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of the Duke of Essia RAW novel - Chapter (99)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99)화(99/141)
‘그래두 레샤, 잘 지내구 있어요! 그러니까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톡-토옥-톡-
괜찮다는 아이의 말이 손끝에 박힌 가시처럼 거슬렸다.
아무리 마도구를 통해 듣는 거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꽉 막힌 것부터, 한참 만에 겨우 대답을 하는 것까지 모두.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오네에 도착했는데도 신이 나서 뭘 했는지,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해 주지 않고 금세 피곤하다며 통화를 종료한 것도 마음이 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아이가 말을 해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솔직히 지금 상황이 못내 답답했다.
토옥-톡-툭툭.
쾅!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끝을 말아 쥔 채 입술을 문질렀다.
아이에게 물어봤자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을 게 뻔했다.
‘사람을 심어 놓아야 할까.’
아무래도 제게 아이의 상태를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아이는 자신이 힘든 걸 스스로 제게 털어놓지 않을 테니까.
감정을 속으로 삼키는 것이 익숙한 아이였으니까.
떠나는 날까지 아이가 제게 부린 어리광이라고는 가지 말라며 제 옷자락을 잡고 울던 것이 유일했다.
그것마저도 금세 그치고는 괜찮다며 웃었지만.
‘레샤 괜찮아요!’
그래서 아이의 괜찮다는 말이 가슴에 얹힌 것처럼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 걱정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이토록 멀리 떨어져 목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지금, 괜찮다고 웃는 게 정말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까.
“하아.”
답답함에 얼굴을 쓸어내리며 검지를 깨물었다.
그동안은 대체.
‘난 아이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타루스에 있을 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이토록 걱정스럽거나 궁금하지 않았었다. 아니 아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가 어떨 때 웃는지, 어떨 때 감정을 참는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그런 것들을 알게 된 지금은 아이의 목소리만으로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기도 하고 기분이 흐뭇하게 좋아지기도 했다.
고작 요 며칠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도 이 상태인데.
대체 그 긴 시간 어떻게 아이의 곁에 있어 주지 않았던 걸까.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능력자에 소드마스터.
온 제국민이 존경을 표하는 기사에 황실 기사 단장이면 뭘 하겠나.
아빠로서 실격인데.
아이가 저를 낯설어할 때까지 그저 홀로 크길 바랐던 나쁜 아비가 바로 저였다.
‘지금이라도 잠시 다녀올까.’
포털을 이용하면 하루면 충분할 텐데.
아이가 하는 말이 정말 괜찮은 건지 얼굴을 직접 보고 와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헤일에게 부탁도 좀 하고.
아이의 상태를 수시로 알려 줄 사람으로 헤일만 한 이가 없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황도로 가야 했다.
‘여기서 가까운 포털이.’
손끝으로 의자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민하는 시간에 일단 움직이고 보자 싶어 일어난 그의 시야에 벌어진 막사 입구가 보였다.
눈발이 휘날리는 바깥이.
“하, 젠장.”
입술을 깨물었다.
레티시아가 말했던 첫 번째 눈보라가 바로 지금인 모양이었다.
자잘한 전투에서 지고 이기고를 반복하며 영주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 펠루아나가 이 첫 눈보라를 시작으로 저들의 왕을 앞세워 쭉 올라올 거라 말했다.
‘처음으로 펠루아나가 전력을 다 쏟을 전투가 코루누예요. 여기만 막으면 펠루아나는 금방 지칠 거예요.’
리비스에서 기피르로 향하는 깔때기.
그 깔때기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만 틀어막으면 이 전쟁이 쉽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곳을 넘지 못하면 펠루아나는 죽어도 제국으로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안다. 알고 있었다.
그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괜찮아요.’
“젠장.”
딱 하루만 더 있었어도.
아이를 보고 돌아올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펠루아나에 대한 분노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는 것만 같았다.
‘이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아이가 제 옷자락을 잡고 울 리도 없었고, 저도 아이의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지 않았겠나.
괜한 화풀이긴 했으나,
지금 하필 눈이 오는 것까지도 모두 펠루아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 가는 것 같았다.
