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75)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75)화(75/141)
그 시각.
여기도 으르렁대며 싸우는 두 사람이 있었다.
“레티시아는 내가 데려가마.”
할아버지와,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빠.
정말이지 마차에서 내린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와 얼굴을 마주 보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말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제도 만나서 싸운 사람들 같았다.
“네 녀석이 뭔데 안 된대!”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집에서 지내는 것도 싫으신 듯했다.
“제 아이니까요.”
아빠는 그냥 할아버지가 싫은 것 같았지만.
그리고 난 그 사이에서 팔만 양쪽으로 당겨지지 않았다뿐이지,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서 이쪽저쪽으로 끌려다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아비 노릇 하나 한 게 없으면서 어디서! 아비라 말을 하는 게야!”
“그래서 앞으로는 해 볼 작정입니다.”
“가문으로 들어와, 그럼.”
“그건 싫다고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허면 여기서 내내 지내겠다는 거냐.”
“예.”
“샤리에 에시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빠와 할아버지는 정말 지겹도록 같은 이야기로 싸우고 있었다.
부자지간의 싸움이란 이런 것인가.
어쩜 이렇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건지.
똑같은 두 사람의 반복되는 말싸움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빠 봤다가, 할아버지 봤다가
왔다 갔다 하느라고.
누구 편을 들어줄 수가 없네.
솔직히 여기서 누구 한 사람 편을 들어 줬다간 진짜 난리가 나지 싶기도 하고.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서운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대로 실망하고.
할아버지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아빠는 나중에 풀어 주면 되니까. 할아버지 편을 들어야 하나.
근데 또 그러기에 아빠는 너무 짧게 보는걸? 며칠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아빠를 서운하게 하면 조금 속상할 거 같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묵뿐.
“네가 집에만 오겠다 했으면, 이렇게 언성 높일 일도 없잖아!”
“아버지.”
“구만!”
들을 만큼 들었다.
“두 사람 싸우는 거 더는 못 듣겠어!”
도망가야지.
“헤이일, 나 헤일네 갈래.”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소파에서 내려오는 내 모습에 입을 다문 할아버지와 아빠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베넷과 피어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레티시아, 어딜 가려고.”
“그래, 할아버지랑 집에 가야지.”
나를 만류하는 네 남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총총히 걸어 헤일의 다리에 찰싹 붙어 매달렸다.
“아빠랑 할아버지 계속 싸울 거잖아. 다 싸우고 불러. 그때 오께.”
난 빠져 드릴게요.
“그 사이에 헤일네 집에 가서 놀다 오께요.”
안냥.
“이따 봐요.”
* * *
레티시아와 헤일이 나가고, 작은 집 응접실에는 네 남자만 남아 있었다.
“괘씸한 놈.”
내내 팽팽하던 침묵을 깨트린 건 역시나 마고였다.
“늙은 아비가 부를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자식이 보고 싶다고 하니 올 마음이 들더냐.”
“레티시아에게 이능 있는 건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말해 봐야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괜히 성가시기만 하지.”
“아버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팡이 끝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마고의 대답에 샤리에가 소리를 높였다.
“이능이 발현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제 아이에 대한 일을 제게 말씀 안 하실 수 있으십니까. 언제까지 말씀 안 하실 작정…….”
“말만 하면 당장에 탈루스에서 날아와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었더냐.”
“…….”
제 말을 끊는 마고의 냉정한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샤리에가 그를 빤히 보았다.
“대답을 해 보거라.”
“…….”
“내가 네게 알렸다면 지금과 상황이 뭐 크게 달라질 것이 있어?”
뭔가 반박을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곧장 제게 말을 했다고 해도, 온전히 시간을 내어 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겨울이 아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 날 그 꿈을 반복해서 꾸지 않았다면, 레티시아를 보러 오는 것도 아이의 생일까지로 미뤄 놨을 게 뻔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못난 녀석.”
입술이 다 헤져 없어질 때까지 씹을 작정인 듯한 샤리에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찬 마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니. 이만 돌아와.”
“…….”
“지금처럼 레티시아를 혼자 둘 작정이 아니라면.”
“탈루스로 데려갈까 합니다.”
피어스에게 레티시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내내 생각했었던 말이었다.
“탈루스가 척박하긴 해도 사람이 영 살 수 없는 곳은 아니니. 차라리 그곳에…….”
“미친놈.”
