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3)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3화(123/202)
< 122화 – 파리 원정 >
“감독님!”
득점을 성공시키자마자 벤치로 달려간 베일리는, 슈미트 감독에게 폴짝 뛰어 안겼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선수들 역시 덮쳐들었다.
“으아아아!”
“크어억!”
선수들의 과격한 애정 표현에 숨이 턱 막히는 슈미트 감독.
흥분한 선수들에게 배려 따윈 없었다.
그 상대가 백발이 성성한 고령자라 할지라도.
“야, 야 이 놈들아! 영감님 숨 넘어가신다!”
그나마 제이미 코치가 달려드는 선수들을 목숨 걸고 막아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영감님 몸져 누우실 뻔 했다.
“꼬맹이!”
“꼬맹이, 꼬맹이, 꼬맹이! 아으, 속 시원해. 요한이한테 꼬맹이라고 못해서 답답했는데, 넌 맘껏 꼬맹이라 불러주마!”
“마! 요즘 아덜 무습다, 무서워!”
슈미트 감독을 향한 격한 애정 표현이 한 차례 지나가고.
베일리에게도 축하를 건네는 동료들.
이 녀석도 불과 17살의 꼬맹이다.
대체 2011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잘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산발이 된 슈미트 감독이 베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베일리는 해맑게 웃으며 다시 한번 슈미트 감독을 안았다.
하지만, 슈미트 감독은 곧 선수들에게 호통을 쳤다.
“여기까지! 경기 끝난 것처럼 굴지 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옙!”
선수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그라운드로 다시 내보내는 슈미트 감독.
그 불호령에 정신을 번뜩 차리고 제자리로 향하는 선수들.
예상외의 이른 시간, 예상외의 선수에게서 득점이 터지면서 웨스트 햄이 먼저 앞서갔다.
*
<웨스트 햄의 선취 득점! 그 골은 조슈아 베일리의 오른발에서 나왔습니다.>
<자, 수비 장면을 다시 보시죠. 곧바로 슈팅을 때릴거라 예상하지 못한 듯 한데요. 박스 안에서 너무 프리로 놔뒀습니다.>
<수비가 너무 요한에게 이끌려 있었군요.>
<베일리가 마무리 능력이 있는 선수라는 걸 파리가 몰랐던 모양입니다.>
베일리의 골은 확실히 파리가 생각지 못한 한 방이었다.
웨스트 햄의 전체 득점 중, 요한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다.
거의 뭐, 3골을 넣으면 2골은 요한의 골일 정도니까.
때문에 드뷔시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조했었다.
절대 다른 쪽에 시선을 끌리지 말고, 요한에게 붙어 있을 것을.
어차피 다른 쪽을 통한 공격은, 결국 요한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며 말이었다.
그런데, 요한에게 가기도 전에 베일리 선에서 실점을 당해버렸으니.
파리, 그리고 드뷔시 감독도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녀석들도 만만치 않다.
실점 후에도 준비해온대로만 한다면, 비슷한 식으로 또 실점을 내줄 수도 있는 일.
‘어떻게 할까요?’
파리의 주장 에단 카셀은 벤치를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듯한 눈빛.
그러나, 에단 카셀은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불안함을 느꼈다.
드뷔시 감독이 소중한 수첩도 벤치에 내팽개친 채 손톱을 깨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뭐가 됐든 파리가 꺼낼 수 있는 수는 하나 뿐이었다.
공격.
일단 동점을 만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차피 파리의 강점은 공격.
실점 후, 파리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클레베르손, 흔들어 줍니다.>
<그래도 클레베르손이 공을 잡으면, 꾸준히 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클레베르손을 위주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파리.
드뷔시 감독은 상당한 전술가이지만, 사실 공격에 있어선 그리 세세히 전술을 부여하지 않는다.
선수들끼리도 알아서 잘 하기 때문이다.
클레베르손을 포함해, 중앙의 데니스 카예혼, 오른쪽의 에메리 마누즈가 이루는 쓰리톱은 가히 파괴적.
그들은 개개인 모두가 혼자만의 능력으로도 수비진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다.
근데, 그런 셋의 호흡마저 환상이라.
딱히 전술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동점골을 위해 달려드는 그 셋을 상대하는 웨스트 햄의 수비도, 조금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개인 능력으로는 확실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협력 수비로 막아야 해요.>
<그래도 웨스트 햄 입장에서 다행인 건,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봤다는 거겠죠.>
사실 저번 시즌의 경험이 없었다면, 웨스트 햄은 꽤 크게 흔들릴 수도 있었을 거다.
개개인의 역량이 달리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이미 맨시티도 결승에서 잡아본 경험이 있었다.
유럽 최고의 크랙이라는 사미르 리샤드를 막아내면서 말이다.
그때 얻었던 경험치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는 벨라미까지.
쓰리톱의 개인 능력을 앞세운 파리의 공세를, 웨스트 햄은 하나로 뭉쳐 막아내는 느낌이었다.
