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70)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70)화(70/141)
“이 짐승 같은 것들! 안 닥쳐?”
매섭게 바닥을 내리치는 선주의 채찍 소리에 노예선에 실려 있던 아이들이 배의 한구석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몸을 웅크렸다.
최대한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를 끌어안은 이들은 대부분 인신매매단을 통해 잡아 온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왜 자신들이 여기 있는 건지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오랜 시간 공포와 뱃멀미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질 못한 채 대부분은 기아 상태로 죽어 가고 있었다.
“너희들한테 줄 물이 어디 있어!”
연신 채찍으로 바닥을 내리치던 선주가 크하하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삼켜 넘기는 그의 목울대에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선주는 사악하게 웃으며 남은 맥주를 바닥에 부어 버렸다.
“그렇게 물이 마시고 싶으면 저 바닷물이라도 퍼마시던가.”
“그럼 다 죽어요.”
“뭐?”
“그럼 애들 다 죽는다고.”
선주의 말에 적발을 지저분하게 늘어트린 사내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적개심 어린 눈동자를 알아본 선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적발 중에서도 귀한 블러디레드를 가지고 태어나 사 올 때도 아주 비싸게 주고 가져온 물건이었다.
저거 하나 경매에 넘기면 그래도 금화 서른 개는 족히 받아 챙길 수 있을 텐데.
죽어 버리면 곤란했다.
“오, 그래. 너는 마셔야지.”
상품 가치를 떨어트리는 건 더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선주가 바지춤에 달려 있는 가죽 수통을 빼 들었다.
“이리 와.”
하지만 물을 먹이려는 선주의 부름에도 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애들부터요.”
“상관하지 말고 이리 와.”
“애들부터 마시고 난 뒤에요.”
고집스럽게 구는 아이의 말투에 수통을 도로 바지춤에 내걸었다.
“야, 네가 지금 나랑 거래할 위치야?”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요. 어린애들부터 물 좀 주라는 건데.”
“그 어린애들 물 다 주다간 너도 뒈져, 이 새끼야. 어디서 감히.”
‘캬악. 퉤-.’ 하고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침을 뱉은 선주가 허리춤에 매단 수통을 흔들어 댔다.
“어떻게 할 거야. 마실 거야, 말 거야.”
저도 솔직히 목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당장에 저 수통에 매달려 목을 축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버티지 않으면 아이들 몫은 영영 없을 테고, 아이들은 뭍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 게 뻔했다.
그러니 선주와 거래를 해야 했다.
“아이들부터요.”
그가 저를 비싸게 주고 샀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만약 제가 여기서 죽어 버리면 배를 띄운 삯도 제대로 건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면 안 마셔요.”
해서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저 이씨.”
그 모습에 수통을 쥐어 흔들던 선주가 입매를 씰룩였다. 그러곤 성큼성큼 다가가 아이의 적발을 움켜쥐어 위로 당겨 올렸다.
“!”
머리카락을 당기는 힘에 그야말로 두피가 다 뜯겨 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 낸 아이가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고통에 찬 아이의 얼굴을 보자 이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 건지, 선주가 누런 이를 히죽 드러내며 웃었다.
“왕 노릇 하기는.”
‘퉤!’ 하고 침을 뱉은 선주가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 바닥에 웅크려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아이의 앞에 수통을 집어 던졌다.
“개새끼.”
그러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침을 뱉곤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탁!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더 이상 선주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고서야 슬금슬금 수통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아이들의 시선에 적발의 사내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쟈이든, 나 목말라.”
“기다려. 가장 나이 어린애들부터야.”
그렇게 쟈이든은 선주에게 수통을 하나씩 얻어 냈다.
하룻밤에 한 통씩, 아이들에게 물을 나눠 먹이고 남은 방울을 겨우 털어 마시기를 일주일쯤 하자, 배의 일렁거림이 잦아들었고 뭍에 다다라 아이들과 헤어졌다.
어디로 갔을까.
짐승 우리 같은 철창에 갇혀 있기를 며칠. 쟈이든이 함께 있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무릎을 당겨 앉자 이 인신매매단의 대장인 듯 보이는 퉁퉁한 사내가 신이 난 듯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오신단다. 연락 왔다.”
