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1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10화(110/202)
< 109화 – 유로 결승 >
해설자의 말이 맞았다.
0대2의 스코어를 따라잡는 것도 잡는건데, 일단은 잉글랜드의 공세를 막는 게 먼저였다.
남은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0대2는 가망이 있어도 0대3은 가망이 진짜 없다.
연장까지만 가면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잉글랜드도 체력 부담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정신 차려야 돼. 나라도···’
동료들을 둘러보며 생각하는 비에가.
지금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멘탈이 문제다.
다들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제 실력이 안 나오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포함해서.
전반엔 상대의 얄미운 플레이에 말려 버렸고, 지금은 반전된 기세에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다.
상대는 추가골을 넣었음에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여기서 게임을 끝내려는 듯 공격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내가 뒤집어야 해.’
비에가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최대한 수비 가담을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솔직히 그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자신은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다.
수비 지역에 그저 한 명이 더 서 있는걸론, 잉글랜드의 공세를 막는데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
요한을 슬쩍 바라보며 생각하는 비에가.
전반을 생각해보면, 플랜대로 잘 끌고 가고 있던 경기가 갑자기 삐끗하기 시작한 건, 저 친구가 역습으로 경기장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면서부터였다.
즉, 어쭙잖게 동료를 도울 바에 자신의 장점을 살려 분위기를 바꿔버렸다는 거다.
자신도 똑같았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역시나 공격이다.
어떻게든 공을 소유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이 자신들의 진영에서, 위험 지역에서 돌게끔 해서는 안된다.
공을 여기서 탈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물러날 것이다.
그러려면, 동료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잘해야 한다.
요한, 저 녀석이 보여준 것처럼.
자신도 자신의 힘으로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자신에겐 우승을 할 자격도, 발롱도르를 수상할 자격도 없다.
저 녀석은 해냈으니까 말이다.
<중앙으로 패스, 아! 그러나 차단됩니다. 비에가에게, 비에가! 뭔가 보여주나요? 빙글빙글, 빠져 나오는데요!>
<1차 저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아크 정면에서 끊긴 잉글랜드의 패스.
스페인은 클리어링 대신 비에가에게 공을 넘겼고, 비에가는 오로지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공을 몰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아앙-!
깊게 들어오는 발을 피하고,
툭, 툭-!
거칠게 달려드는 녀석을 피해 돌고,
타타타탓-!
그렇게 어렵사리 공을 간수해내며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 비에가.
그 좁은 공간을, 그것도 잉글랜드 선수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비에가의 모습도 굉장하긴 굉장했다.
괜히 그가 레알과 스페인의 핵심이라고 하는 게 아니고, 발롱도르 수상 후보인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
<수비 숫자가 부족합니다!>
<양쪽으로 엔리케와 퀸테스가 달리는데요! 공격 셋! 수비 셋!>
<선택을 잘해야겠습니다! 비에가는 높은 확률로 패스를 선택할 거거든요!>
하프라인을 넘어, 계속해서 치고 달리는 비에가.
대부분의 선수들이 스페인 진영에 밀집해 있었기에, 잉글랜드의 후방은 넓었다.
애초에 1차 저지가 안 된 이상, 이런 위기는 당연한 결과.
공격 셋에 수비 셋이다.
공을 몰고 올라가는 비에가와, 오른쪽 라인을 타고 들어가는 퀸테스, 그리고 왼쪽에서 중앙으로 대각선을 그으며 침투하는 엔리케.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비에가는 오른쪽의 퀸테스에게 패스를 했을 것이었다.
잉글랜드 수비 역시 그걸 예상하고 있는 듯, 공을 가진 비에가에게 달려드는 대신 패스 길을 차단하려는 포지션을 취했다.
그런데 이 순간, 비에가는 퀸테스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해야 돼.’
비에가는 오른쪽으로 패스하는 대신, 엔리케가 열어준 왼쪽 공간으로 뛰었다.
그리고 박스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 상대 수비가 자신에게 붙어오는 순간.
뻐어어어어엉-!
왼발 슈팅을 때리는 비에가.
쿠당탕-!