결국, 한 차례 찾아온 위험한 흐름은 주심의 휘슬에 의해 끝이 났다.
<전반전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1대0! 웨스트 햄이 앞선 채 후반으로 이어지겠습니다.>
*
“제르단.”
“예.”
“좀 더 수직적으로 움직여 줘야 해. 우린 왼쪽 공격에 좀 더 힘을 실을 필요가 있어.”
“알겠습니다.”
“샤키미. 중앙으로 더 들어와 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중원에서의 숫자 싸움이 밀리잖아.”
“예.”
하프타임.
파리의 라커룸은 굉장히 차분했다.
방금 막 전반전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의 라커룸이라기보단, 수업 중인 교실의 느낌.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드뷔시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드뷔시 감독은 역시나 수첩을 보며, 후반전엔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 할지 설명 중이었다.
수첩에 빼곡히 적혀진 개선점들.
수정해야 할 게 많은 전반전이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읊기만 해도 하프타임이 다 갈 듯한데.
드뷔시 감독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카셀. 다 숙지했나?”
“예. 이해했습니다.”
“좋아. 이제 다들 쉬면서, 머릿속으로 한 번씩 더 되뇔 수 있도록 해.”
드뷔시 감독의 설명이 끝나자, 라커룸엔 적막이 감돌았다.
하프타임 동안은 선수들간 대화를 일절 금지 시키는 게 드뷔시 감독의 스타일이다.
어차피 선수들 간의 토론 따위는 필요 없다.
전술적인 부분에 관해선 드뷔시 감독이 전부 정리해 주니까.
하프타임 동안 해야할 것은 말이 아니라, 그저 후반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
선수들은 그저 쪽지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드뷔시 감독이 했던 말들을 중얼거리며 후반전을 준비했다.
*
웨스트 햄의 라커룸은, 파리 쪽과는 정반대였다.
“2011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이런 천재들이 탄생한 거냐고.”
“베일리. 그 슈팅 죽였다. 그 순간만큼은 네가 클레베르손보다 위였다고.”
“무슨 소리야. 그 순간 뿐만이 아니야.”
라커룸은 전반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선수들로 떠들썩.
베일리의 골을 칭찬하기도 하고, 서로 잘했던 점들을 말해주며 힘을 돋우었고, 미흡했던 점들을 짚어주기도 했다.
“네이슨, 버클리. 체력은?”
“괜찮습니다.”
“걱정 없습니데이.”
“괜찮으면 안되는데. 후반전 끝나고 똑같이 물었을 때, 똑같은 대답이 나오면 안된다. 그땐 힘들어서 죽겠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옛썰!”
슈미트 감독은 딱히 전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며, 좀 더 파이팅을 할 수 있도록 끌어줄 뿐.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슈미트 감독이다.
전술적인 피드백은 경기장 라커룸이 아니라, 훈련장에서 해야 한다는 걸.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얘기해봤자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슈미트 감독에게 하프타임이란,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자, 자. 후반전도 전반전처럼만 해보자!”
“컴 온! 해보자! 저 새끼들 좆도 아니야!”
“저 놈들은 여우들의 왕! 우린 사자 무리에서 커온 놈들이다!”
“컴 온! 유나이티드!”
덕분에, 후반을 위해 라커룸을 다시 나서는 선수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있었다.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선수들.
입구 쪽에 서 있던 슈미트 감독은 한 명씩 하이파이브를 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요한.”
“예?”
“아직 공격 포인트가 없군. 내 얼굴을 더 자주 보고 싶은가 보지? 나야 환영이라네.”
“···.”
물론, 매콤한 한 마디도 잊지 않는 슈미트 감독이었다.
*
<조금 희한한 일입니다. 전반 막판, 분명 분위기를 가져갔던 건 파리였는데요. 후반이 시작된 뒤, 흐름을 다시 잡는 쪽은 웨스트 햄입니다.>
<하프타임 동안, 웨스트 햄 벤치가 전술적인 변화를 주문한 것일까요?>
<그렇다기엔, 포메이션 상으론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군요. 눈에 띄는 변화라곤, 단지 선수들이 한 발 더 열심히 뛴다는 것밖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변화로군요.>
웨스트 햄의 축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간단하다.
두 발 더 뛰는 축구.
한 발 더 뛰는 걸로는 부족하다.
한 발 덜 뛰는 요한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선수들은 두 발을 더 뛰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본인이 두 발을 더 뛰었을 때,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한 몸싸움! 버클리가 경합을 기어이 이겨냅니다!>
<거의 반칙성으로 붙잡았는데, 쓰러지질 않네요. 버클리!>
<웨스트 햄의 에너지 레벨은 후반에 들어서도 떨어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파리 선수들은 분명 하프타임 동안 드뷔시 감독이 강조했던 바를 머릿속에 넣은 채 뛰고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지금은 전술이 중요한 게 아닌 느낌이었다.
웨스트 햄은 기세를 완전히 타고 있었고, 그 불을 끌 수 있는 건 어떠한 전술 따위가 아닌 듯 했다.
