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67)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7)화(67/141)
“샤리에 에시어?”
“예.”
“내가 아는 그 샤리에가 황도에 왔단 말이냐.”
고개를 끄덕이는 부관의 보고에 의자에 몸을 눕듯이 기댄 스벤 백작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지금 이 시기에 샤리에가 황도로 들어왔다라…….
공교롭다고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타이밍이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무슨 다른 일이 있어 온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부관의 말에 스벤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오히려 너무 움직이질 않고 있습니다. 바로 에시어로 가지도 않고, 오네에서 딸을 만나서 내내 머무는 것을 보아서는.”
“딸을 보러 왔다고? 타루스에서부터 예까지?”
“네.”
하!
부관의 기막힌 말에 스벤 백작이 코웃음을 쳤다.
고작 딸 하나 보러 보름 거리를 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특히나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않은 제게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부관은 제 생각과는 다른 듯했다.
“샤리에 에시어가 황도에 오는 목적은 딱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황제 폐하의 부름. 남은 하나는 딸의 생일.”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설명하는 부관의 말에 스벤 백작이 미간을 문질렀다.
“근데 지금은 둘 다 아닌데 황도에 왔고.”
“예.”
“제 딸과 같이 있다.”
‘레티시아 에시어입니다.’
고작 6살밖에 안 된 아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완벽했던 예법을 떠올리던 스벤 백작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딸을 황녀의 놀이 친구로 들여보냈던 게 딱 레티시아, 그 아이의 나이대였다.
한데 제 딸은 아직도 예법에 능하지 못했다.
물론 제 나이 아이들에 비해서는 뛰어난 편이었지만, 여전히 어른들의 눈에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어쩐지 만만찮아 보이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스벤 백작이 부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에시어의 가주가 은퇴를 한 시점이라 혹,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주가 될 작정인가?”
“그것까지는.”
부관의 말에 스벤 백작이 입매를 매만졌다.
솔직히 제겐 샤리에가 황도에 왔든, 가주 자리를 탐하든, 안드레아가 죽든 상관이 없었다.
오직 황명.
‘마고 에시어를 그림자처럼 등장시켜 펠루아나를 정리해라.’
그 황명만 이뤄 내면 평생 먹고 죽을 수 있는 마법석 광산이 제 것이었다. 궁내부 장관 자리를 당장에 때려치워도 마법석 광산만 있으면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걸로 만족한다면 말이지.’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만족할 거였다면 지금 이 개고생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도 먹고살 수는 있었으니까.
자작에서 백작까지 올라왔으니, 그다음으로 가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반드시 이 일을 성사시켜야 했다.
그 상황에서 샤리에 에시어의 등장이 제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그게 문제였다.
샤리에 에시어가 아무리 나서 봐야 사생아에게 가문을 물려주진 않을 터.
‘그러니 이변이 없는 한, 에시어 가문을 물려받는 건 안드레아 에시어가 될 테고. 마고 에시어는 너무 늙었다.’
요 며칠 마고 에시어를 만나 보니, 꼬장꼬장한 노인네에게 남은 건 황제를 이겨 먹겠다는 오기뿐인 듯 보였으니까. 거기다 정말 건강 때문에 은퇴를 한 것이 맞는지, 잔뜩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익투스라 했던가.’
그럼 차라리 지금 마고가 죽어 버리면.
‘오히려 내 일은 깔끔해지지.’
스벤 백작이 입꼬리에 길게 호선을 그리며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안드레아에게 쥐여 줄 뭔가가 있어야 했다.
아니면 반대로 ‘내가 마고를 죽여 줄 테니, 펠루아나를 해결해라.’라고 하던가.
‘오히려 그게 쉽게 먹히겠는데.’
만약 제가 그런 제안을 하면 안드레아는 뒤도 보지 않고, 그러겠다 고개를 끄덕일 게 너무 뻔했다. 거기다 샤리에까지 황도에 들어왔으니 안드레아의 눈이 뒤집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전긍긍할 안드레아의 모습이 눈에 선한 스벤 백작이 조소하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런 짓까지는 할 수 없지.’
제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건 건 맞지만, 고작 이런 일에 그런 큰 카드를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에시어는 펠루아나를 막아야 했고, 다만 그 등장 시점에 대한 것과 마고 에시어의 명성이 문제가 되는 거였으니까.
“흐음. 샤리에 에시어라.”
그를 이용해 먹어야 하는데.
톡톡- 펜촉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스벤 백작이 문득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샤리에 에시어 소속이 어디지?”
“제국군입니다. 제국군 타루스 영지의 대장.”
“그래?”
