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81)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81)화(81/141)
단검을 왼손에 쥔 채, 남은 손으로는 팅커벨의 꼬리를 꽉 움켜쥐었다.
혹시라도 또 도망칠까 싶어 보들거리는 돼지 꼬리를 아예 검지에 돌돌 말아 꽉 쥐자, 팅커벨이 소리를 빽 내질렀다.
“악! 이 어린 것아!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 너 내가 몇 살인지 아느냐? 내가 천 년도 넘게 살았다. 그런 늙은이를 이렇게 대해? 콜록콜록…….”
연약해 보이려는 건지,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가 이내 힘이 빠진 듯 팅커벨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억지 기침인 것이 너무 티가 났다.
“방심하게 해 놓고 또 도망치려고?”
흥! 하고 콧방귀를 끼었다.
“단검 가졌으면 됐지! 놔라, 이것아!”
날개를 빠르게 파다다닥거리며 앞으로 날아가려는 팅커벨의 꼬리를 한 번 더 꼬아 당겼다.
힘의 차이가 확연한 의미 없는 줄다리기였다.
“나쁜 것.”
이내 날아가려는 걸 포기한 듯 연신 단검을 살피는 내 곁에서 팅커벨이 힘없이 파닥파닥 날았다.
“그거 왜 보냐?”
“…….”
혹시 팅커벨이 바꿔치기한 건 아닐까 싶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검을 샅샅이 살폈다.
반질반질한 칼자루 끝의 빛바랜 부분도 그렇고, 칼자루에 남겨진 오래되어 보이는 손때와 고대어로 적힌 ‘웨르시펠’이라는 글자까지.
아빠의 단검이 맞았다.
“아빠 거 맞네. 웨르시펠.”
“야! 너 나 의심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요정인데! 내가 너한테 사기 치겠냐?”
“그럴 수도 있지?”
단검을 품속 깊이 밀어 넣으며 팅커벨을 보자 내내 입을 삐죽거리던 그가 이내 도망치기를 포기한 듯 나를 노려보았다.
“독한 것.”
“…….”
그래, 내가 좀 독하지.
알고 있다.
이시아 때도 독했고, 레티시아 때도 나는 독했다.
그렇게 독했으니까 살아 보겠다고 원장 선생님한테 맞으면서도 밤새 공부했고, 가문에서 버티려고 아빠도 저버리고 숙부한테 붙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려 했겠지.
‘가문에서 쫓겨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살아 보려고 이 일, 저 일 하며 버텼던 거고.’
그러니 팅커벨의 말대로 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그 독한 성향의 연장선일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번 생이 진짜 마지막일 테니까.
아니, 그 순간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내게 무한한 삶을 주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인생은 삼세번이라는 말처럼.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내가 신이라면 ‘이 정도면 기회를 줄 만큼 주지 않았냐?’라고 생각할 거 같았다.
그러니까 이번 생만큼은 실패할 수 없었다.
신이 삼세번의 기회를 주었을 때는 내게 바라는 바가 있어서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면.
에시어를 지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 이번 생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독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래, 나 독하다. 그러니까 도망을 왜 가, 도망을.”
“내가 진짜 너 일낼까 봐 그런 거라니까?”
짧은 다리로 가슴을 쿵 하고 친 팅커벨이 파다닥 하고 내 앞까지 가깝게 다가왔다.
“넌 몰라,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그 검은 이능력자가 가진 이능의 크기에 따라서 파괴력이 달라지는 무기인데, 넌 네 이능력의 크기만큼 그걸 다스리질 못하잖아.”
이능력의 크기?
팅커벨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 이능력이 커?”
“어.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
처음 듣는 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이능력은 원래 담기는 본체의 크기만큼만 가지고 태어나는 거 아니었나?
근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이능이라니.
그래서 그때, 내 몸이 풍선이라도 된 것처럼 몸 안의 이능이 버겁게 차올랐던 건가?
‘이능의 흐름 때문에 몸이 찢어질 것 같긴 했어.’
팅커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널 도와주려던 거였는데, 나쁜 것.”
그래, 그의 말대로 정말 나를 도와주려고 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단검 가지고 날랐을 때부터 그에 대한 모든 신뢰도는 바닥으로 처박힌 지 오래라, 여전히 미심쩍은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내 시선을 느낀 듯, 푸르르 콧숨을 내쉰 팅커벨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토라졌음이 분명해 보이는 뒤로 접힌 목주름에 피식 웃자-
“근데 너.”