“드디어 오신답니까?”
“그래, 그러니까 옷 잘 입혀 놔라.”
“예.”
“대체 그 선주 새끼가 어떻게 했길래 애가 저러고 있어?”
“딱 봐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게 말 안 듣게 생겼잖습니까.”
쟈이든을 가리킨 사내가 몸을 돌려 철창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 쪽으로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사내가 철창을 툭툭 건드렸다.
“야, 너 거기 가서도 그렇게 굴면 일주일 안에 뒈져서 나온다?”
“…….”
“잘 해야지. 안 그러냐? 그래야 노예 문서 받고, 돈 많이 벌어서 너희 나라 다시 갈 수 있지 않겠어? 야, 근데 쟤 제국어는 알아먹냐?”
“듣기는 하는 거 같은데 말하는 건 못 들어 봤습니다.”
“뭐, 상관없지.”
무릎을 탁 치며 일어선 남자가 몸을 돌렸다.
“저래서는 남작가에서……. 뭐, 그쵸?”
입맛을 쩝, 하고 다신 수하가 철창에서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흘끗 보곤 쟈이든을 돌아보았다.
“우린 솔직히 돈만 벌면 되니까. 넌 다른 좋은 주인 만나기를 너희 신한테 기도해라. 난 우리 신한테 빌어 줄 테니.”
그러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를 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다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남자의 말에도 쟈이든은 신을 찾지 않았다.
‘신이 어디 있어.’
신이 있다면 그를 그토록 열심히 믿었던 자신의 착한 여동생과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곳에 짐승처럼 끌려와 쇠사슬에 묶여 있지 말아야 했다.
그러니.
‘신은 없어.’
쟈이든이 무릎을 감싸 쥐었다.
‘신은 없어.’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금화 백 개!”
그들이 말한 남작이 아닌, 자신을 사 들인 아이의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의 신은 내 가족들을 죽인 하늘 위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저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 레샤 인형요. 인형 사러 가요.”
아빠라 부르는 남자의 손을 잡고 당겨 흔드는 아이의 어리광 섞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근데 혹시…… 그 경매장에서 날 낙찰받은 사람이 혹시 아기씨예요?”
눈앞의 아이가 자신의 신이라는 걸.
* * *
“웅? 그게 모지이?”
“…….”
나는 모른다.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최대한으로 모른 척 고개를 최대한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아빠의 표정은 이미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시선에 내 등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난 무슨 소리를 하눈 건지 모르겠네? 하하.”
하지만 내 필사의 모른 척에도 눈치 없는 쟈이든은 멈추질 않았다.
“그 날, 그 노예 경매장에서 금화 백 개요. 그거 아기씨 맞죠?”
아니, 이미 확신에 가득 차 있어서, 멈출 필요가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쟈이든의 물음에 조금 울고 싶어졌다.
‘다 망해써.’
아빠의 눈에 나는 순수함의 대명사일 텐데, 어제는 웬 남자아이랑 밤중에 같이 있고 오늘은 또 다른 남자아이가 자기를 노예 경매장에서 산 게 내가 아니냐고 묻는 상황이라니.
‘그것도 금화 백 개나 써서.’
물론 나름의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기는 하다만, 단순히 듣기엔 고작 6살밖에 안 된 내가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탈이었다.
‘아빠가 실망했으면 어쩌지?’
아빠가 나를 방금 전과 다른 눈으로 보면 어쩌지? 싶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쟈이든은 확인을 하기 위해 묻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 차라리 해명을 하자.
어차피 거짓말을 할 이유도 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거 나 맞는 거 같은데, 군데 그거 내가 널 노예로 산 게 아니고, 그냥 도와주려고 그런 거야! 내가 그 사람들한테 받은 노예 문서도 이미 내가 다 태워 버렸어! 그러니까 너 자유야!”
하지만 그런 내 말은 이미 폴이 전했을 테고, 그가 바라는 게 이런 대화가 아니라는 생각에 바라보자-
“그러니까 날 산 사람이 아기씨라는 거잖아요.”
“……”
“그러니까 난 아기씨 거예요.”
세상에.
그가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를 하며 나를 유혹했다.
어른이었다면, 바로 넘어갔을 매력적인 대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