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62)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2)화(62/141)
다짜고짜 나 좀 데리고 나가 달라는 내 말에 리리아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알겠어. 그럼 얼른 와. 나 피곤해.”라고 말하곤 마차에 올라탔다.
“레샤, 오늘 우리 집 가서 놀다 올 거야. 출발해.”
공작가의 하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마차를 출발시키는 리리아나의 자연스러움에 아무도 나를 그리고 우리를 잡지 못했다.
정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저택이 멀어지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 리리.”
“됐어.”
하지만 ‘됐어.’라는 무심한 말과는 달리, 끝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리리아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근데 어디 가려는 건데?”
“아, 그게…….”
살짝 주저하듯 말끝을 늘이는 나를 보며 얼굴을 굳힌 리리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아, 됐어. 나도 안 궁금해.”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태도였지만, 실상은 많이 궁금한 듯 입매를 실룩이며, 나를 흘끗 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지금도 아주 많이 수상한 상황인데, ‘내가 아는 남자 아이 엄마가 죽을 거 같아서 오네에 가.’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리, 내가 나중에 말해 줄게.”
“됐어. 안 궁금하다니까?”
새초롬하게 대답하는 리리아나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안 궁금한 거 아는데, 내가 나중에 말해 주고 싶어서 그래.”
“그럼, 그러던가.”
리리아나의 새초롬한 말에 엷게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이렇게 대책 없이 나가는 게 위험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걱정하실 거라는 것도. 베넷도 걱정할 걸 알고 있었다.
숙모들이 붙여 놓은 사람들이 리안에 대해서 보고를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힘들어할 걸 알고 있었으니까.
소설 내에서도 전생에서도 그가 가을만 되면 힘들어하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는 내 위로 따위는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외롭게 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돌아가면 베넷한테 많이 혼나겠지만.’
그래도 저번에 오네에 처음 갔을 때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래, 이번엔 폴도 같이 있을 거고.
피어스도 어떻게 알았는지 뒤에 몰래 따라오는 거 같고, 헤일도 있었으니.
‘얼른 리안에게 위로만 해 주고 돌아가자.’
최대한 빨리 누가 알기 전에 돌아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늦지 않게 돌아가. 나 엄마한테는 거짓말 못 해. 더는 안 해 줄 거야.”
“알겠어.”
마차로 얼굴을 쏙하고 내밀고는 미간을 좁힌 채 주변을 둘러보는 리리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네의 근처에서 세워 달라는 말에도 저런 표정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헤일 있으니까 괜찮아.”
리리아나를 안심시키듯 헤일을 언급하며 손을 흔들자, 그녀가 헤일을 빤히 보았다.
여전히 못 미덥다는 표정이었다.
“헤일, 네가 레샤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해.”
“예, 그럴게요.”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하고 내쉰 리리아나의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서야 몸을 돌렸다.
“이제 얼른 가자. 아, 마따, 거기 숨어 있는 피어스도 얼른 일루 나와. 우리 바빠.”
“…….”
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피어스를 부르는 내 말에 헤일 역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얼른 오렴.”
그러곤 그녀 역시 피어스가 숨어 있는 쪽을 정확히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헤일도 눈치가 여간 빠른 게 아니라니까.
어쩌면 피어스 빼고는 다 알고 있는 몰래 따라온 피어스의 정체에 그가 약간 민망한 듯 건물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어떻게, 언제부터 아신 겁니까?”
뒷머리를 긁적이는 피어스의 물음에 “음.” 하고 턱 끝을 톡톡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난 리리 마차 타고 정문 나오자마자. 헤일은?”
“저도 그쯤이었던 거 같은데요.”
나와 헤일의 말에 제 은폐, 엄폐는 전혀 소용이 없었던 건가, 싶었던지 피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헛된 짓을 했네요. 그냥 대놓고 따라올걸.”
“베넷한테 말하면 안 돼.”
“말할 겁니다.”
“피.”
입을 삐죽이는 나를 보며 조금 허탈하다는 듯 웃던 피어스가 이내 내 뒤로 바짝 붙어서 섰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대놓고 호위 행세를 하겠다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상관없는데, 리안이 보는 데서도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
리안은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까.
