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1화(11/202)
< 010화 – 원치 않은 콜업 >
“아, 안된다고요?”
“그것만큼은 안된다. 그건 구제불능의 뚱땡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단호한 아버지의 말에, 요한은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4골이나 넣었는데.
4골이나 넣었는데 누텔라는 안된다니!
누텔라를 못 먹는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90분을 뛰었단 말인가!
요한은 믿을 수 없는 배신감에 무릎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대신 다른 걸 말해봐라. 원하는 건 모든 들어주마.”
“···그럼 축구를 그만 둘래요.”
“그, 그건 안되고. 다른 거.”
“누텔라. 아니면 은퇴. 그것밖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저 녀석이···”
그대로 잔디 위에 드러누워버리는 요한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며, 반석호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누텔라만큼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허락할 수 없긴 하다만, 지금 마음으론 뭐든 다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던 반석호.
반석호는 90분 내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경기를 지켜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요한이가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고, 필드 위를 누비는 것만 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무려 골까지, 그것도 4골이나 넣었으니까.
“역시 내 핏줄이야.”
오늘 경기를 보니, 하루라도 빨리 요한이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한 스스로의 능력 부족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1년만이라도 더 빨리 녀석의 마음을 다잡아줬다면, 이 정도면 프리미어 리그 최연소 1군 데뷔도 가능했을텐데.
‘1군 데뷔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석호는 요한이 필드 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리고 어제, 요한이 경기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밤잠을 설쳤고.
그런데,
오늘 이렇게 녀석이 대활약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1군, 프로 데뷔.
언제쯤이 될까.
요한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장 다음 시즌에라도 가능한 일 아닐까.
요즘은 열일곱, 열여덟에 1군 데뷔를 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니까.
‘물론, 아비의 욕심이겠지만.’
하지만 당장 그러지 못한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이제 아카데미에 입단한지 일주일도 안됐다.
그런 녀석이 유스 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한 것만도 대단한, 아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년까지 녀석이 축구를 계속 하는 것만으로도 기적.
얼마든지 느긋하게 요한이를 바라볼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반석호는 아직 모르고 있던 것이다.
그 욕심이,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이뤄질 줄은.
ㆍㆍㆍ
“알겠네. 시간이 나는대로 확인해보지. 응? 당장 확인해보라고? 알겠네, 알겠어.”
백발이 성성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1군 감독, 미하엘 슈미트는 전화를 끊고 싱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18세 팀 매니저인 맥웰의 전화였다.
오늘 첼시와의 유스 리그 경기가 있었는데, 그 경기의 비디오를 보냈으니 확인해보라는 전화.
“이 친구는 성미가 너무 급해.”
어린 지도자라 그런지 맥웰은 성미가 급하다.
그걸 열정이 넘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만.
뭐가 그리 급하다고 당장 확인해보라는건지.
“어디 보자.”
그래도 확인해보라니 확인해 봐야지.
슈미트 감독은 툴툴 거리면서도 노트북을 키며 돋보기 안경을 걸쳐 썼다.
“19번이라고 그랬지.”
맥웰이 영상 속에서 주목하라고 한 건,
등번호 19번을 달고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흐음.”
보여주고 싶은 선수가 스트라이커라니까, 맥웰이 빨리 확인해 보라고 했던 것도 이해는 간다.
스트라이커.
최근 웨스트 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 포지션이 바로 스트라이커였기 때문.
현재 리그 9위에 랭크되어 있는 웨스트 햄.
높은 순위도 아니지만, 낮은 순위도 아니다.
사실상 슈퍼 리그라 불리우는 요즘의 PL.
그 20개의 팀 중 9위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팬들은 9위라는 순위에 꽤나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9위보단 더 올라갈 수 있어 보였으니까.
9위에 맞는 팀으로 9위를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6위 정돈 할 수 있는 팀으로 9위를 한다면 그건 확실히 문제.
그러나 팬들은 슈미트 감독의 탓을 한다거나, 선수들의 탓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건 문제가 없었다.
독일의 실리 축구를 색깔있게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슈미트 감독은 영감님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선수단 역시도 나름 괜찮은 자원들이 충분히 차고 넘쳤다.
