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80)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80)화(80/141)
벨리아가 챈들러와 실랑이를 하고 있는 동안, 헬렌은 큰아들 알레프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 모양이구나. 얼굴이 많이 상했어.”
“상하다뇨. 너무 놀아서 윤기가 도는 걸요.”
“너무 놀았다기에는 이번에도 1등이더구나.”
남들이 들었다면 이게 자랑인지, 아니면 일상 대화인지 모를 두 사람의 대화에 앞서 걷던 제이슨이 물가에 난 풀을 툭툭 뜯으며 걸었다.
“넌 물에 빠질 뻔하고도 또 물가로 걷는구나. 이리 와.”
“물에 빠질 뻔해요?”
알레프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헬렌을 돌아보았다.
“챈들러와 말을 타고 가다 물에 빠질 뻔했지 뭐니. 챈들러는 말이랑 물에 빠지고, 제이슨은 울고, 너희 할아버지는 소리소리. 어유.”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은 헬렌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 이야기는 들었지? 레티시아가 이능력자라는 거.”
“네, 들었어요.”
“그 덕분에 제이슨이 살았는지도 모르겠구나. 레티시아가 이능 발휘를 안 했다면 제이슨은 영락없이 물에 빠졌을 테니까.”
“이능 특성은요?”
“그걸 아직 모르겠어. 아버님도 그렇고, 올가 선생도 이능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단 말이야.”
“그럼 거짓말인 거 아닐까요?”
“레티시아가 이능을 발휘했다니까?”
“올가도 옆에 있었다면서요.”
레티시아가 이능력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알레프가 웃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건 아닐 거야. 이능력자는 맞는 거 같아. 그 날 그림도 그리고, 이것저것 많이 하더구나. 고대어랑 제국어도 배우지 않았는데 읽고 공부도 곧잘 해. 배운 적 없는데도.”
“대단하네요. 이러다 제 경쟁자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하, 여유롭게 웃으며 몸을 돌리는 알레프의 말이 거슬린 듯 헬렌이 자리에 멈춰 섰다.
“경쟁자?”
“네, 어쨌든 3세 중에서 유일한 이능력자이고, 큰 숙부께서도 이능력자에 소드마스터이신데. 그 딸까지 이능력자면 경쟁자죠. 둘째 숙부도 긴장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사생아의 딸이란다. 거기다 그 엄마의 출신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 엄마를 기함시키지 말렴.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예예, 알겠습니다.”
알레프가 능청맞게 웃으며 뒷짐을 졌다.
하지만 알레프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그동안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내내 샤리에의 존재만 신경 썼었는데…….
샤리에가 아니라, 레티시아가 후계 자리를 노린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리 6살이라고는 하지만, 그 영악함을 봐서는 금방 자라 자신들을 위협하고도 남음이었다.
‘내 아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경쟁자?
하.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온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은 헬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알레프의 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다 제 경쟁자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경쟁자는커녕 제 아들의 발치에도 못 미치게 만들 방법이 아주 코앞에 있었다.
‘오네로만 못 가게 만들면.’
가법이 우선인 마고의 성향상 아무리 아끼는 손녀라 해도 함부로 후계로 올릴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둘째 형님과 진하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네.’
경련하듯 떨리는 한쪽 입술을 살짝 당겨 올리며 들고 있던 양산을 조금 올려 본관을 바라보자, 마침 벨리아 형님이 창가 쪽에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알레프, 숙모님.”
“어디……. 아.”
헬렌의 말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3층을 바라본 알레프가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벨리아가 가볍게 손끝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러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아주 잠시 불타듯 만났다가 떨어졌다.
의기투합할 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눈빛 교환이었다.
* * *
그리고 머지않아 샤리에 에시어가 제국군의 새로운 기사단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제국 전체에 퍼져 나갔다.
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제국민들은 소드마스터인 이능력자가 이제 펠루아나를 쓸어 버릴 거라는 기대에 들뜨기 시작했고, 적당히 아는 귀족들은 과연 에시어가 얼마 만에 샤리에의 뒤에 등장할 것인가를 재며 내기판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서 아주 깊이 아는 사람들은-
“네 생일 전에 돌아오마.”
에시어가 등장하기도 전에 이 판을 끝내 버릴 준비를 마친 뒤였다.
“응, 약속.”
“약속.”
그리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요 며칠 사이 아빠에게 다 설명해 주었다.
