사이 벌써 세 번째 토혈이에요.”
“알고 이써.”
나도 안 하고 싶다우.
하지만 이능이 발작처럼 오는데 그걸 어쩌겠나.
근데 제이슨 때는 오히려 별문제가 없었는데.
심지어 이능으로 그를 구해 내기까지 했는데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큰 미래라서 그랬나.
아니면 내가 바꿀 수 없는 미래라서?
아니면 제국에 위협이 되는 내용이라?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처음 토혈을 했던 건 제국어와 고대어를 읽었던 그 날이었으니까.
그건 제국에 위협이 되거나 바꿀 수 없는 미래는 아니지 않은가.
원인이 뭘까.
“…….”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고민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물 잔을 집어 든 폴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었습니다.”
“웅?”
순간 상념을 깨트리는 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모라구 해써? 못 들었어.”
눈을 깜박이며 폴을 올려다보자 짧게 한숨을 내쉰 폴이 린지를 한 번 흘끗 보곤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린지가 딴짓을 하는 사이에 몰래 건넨 말이었던 모양이었다.
“린지.”
“예?”
“나 쿠키 가져다 줘.”
“지금요?”
“응, 초코 쿠키.”
방에서 내보내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내 말에 린지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다녀올게요.”
“웅.”
떨떠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노릇에 어색하게 웃은 린지가 방을 벗어났다.
그리고 부드럽게 닫히는 문소리와 자박자박 멀어지는 발소리가 사라지고서야-
“말해두 대.”
폴을 빤히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모라구 해써?”
“그 아이가 왔었습니다.”
“누……, 설마 리안이?”
폴의 말에 눈을 동그렇게 뜨자,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리안이는 괜찮아?”
“갈비뼈에 금이 갔더군요.”
이 망할 놈의 피에르 애드먼.
그리고 다른 놈들까지.
그게 어떤 몸인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가서 머리털이라도 다 쥐어뜯어 놓고 싶었으나, 그나마 베넷이 애드먼 자작가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켜 놓아 가만있는 것이었다.
케이먼 에시어와 하던 사업이 뭐가 뭐 어떻다고 하던데.
어찌 됐든 사기 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내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피에르 애드먼만 죽여 놓으면.
그리고 그 남은 남작가의 아들들도.
‘아마 다시는 오네에 가서 행패 부리지 못할 겁니다.’
‘걔네만?’
‘아뇨, 다른 이들도.’
‘방위대가 움직이는 거야?’
‘예.’
아마도 우리 쪽 사람을 오네 치안을 담당하는 방위대 소속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내 안전을 위해서도 있지만, 어쨌든 리안이 더는 귀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일이 없으니 그걸로 좋았는데-
“많이 다쳐써? 지금은 괜찮아? 손은? 손은 어떤데?”
다쳤다니. 뼈에 금이 갔다니!
후우-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상처가 많기는 한데, 속을 많이 다친 건 아니라서 지금은 괜찮습니다. 손도 괜찮고요.”
“다행이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딱히 폴이 그걸 설명해 주기 위해서 말을 꺼낸 거 같지는 않았다.
‘설마.’
“리안이 엄마 많이 아파?”
“……네.”
폴이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