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0화(120/202)
< 119화 – 최대 아웃풋 >
웨스트 햄이 전반 내내 수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무승부만 거둬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것보다 중요한 건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들에게 많은 공격 기회가 주어지진 않겠지만, 그 많지 않은 기회들을 모두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공간이 더 커졌다.’
다니엘레 카펠로는 전방을 훑으며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의 간격이 꽤 넓어졌다는 게 보이고 있었다.
전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다들 흥분 상태이기 때문일까.
둘 다일 것이다.
본래 바르셀로나의 간격 유지는 상당히 타이트하다.
서로가 언제든 짧은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좁은 거리를 유지하며 포지션을 잡는 바르셀로나의 간격 유지는 일품.
심지어 도전적인 패스가 끊길 경우, 론도의 술래 역할을 해야 하는 론도 지옥에 빠져 버리니.
바르셀로나는 쉽게 전진 패스를 시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패스 길이 보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
요한이 손을 들고 있었다.
자기에게 패스를 달라는 제스쳐.
녀석이 달라는데,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뻐어어어어엉-!
카펠로의 롱 패스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필드를 넓게 대각선으로 가르며 쏘아졌다.
요한이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웬만한 센터백들이 두 명 이상 붙어도 공중볼 경합에서 이겨내는 요한이다.
그러니, 비교적 키가 작은 상대 풀백과의 경합은 식은 죽 먹기.
파아앙-!
가볍게 떠올라 공을 잡아내고, 떨어지는 공을 발로 컨트롤 해낸다.
이어지는 풀백과의 1대1 대결.
툭, 툭-!
천천히 상대를 보며 들어가는 요한과,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자세를 낮추는 바르셀로나의 레프트백 라요 무시엘라.
‘좋아, 와라.’
무시엘라는 절대로 이 1대1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엔 라 리가에서도 정상급의 드리블러들이 즐비하다.
그런 드리블러들과 매일 같이 훈련하는 자신이고.
물론 그 기초는 라 마시아 시절부터 닦아왔다.
전 세계 온갖 괴물들, 소위 말하는 재능충들이 우글우글한 라 마시아.
그곳에서 수비수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절대로 1대1에서 져선 안됐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남아 바르셀로나의 1군 레귤러가 된 자신이다.
‘너희 아카데미의 최대 아웃풋도, 라 마시아에선 평범한 수준이었을 거라는 걸 보여줄게.’
요한의 발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무시엘라.
어떤 기교도 자신에겐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순간이었다.
파아앙-
타타타탓-!
순식간에 사라지는 공.
그리고, 순식간에 멀어지는 요한.
<속도로 벗겨냅니다!>
<골 라인을 향해 파고드는 요한!>
화려한 기교는 없었다.
눈을 어지럽히는 페인팅도, 예측을 예측하는 심리전 따위는 없었다.
그저, 툭 치고 달렸을 뿐.
예상보다 너무 단순한 그 정공법에,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머리에 넣고 있던 무시엘라의 반응이 늦었다.
‘젠장. 단순한 놈들이라는 걸 잊고 있었···’
아차하며 따라가보지만, 이미 박스 안까지 파고들어 등을 보이고 있는 요한.
아름다운 축구가 아니라, 단순한 축구를 지향하는 무식한 놈들이라는 걸 잠시 까먹고 있었다.
근데, 무시엘라는 알아야 했다.
요한이 화려하게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걸까?
요한에겐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한가하게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
‘7분···’
무시엘라는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었다.
전반 종료가 7분이나 늦어져,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진 요한을 막아야 한다는 건 무시엘라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힘든 일이었을 테니.
뻐어어어어엉-!
박스 오른쪽에서, 파 포스트를 보고 낮게 깔아차는 슈팅을 때리는 요한.
골키퍼가 니어 포스트 쪽에 붙어 각도를 줄이고 있었지만, 슈팅의 코스는 절묘했다.
촤아아아아아-
철썩-!
송곳처럼 반대편 골망에 꽂히는 슈팅.
<고오오오올-!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역시 요한! 요한의 챔피언스 리그 첫 골!>
“와아아아아아앗-!”
겉잡을 수 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런던 스타디움.
요한의 챔피언스 리그 첫 골이 작렬하는 순간.
“요한아아아!”
“이 자식!”
“우어어어어!”
포효하며 요한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웨스트 햄 선수들은 바르셀로나의 박스 안에 모여 셀레브레이션을 펼쳤고,
“너희들, 오늘 큰일 났다!”
“···.”
고개를 숙이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놀리며 웃었다.
진짜 큰일 난 듯 했다.
