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71)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71)화(71/141)
세상에 얘 봐라, 얘 어쩐다니?
‘난 아기씨 거예요.’라니.
이게 무슨 로맨스소설 남자 주인공 같은 대사인지.
내가 이시아만 되었어도. 아니, 전생의 레티시아 나이만 되었어도 이 예쁘장하니 단단하게 생긴 미소년한테 흠뻑 빠졌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는 6살이었다.
남자 노예를 부릴 나이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파로아 제국 내에서 노예를 부리는 건 불법이었다.
특히 인신매매단에서 사들인 노예는 더더욱 말이다.
한데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당황스러워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거기다 아빠까지 옆에 있질 않나.
‘후우.’
진짜 답답해 죽겠네.
하지만 내 답답한 심경과는 달리 쟈이든은 매우 단호해 보였다.
“아기씨가 날 구했어요. 그리고 우리 투니아 족은 은혜를 잊지 않아요.”
아니야! 잊어! 잊어도 된다고!
소리를 내지르며 발을 쿵쿵 구르고만 싶은 심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꼬여도 단단히 꼬인 것 같은데.
‘미치겠네.’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걸 어쩐다.
아니, 이게 소설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었다.
근데 얘는 소설 중에서도 남자 주인공의 측근 아닌가.
원래라면 은혜는 리안한테 입고, 리안한테 충성을 맹세해서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아이란 소리였다.
근데 나를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마치 사랑에 빠진 미친놈 같잖아.
아빠만 옆에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싶어.
‘하아.’
아무래도 내 오지랖 때문에 일이 다 틀어져 버린 게 분명했다.
되돌려야 해.
그가 충성을 다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리안이라는 걸 보여 줘야 했는데.
“아기씨가 내 주인이에요.”
하지만 쟈이든의 저 눈빛은 되돌리기 이미 늦은 듯 보였다.
“그러니 내 목숨도 아기씨 거예요.”
아니야아!
네 목숨은 네 거고, 넌 내가 아니라 리안의 충신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목숨 걸고 리안을 지켜야 할 아이가 맹세하는 충성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그런 걸 바라고 한 게 아니란 말이야.”
“알아요. 그러니까 아기씨에게 충성하는 거예요. 아기씨는 순수하시니까.”
순수하지도 않아.
진짜 말을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빠아.”
얘를 어떻게 하죠?
애절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들자 아빠가 고개를 갸웃했다.
“투니아 일족이라면, 각인인가.”
작게 읊조린 아빠가 쟈이든을 바라보았다.
“투니아면 늑대 일족의 후예인가.”
늑대?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쟈이든을 바라보았다.
소설에서도 그런 내용은 못 본 거 같은데?
쟈이든이 늑대라고?
말도 안…….
“응.”
말 되네.
근데 왜 저게 반말이야.
“울 아빠야.”
“네.”
내 말에 금세 대답을 정정하는 저 멍멍이 대형견 같은 쟈이든의 모습에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머리야.
그러자 그 모습에서야 아빠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저 아이가 네게 각인된 거 같구나.”
“각인이요? 쟤 늑대예요?”
놀라 되묻는 말에 아빠가 고개를 저었다.
“늑대는 아니지만, 설화 중에 투니아의 선조가 늑대였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단다. 각인은 투니아 후예들 중에서도 유독 피가 진한 이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
진짜, 내가 망친 거였네.
리안에게 일어났어야 할 각인이 내게 온 것이 분명했다.
‘이걸 어쩌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소설 내용을 뒤틀고 있었다.
내 이기심이 다 망쳐 놓은 걸까?
‘안 되는데.’
며칠 전 아빠를 보았을 때처럼 확 치미는 불안에 양손을 모아 잡았다.
아무래도 나 역시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걸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극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엑스트라이니, 내 상황에 유리하게 조금은 바꿔도 티 나지 않겠지.’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 숨에 내게 바짝 집중하고 있는 쟈이든 뿐만 아니라, 아빠 역시 나와 시선을 맞추듯 몸을 낮추었다. 나와 꼭 닮은 바다 빛의 푸른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자, 아빠가 다정히 속삭였다.
“넌 어떻게 하고 싶으니, 레티시아?”