슈팅을 때린 뒤, 비에가는 땅을 뒹굴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체중을 싣는 슈팅을 때렸기에 넘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땅을 한 바퀴 구른 비에가는 고개를 들어 골대를 바라 보았다.
“···”
공은 골키퍼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정면으로 향한 슈팅! 다행입니다!>
<슈팅을 선택한 비에가! 그러나 마지막 순간 힘이 실리지 못했습니다. 하프라인 아래서부터 혼자 치고 올라왔거든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죠!>
<비에가가 왜 패스를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잉글랜드에겐 다행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비에가.
저쪽에서 엔리케와 퀸테스가 뭐라 뭐라 하는 게 들린다.
왜 패스를 주지 않았냐는 말일 터.
“···.”
비에가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패스를 하지 않은 건, 자신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근데, 과연 정말로 그것 때문이었나?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비에가.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요한의 모습.
그래.
솔직해지자.
자신이 패스를 하지 않은 건, 동료들이 걱정 되어서가 아니었다.
저 녀석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건, 그게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저 녀석의 그늘에 가려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비에가는 조금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저 녀석처럼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는 걸.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동료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휴우.”
이 시점에서, 비에가는 오늘 게임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 잉글랜드의 우승까지 10분이 남았습니다!>
<역사상 처음입니다. 역사상 처음! 드디어 유로 챔피언의 트로피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 비에가의 그 역습이 골로 연결됐다면, 경기 분위기는 또 혼돈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허나, 결과적으로 실패가 된 비에가의 선택은 스페인의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스페인이 자랑했던 그 장점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암담해진 분위기에 각종 응원 도구들과 스페인 국기, 바디 페인팅 등으로 치장한 스페인 관중들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고.
반대로 잉글랜드 관중들은 이미 이기기라도 한 듯 다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점점 더 90분에 가까워져 가는 전광판의 시계는 카운트 다운일 뿐이었다.
잉글랜드의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
10분, 9분, 8분, 7분.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웸블리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이런 카운트 다운에 어울리는 게 하나 있다.
축포다.
그러나, 오늘의 축포는 타이밍이 조금 안 맞고 말았다.
보통 축포는 카운트가 0이 되었을 때 빵! 하고 터지지 않나.
하지만 오늘의 축포는, 빨리 휘슬이 울리길 바라는 관중들의 마음 때문인지. 조금 이르게 터진 것이다.
후반 42분,
요한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올-!! 환상적인 쐐기골이 터졌습니다아아아!>
<축포입니다! 잉글랜드의 우승을 알리는 축포가 터집니다! 이보다 완벽한 결승전은 없었습니다!>
시작은 오른쪽에서부터였다.
오른쪽 사이드로 잠시 빠져 있던 요한에게, 왼쪽에서부터 전환 패스가 연결 되었고.
그 패스를 받은 요한은 상대 레프트백부터 센터백들까지, 차근차근 한 명씩 드리블로 부수고 들어갔다.
오늘 대니 화이트부터 해서, 잉글랜드 수비가 낯선 리듬으로 흔들어대는 퀸테스의 드리블에 난색을 표했듯.
스페인 수비 역시 요한의 리듬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혼자서 세 명의 수비를 허수아비로 만든 요한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고, 그것은 말 그대로 축포가 되었다.
“···.”
골을 터뜨린 요한은, 폭동이 난 것처럼 환호하는 관중들 앞에 자연스럽게 섰다.
그런 요한에게, 관중들은 두 손을 들고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
마치 경배하듯이.
이번 대회, 첫 골과 마지막 골의 주인공은 요한이었다.
유로 2028은 이견이 없는, 요한의 대회였다.
*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우와아아아아아앗-!”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웸블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되었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필드 위에 있던 선수들은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감격했으며, 잉글랜드 벤치의 모두는 필드 위로 쏟아져 나왔다.
<유로 2028! 우승 팀은 잉글랜드입니다!>
<드디어! 드디어 축구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는 이 순간.
그러나, 요한 만큼은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사방에서 죽일 듯이 달려드는 동료들 때문에.
“으아아아아!”