한 골로는 화가 풀리기에 모자라다는 듯, 요한은 전혀 기뻐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
감히 요한에게 잔업을 시키다니.
바르셀로나가 지급해야 하는 시간 외 수당은, 상당히 비쌌다.
요한의 골로, 1대0 웨스트 햄이 앞선 채 마무리된 전반전.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
<바르셀로나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오늘 경기가 원정입니다만, 조별예선을 패배로 시작하는 건 매우 좋지 않거든요. 적어도 무승부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바르셀로나는 확실히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 지면 안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기도 하지만.
다 떠나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선수들에게서 보인다.
<페드리, 퀸테스에게.>
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은 건 이아고 퀸테스.
퀸테스는 뭔가가 답답했는지,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공을 받곤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며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발롱도르···’
하프 타임 내내 씩씩댔던 퀸테스다.
전반전, 상대 녀석들과 붙었던 신경전.
그 신경전으로 입은 내상이 꽤 컸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솔직히, 녀석들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었으니까.
라 마시아의 선배들이 이뤄낸 업적은, 그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업적들은 지금의 자신들이 이뤄낸 게 아니다.
아무리 라 마시아는 하나고, 라 마시아 출신은 하나의 철학으로 묶인, 같은 DNA를 가진 선수들이라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자신들은 그걸 가지고 자랑할 자격이 없었다.
<퀸테스, 계속해서 치고 들어가는데요! 저지해줘야 합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라 마시아의 꼬맹이들이 성장해, 세계를 호령하던 그때.
외부 영입의 도움 없이, 클럽이 키워낸 선수들만으로 유럽을 제패했던 그 시절.
라 마시아의 명성은 여전히 최고다.
잉글랜드에선 나름 유명하다는 웨스트 햄 아카데미도 비할 바가 못된다.
하지만, 라 마시아의 최대 아웃풋은 지금의 세대가 아니었다.
퀸테스도 그걸 알고 있었고, 인정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세대는 현재진행형이었다.
퀸테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훗날 자신이 은퇴했을 때.
자신이 라 마시아의 최대 아웃풋이 되는 것.
라 마시아 출신이 누가 있냐고 물었을 때, 제일 첫 번째로 꼽히는 이름이 되는 것.
그러려면, 먼저 넘어서야 한다.
저 녀석들 따위는.
라 마시아의 최대 아웃풋이 된다는 건, 곧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여선 안됐다.
<퀸테스, 슈우웃-!>
<아아, 그러나 살짝 벗어납니다! 위협적인 슈팅! 하지만 동점을 만드는 데는 실패합니다!>
야속하게도 골대를 벗어나는 퀸테스의 슈팅.
그러나 아쉬워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키퍼 제프 휴리첼은 볼보이가 건네준 공을 곧바로 찍은 뒤 골킥을 때렸고,
슈우우우우웅-
그 공은 요한에게로 정확히 향했다.
요한 주변으로 몰려드는 수비.
하지만,
파아아앙-!
요한은 헤더로 공을 돌려놓았다.
그 원터치 패스가 향한 곳은 왼쪽의 조슈아 베일리.
베일리는 슬쩍 전방을 확인한 뒤, 라인을 따라 그대로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탓-!
빠르게 왼쪽을 파고드는 베일리.
코너 플래그 근처까지 도달한 베일리는 간결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슈우우우우웅-
그 크로스가 향하는 곳은, 다시 요한.
어느새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온 요한이, 그 크로스를 향해 높게 뛰어올라 있었다.
파아아아앙-!
철썩-!
<고오오오올-! 두 번째 골이 들어갑니다! 베일리의 크로스를 요한이 완벽하게 마무리합니다! 17살 동갑내기들이 사고를 쳤습니다!>
멋진 합작품을 만들어내는 웨스트 햄 아카데미 듀오.
이들은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라 마시아의 전성기가 과거라면, 웨스트 햄 아카데미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
“얌마. 아까처럼 또 떠들어 봐.”
“···.”
“해보라니까. 너네 클럽 최대 아웃풋은 GOAT인데, 우리는 뭐냐고?”
“좀 닥쳐라.”
“오, 열 받냐? 할 말 없으니까 열 받아?”
웨스트 햄의 코너킥 상황.
카펠로가 킥을 준비하는 가운데, 벨라미가 쉴 틈 없이 떠들고 있다.
진짜 짜증나는 타입이다.
마음 같아서는 확 태클이라도 걸어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간 레드카드도 유도해낼 수 있는 놈이라 그럴 수도 없고.