처음으로 되돌려 놓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늑대가 오직 한 사람에게만 각인하고, 그 사람만을 평생 품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일생에 한 번 일어나는 그 각인에 내게 일어난 거라면.
되돌릴 수 있는 가망은 없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걸 또 해?’
“하아.”
축복으로 여겼던 회귀마저 진절머리가 날 것만 같아 고개를 내저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똑똑한 사람에게 회귀는 축복이었지만 머리가 나쁜 사람에게 회귀는 재앙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하휴.”
“레티시아?”
나도 모르게 크고 길게 내쉰 한숨에 놀란 아빠와 쟈이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걱정 가득한 두 남자의 시선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벌인 일이니까, 내가 수습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널 내 곁에 둘 수는 없어.”
“……왜요?”
“난 귀족이라 집에 노예가 없고, 나를 지키는 건 기사들만 가능해. 시종이나 하녀들도 다 제국민들이고,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해. 근데 그건 어려워.”
내 단호한 말에 쟈이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내 곁에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내 죄요.
하지만 되돌려 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근데 부탁이 있어.”
시무룩했던 쟈이든이 내 부탁이라는 말에 순식간에 눈을 빛냈다.
“다 말해요. 뭐든 들어줄게요.”
“리안이를 지켜 줘.”
“…….”
내 입에서 나온 리안이라는 이름에 쟈이든이 크게 실망한 듯 어깨를 늘어트렸다.
하지만 난 꿋꿋이 말을 이어 갔다.
“이제 걔 옆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내년에 오네로 오기 전까지 네가 리안이랑 같이 있어 줘.”
“오네로 와요? 언제 오는데요?”
리안이 곁에 있으라는 말에 풀 죽었던 쟈이든이 오네로 온다는 내 말에 화악 밝아졌다.
“내년에 올 거야.”
하지만 아빠의 표정은 밝아진 쟈이든의 표정만큼이나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빠가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고 있기에 최대한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니까 쟈이든이 리안이 곁에서, 리안이 지켜 줘. 한 시도 떨어지면 안 돼.”
그래, 각인을 나한테 하긴 했지만 이렇게 리안을 지켜 주게 만들면 되는 거였다.
“꼭 잘 지켜 줘.”
* * *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쟈이든을 남겨 둔 채 메디 의원을 나와 아빠와 신나게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옷도 맞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사 준 악어 인형까지 옆구리에 끼고 단 사탕을 입에 물고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도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다 망친 거면 어떻게 하지?
아니, 내가 앞으로 다 망쳐 버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이 책을, 이 세계를 망가트린 거라면?
나 때문에 리안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하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정에 머리가 아파 숨을 몰아쉬자-
“레티시아, 종일 돌아다니느라 다리 아프지? 안아 줄까?”
나란히 걷던 아빠가 걸음을 멈추곤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다정한 눈동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를 안아 주는 아빠의 목에 팔을 감고, 헤 하고 웃으며 악어 인형을 배로 끌어안았다. 아빠는 가슴도 넓고, 팔도 단단하고, 어깨도 넓어서 안겨 있으면 안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는 포근해서 잠이 올 정도니.
거기다 아빠 냄새는 또 얼마나 좋은지.
킁킁 어깨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자, 머리 위에서 아빠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에 나 역시 배시시 웃으며 편안히 얼굴을 기댔다.
“행복하다.”
“그래?”
“네, 많이.”
이렇게 행복해서 제게 그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불행하면서 그런 일이 없는 게 나은 건가, 행복한 대가로 그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 건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에 미간을 찌푸리자-
“레티시아, 오네에 가고 싶으니?”
조금은 주저하듯 나를 부른 아빠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물었다.
그리고 쟈이든에게 이야기를 할 때부터 어쩌면 아빠가 물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던 터라, 아빠 가슴에 얼굴을 댄 채 크게 끄덕였다.
“네.”
“왜지?”
“에시어니까.”
“…….”
“에시어의 역사에서 읽었는데, 에시어라면 해야 하는 거랬어요. 초대 가주님이요.”
“그게 요즘에는 직계로 한정되어 있는 건 알고 있지?”
“하지만 능력 있는 방계들도 후계 자격이 있다고 했는데?”
내 해맑은 말에 아빠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후계자가 되고 싶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