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59)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9)화(59/141)
폴이 떠나고, 몇 시간을 더 울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 헤일과 린지가 번갈아 가며, 나를 살피는 게 느껴졌지만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기가 싫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또다시 마주해야만 할 테니까.
그래서 그대고 감고 있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깊은 밤이 되고 세상의 모두가 잠든 시간이 되자,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눈을 뜨자, 어둠이 아주 짙게 방 안을 물들이고 있었다.
“헤일? 린지?”
부름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그 고요의 순간, 어른의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듯 왈칵 두려움에 밀려들었다.
내가 나쁜 아이라서. 지금의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다시 이시아가 괴로웠던 고아원 시절로. 전생의 레티시아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싫어.’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켜 버리는 불안에 몸을 일으켜 드레스 룸으로 달려갔다.
아빠가 사 준 인형들, 아빠의 단검.
나를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소소한 물건들을 끌어안고 있어야 할 거 같았다. 해서 그 작은 서랍장을 열어 인형들을 나무 검들을 죄다 끄집어냈다.
호랑이 사자, 토끼, 곰.
강력해 보이는 인형들 사이로 보이는 아빠가 사 준 얼룩말 인형을 냉큼 끌어안았다.
그러곤 눈으로 돼지 인형을 찾았다.
‘거기에 아빠 단검 넣어 뒀는데.’
아빠의 물건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빠에겐 돌려줄 수 없는 검이었다. 해서 혹시라도 아빠가 보거나 그럴까 봐 돼지 인형 안에 잘 넣어 두었는데.
“어딨지?”
인형 더미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돼지의 형상에 서랍장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서랍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손을 아래까지 휘저어 보아도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다
설마 누가 훔쳐갔나?
누가 알고?
‘내 동아줄인데!’
훌쩍 흐르던 눈물과 불안이 쏙 들어갈 정도로 놀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얼룩말을 내려놓았다. 이전처럼 얼굴을 서랍장 안에 파묻듯 고개를 들이밀자, 돼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저깄다.”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에 일단 손을 뻗어 돼지 인형의 코를 움켜쥐었다
통통한 콧구멍이 느껴지는 인형을 콱 움켜쥐어 힘주어 당긴 순간.
“어?”
손이 미끄러진 것인지, 누가 손을 떼어 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일단 인형을 놓쳐 버렸다.
‘뭐지?’
저번이랑 비슷한 감각에 손을 빼내 잠시 바라보다 다시 안을 휘저어 손을 뻗자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돼지 코가 잡혔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엔 빼내는 것도 쉬웠다.
“이상하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내가 궁금해한다고 해서 안 보이던 게 보일 리 없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싶은 마음과 얼른 아빠 단검을 보고 싶은 마음이 만나 서랍장 문을 탕탕 하고 닫아 버리곤 돼지 엉덩이에 엉성하게 꿰메어 둔 봉제선을 뜯어 단검을 꺼냈다.
이능이 있으면 검이 그 특성에 따라서 변한다던데.
처음 검을 낙찰받았을 때는 별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검집에서 조심스레 꺼내려 힘을 준 그때-
“안 돼!”
서랍장에서 돼지가 튀어나왔다.
“!”
아니, 더 정확히는 날개 달린 돼지 인형이 튀어나왔다.
얼마 전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던 바로 그 돼지 인형이었다.
이게 대체.
“검집 열지 마. 딱 내버려 둬. 그거 네가 건드리면 안 되는 물건이야. 내가 진짜 저거만 아니면 안 나오려고 그랬는데. 진짜 왜 하필이면 저걸 꺼내려고 해. 진짜 겁도 없이!”
와다다 혼잣말을 하며 하찮은 날갯짓을 하는 돼지 새 아니, 인형의 움직임을 시선으로 좇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몸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더 위로 못 나는 건가?’
천장을 흘끗 올려다보고는 시선을 내려 돼지 인형을 바라보았다.
“이건 샤리에 정도는 되어야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야. 너 같은 애송이는 그 나이에 건드리지도 말아야 해. 어린애는 다쳐.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너 진짜 나 아니었어 봐 정말. 진짜 이 집 다 날아가고 너 죽을 뻔했어!”
“…….”
“나 아니었으면 진짜 어떻게 될 뻔했냐. 어후.”
계속 되는 공치사에 드럽고 치사해서, 바닥에 내려 둔 단검을 발끝으로 스윽 밀었다.
“야!”
그러자 또다시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영물인데! 그렇게 발로 하면 안 돼!”
“…….”
“대체 샤리에 밑에서 어떻게 이런 물건이 어디서 나온 건지.”
돼지 인형이 잔망스러운 날갯짓을 하며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샤리에 딸이라고 그래서 기대를 좀 했더니만. 쯧.”