“야 이 미친 꼬맹아!”
“네가 해냈다!”
“너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야!”
요한 정도의 체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압사 당했을지도 몰랐을 거다.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요한에게 달려들어 고마움을 표하고, 기쁨을 나누었다.
아니, 선수들 뿐만이 아니지.
모든 코칭 스태프들, 심지어 라니스터 감독까지 그 사이에 껴서 울부짖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저 멀리 관중석 한켠.
그들 못지않게 기뻐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크흐흑···!”
“우··· 울지 마세요, 아빠··· 흑!”
반석호와 로한은 폭탄 머리를 한 채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
반씨 집안의 재능이, 세계 최고라는 걸.
그걸 요한이가 증명해줄 거라는 걸.
“왜들 이래, 진짜.”
청승을 떠는 둘을 보며 혀를 차는 김라희.
그러나, 김라희 역시도 눈가가 촉촉하다.
“우리 아들이 마음을 잘 안 먹어서 그렇지, 하면 잘한다니까.”
전형적인 학부모들의 대사를 하며, 핸드폰을 꺼내 저 멀리 요한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김라희.
김라희는 그 사진을 곧바로 SNS에 업로드 했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아버님. 아, 경기 보고 계셨어요? 손주 녀석, 진짜 장하죠?”
이 중에 제일 프로페셔널한 건 김라희였다.
*
<준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선수들에게 메달이 수여되겠습니다.>
<박수로 위로해주는 잉글랜드 선수들. 스페인도 정말 강한 팀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운이 없었어요. 다른 대회였다면 분명 우승을 차지했을 만한 전력이었는데. 하필 요한이 있는 잉글랜드를 만나고 말았네요.>
결승전이 좋은 이유는, 승리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경기장의 흥분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뒤, 이어진 시상식.
준우승에 그친 스페인 선수들은 잉글랜드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로 향했다.
준우승도 잘한 거지만, 이 순간 그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침통한 표정으로 시상대로 향하는 선수들.
그러나, 그런 선수들도 요한의 앞을 지날 때 만큼은 고개를 들고, 요한에게 악수를 청했다.
비에가도 마찬가지였다.
“축하한다.”
“고생했어요.”
은메달은 동메달보다도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메달은 승리를 통해 얻는 메달이지만, 은메달을 패배를 통해 얻는 메달이니까.
하지만, 비에가는 결승까지는 왔다는 게 감사한 기분이었다.
4강에서 떨어져, 요한과 함께 경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억울해 했을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발롱도르 수상에 실패했을 경우 말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깨끗이 인정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이 녀석은 확실히 자신보다 위였다.
오늘만큼은, 이번 시즌만큼은 말이었다.
<준우승 메달 수여가 끝났습니다. 자, 그리고 이제! 유로 챔피언에게 우승 메달이 수여되겠습니다!>
<모든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마찬가지구요!>
이어서, 잉글랜드 선수들의 차례.
차례차례 빛나는 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
요한 역시도 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하하네.”
“아, 예.”
요한에게 메달을 걸어준 UEFA 회장, 안톤 쉬레거는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요한을 안아 주었다.
요한이라는 새로운 스타 덕분에, 이번 대회가 역대급 수익을 기록했으니 싱글벙글한 게 당연한 일.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유럽 축구의 흥행을 책임질 스타니까.
<자, 저희가 드디어 이 순간을 목도합니다. 트로피 세레모니가 이어지겠습니다.>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메달을 목에 건 뒤.
안톤 쉬레거 회장은 묵직한 유로 트로피를 주장 셰인 머레이에게 건넸다.
“오오오오오-”
발을 동동 구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선수들.
머레이는 동료들과 맞춰 발을 구르며 허리를 숙였다가,
“예에에에에에에-!”
환호성을 터뜨리며 트로피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퍼퍼퍼펑-!
동시에 터지는 축포.
웸블리는 거대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유로 2028, 챔피언! 잉글랜드입니다!>
챔피언을 축하하며, 밤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그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요한은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경기 끝났으면 빨리 집에 좀 보내주지.
뭐가 이렇게 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