“캄프 누에서 보자. 그땐 너도 지금처럼 떠들어댈 수 없을 거다.”
“왐마, 무서워라. 야, 근데 아직 경기 끝나지도 않았다. 벌써 그런 말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 오늘은 이미 포기한 거야?”
말은 또 맞는 말만 해대서, 말싸움으로도 이길 수가 없다.
결국 축구로 말하는 수밖에 없는데.
뻐어어어엉-!
카펠로의 코너킥이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해오고, 치열하게 자리 싸움을 하던 선수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그러나, 발 밑은 최강일지 몰라도 머리 위는 영 신통치 않은 바르셀로나다.
박스 안에 몇 명이 있든, 바르셀로나엔 요한의 헤더를 저지할 수 있는 선수가 없어 보였다.
파아아아앙-!
철썩-!
요한의 내리찍는 헤더가 또 한 번 작렬했다.
완전히 무너지는 골.
경기장은 또다시 환호 속으로 빠져 들었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무릎을 짚었다.
경기 시작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인정할 수 없지만, 사실이었다.
오늘 자신들은 상대에게 완벽히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리고, 벨라미는 친절하게도 그걸 굳이 한 번 더 짚고 넘어가 주었다.
“포기할 만 하구나. 미안하다, 야. 네 말이 맞았네.”
그런 벨라미를 보며,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두고 보자는 말 뿐이었다.
캄프 누에서 보자.
그때, 이 치욕을 배로 되갚아줄 테니.
일단··· 오늘은 날이 아닌 듯 했다.
“야아! 웨스트 햄 아카데미 최고 아웃풋! 자랑스럽다! 네가 자랑스러워!”
“야, 벨라미. 근데 넌 우리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잖아.”
“그러게. 네가 왜 자랑스러워 하냐?”
“너, 뭐 계약할 때 지도자 코스라도 약속 받은거냐?”
“···어떻게 알았냐?”
“와 씨, 부럽다.”
오늘은 웨스트 햄 아카데미가, 라 마시아를 상대로 완벽한 KO승을 거두는 날이었다.
*
<경기 종료! 스코어 3대0! 웨스트 햄이 홈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기대는 했지만, 예상은 못했던 결과.
웨스트 햄이 바르셀로나를 격파하고, E조에서 두 번째로 승점 3점을 챙긴 팀이 되었다.
“확실히, 저 녀석들이 제일 문제로군.”
E조에서 첫 번째로 승점 3점을 챙긴 건, 몇 시간 앞서 말뫼와 경기를 파리 생제르맹이었다.
챔피언들의 경기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무력을 행사하며 7대0의 승리를 챙겨간 파리.
말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거야 당연한 일이라.
파리의 감독 오마르 드뷔시는 자신들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웨스트 햄과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지켜봤다.
확실히 이번 E조의 가장 큰 암초는 웨스트 햄이었다.
웨스트 햄이 E조로 들어왔을 때, 드뷔시 감독은 바르셀로나가 걸렸을 때보다도 깊이 한숨을 내쉬었었다.
괜히 사람들이 E조를 죽음의 조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웨스트 햄이 들어옴으로써, 파리와 바르셀로나도 16강 진출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전력이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웨스트 햄은 바르셀로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스코어로 완파하며 그 전력을 증명했다.
드뷔시 감독은, 바르셀로나 전보다도 웨스트 햄과의 경기를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괴물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역시 문제는 저 녀석이다.
경기가 끝난 뒤, 요한의 MOM 인터뷰를 지켜보며 생각하는 드뷔시 감독.
바르셀로나가 오늘 참패를 당한 건, 역시나 저 녀석 때문이었다.
대체 어찌 막아야 할까.
여러 방법들을 떠올려 보지만, 적당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뷰를 보던 드뷔시 감독이 고개를 갸웃였다.
“오늘, 뭔가 감정적인 것처럼 보였는데요. 경기 전,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인터뷰에 자극을 받으셨던 건가요? 서로의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음, 그건 잘 모르겠고요. 좀 화가 나긴 했어요. 시간을 끌더라고요. 전반에만 추가 시간이 7분이나 됐잖아요. 덕분에 7분 더 그라운드에 있어야 했고요. 그게 짜증 났어요.”
“아하. 그것 때문에 해트트릭을 하셨군요.”
뭔 소리지, 저게?
그라운드에 7분 더 있는 게 짜증 나서 해트트릭을 했다고?
“···.”
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만.
드뷔시 감독은 일단 자신의 전술 수첩에 메모를 적어 넣었다.
-불필요한 추가 시간을 만들지 말 것.
이유는 몰라도,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