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02)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02화(102/202)
< 101화 – 마스터 클래스 >
잉글랜드와 독일의 악연은 역사가 깊다.
뭐, 역사적으로는 세계 2차 대전도 있고.
메이저 대회에서도 중요한 길목에서 자주 만났던 두 팀.
양 팀의 상대 전적은 초박빙이다.
앞서는 쪽은 오히려 잉글랜드다.
총 상대 전적 15승 3무 14패.
1경기 차이긴 하지만, 어쨌든 독일이 더 강팀이라는 보통의 인식과는 달리 맞대결에선 잉글랜드가 더 강했다.
다만, 세계 무대에서 잉글랜드보다 독일이 더 인정받는 이유는, 역시나 메이저 트로피 개수 때문일 것이었다.
독일은 무려 4번의 월드컵 우승이 있다.
또한 유로는 3번.
메이저 트로피만 7개를 보유하고 있는 독일이다.
반면 잉글랜드의 트로피 개수는 단 한 개.
그래도 그 하나가 월드컵이긴한데, 그것도 논란이 꽤 많았다.
당시 월드컵이 개최된 곳이 잉글랜드였고, 하필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오심이 나왔기 때문.
게다가 그게 벌써 60여 년전, 1966년의 일이다.
이러다 보니, 상대 전적이 우위면 뭐하나.
잉글랜드 팬들은 독일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상대 전적은 앞서는데, 트로피 개수는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나니까.
반대로 독일 팬들은 그걸 가지고 잉글랜드를 놀리고 무시했다.
어디 마지막 우승이 20세기인 것들이 라이벌인 척 덤비냐고.
상대 전적?
그래서 너네 월드컵 우승 몇 번?
유로 우승 몇 번?
이럼 잉글랜드 팬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대는 것밖에는.
그래서 이번 8강전만큼은 이기고 싶은 거다.
물론, 그건 독일도 마찬가지고.
“오늘은 누구보다 이번 경기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양 팀의 8강 전을 앞두고, 슈미트 감독은 독일의 한 방송과 인터뷰를 가졌다.
슈미트 감독이야말로 이 경기의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하는 곳들이 많았다.
특히, 독일이 궁금한 건 요한에 대한 정보였다.
“이번 대회가 끝이 아니니, 곤란한 질문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해주실 수 있는 선에서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예.”
“현재 독일의 수비력으로, 요한을 막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음···”
진행자의 질문에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는 슈미트 감독.
“일단은, 전 누구보다 독일이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밝혀야겠군요. 제가 하는 말에 오해가 없도록요.”
“물론이죠.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90분 내내 막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정도인가요. 이번 대표팀의 수비진은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만.”
“물론입니다. 유럽 최정상이죠.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요한은 상식을 뛰어넘는 스트라이커입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슈미트 감독은 아직 언론에 공개한 적 없던 요한의 일화들을 풀어 놓았다.
유스에 입단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1군으로 콜업한 일, 첫 훈련 날 연습 경기에서 주전 선수들을 상대로 원맨쇼를 보여준 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면 훈련을 빼주겠다고 했더니 해트트릭을 했던 일, 어시스트는 두 배로 쳐주겠다고 했더니 4어시를 기록한 일 등등.
“···그게 정말입니까? 동네 축구도 아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말이죠?”
“당연하죠.”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긴 하군요.”
“제가 지금껏 봐온 선수들 중 최고죠. 이건 확언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가 가진 재능이 최고입니다.”
“그럼, 우리의 플로리안 슈타우터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음···”
진행자의 입에서 플로리안 슈타우터라는 이름이 나오자, 슈미트 감독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이건, 좀 민감한 문제다.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의 젊은 에이스, 플로리안 슈타우터.
그는 데뷔와 동시에, 동나이대 최고의 재능이란 평가를 받으며 실제로 골든보이를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그 이후로도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며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받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독일 축구 전문매체 ‘키커’가 선정하는 랑리스테에서 2년 연속으로 Weltklasse, 즉 월드 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수 많은 재능들이 뛰고 있는 분데스리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월드 클래스 등급을 받은 건 슈타우터가 유일했다.
이러니, 독일 내에서 그의 인기는 절정.
그의 뒤엔 독일 팬들과 뮌헨 팬들이 있다.
그러니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근데, 그렇다는 건.
결국 슈미트 감독은 슈타우터를 요한 위에 둘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비교를 한다는 건 무의미하죠. 같은 포지션의 선수도 아니고,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기도 하니까요. 다만··· 순수하게 재능만을 놓고 본다면,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요한이 위라고 봅니다. 이건 슈타우터 뿐만이 아니라, 어떤 선수를 데려와도 제 대답은 똑같을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 사견입니다. 하지만, 전 독일의 승리를 위해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야만,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의 슈미트 감독인지라.
있는 그대로 인터뷰에 응한 슈미트 감독.
그런데,
그 반향이 생각보다 크긴 했다.
“감독님. 욕 무지하게 얻어먹고 계시네요?”
“뭐라고?”