영락없이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아빠 이름을 막 부르며 쯧쯧거리는 인형을 보며 못마땅한 숨을 후 하고 내쉬곤 고개를 들었다.
내가 참자.
“이게 영물이에요?”
“그래. 에시어의 보물.”
근데 영물이라는 이 보물이 왜 그게 경매장을 나돌았던 거지?
생각할수록 희한한 물건이었다.
“군데 나도 이능 있는데요.”
“알아. 없었으면 만지든 품고 자든 아무 상관 안 했어.”
“저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때는 이능 발현하기 전이잖아.”
내내 서랍장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 아는 거지?
“어뜨케 알아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인형이 턱을 들었다.
“내가 이 가문의 수호 요정이니까.”
음.
돼지 형상의 수호자는 조금 너무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다 돼지는 금전운의 상징이니까. 은행업을 하는 에시어랑 잘 맞는 요정이네, 라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부녀가 똑같은 반응이군.”
“그래서 요정님 이름이 뭔데요?”
“팅커벨.”
“…….”
흠.
내가 아는 팅커벨과는 너무 다른 외형이 아닌가.
사라락사라락 가볍게 피터팬의 주변을 날며 마법가루 같은 걸 뿌려 주던 그 팅커벨과는 너무 많이 확연히 다른 모습에 고개를 들었다.
“아무튼 그거 칼자루 들어서 고대로 그 인형 엉덩이에 넣고 가져오렴.”
포로로 날아서 서랍장 위에 앉은 팅커벨의 말에 칼자루랑 인형을 집어 들었다.
“내가 진짜 네가 그거만 안 만졌어도 가만있었을 거야. 나 지금 안식년 중이라고! 오네의 그 허름한 집들 왔다 갔다 하면서 에시어 꼬맹이들 뒤치닥거리 평생 하다가 이제 좀 쉴라고 그랬더니, 어휴 내 팔자야. 쉬는 것도 맘대로 못 한다니까.”
아하, 수호 요정이 아니라 집 요정이구나.
도비네.
한 번에 알아챈 그 존재에 스윽 고개를 들었다.
에시어의 역사 1권. 그것도 고대어로 적힌 부분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오네에는 요정이 있다.]그리고 소설에도 있었다.
[“우리 집엔 요정 있다? 느 집엔 그런 거 없지?”]점순이 같은 대사를 치며 얄밉게 리안의 속을 긁던 장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신세 한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진짜 작년에 그 안드레아 망할 놈의 막내 왔을 때 다 때려 칠라 그랬다고. 그놈은 진짜 싹수가 노랗더라. 걔 내가 쫓아낸…… 너 뭐 하는데?”
“근데 내가 이거 꺼내면 어떻게 돼요?”
팅커벨을 빤히 보며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왼손으로는 칼집을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곧 뽑을 듯 일렁일렁 움직이는 내 행동에 팅커벨이 앞다리를 들었다.
“기다려. 잠깐.”
“내 이능 뭔지 알죠?”
“몰…… 알아, 알아! 안다고!”
모른다는 말에 살짝 검집을 빼어 들자 팅커벨이 소리를 내질렀다.
“뭐예요? 내 거?”
이타성이라는 특성 말고, 올가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그 이능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내 이능요.”
하지만 묻는 내 말에 시원스레 답해 주지 않고, 나를 빤히 보던 그가 팟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칼을 빼앗으려는구나 싶어 얼른 느리게 날아오는 그를 피해 몸을 돌리자-
“모든 것.”
내 앞에서 작게 속삭인 그가 이내 눈을 깜박이는 내게 뭔가 가루를 휙 하고 뿌렸다.
“어?”
“어, 는 무슨 어야. 네 가문 사람들이 나를 기억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요거거든. 잘 자라. 꼬맹이.”
그러곤 하나둘셋.
그대로 풀썩 인형 위에 쓰러졌다.
손에 들고 있던 뭔가가 쏙 하고 빠져나가고 대신 폭신한 무언가를 품에 안겨 주는 걸 선명히 느끼며 말이다.
* * *
다음 날.
“아기씨?”
드레스 룸의 인형 더미 위에서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한 헤일이 안으로 급히 들어왔다.
여전히 잠에 취해 있어 헤일이 끌어안아 침대에 누이는 것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흐릿한 부름 속에서도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
‘모든 것.’
모든 것이라고 말하며 내 단검 훔쳐간 돼지 새…… 아니, 집 요정 팅커벨.
‘잘 자라, 꼬맹이.’
잊으라고 뿌린 가루에 취해 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요정님의 존재를 다시금 새기며, 아빠가 준 얼룩말 인형을 꼭 당겨 안았다.
‘이 도둑놈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멍한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만 같았다.
‘아빠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보다 아빠 오기는 하나?
며칠째 온다, 만다 말도 없이 그야말로 감감무소식인 아빠를 떠올리며 얼룩말 목을 끌어안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