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0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01화(101/202)
< 100화 – 부러뜨리다 >
스페인 전 1대1, 무승부.
크로아티아 전 0대0, 무승부.
오스트리아 전 2대0, 승리.
이게 세르비아가 A조 조별 예선에서 기록한 전적과 스코어였다.
3경기, 그러니까 270분 동안 단 1실점만을 기록했던 세르비아.
게다가 그 1실점도,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에게 총 7득점을 기록한, 막강한 화력의 스페인에게 내준 것이었고, 그 경기 이후 언론의 반응이 ‘스페인조차 세르비아의 수비에 막혀 1득점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였으니.
이것만 봐도 세르비아가 괜히 ‘철의 장벽’이라 불리는 게 아니란 건 알 수 있을 터.
그런데 그랬던 세르비아가 고작 9분 만에 선제골을, 그것도 완벽하게 수비가 털리며 내주었으니.
충격이 상당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골대 안을 뒹굴고 있는 공을 바라보는 세르비아의 수비수들.
저게 왜 저기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들이다.
아니, 분명 방금.
상대가 선택한 건 롱 패스였다.
최후방에서 최전방으로, 한번에 연결되는 롱 패스.
자신들의 입장에선 처리하기 제일 손쉬운, 거저먹는 기회였었다.
그런데, 실점을 내줬다.
이건 훈련 때도 나오지 않는 장면이었다.
고작 공격수 한 명에게, 공중볼을 내주고 드리블 돌파까지 허용하며 뚫려 버린다고?
물론 실점을 안하는 팀은 없다.
아무리 완벽에 가까운 수비를 자랑하는 팀이라 해도, 모든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을 순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 명의 공격수에게 모든 게 무너져 버리는 장면은, 세르비아에게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다.
딱 한 선수만 빼놓고는.
“괜찮아, 괜찮아! 어쩔 수 없어! 다시 시작하자!”
페트로비치만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동료들을 다독였다.
다른 선수들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페트로비치에게야 새로울 게 없는 장면이었다.
요한이 그런 식으로 골을 넣는 거,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당연했다.
때문에 오히려, 페트로비치 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뭐, 이 상황이 좋은 상황인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이스!”
“젠장, 우리가 당했던 건데 아군 입장에서 보니까 짜릿하구만.”
“좋았어! 우리를 팬 만큼 유럽 녀석들도 신나게 패주라고!”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잉글랜드 관중석.
국제 대회에서 꼭 보이는, 웃통을 까고 잉글랜드의 국기 문양으로 바디 페인팅을 한 팬들이 유니폼을 흔들며 선제골을 자축했다.
세르비아의 모든 게임 플랜이 한순간에 꼬여 버리는 실점.
“···”
그리고, 요한의 득점을 바라보는 두샨 블라호비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르비아의 수비수들이 블라호비치 덕에 기량이 많이 늘었다지만, 사실 가장 많은 수혜를 본 건 블라호비치일지도 몰랐다.
세르비아의 수비수들 역시, 훈련 상대론 최고였으니까.
실전보다도 훈련이 더 어려운 건 블라호비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블라호비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요한이 보여준 득점.
저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건지.
자신도 저런 득점을 해본 적이 없었다.
훈련 때도 말이다.
근데, 지금처럼 아주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온 집중을 다하고 있는 수비수들을 상대로 솔로 골을 만들어 내다니.
빠드득-
어금니를 깨무는 블라호비치.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왕이 하나 보여줬으니, 빨리 자신도 하나 보여주지 않는다면.
자존심에 금이 깊게 갈 것 같다.
블라호비치의 머릿속에 조급함이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
<오늘 선제골의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결국 세르비아의 경기 운영 스타일 때문이었는데요. 수비 위주의 팀은, 절대로 리드를 빼앗겨선 안됩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선, 모든 게임 플랜이 어그러지기 때문이죠.>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비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오히려 상대만 좋은 일이죠. 물론 아주 이른 시간에 실점을 했기에, 벌써부터 급하게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요한의 공격력이 생각보다도 더 강력하다는 게, 마음을 급하게 만들긴 할 겁니다.>
리그 경기라면, 모든 팀들의 목표는 승점 3점이다.
그러나 녹아웃 스테이지는 다르다.
비기기만 해도 얼마든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다.