“독일 인터넷 반응 보니까, 다들 감독님 욕하고 있어요.”
“···진짜냐?”
슈미트 감독의 수발을 드느라 독일어에 능통한 제이미 코치가 말하길, 그 인터뷰가 방송되고 나서 독일 팬들 모두가 슈미트 감독을 욕하는 분위기란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그래도 많이 순화해서 이야기한건데.
“어느 정도인데?”
“음··· 제가 직접 읽어드리긴 좀 그렇고. 직접 보실래요?”
“줘 봐.”
돋보기 안경을 끼고 제이미 코치가 건넨 노트북을 읽어보는 슈미트 감독.
슈미트 감독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리그 우승 한번 없는 감독이 뭘 안다고
└잉글랜드에서 연봉 받고 사는데 당연히 눈치 살살 보는거지
└한 시즌 반짝했다고 슈타우터 위? 2년 연속 랑리스테 월드클래스가 물로 보이나?
└매국노
└분데스에서 도망간 형편없는 감독
└내년 되면 그릇이 드러날 것
└말도 안되는 헛소리.
반응 장난 아니네.
독일 공영 방송도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스포츠 전문 채널과 한 인터뷰였는데.
이렇게 파장이 클 줄이야.
“으음.”
이런 반응들을 보니, 슈미트 감독은 묘한 오기가 생겼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정말 그럴까?
보면 알겠지. 보면.
누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왕이면, 보여주든가.’
슈미트 감독은 갑자기 요한과 잉글랜드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ㆍㆍㆍ
요한이 경기를 앞두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역시나 플로리안 슈타우터에 대한 질문이었다.
“두유 노 플로리안 슈타우터?”
“알아요. 저희 아빠가 좋아하시거든요.”
“오, 아버지가 그의 팬입니까?”
“팬이라면 팬이죠. 자주 마시세요.”
“···마신다구요?”
“맥주 말하는 거 아닌가요?”
요한이 플로리안 슈타우터를 알 리가 없었다.
아빠가 가끔 마시는 스타우트 맥주나 알았지.
그런 요한 때문에 독일 기자들은 어처구니 없어했고, 요한에게 슈타우터가 어떤 선수인지 때아닌 설명회가 이어졌다.
궁금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런 선수와 맞붙게 되셨는데, 이길 자신이 있으신가요?”
“네.”
“···하지만 독일은 강팀입니다. 유로에서 3번이나 우승한 팀이죠. 잉글랜드는 우승이 없구요. 그래도 자신 있으신가요?”
“음··· 이전 기록들은 관심 없어요. 전 첫 출전이니까요.”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과 훈련장.
두 곳 모두에서 진을 치고 귀찮게 하는 독일 기자들이 요한은 달가울 리 없었고, 자연히 대답은 날카롭게 나갔다.
덕분에, 그들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헤드라인을 건지긴 했다.
-요한 반 “슈타우터? 아빠가 좋아하는 맥주.”
-슈타우터 누군지 모른다? 상식적으로 모를 리가··· 요한 반의 과한 허장성세
-요한 반 “잉글랜드가 유로 우승이 없는 이유는, 본인이 올해 첫 출전이기 때문.”
물론 잉글랜드 팬들은 환호했다.
그동안, 독일을 상대로 이런 자신감을 표출했던 선수는 없었다.
워딩이 좀 세봐야, 독일은 강하지만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이 정도랄까.
사실이 그렇다.
축구 판에서 어느 누가 독일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요한만이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잉글랜드 팬들은 그런 요한에게 무한한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요한의 말이 화제가 되자, 그 얘기가 자연히 플로리안 슈타우터의 귀까지 흘러 들어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슈타우터 역시 성격이 겸손하고 온화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맞게, 실력에 걸맞는 자신감과 패기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선수.
“들어보니, 경험이 많이 없는 선수더라고요. 저도 그땐 그랬어요. 세상에서 제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죠. 챔피언스 리그도 뛰어보고, 월드컵도 뛰어보기 전까진요.”
26년도에 골든보이를 수상했을 때.
슈타우터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다.
이젠 자신이 깨달은걸,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에게도 가르쳐줄 차례였다.
“이번 경기는 저의 마스터 클래스가 될 겁니다. 한 수 가르쳐 주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되니 경기는 시작 전부터 불이 활활 붙을 수밖에 없었다.
유로 8강이라는 중요한 길목.
잉글랜드와 독일이라는 역사 깊은 라이벌의 대결.
슈미트 감독과 요한, 그리고 슈타우터의 인터뷰까지.
이기는 쪽이 많은 걸 가져가게 될, 중요한 경기가 될 터였다.
ㆍㆍㆍ
7월 2일, 아일랜드 크로크 파크.
<잉글랜드와 독일, 독일과 잉글랜드의 유로 2028, 8강전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 최고의 빅매치가 아닐까 합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떨리는데요.>
<경기를 앞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죠?>
<양 팀의 에이스들끼리의 신경전이 있었죠. 모두 자신감이 대단했는데요. 오늘은 증명의 날입니다.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 말이죠.>
하얀색 유니폼으로 가득 찬 크로크 파크.
