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65)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5)화(65/141)
훔, 목소리가 조금 컸나.?
아빠를 등지고 선 내 앞에 서 있던 리안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흠칫 놀라며 나를 보았고, 난 어쩐지 뒤쪽에서 느껴지는 시선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너무 노골적으로 컸던 모양이었다.
‘아빠, 미안.’
혀를 날름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러니 아빠들이 딸자식 키워 봐야 제 서방 만나면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는 거구나.
‘물론 리안이는 내 서방은 아니고 친구니까 조금 달랐지만.’
그리고 내 동아줄이고, 가문의 생명줄이고, 보배.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부디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모든 건 다 가문과 우리를 위한 거였으니까.
‘아빠, 내가 얘랑 잘 지내야 우리 다 잘 살 수 있어.’
흘끗 뒤돌아서 아빠를 볼까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목에 힘을 주었다.
괜히 아빠 얼굴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으니까.
해서 리안을 보며 생긋 웃었다.
“우리 저기 저쪽으로…….”
리안의 손을 잡아당기려던 그때, 안쪽의 정리를 마친 듯 폴이 문을 열고 나왔다.
“리아……. 어?”
그리고 문밖에 나온 순간 바로 보이는 아빠의 얼굴에 폴이 작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런 폴의 반응에 아빠가 짧게 고개를 저었고 나 역시 빠르게 눈짓했다.
‘아는 척 금지!’
그 시선에 아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폴이 헛기침을 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곤 리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엄마 뵈러 가야지?”
“…….”
자신을 향한 폴의 손을 보다 나와 맞잡은 손을 응시하던 리안이 이내 내 손을 놓았다. 그러곤 폴이 내민 손을 잡았다.
“고마워. 넌 이제 가.”
그러곤 나를 밀어내듯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음? 뭐야. 이렇게?
순간 주인을 잃은 듯 허공 중에 바보처럼 떠 있는 내 손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몸을 돌린 리안은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돌아선 모습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에 조금은 허탈하고 멍한 얼굴로 서 있자, 그런 나를 안아 든 아빠가 몸을 돌렸다.
“마차는.”
“그게.”
머리를 긁적인 피어스의 말에 샤리에가 싸늘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아빠가 여전히 리안의 집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곤 그 집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끔 어깨에 기대게끔 안아 다독여 주었다.
“집에 가자, 레티시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왠지 리안의 거부에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이해해야지.
리안이는 지금 막 엄마를 잃었고, 혼자가 되었고, 상처 입었으니까.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듯 아빠의 목을 감았던 손을 움켜쥐며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웅, 집에 가요. 아빠.”
* * *
대여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빠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오네의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작은 2층 집이었다.
세모난 지붕과 그 아래 처마에 맞닿게 난 동그란 유리창. 그 아래쪽에 직사각형의 벽이 네 면을 감싸고 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평민들의 집 모양이었다. 그 옆집과 그 옆집도 그렇게 생겼으니까.
거기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삐걱삐걱 나는 발소리까지.
전생에서 보았단 에시어가 소유하고 있던 가옥 구조와 닮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살 때는 이런 집을 갖는 게 꿈이었는데.
당시 조금 버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를 안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집.”
달칵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캄캄한 집 안에서 퀘퀘한 먼지 냄새가 났다. 환기는커녕 청소도 제대로 안 한 모양인 집 안 상태에 아빠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선반 위에 키를 내려놓았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뽀얀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어쩐지 콧속이 간지러운 느낌에 검지로 코밑을 슥슥 문지르자-
“자, 그 샤리에 님?”
나, 아빠, 피어스 그리고 먼지 구덩이인 집 안을 번갈아 보던 헤일이 마음을 다잡듯 고개를 저었다.
“그 저택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여긴 먼지가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아기씨께서 지내시기 좋지 않을 거 같은데요. 가뜩이나 몸이 약……. 어머나?”
하지만 이내 아빠가 엄지와 중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냄과 동시에 불이 들어왔고, 그 순간 헤일은 제 눈을 의심했다.