다만,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게 바로 스트라이커의 부재였다.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
포워드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득점력을 갖춘 윙어들도 있었고, 모든 공격 포지션을 다 볼 수 있는 자원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흔히 ‘9번’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런 정통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통 스트라이커.
아무리 정통 스트라이커란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의 트렌드라 해도,
결국 스트라이커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확실하다.
실제로 방점을 찍어주는 해결사가 없어 승점을 잃은 경우가 많은 웨스트 햄이었다.
공격수들이 고루 득점을 하는 것도 좋지만, 확실한 하나의 득점원을 보유하는 것도 굉장한 무기.
그 때문에 스트라이커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번 시즌이었는데.
그걸 구단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슈미트 감독 역시 꾸준히 구단에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시즌 종반에 가까워지고, 여름 이적 시장에 다가서고 있는 지금.
구단은 이미 슈미트 감독에게 빅 사이닝을 약속한 상태였다.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투자해, 믿을만한 스트라이커를 데려오기로.
“19번··· 19번··· 아, 여깄네.”
그런 상황이었으니.
슈미트 감독은 영상을 재생시키고도 그다지 집중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유스에서 키운 자원을 콜업해 쓰는 게 막대한 영입 자금을 투자해 선수를 데려오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게다가 웨스트 햄의 유스는 꾸준히 좋은 선수들을 배출해오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 웨스트 햄이 필요한 건 당장 주전으로 기용 가능한 스트라이커였다.
그런 스트라이커를 데려오기로 이미 구단이 약속한 상태였고.
그러니,
슈미트 감독이 영상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날마다 눈이 침침해지니, 이거 원.”
영상을 틀어놓고 동시에 잡무를 처리하는 슈미트 감독.
영상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도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슈미트 감독의 손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슈미트 감독의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안경 너머로 노트북을 바라보는 슈미트 감독.
“···호오.”
맥웰이 말했던 영상 속의 19번.
그 19번이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가, 시선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제이미! 제이미 거기 있나?”
“예! 왜요, 감독님?”
“이거, 화면 좀 키워봐. 크게!”
“아이, 참. 여기 누르면 전체화면이라고 몇 번 말씀드려요, 영감님.”
“이 나이 되면 그런 거 기억해둘 자리가 없어, 이놈아.”
“이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거 누르는 것보다 널 부르는 게 더 쉬우니까 말이지.”
“에휴. 근데, 뭡니까? 얘 누구예요?”
밖에선 수석 코치라 불리지만, 팀 내에선 영감님 수발드는 자원봉사자라 불리는 제이미 코치가 옆에 앉는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럽게 영상 속 19번이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ㆍㆍㆍ
“어후. 딱 한 접시만 더 먹어야겠다.”
“또 먹는다고?”
“네 접시밖에 안 먹었어.”
“아빠한테 이걸 말해야 되나···”
“스읍. 이것까지 건드리면, 나 훈련장 안나온다?”
“아, 알겠어. 알겠어. 실컷 먹어.”
아카데미에 입단한 이후로,
모든 게 싫었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구단에서 밥을 준다는 것이었다.
웨스트 햄 아카데미는 한창 성장기인 선수들을 위해 뷔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은 뷔페의 대주주였다.
“먹을만 하니?”
“네. 맛있는데요.”
“다른 애들은 먹는둥 마는둥 하는데, 어쩜 이렇게 잘 먹어. 보기 좋네.”
입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요한은 식당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뭐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만국공통.
요한이 한 번 왔다 가기만 하면 잔반마저 싹싹 털어가니 예쁠 수밖에.
“다시 시작해볼까.”
“첫 접시보다 더 많이 퍼왔네.”
그러나,
그런 요한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지금이야 저렇게 먹어도 된다지만, 성인되고도 저렇게 먹으면 안될텐데.”
“햄버거를 사랑했던 한 선수가 떠오르네요.”
“식탐을 좀 줄이든지, 운동량을 늘리든지 둘 중 하나 하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날거야.”
“아무리 나이가 나이라지만, 지금 저 몸매인 것도 신기해요.”