내가 그 당시의 군사 전문가도 아니고, 소설에도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는 건 아니라 세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지역에서 싸움이 크게 일어났었고,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정도는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아빠,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목을 끌어안아 주며 말하자 아빠가 품에서 작은 소라 껍데기 같은 걸 꺼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전화다.’
물론 우리가 현대에서 쓰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목소리를 한번 들으려면 비싼 마법석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소식을 전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아빠 목소리 듣고 싶을 때마다 연락하렴.”
“이고 비싼데.”
“백 번은 더 연락할 수 있게 해 놨어.”
“백 번?”
헐, 진짜 우리 아빠 부잔가?
이 집 전체에 걸려 있는 마법 하며, 전화기 마도구에 통화 마법석 백 번이라.
못해도 금화 천 개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양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재산이 따로 있나?
“그러니 아빠 목소리 듣고 싶을 때마다 연락하렴.”
이거면 그래도 안심할 수 있겠다.
그래도 너무 자주 걸어서 아빠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알겠어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내년에 만나여.”
* * *
아빠가 떠났다.
이 집은 내가 언제든 와서 쓸 수 있도록 아빠가 허락해 줬고, 할아버지도 마지못해 그러라고 해 주셨다.
‘어차피 내년에 나와서 살아야 하는데, 익숙해지면 좋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집에 따로 볼 일이 있는 참이었다.
“피어스, 잠깐만 나 화장실.”
“제가 따라갈까요?”
“아냐, 레샤 혼자 가도 돼.”
따라오면 안 되죠. 큰일 나요.
고개에 손까지 내저으며 2층 계단 위로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의자로 아빠가 했던 것처럼 문고리를 걸고, 몸을 돌려 화장실에 가는 척 팅커벨이 있는 작은 서랍장을 노려보았다.
불태울까.
그럼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 사악한 생각을 하며 서랍장을 빤히 보자, 안쪽에서 흥얼흥얼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간다아, 가 버린다아. 혼자다. 으흐흐. 드디어 난 혼자아.”
얼씨구.
이 집에 혼자 남는 게 엄청 기대되고 행복한 모양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우리가 떠난다고 신이 난 그 돼지의 꿀꿀거림에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을 최대한 정돈하고 치맛자락을 톡톡 털었다.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처럼 최대한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서랍장 문을 열지 못하게 잡고, 위에를 톡톡 두드렸다.
똑똑.
“…….”
방금 전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팅커벨은 어디 가고. 숨죽인 고요함에 다시 한 번 위를 두드렸다.
똑똑똑.
“…….”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나 여기 없어요.’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조용한 그 서랍장을 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곤…….
쾅쾅콰당콰당쾅쾅쾅!
그 위를 신나게 두드렸다. 서랍장도 좌우로 흔들어 대며 정신없이 서랍장 위를 때리자-
“으악!으악! 내보내 줘! 으악!”
손으로 막아 놓아 열리지 않는 서랍장 문이 들썩들썩했다.
“너 누구야. 너 그 레티시아지? 샤리에 딸이지! 너 나 기억해? 야, 너 그 가루 맞았는데? 야, 일단 이거 열어 봐. 말로 하자. 응? 그만 때려. 골 울려어!”
말로 하자는 돼지의 말에 서랍장 두드리던 손을 멈추곤 몸을 최대한 그 앞에 붙였다.
“단검 내놔.”
“야, 그 단검은 이 시끼야. 너한테 위험하니까 내가 들고 가 준 거지. 내가 어? 그런 거 훔쳐 가고 그런 요정은 아니다. 내가 이래 봬도 에시어의 집 요정인데. 줄게.”
“어딨는데.”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네? 그러니까 얼른 열어요. 착하지, 우리 레티시아.”
답지 않게 홍홍홍 웃으며 나를 꼬셔 대는 팅커벨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문을 열어 줘야 물건을 받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우리 레티시아 똑똑하네.”
“하나, 둘, 셋 하면 열 거야.”
그러곤-
‘하나’에 문을 열고는 둘, 셋에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팅커벨의 꼬리를 움켜쥐었다.
“야! 꼬리!”
“내가 책에서 봤는데, 집 요정 중에서 돼지는 꼬리를 잡고 있어야 도망도 못 가고 말을 잘 듣는다고 하더라고?”
“그 무, 어디 그런 게 쓰여 있는데. 어디?”
“에시어의 역사. 6대 가주님이신 올란도 님의 일기.”
“망할 올란도 놈.”
‘일기장을 찢어 버렸어야 했는데.’라고 구시렁거린 팅커벨이 짧은 다리로 파닥파닥거리는 팅커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단검,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