토라진 지 30초도 되지 않아, 팅커벨이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걸로 뭐 하려고 그렇게 난리야? 뭐 황제라도 될 거야?”
“아니? 미쳤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고개를 격하게 젓는 내 말에 팅커벨이 미간을 좁혔다.
“근데? 대체 왜 그렇게 그 단검에 욕심을 내?”
“이거 내 동아줄이라서 그래.”
“동아줄?”
“어.”
리안이랑 거래를 하든지, 호감을 사든지 하려면.
“아무튼 나한테 중요한 거야. 내가 평생 잘 먹고, 내 명대로 잘 살다 죽으려면 이게 있어야 하거든.”
품에 넣어 둔 단검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느낌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둬야지.’
들뜨는 기분에 슬쩍 콧노래를 부르자 팅커벨이 매우 못된 아이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등바등해 봐야 어차피 20살까지밖에 못 사는데 뭘 그래?”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말과 동시에 흥얼거리던 걸 뚝 멈추곤 팅커벨을 돌아보았다.
“……뭐?”
저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 그게?”
“말 그대로야. 너 그렇게 아등바등해 봐야 20살 넘게 살기 어려워.”
“…….”
팅커벨의 악담과도 같은 말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아니, 단어와 단어들은 다 알아듣겠는데 저 말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20살까지밖에 못 산다고?
이번 생에서도?
왜?
믿기지 않는 말에 푸른색 눈을 끔벅이자, 짧게 숨을 몰아쉰 팅커벨이 날개를 파닥파닥거리며 몸을 허공중에 돌려 앉았다.
“안타깝지만 네 명줄은 영원히 거기까지야.”
그러곤 차갑게 내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지난 두 번의 생과 이번 생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 * *
그 시각.
“노예? 남자? 금화 100개?”
“네.”
“하!”
요 앙큼한 것을 보았나.
레티시아의 뒤를 캐 보라고 고용했던 사내의 보고에 벨리아가 헛웃음을 뱉었다.
“역시 천한 것들이란.”
소파에 기댄 채 한쪽 다리를 꼬아 넘긴 벨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렇게 천박한 짓거리들만 골라 할까. 그 나이에 남자 노예라니. 하!”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벨리아가 이마를 짚었다.
“이래 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잘못 키워서라고 하겠지.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벨리아가 손을 바꾸어 반대쪽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하는 말과는 달리 벨리아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드디어 남편 안드레아가 제게 말했던 그 ‘건수’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레티시아가 오네에 갈 자격을 박탈시키는.
어쩌면, 집안에서 완전히 쫓아낼 수도 있음이었다.
고작 6살밖에 안 된 계집애가 금화를 100개나 주고 남자 노예를 사들였다?
이건 가주님의 사상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이번 일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잘만 하면 샤리에까지 같이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거 같고.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하나.
설레고 기대되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근데 걔가 그 큰돈이 어디 있어서?”
벨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아, 돈의 출처까지는…….”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런 세세한 부분은 레티시아를 추궁하다 보면 나올 테고, 만에 하나 제 허락 없이 가문의 재산으로 지급한 거라면.
정말 끝이지.
그러면 더 이상 레티시아의 후계 자격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챈들러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겠네.’
그러잖아도 그 천것과 같이 수업을 받게 된 날부터 챈들러가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물에 빠지고, 거기다 그것이 이능력자라는 걸 알고는 챈들러의 떼가 더 심해졌었는데.
이번 일로 가문에서 완벽하게 쫓아내고 나면 저도 그렇고 안드레아도 두 발 뻗고 편히 자겠다 싶었다.
“하아.”
상상만으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벨리아가 숨을 내쉬며 웃자 사내의 표정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미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벨리아가 한참 만에 고개를 돌렸다.
‘이게 아주 좋은 기회기는 하나. 이 일을 내가 터트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연을 가장해 가주님께 들어가게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싶었다.
아무래도 가주님께서는 레티시아에 대한 문제로 아직 제게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질 못하고 있질 않나.
그런 상황에서 이 일을 제 입으로 떠들어 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이었다.
‘그럼, 다른 사람의 입을 이용해야지.’
시익- 입꼬리를 당겨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벨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케이트?”
앞쪽에 선 사내의 뒤로 한참 물러서 있던 하녀를 부르며 웃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