식당 한켠에서 식사 중이던 맥웰과 코치들이 요한을 보며 말했다.
훈련도 제일 안하는 게, 먹기는 엄청 먹어대니 걱정될 수밖에.
아무리 기초대사량이 높아도 저렇게 먹다간 한순간 몸이 불 수도 있을텐데.
맥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선수 관리의 도사가 요한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요한! 잠깐 이리 와볼래?”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려는 요한을 맥웰이 불러 세웠다.
긴히 할 말이 있었다.
“왜요?”
“요한. 그래 뭐,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훈련 좀만 더 열심히 하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
“?”
요한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하는 맥웰.
갑자기 웬 작별 인사?
“감독님, 짤리셨어요?”
“뭐? 내가 왜 짤려?”
“갑자기 떠나는 것처럼 말하시길래.”
“그게 아니고, 임마.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네가 떠나는 거야. 다음 주부터, 여기로 출근 안해도 된다.”
“···!”
다음 주부터 출근을 안해도 된다고?
요한의 동공이 그 어느때보다도 크게 떠졌다.
정말?
정말인가?
요한이 만세를 부르려는 순간.
맥웰이 뒷말을 이었다.
“대신, 1군 훈련장으로 출근해라. 슈미트 감독님이 널 부르셨다.”
“···예?”
“말 그대로야. 널 1군으로 불렀다고.”
“···왜요?”
“왜긴. 지난 번 경기 영상을 보여드렸더니, 일단 한 번 보자고 부르시더군. 그러니까, 가서도 잘하고. 훈련은 좀 열심히 하고.”
“···”
만세를 부르려던 요한의 두 팔이 힘 없이 축 쳐졌다.
아니, 정말.
여기 온 이후로 매일 매일 절망적인 소식밖에 들려오지 않는다.
입단한지 3일만에 경기에 나가라질 않나, 이젠 뭐? 1군으로 가라고?
1군의 훈련 강도는 아카데미와 비교가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여긴 학교가 끝난 뒤에 훈련을 하기라도 하지.
거긴 아침부터 훈련해야 하지 않아?
“그··· 안가면 안되나요···”
“안가는 게 어딨어. 부르면 넙쭉 가야지. 다른 애들은 제발 자길 불러주길 기다리는데.”
“가기 싫은데요···”
“어허. 배부른 소리 하지 말어라. 하긴, 그렇게 먹어댔으니 배가 안부를리 없겠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떠나고 싶던 곳인데, 일이 이렇게 되니 이곳의 모든 게 사랑스러워 보인다.
떠나기 싫다.
제발 자길 보내지 말라고 싹싹 비는 요한.
그러나,
맥웰은 한 마디로 일축해버렸다.
“1군에선, 여기랑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밥이 잘 나온다.”
“···”
참나.
밥이 잘 나온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할 것 같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중요하긴 하지.
요한은 꾸벅 인사를 한 뒤 식당을 나갔다.
“짜식.”
그런 요한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맥웰.
맥웰은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리그가 종반으로 치닫는 시점.
1군 팀은 순위가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남은 경기들은 승패가 크게 유의미하지 않은 상황.
유망주들을 시험해보기 좋은 시간이었다.
슈미트 감독이 곧바로 요한을 불러들인 것도, 이럴 때 한 번 보자는 생각일 터.
이런 경우가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유망주들에겐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경험을 쌓게 할 수 있으니까.
잠깐이라도 1군 맛을 보고 돌아온 선수들은, 확실히 기량이 남달라지곤 했다.
하지만,
뭐랄까.
요한, 저 녀석은 그런 아이들과는 다른 케이스가 될 것만 같았다.
“스미스 코치. 내기 하나 할래?”
“내기요? 무슨 내기요, 감독님?”
“요한, 저 친구. 얼마만에 우리 팀으로 돌아올지. 한 번 맞혀보자고.”
“흐음. 글쎄요? 시즌이 끝나는 한 달 뒤에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
한 달 뒤라.
맥웰의 생각은 달랐다.
“난 안 돌아올 것 같아. 저 친구. 왠진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
요한이라면 왠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18세 이하 팀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