그제야 샤리에를 이용해 먹을 아주 좋은 수가 떠오른 스벤 백작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드레아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겠으나, 일단 자신은 완벽하게 이 상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좋은 수가 말이다.
“국방 장관님을 좀 뵈어야겠으니, 낼 찾아뵙겠다 전하거라.”
* * *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멀어지는 베넷의 마차를 보며 커튼으로 대충 창문을 가린 샤리에가 몸을 돌렸다.
“아이의 곁에는 내가 있으마. 오네에 집이 있다던데, 거기 가서 쉬다 와도 좋고, 아래층에 있는 방을 써도 괜찮다.”
“그럼 아래층에 있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헤일의 조용한 발소리가 문 너머로 사라지고, 2층 창가에 서 있던 피어스가 고개를 돌렸다.
“전 여기 있겠습니다.”
“그래.”
쉬라는 말없이 끄덕인 샤리에가 그를 남겨 둔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방 안엔 흐릿한 램프의 빛뿐이었다. 먼지는 없었지만 조금 어수선했던 방 안이 그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레티시아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던 샤리에가 의자를 들어 조심스럽게 그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조용히 앉아 한참 동안 아이를 바라보던 그가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댄 채 입매를 가렸다.
‘챈들러 그 새끼가 괴롭히는 건 예사고, 그 미친 엄마들까지도 다들 아기씨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고. 며칠 전에는 뭔 정신 조정하는 약을 먹였다고 저택이 한번 난리가 났었어요. 그래서 아기씨 측근 하녀가 쫓겨났고요. 아리나라던가?’
‘진짜 혼자 버티고 계셨어요요.’
‘그나마 가주님께서 오시고 난 후에 동쪽 별관에서 본관으로 옮겼는데, 그때부터 조금 나아진 모양이더라고요. 대장, 진짜 모르셨어요?’
피어스의 마지막 말이 이명처럼 맴돌았다.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었다.
생일 즈음 올 때는 그나마 얼굴 보는 것도 몇 시간 되질 않아서, 그냥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작년에 왔을 땐 오랜만에 본 탓인지 제게 다가오지도 않았기에 아이를 세세하게 보지도 못한 채 타루스로 돌아갔으니까.
서운하긴 했지만 그 나이대에는 그럴 수 있다는 벨리아의 말에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저는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었고, 받아 본 적 없는 사랑을 줄 자신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타루스는 아이가 살 만한 곳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황도에서 지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이에게 행복할 거라고.
‘샤리에,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란다. 에시어의 피를 더럽히고 있잖니.’
한데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얼굴로 그 집안에 있었을 줄이야.
“하아.”
샤리에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리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깊은 숨을 몰아쉰 샤리에가 일렁이는 램프에 비친 아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평소 듣던 것과는 다른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혹시라도 제가 깰까 봐 조심조심 걸어 다니는 발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는 전혀 없는-
“거, 조심 좀 합시다.”
“아니, 가는 놈이 조심해서 가야지. 가만히 있는 내가 뭘 조심을 해!”
“아니, 이 사람이 아침부터!”
“거 싸울 거면 저기 방위대 앞에서 싸워요! 왜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난리야!”
왈왈, 꽥꽥, 꼬기오. 다양한 짐승 소리부터
다그닥다그닥. 촤아! 팡팡!
수레 끄는 소리와 바깥으로 물 버리고는 이내 이불 터는 소리까지.
그야말로 소란스러운 바깥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기가.’
“일어나셨어요?”
헤일이네.
그럼 전생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을 비비자 서서히 정신이 깨어나는 듯했다.
리안이, 폴, 아빠.
어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헤일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꿈인가?”
“아뇨.”
“그럼 여기 오네야?”
“네.”
“구럼 아빠도 있어?”
“네.”
헤일의 끄덕임에 눈을 비비던 손을 내렸다.
“꿈 아녔어?”
“네.”
와.
난 아빠 그대로 가 버린 줄 알았는데.
화다닥 이불을 걷어 내곤 급히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레샤 예쁜 옷 없는데. 그치? 집에 가따오까? 아니다, 아빠 그 사이에 가면 안 대는데. 사오까? 아니다, 그럼 바로 못 입자나.”
어뜨카지?
괜히 나 혼자만 조급해지는 기분에 입술을 깨물자, 헤일이 웃으며 세숫물을 부어 줬다.
“어제 입은 옷도 충분히 예쁘시구요. 필요하면 저택에 얘기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던가. 제가 가져올게요. 아, 샤리에 님은 1층에 계세요.”
제일 중요한 말을 마지막에 하며 찡긋 웃은 헤일이 수건을 집어 들었다.
역시 헤일이 최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