“후.”
이미 눈보라가 시작된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다 죽이고 돌아간다.
자신은 기사였고,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저와의 관계에서 차선으로 밀려나는 게 익숙한 아이에게 미안하다면 더더욱.
“켈런.”
“예, 단장님. 부르셨습니까.”
부름과 동시에 지체 없이 들어온 자신의 부관을 모습에 샤리에가 고개를 돌렸다.
“각 대장들에게 일러 전군 전투에 대비하라 이르거라.”
“……예?”
놀란 켈런이 바보처럼 되물으며 고개를 들었다.
밖에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전투라니.
추위에 쥐약인 펠루아나에 대해 모르시는 건가? 하는 마음에 켈런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펠루아나는.”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황도로 돌아간다.”
하지만 저 시선은 지금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미쳤군.’
감히 저따위가 샤리에 에시어를 의심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건가, 싶은 켈런이 즉각 표정을 갈무리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늘인 샤리에가 켈런을 돌아보았다.
“발 빠른 이를 뽑아 에게 황도로 보내. 포털을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무,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샤리에처럼 고지식한 상관이 급히 황도에 사람을 보낼 정도면 아주 중요한 일이겠다 싶어 고개를 들자-
“내 딸이 잘 지내고 있는지 좀 보고 오라 해.”
샤리에가 켈런과 시선을 맞추었다.
“에?”
내 딸?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켈런이 그를 올려다보는 시선 그대로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그런 켈런의 시선에도 샤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을 반복했다.
“내 딸아이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네로 가기 전에 있었던 일까지 싹 다 알아 오라고 해.”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 말이다.
* * *
귀가 가렵네.
누가 내 말을 하는 건지.
유난히 간지러운 귓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 후비듯 긁었다.
“그래서 가정 교사 두 분이 매일 방문할 예정 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든 베넷과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헐.
이건 아무리 좋게 생각할 수가 없는 모습인데.
앞에서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귀를 후비고 있는 건 영락없이 ‘아유, 듣기 싫어.’라는 심드렁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베넷 역시 하던 말을 멈춘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고 말이다.
어떻게 봐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행동에 얼른 손을 내렸다.
“귀가 가려웠어! 그리고 다 들었어! 중요한 얘기였어!”
오해하지 말라고 손까지 앞으로 내밀어 흔들며 외치자, 평소보다 큰 내 목청에 놀란 베넷이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응! 다음 이야기해 줘.”.
제대로 집중하겠다는 듯 그를 빤히 올려다보자, 베넷 역시 하던 설명을 이었다.
“오네에서도 저택에서와 비슷하게 수업을 듣게 되실 겁니다. 기본적인 교육은 내일부터 방문할 그들을 통해 배우시면 됩니다.”
“응.”
“그리고 필요한 건 대부분은 제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만, 그래도 열에 서너 번은 가주님께 먼저 이야기를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응.”
그런 게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연락 안 할 거라는 걸 아는 듯한 베넷의 사려 깊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고도 통화 자주 할게. 할부지가 마력석 500개 줬어. 안 하면 할부지 서운해하실 거야.”
“아.”
“아빠 것도 100개 있어.”
“네.”
슬쩍 뒤쪽을 보던 베넷이 헛기침을 했다.
‘나도 주려고 가져왔는데.’라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베넷도 마법석 가져왔나 보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 많아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의 것까지 받으면 매일매일 통화를 해도 다 못 쓸 양이 될 게 뻔하여.
“베넷 거는 마음만 받을게. 지금도 너무 많아.”
그의 것은 정중히 거절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멋쩍은 미소에 웃으며 설명을 마저 들으려다, 문득 떠오른 말에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아, 맞다! 베넷.”
“네, 아기씨.”
“옆집에 리안이가 있어.”
“예?”
순간 리안이 누구인가 싶어 미간을 살짝 좁히고 있던 베넷이 뒤늦게 생각난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 제가 산 쟈이든과 같이 지내고 있는 아이 말씀이십니까?”
“응!”
베넷의 설명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그 설명을 깜박했다는 듯 베넷이 내 앞에서 자세를 바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