서로의 체력이 모두 고갈된 시점인 연장전에선, 객관적인 전력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고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고.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까지 갈 경우, 피파 랭킹 200위의 팀도 1위 팀을 이길 수 있다.
승부차기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오늘의 세르비아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정규 시간 동안 무승부의 성과만 거두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만 가면, 충분히 자신들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으니.
때문에 실점을 내줬더라도, 벌써부터 수비 태세를 풀고 공격적으로 나설 이유는 없어 보였다.
남은 시간은 길다.
점수 차는 고작 1점 차.
또한, 잉글랜드의 수비가 공격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었고.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세르비아는 실점 이후 라인을 조금씩 높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반이라는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생각보다도 훨씬 더 괴물인 이 녀석과 몸을 맞부딪힌 순간, 세르비아 선수들은 준비해 온 플랜대로만 게임을 풀어가긴 힘들겠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처럼 끝까지 수비적으로 게임에 임한다 해도, 이 1점 차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
스페인 전에서 조차 0대1로 끝까지 버티다, 막판 동점 골을 터뜨리며 결국 무승부를 거뒀던 세르비아가 말이었다.
물론,
그 중심엔 블라호비치가 있기도 했다.
“헤이! 헤이-!! 올라와!”
벤치의 별다른 지시가 없었음에도, 블라호비치는 동료들에게 손짓을 하며 공격적으로 움직일 것을 주문했다.
그 덕에, 전반 10분부터 20분까지.
10분간의 흐름은 세르비아가 가져가게 되었는데.
<블라호비치의 슈팅! 그러나 빗맞은 슈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하. 슈팅에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은데요.>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조금은 힘을 뺄 필요도 있어 보이는데 말이죠.>
<요한이 골을 넣었으니, 자기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 생각에 너무 매몰되면 더 쉽지 않아 질 수도 있습니다.>
서너 차례 슈팅을 가져간 블라호비치는, 슈팅이 연달아 골대를 벗어나자 신경질적으로 땅을 후려쳤다.
“죄 없는 땅은 왜 때리냐?”
“블라호-빗치 시즌 1호 지구 폭행!”
“자연을 사랑하라! 블라호비치 아웃!”
그런 블라호비치를 웃으며 놀려대는 잉글랜드 관중들.
블라호비치가 확실히 급한 게 보인다.
평소와는 약간 다른 모습.
왼발의 정확도 만큼은 유럽 최고 수준인 게 블라호비치인데, 오늘은 영점이 그닥인 느낌이었다.
<잉글랜드 수비수들이 확실히 대처법을 잘 준비해온 듯 합니다. 블라호비치의 왼발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어요.>
<오른발이 확실히 블라호비치의 몇 안되는 단점이죠.>
확실히 블라호비치는 주발과 약발의 차이가 큰 선수였다.
희한하게 유독 주발이 왼발인 선수들이 그런 경향이 강한데, 블라호비치 역시 왼발에 대한 선호도가 큰 선수.
잉글랜드 수비수들은 그런 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고, 대처도 잘하고 있었다.
강력한 주발이 있다는 건 물론 장점이다.
그게 오른발잡이보다 희귀한, 왼발잡이라면 더 큰 장점이고.
그러나 그 의존도가 너무 크다 보면, 확실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블라호비치는 그 단점이 꽤나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픈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까.
그런 그와 대비되어, 요한의 진가는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다.
<잭 프라이스의 패스가 요한에게 연결 됩니다! 박스 우측에서 공을 잡는 요한! 툭툭 치고 들어갑니다!>
세르비아의 수비 간격이 넓어진 탓에,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요한에게 주어졌고, 그 상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박스 우측면에서, 상대 센터백과 1대1을 하는 요한.
위치도 위치인데, 첫 골을 왼발로 마무리했던 요한이다.
때문에 수비는 왼발 각도를 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한이 누구인가?
왼발로도, 오른발로도 프리킥을 찰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양발잡이.
상대 수비의 무게 중심이 왼쪽으로 쏠린 걸 확인한 요한은,
휘이익-!
확실하게 수비를 무너뜨리겠다는 듯 헛다리를 한 번 친 뒤, 오른쪽으로 치고 달렸다.
<제쳐 냈습니다! 또 다시 찬스!>
수비를 주저 앉히고 돌파를 성공시키는 요한.
물론 그렇게 됨으로써, 슈팅의 각도가 좁아진 것은 사실.
보통은 컷백을 시도하는 위치까지 파고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도 요한에겐 길이 보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뻐어어어어엉-!
