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60)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0)화(60/141)
서랍장 다 뒤졌다.
드레스룸도 다 뒤집어 엎었는데!
‘없어! 이 돼지 새끼!’
들고튀다니!
단검도 사라지고, 돼지 인형까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간 거지?
집 요정한테 뒤통수 맞는 게 이런 기분인가?
수호 요정이라고 신나게 이야기하더니만 끝내는 도둑맞는 엔딩이라니.
‘진짜 가만 안 둔다.’
아니, 가만두고 싶어도 둘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거 뭐 돈 같은 거 훔쳐갔으면 상관없겠는데, 하필 그 단검을 들고 튀어서 문제였다.
내 돈. 내 단검. 내 동아줄!
이 돼지를 찾지 못하면 모든 게 다 허사였다.
내가 그 고생을 왜 했는데!
가만있어도 피눈물이 죽죽 흐를 것만 같아 주먹을 움켜쥔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옹졸한 날갯짓이라고 얕보았던 게 실수였다.
역시나 뭐든 얕보이면 지는 거다.
“후.”
내가 진짜 반드시 잡는다.
‘잡아서 주리를 틀어야지.’
아니지.
괜히 이런 나의 사악함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더 숨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잡아서 단검만 뺏을게.’
“아기씨?”
엉망으로 뒤집힌 드레스 룸을 빤히 보며, 찌푸렸다가 웃었다가 도로 찌푸리는 내 표정의 심상찮음에 헤일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 부름에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잡히면 가만 둔다.
정말이야.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며 몸을 돌렸다.
“가. 수업.”
오랜만에 수업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으니까.
억지로라도 기분을 끌어 올리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할아버지한테 들러서 책도 빌려야 했다.
‘에시어의 역사.’
분명 내가 그 책에서 에시어에 요정이 있다는 내용을 봤다.
그러니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나와 있을지 몰랐다.
집요정이라고 했고, 오네에서 직계들 뒤치다꺼리를 한다고도 했었다.
그러니 에시어가 소유하고 있는 오네의 스무 개가 넘는 가옥들 중 하나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그 스무 개 중에서 어떤 거냐가 문제였지만.
‘책에 힌트가 있을 거야.’
어디에 있는지만 찾으면.
‘돼지, 넌 죽었어.’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내며 목을 좌우로 꺾고, 손가락 마디를 와작와작 소리를 내며 구부렸다.
그런 내 모습에 조용히 뒤따르던 헤일이 가깝게 붙어섰다.
“아기씨.”
“웅?”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예요. 특히나 가주님께서 가족 간의 우애를 중요시하시니까 더욱 사촌들끼리는 친하게 지내셔야 해요. 아시죠?”
갑자기?
전혀 뜬금없는 말에 자리에 멈춰 서서 웅?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챈들러랑 제이슨이 아무리 괴롭혀도 폭력성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싶다 문득 고개를 숙이자, 구부리고 있는 내 주먹이 보였다.
‘아하!’
이거 때문에 헤일 놀랐구나?
아침 내내 씩씩거리며 드레스 룸을 다 뒤집는 내 분노가 사촌들을 향해 있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뭐 내가 챈들러를 아주 많이 싫어하긴 하지만 그들을 때릴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물론 때린다면 맞고 있지는 않겠지만. 챈들러가 시비만 걸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를 공격할 일은 아마도 없을 거였다.
물론 사람 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근데 헤일은 그런 내 마음을 모르니 ‘혹시, 아기씨가?’ 하는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만약에 사촌 도련님들이 너무 못살게 굴면 절대 아기씨가 직접 해결하지 마시고. 저기…….”
헤일리 뒤로 물러나 있는 피어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피어스한테요.”
“피어스한테 대신 때려 달라고 하라구?”
“아, 아뇨!”
폭력을 청탁하는 모양새를 느낀 듯 당황한 헤일이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헤일의 모습이 귀여워 고개를 바짝 올려 들었다.
“구럼?”
“그냥 피어스한테 지켜 달라고 하세요.”
지켜 주긴.
여전히 쪼꼬미 해서는 내가 지켜 줘야 할 거 같은데……. 음?
‘커졌네?’
며칠간 엘론이 호위로 와 있어서 몰랐는데. 고작 며칠 안 본 사이 피어스가 커져 있었다.
물 먹고 햇빛만 받았는데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안 본 며칠 사이에 몸은 커지고, 키는 자라 있었다.
‘뭐지? 마법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성장이었다.
원래 저 나이가 저런 건가? 아니면 마검사라 발육이 남다른가?
“피어스 키 컸어?”
“네.”
“살도 쪘어?”
“네.
“우와, 이제 내가 지켜 줄 필요 없겠네.”
“예전에도 지켜 주실 필요 없었는데요.”