“지금은 이렇게 바짝 붙어서 따라와도 되는데, 리안이네 가서는 아는 척하면 안대.”
“…리안이 누굽니까?”
리안이라는 이름에 피어스가 미간을 좁혔다.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해서 보러 가시는…….”
“내 동아줄.”
“…예?”
잔소리를 끊어 먹는 내 동아줄이라는 말에 피어스 뿐만 아니라, 헤일도 나를 돌아보았다.
“동아줄이요?”
‘아 맞다. 헤일은 리안을 본 적 없지.’
그 날 나를 따라갔었던 사람이 펠이었음을 뒤늦게 떠올리며, 헤일을 올려다보았다.
“구런 게 있어.”
“……아기씨.”
“나중에 알려 줄게.”
그의 정체까지는 비밀이었지만, 헤일에겐 펠이 아는 정도는 이야기해 줘야 싶었다.
‘아주 나중에는 헤일도 리안이 누군지 다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냥 리안으로 두고 싶어 답 없이 엷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려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얼른 가쟈.”
* * *
온기라고는 없는 자그마한 집에 어둠이 짙었다.
밖에서 스며드는 빛을 제외하고는 집 안을 밝히는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어둠에 폴이 문 앞에 섰다.
똑똑-
하지만 안쪽에선 그 어떤 인기척도 나질 않았다.
‘리안이 어딜 갔나.’
눈을 살짝 찌푸린 폴이 작은 문에 달린 유리창으로 보이는 집 안쪽을 살폈다. 흐릿한 빛에 작은 집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사이 눈에 익은 그 공간을 쭉 둘러보다 폴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유독 텅 빈 것만 같았다.
‘안쪽에 있나.’
“리안아.”
“…….”
하지만 부름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고요였다.
평소였다면 안쪽에서라도 인기척이 느껴졌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음에 폴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설마.’
내심 레티시아 아기씨께 연락을 할 정도로 마음을 먹고 왔지만, 이런 순간은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후.”
짧은 숨을 내쉬며 가방을 고쳐 잡은 그가 문고리를 잡아 돌린 그때-
“선생님.”
그 옆쪽에 마치 비를 흠뻑 맞은 아이처럼 주저앉아 있는 리안이 보였다.
“리안아.”
“…….”
저를 올려다보는 작고 마른 아이의 모습에 가깝게 다가가 몸을 낮추어 눈을 맞췄다.
내내 울었던지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잔뜩 부은 아이의 얼굴에 가슴이 시큰한 폴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리안아.”
그 다정한 부름에 아이가 제 소매 끝을 겨우 붙든 채 말을 이었다.
“엄마가.”
“…….”
“숨을 안 쉬어요.”
툭 뱉은 말처럼 아이의 왼쪽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겨우겨우 숨을 내쉬는 아이의 울음이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근데 선생님한테 갈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그 사이에 깨어날 수도 있는데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근데 부탁할 사람이… 없었어.”
“……리안아.”
“선생님 좀 불러 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었…….”
끝내 바르르 떨리는 울음을 터트린 아이가 서럽게 울다 고개를 숙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내쉬는 숨 사이사이 흐느낌이 배어 나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그저 울음을 토해 내는 이 고통스럽도록 아픈 울음을 폴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이 어린 것의 감정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아, 주여.’
삶이란 것이 어찌 이리도 고통스러울까요.
평소엔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긴 숨을 내쉰 폴이 시큰거리는 가슴에 숨을 내쉬자,
“선생님.”
울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든 리안이 떨리는 손으로 폴의 소매를 다시금 움켜쥐었다.
“어.”
“엄마 좀…….”
울음에 실룩거리는 입술로 간신히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들어가서 보마.”
하지만 그럼에도 폴의 소매를 움켜쥔 손을 풀지 못하는 리안의 떨리는 숨에 폴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리안아.”
다독이듯 부르는 말에 리안이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문 채 고개를 들자-
“내가 옆에 있을게.”
언제 온 것인지, 두 사람 곁으로 자박자박 걸어온 레티시아가 리안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아니, 아예 철퍼덕 그 곁에 주저앉은 그녀가 폴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리안의 손 반대쪽에 앉아 그의 손에 깍지를 껴 꽉 잡아 주었다.
그러곤 폴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폴, 들어갔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