각을 좁히고 나와 있는 키퍼를 보고 그대로 때린 오른발 슈팅.
그 슈팅은, 키퍼가 가장 취약한 코스로 낮게 깔려 들어갔다.
촤아아아아아-
잔디를 스치며 쏘아진 슈팅의 목적지는 키퍼 다리 사이.
그 의도를 파악한 키퍼가 급히 다리를 오므렸으나, 슈팅은 워낙에 빨랐다.
철썩-!
<고오오오올-! 잉글랜드의 두 번째 골이 터졌습니다! 전반 24분! 이번에도 요한입니다!>
<첫 유로 참가, 첫 토너먼트 경기인 오늘! 이 선수가 두 골째를 터뜨리네요!>
<이야,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왕이 한 발을 더 앞서 갑니다!>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요한의 두 번째 골은, 마치 블라호비치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듯 했다.
공격수라면 어느 각도, 어느 발로도 슈팅을 때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젠장! 그건 막았어야지!”
요한의 두 번째 골은, 블라호비치의 자존심을 폭삭 무너지게 만드는 골이었다.
*
잉글랜드와 세르비아의 16강 전은, 세 번의 분기점에서 경기의 승패가 갈렸다고 볼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요한의 골이었고, 세 번째는 후반 8분 경.
블라호비치의 경고 누적 퇴장이었다.
<어엇! 주심이 옐로 카드를 꺼내 듭니다! 이렇게 되면 블라호비치는 경고가 두 장째인데요!>
<조급함에서 나온 경솔한 파울이었습니다. 공격수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 받는 일은 드문 일인데요, 블라호비치. 자제력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플레이는 잘 안 풀리고, 그 와중에 요한은 펄펄 날고 있고.
블라호비치에겐 화가 나는 경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선 안됐지.
경기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블라호비치는 과격한 파울 두 번으로 피치 위를 떠나야 했고, 안 그래도 뒤지고 있던 세르비아는 경기를 뒤집을 힘을 잃고 말았다.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히던 세르비아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 하는 순간이었다.
<네, 경기 종료 됐습니다! 스코어 3대0! 예상보다 쉽게, 잉글랜드가 세르비아를 제압하고 8강에 진출합니다!>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를 얻어낸 잉글랜드네요. 사실 이번 세르비아 전에서 연장전까지 갈 확률도 제법 높다고 생각했는데, 깔끔하게 90분 안에 끝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양 팀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페트로비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요한에게 다가갔다.
“역시는 역시구나, 너.”
“미안해요.”
“짜식. 미안하면 좀 살살하지.”
“그래서 형 쪽으론 자주 안갔잖아요.”
“···고맙다. 근데 말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요?”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뛴 거야?”
한숨을 내쉬며 묻는 페트로비치.
경기 전, 페트로비치가 유일하게 기대했던 건 요한의 동기 부여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 요한은 리그에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 귀족 되려고요.”
“···응?”
“귀족이요. 귀족. 우승하면 귀족이 될 수 있다더라고요.”
“······.”
전혀 생각지 못한 요한의 대답에, 페트로비치는 벙찌고 말았다.
“뭐··· 알겠다. 응원할게.”
대체 뭔 소리인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 녀석에게 우승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이번 대회 잉글랜드의 우승 가능성은 매우 크겠구나, 라고 페트로비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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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2028] 8강 상대 독일, 가장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역시 플로리안 슈타우터
세르비아를 꺾고 16강에 진출한 잉글랜드의 8강 상대는 독일로 정해졌다.
영원한 우승 후보, 독일.
비록 이번 대회에선 예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때 만큼 화려한 면면을 갖춘 건 아니었지만, 플로리안 슈타우터라는 뮌헨의 에이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은 역시나 강력한 상대.
양 팀의 대결이 확정 되면서, 누구보다 독일의 승리를 바라고 있는 건 웨스트 햄의 감독이자 독일인인 슈미트 감독이었을 것이다.
독일이 이기면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 요한이 빨리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게 가장 기분 좋은 일 일테니.
때문에, 경기를 앞두고 슈미트 감독은 요한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괜히 다치면 절대 안되니까, 살살 하다가 팀으로 복귀하라고.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대답은 퍽 절망적이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슈미트 감독은 독일의 우승을 보고 싶었다.
또한, 요한이의 얼굴도 빨리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을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