순식간에 확 하고 켜지는 빛과 함께 집 안 가득했던 먼지가 싹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먼지는커녕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해진 집 안에 헤일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박였다.
“이게.”
“마법이요.”
입을 벌리고 있는 헤일의 곁에 바짝 붙어 선 피어스가 작게 속삭였다.
‘마법이라.’
아빠가 마법사가 아닌데 이 정도의 공간에 마법을 걸어 놓으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었을 거였다. 거기다 매달 들어가는 마법석의 양도 무시 못 할 텐데?
‘울 아빠 나 모르게 부자였나?’
할아버지가 부자인 거지, 아빠는 부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빠가 황도의 집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 비워 두는 공간에 마법석을 걸어 놓은 게 희한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신기하긴 하네.’
이런 마법이 있다는 걸 말로만 들어 봤는데.
물론 하녀들을 고용해서 구석구석 쓸고 닦는 것만 못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지만, 그래도 아빠처럼 자주 들러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빈집에 고용인이 드나드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좋을 거 같았다.
“신기하다.”
“레티시아 에시어.”
“……녜?”
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우와, 소리를 내는 내 말을 뚝 끊은 아빠의 차가운 부름과 표정에 이내 입을 합 하고 다물었다.
‘맞다. 아빠 화났었지.’
아빠를 일 년에 몇 번 보질 않은 탓에 아빠가 내게 화를 냈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전생에선 내가 그렇게 아빠한테 나쁘게 굴고, 버릇없이 대해도 화를 내지 않던 분이셨으니까.
유일하게 화를 내셨던 게 내가 자격도 없이 오네에 나가겠다고 억지를 부릴 때였다.
‘넌 후계의 자격이 없다.’
당시 내 설명도 듣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화를 내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내가 왜 그렇게 한 건지 말이라도 좀 들어봐 주면 좀 좋아?
근데 아빠는 무조건 무섭게 화를 내면서 안 된다고만 했었다.
그 때문에 내내 아빠를 미워했고, 이후로 아빠가 와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데면데면하게 굴었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만약 아빠가 내내 내 곁에 있어서, 아빠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고 아빠도 나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오래 미워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 부녀는 서로를 이해할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 최소한 내가 아빠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엔 그냥 그렇게 부족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혼내면 나도 내 할 말 다 해야지.
“따라 올라오렴. 그리고 피어스는 저택에 연락하고.”
“네.”
대답과 동시에 즉각 밖으로 나가는 피어스의 기척에 이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헤일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 주었다.
아무리 아빠가 화가 났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 중의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 건 우리 아빠였으니까.
“녜.”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아빠의 뒤를 쫓았다.
“레티시아.”
딱히 앉을 곳이 없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이며 자리를 잡았다.
“네.”
“이제 왜 네가 이 시간에 오네에 있었는지 설명해 보렴.”
아빠의 물음에 팔짱을 낀 채 턱 끝을 톡톡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랑 저랑 친구예요.”
머릿속에 정리된 설명을 하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군데 리안이 엄마가 많이 아파서 폴한테 돌봐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리안이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리안이는 혼자거든요. 옆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쓸쓸하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안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온 거고.”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잘못해써요.”
“다른 건.”
잘못했다는 내 말에 아빠가 미간을 좁혔다.
“그것만 잘못하고 다른 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의미 같은데.”
아빠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말고는 잘못한 게 없었다.
“그거 말고는 잘못한 거 없는데.”
“다시 잘 생각해 보렴.”
유도 신문인가.
“몰래 나와서 어른들 걱정시킨 거요?”
“또.”
“하녀들 당황하게 만든 거요?”
“또?”
“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고는 잘못한 게 없는데.
미간을 찌푸려 가며 한참을 생각해도 더는 떠오르지 않는 잘못에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여.”
하지만 그런 내 말에 아빠는 또다시 실망한 듯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 표정에 어쩐지 입이 바짝 마르는 것만 같아 마른침을 꼴깍 삼키자 아빠가 나를 빤히 보았다.
“아빠가 오라고 했는데, 왜 안 왔지?”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