축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스포츠고, 몸과 몸이 부딪히는 스포츠다.
웨스트 햄 선수들은 파리 선수들의 몸이 위축될 정도로 기세를 뿜어내며 경기장을 휘저었다.
<저 에너지의 원천은 뭘까요? 어떤 동기부여가, 선수들을 저렇게 뛰게 만들 수 있는 걸까요.>
<오늘 경기는 물론 중요한 경기입니다. 웨스트 햄 입장에선 반드시 이겨야 토너먼트 진출을 노려볼 수 있을 테니, 당연히 열심히 뛰는 게 맞겠죠. 하지만, 마치 결승전인 것처럼 뛰는 웨스트 햄 선수들의 모습은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네요.>
심지어, 후반에 들어선 뒤부턴 요한마저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나, 슈미트 감독이 라커룸에서 했던 그 한 마디가 자극제가 되었다.
한 주에 두 번 경기를 뛰는 것도 모자라, 훈련까지 꽉꽉 채울 순 없지.
감독님은 꽤 좋은 분이시지만, 자주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시다.
“헤이.”
“자!”
파아앙-!
상대 수비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요한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패스를 받기 위해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움직임.
그 움직임을 포착한 카펠로가 패스를 내줬고, 공을 잡은 요한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타타탓-!
골대 앞에 그득한 파리 수비진.
그러나 요한은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공을 몰고 들어갔다.
그 저돌적인 돌진에, 파리 수비수들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자신들을 향해, 이렇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공격수는 없었다.
적어도 리그앙에선 말이다.
순간, 그들은 그제서야 자각했다.
홈에서 경기가 펼쳐지고 있긴 하지만, 이건 리그앙이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임을.
타타탓-!
간결한 페인팅.
요한은 속도와 상체 움직임만으로 파리 수비수들 사이를 파고 들었다.
그리고, 수비수들의 다리 사이에서 실낱같은 틈이 보였을 때.
뻐어어어어엉-!
한 박자 빠른 슈팅.
골문 구석을 향해 낮게 깔아 찬 그 슈팅은,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코스로 빨려 들어갔다.
철썩-!
<고오오오오올-! 요한이 드디어 득점포를 가동합니다! 뭔가요! 방금의 그 드리블 돌파는!>
<웨스트 햄의 필승 공식이 터졌습니다! 드뷔시 감독의 밀착 마크가 먹혀드는가 싶었습니다만! 결국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리그앙의 제왕이 자신들의 성을 함락 당하는 순간.
“예스.”
요한은 조용히 벤치를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감독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주 뵙고 싶은 얼굴은 아니십니다.
아버지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매일 보면 싸운다고.
가끔씩 보는 게 최고라고.
그러니까 결혼은 신중히 하라고······
음?
아니, 아무튼.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주 보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요한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럴 때 보면, 저 녀석만큼 다루기 쉬운 녀석도 없어.”
웃고 있는 건 슈미트 감독도 마찬가지였지만.
*
“삐익, 삐익, 삐이익-!”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누군가에겐 의외고, 누군가에겐 당연한 결과가 전광판에 쓰여졌다.
90 : 00
PSG 1 : 3 WHU
3대1, 웨스트 햄의 승.
2대0 상황에서 파리가 한 골을 따라왔지만, 요한이 달아나는 골 하나를 더 집어넣으며 추격의 불씨를 꺼버렸다.
3분의 2 공식이 오늘도 성립했다.
웨스트 햄이 3골을 넣으면, 그 중 2골은 요한의 골이라는 공식 말이다.
상대의 홈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되는 웨스트 햄.
이로써, E조에서 웨스트 햄은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사실, 오늘 전반까지만 해도 이렇다할 기회를 잡지 못하셨었는데요. 후반에 들어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시며 두 골을 기록하셨습니다. 하프타임 때, 어떠한 전술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경기가 끝난 뒤, 요한은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는 요한.
“딱히 없었어요. 다만, 제가 생각해도 전반보단 후반에 더 열심히 뛰었던 것 같네요.”
“이유가 뭘까요?”
“감독님 얼굴을 자주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또, 또 앞뒤 잘라먹고 이야기하는 요한.
다행히, 이번엔 친절히 부연 설명을 붙였다.
“경기장에 나가기 전에, 감독님이 얘기하셨어요. 자길 자주 보고 싶은 거냐고. 제가 골을 못 넣으면 감독님을 자주 봐야 하거든요. 결국 골을 넣으라는 얘기셨죠. 전 감독님의 말을 잘 들은 것밖에 없습니다.”
“다 감독님의 덕인가요? 하하.”
“네. 저희 감독님만한 분이 없죠.”
요한의 말 한 마디로, 아마 모든 게 정리될 듯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슈미트 감독이 최고라고 요한이 말했는데.
어느 누가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 경기로, 이제 슈미트 감독을 과소평가하는 여론은 잠잠해질 것이었다.