그러나, 절반은 잉글랜드 관중들이고 절반은 독일 관중들이다.
일종의 신경전이랄까.
겹치는 게 싫으면 니들이 어웨이를 입으라는 식인데.
오늘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쪽은 잉글랜드다.
<독일은 16강에서 폴란드를 3대1로 꺾고 올라왔습니다. 역시 빈틈없는 경기력이었는데요.>
<독일은 잉글랜드가 16강에서 만났던 세르비아의 상위 호환 같은 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탄탄한 조직력을 기본으로 두고, 플로리안 슈타우터라는 크랙까지 있습니다.>
<원래 독일하면 떠오르는 강함에 더해, 유연한 재치까지 더해진 느낌이겠네요.>
독일은 확실히 스쿼드의 밸런스가 탄탄하다.
수비, 미들, 공격까지 부족한 부분이 없는, 육각형의 느낌.
게다가, 베스트 일레븐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고, 그 중 절반이 바이에른 뮌헨 소속인지라.
조직력에 있어선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
확실히, 잉글랜드에게 있어서 세르비아보다는 훨씬 어려운 상대가 될 텐데.
<그래도 잉글랜드엔 요한이 있죠?>
<오늘, 그 요한을 독일이 어떻게 상대할지. 궁금하네요. 지켜보면 알게 되겠죠.>
경기가 시작되었다.
*
독일 축구의 색깔은 확실한 편이다.
그 색깔은 선수 개개인의 특성보단,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에서 나오는 편인데.
루드 베르거 감독이 이끄는 독일 역시 기본 골자는 ‘강한 압박’이다.
이들은 개개인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상대에게 압박을 가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많이 뛰는, 강철 체력의 선수들로 구성된 독일의 스쿼드다 보니.
90분 내내 들어오는 압박에 상대팀 선수들은 질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시작은 그러했다.
<잭 프라이스, 아! 패스 미스가 나옵니다. 독일이 공을 탈취해 냅니다.>
<지금은 압박이 좋았죠. 상당히 타이트하게 들어오는 독일 선수들입니다.>
활동량에선 밀릴 수밖에 없는 잉글랜드.
요한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다른 선수들 역시도 활동량에서 큰 장점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아니다.
덕분에 이번 대회에선 처음으로, 잉글랜드는 주도권을 내준 채 경기를 끌려가기 시작했다.
<원터치로 빠르게 패스를 주고 받는 독일. 패스는 플로리안 슈타우터에게. 슈타우터, 드리블을 시작하나요?>
<잉글랜드는 1차적으로 슈타우터를 저지해야 합니다. 독일의 모든 창의성은, 슈타우터에게서 나와요.>
독일은 분명 조직력을 주무기로 하는 팀이다.
그 말인 즉,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주로 구사한다는 뜻.
그건 확실히 무서운 무기지만, 자칫하면 뻔한 느낌이 될 수도 있다.
약속된 플레이만 하다 보면 결국엔 상대에게 읽힐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지금의 독일은 경직되기만 한 팀은 아니었다.
약속된 패턴 플레이 속에, 한 스푼의 유연함을 섞어줄 수 있는 슈타우터가 있기 때문이다.
타타탓-!
계속해서 원터치로 공을 주고 받다가, 슈타우터에게 공이 향하자 원터치가 끊겼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드리블을 시도하는 슈타우터.
그 발 기술이, 독일 선수답지 않게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계속 전진합니다! 어느새 박스 근처! 저지가 안됩니다!>
<슛, 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비었습니다!>
중앙 쪽으로 돌파해 들어가던 슈타우터는, 슛 페인팅과 함께 오른쪽으로 패스를 흘렸다.
슈타우터에게 이끌려 사이드 공간을 크게 노출하는 잉글랜드 수비.
그 패스를 향해 달려든 건 독일의 윙어, 율리안 베르켈.
뻐어어어엉-!
철썩-!
<아앗! 골-! 실점을 내줍니다, 잉글랜드!>
<너무 쉽게 허용했습니다! 슈타우터에게 시선이 이끌려서, 돌아 들어가는 선수를 놓쳤죠!>
<환호하는 독일! 독일 같은 팀에게 선제 실점은 굉장히 뼈 아픈데요! 베르켈의 마무리도 좋았지만, 그 전에 슈타우터의 전진과 킬러 패스가 대단했습니다!>
이번 대회, 처음으로 잉글랜드가 선제 실점을 내주는 순간.
독일 관중들은 환호했고, 선수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
멋진 어시스트를 꽂은 슈타우터는 셀레브레이션 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며 요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
그런 슈타우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요한.
‘저 사람이구나.’
등에 마킹된 이름을 보고 나서야, 그가 기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슈타우터라는 것을 알아차린 요한.
‘이대로면, 더 귀찮게 굴겠지.’
경기하기 전부터 그랬는데, 만약 오늘 경기를 진다면.
기자들은 더 귀찮게 굴 것이다.
그럼 안되겠지.
“삐익-!”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고, 킥오프로 경기를 재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