하지만 그런 샤리에의 말을 막은 마고가 헛웃음을 지으며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정신 나간 녀석.”
그러곤 샤리에를 돌아보았다.
“네 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서나 하는 말이냐.”
“무슨 소립니까. 어떤 상태냐니.”
“이능 부작용 때문에 수시로 피를 토하고 있는데, 탈루스에 데려가? 황도에서도 치료가 어려운 아이를 탈루스에 데려가서 아예 죽일 작정이냐?”
서슬 퍼렇게 몰아붙이는 마고의 목소리에 순간 샤리에가 숨을 삼켰다.
이능 부작용.
‘설마 그래서.’
며칠 전 아이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던 꿈을 떠올린 샤리에가 마고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노기를 최대한 누르듯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반항도 그만 했으면 됐다.”
“…….”
“아비도 늙었어. 아파서 다 내려놓았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정정해 보이시는데요.”
“익투스라는구나.”
“…….”
샤리에를 올려다보던 마고가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듯 바로 섰다.
“언제 터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어. 치료제도 없고. 이것도 네 딸이 아니었다면 비명횡사하듯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만.”
레티시아를 떠올리며 작게 웃던 마고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듯 그를 바라보자, 샤리에가 베넷을 바라보았다. 마치 확인을 하려는 듯 그를 보는 샤리에의 시선에 베넷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이 불쾌한 듯 마고가 지팡이를 쾅 하고 내리쳤다.
“내가 네게 거짓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더냐.”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샤리에가 입술을 깨물었다.
복잡한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 기분이었다.
느닷없이 너무 많은 일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후.”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머리를 쓸어 올리는 샤리에의 모습에 마고가 그를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강요하지 않으마. 그냥 곁에만 있거라.”
“…….”
“늙은 아비를 제쳐 두고라도. 레티시아를 생각한다면 네가 네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해.”
그의 묵직한 말에 샤리에의 시선이 동요하듯 잘게 흔들렸다.
* * *
“아버지가 어딜 가셔?”
안드레아의 날 선 목소리에 그 수하의 시선이 땅으로 떨어졌다.
“오네의 샤리에 님의 집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마무리하는 그의 말에 안드레아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집어 던졌다.
“여보!”
사방으로 튀는 유리 파편에 놀란 벨리아가 가슴을 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케이트.”
하지만 그녀 역시 안드레아를 말릴 생각은 않은 채, 그저 하녀들을 시켜 창문을 닫고 커튼을 꼼꼼하게 치며 손을 내저었다.
“왜.”
“어젯밤에 레티시아 아기씨께서 그곳에서 주무신 것 때문인 듯합니다.”
“하. 사생아에 사생아 딸년까지. 아주 가지가지.”
안드레아가 내지를 뻔한 고성을 참으려 인상을 찌푸린 그가 바르르 떨리는 손끝을 간신히 움켜쥐었다.
그러곤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날 선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의 모습에 수하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언제든 몸을 피할 준비가 된 그의 모습에 벨리아가 옆머리를 짚었다.
“그때, 죽어 버렸어야 했는데.”
“여보.”
“어머니가 칼로 찔러서 죽여 줬어야 했는데!”
광기 어린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안드레아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발작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하.”
내일 또 뭐라 해명하나.
벨리아가 양손을 위로 으쓱하듯 뻗으며 몸을 돌렸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하녀들이 다들 벽에 붙어섰다. 벨리아도 몸을 피하긴 해야 했기에 소파 뒤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샤리에가 발작 신호야.’
샤리에가 가문에서 나가 탈루스로 간 이후에는 이 정도로 크게 발작한 적은 없었다.
“여보, 이제 그만.”
“사생아 딸년, 절대 오네로 가지 못하게 해.”
“…….”
“후계의 자격. 샤리에가 그걸 가졌던 게, 그게 모든 악의 씨앗이었어.”
안드레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벨리아를 돌아보았다.
“절대.”
“…….”
“내 자식들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어.”
“여보.”
항상 제 상처만 크게 보듬어 아들들을 챙길 생각조차 못 하던 안드레아의 말에 벨리아가 양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래야죠. 고작 사생아 딸이 뭐라고, 내 자식들 자리를 차지하게 둘 수는 없죠.”
“그러니 막아.”
“알겠어요.”
“막아야 해.”
싹을 밟아 버려야 했다.
더는 기어오를 수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