은혜를 모르네.
톡 쏘는 피어스의 말에 입을 오리처럼 내밀었다.
“내가 벨리아 숙모한테서 지켜 줬는데….”
“그건 내가 지켜 드린 거 같은데요. 뺨을 세 대나 맞고서요.”
“마지막은 때리지 못하게 나도 지켜 줬어.”
“그걸… 예, 그렇다고 하시죠.”
뭐라 반발하려던 피어스가 뭔가를 본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내 알겠다,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른 가주님께 먼저 가세요. 수업 늦겠어요.”
“응.”
절대 스스로 수긍한 게 아닌, 뻔히 헤일의 눈짓을 보고 마지못해 끄덕인 게 분명한 표정이었다.
뭐,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괜스레 마음이 상해 쳇! 하고 토라져 몸을 돌렸다.
그러곤 쿵쿵쿵 할아버지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아기씨.”
“할부지는?”
“손님이 오셔서 대화 중이십니다.”
내 모습을 발견하곤 바로 시선을 낮추어 다정히 설명해 주는 베넷의 말에 삐죽거리며 피어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다정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내 시선을 뻔히 읽고도 피어스는 딴청을 피우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쟤는 글렀다.’
아니 나를 저렇게 싫어하는데 대체 왜 내 호위에 자원했는지, 심지어는 토너먼트까지 해서 이긴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쉬워 보였나?
‘어디 안 쉽게 만들어 줘?’
손가락을 다시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내며 구부리자, 살짝 당황한 듯 나를 보던 베넷이 웃으며 손등을 도닥였다.
“그렇게 하면 손 미워져요.”
“웅. 알겠어.”
베넷의 말에 깍지 낀 손을 풀어 뒷짐을 지자, 그가 웃었다.
“어쩐 일로요.”
“아, 할부지 손님이랑 오래 걸려? 나 책 빌려 가려구. 에시어의 역사 전부 다.”
‘내가 반드시 그 돼지의 거처를 찾아내고 만다.’
문득 치미는 감정을 꾹 누르곤 베넷을 바라보자, 그가 문가를 흘끗 보았다.
시원스레 대답이 나오질 않는 거 보니, 아무래도 오래 걸릴 모양이었다.
“그럼 나 지금 수업 가야 하니까, 베넷이 내 방에 가져다 놔 줘. 할부지한테는 내가 이따가 말씀드릴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웅!”
베넷의 웃는 표정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얼른 몸을 돌린 그때 달칵 문이 열리고, 누군가 돌아 나오는 게 보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가주님.”
“……생각할 거 없네. 내 대답은 같아.”
“내일 뵙겠습니다.”
‘시종장인가?’
시종장이라기엔 조금 애매하게 젊었다.
거기다 몸에 미미하게 밴 오만함이 황제의 지척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저렇게 반응하시는 거 보면 황실에서 보낸 사람인 거 같은데.
누굴까.
“고생이 많군, 베넷.”
“장관님의 고생만 하겠습니까. 제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장관이면.
‘아, 궁내부 장관이겠구나.’
처음 보는 고위 귀족의 등장에 고개를 슬쩍 들자, 입술 위의 동그란 콧수염을 끝을 말아 비튼 장관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녕 그리 생각한다면 공작님께 말씀 좀 잘 드려 주게.”
“에시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요.”
저건 아무 말 안 하겠다는 뜻을 돌려 하는 건데.
노골적인 베넷의 거부반응에 고개를 살짝 돌려 장관를 올려다보자-
“아. 샤리에 에시어의 외동딸인가.”
뒤늦게 나를 알아본 장관의 시선에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고개를 숙였다.
“레티시아 에시어입니다.”
어린아이 치고는 완벽한 예법에 나를 아래위로 슬쩍 훑어보는 장관의 시선이 느껴졌다.
꼬투리 잡을 거 없을걸?
남들은 우러러보며 말 한마디 얹을 수 없는 에시어였으나, 사생아인 아빠의 딸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았던 나였다.
실수 한 번에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미미한 조롱과 비웃음을 듣기 싫어서 나이 먹고 난 이후에 예법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당장에 황궁에 데려다 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군.”
잡을 꼬투리가 없어 칭찬으로 마무리한 대화에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럼.”
그리고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베넷의 소매를 아래로 툭툭 잡아당겼다.
“누구야?”
“궁내부 장관입니다. 이름은 알프레도 스벤 백작이고요.”
알프레도 스벤. 스벤 백작가.
알프레도, 알프레도.
알프레도 스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에 글자를 곱씹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알프레도 스벤?’
설마 저 남자가 리안을 황제에게 데려간 그의 후원자라고?
아무리 봐도 호감 가는 구석을 하나 찾을 수가 없는 그의 존재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